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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 - 일본의 역사 조작 한국 고대사 왜곡 임나일본부설

by 도생(道生) 2016. 6. 8.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의 역사 왜곡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4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 설

『환단고기』 -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 역사 조작: 한국 고대사 왜곡 임나일본부 설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가야는 562년간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속했습니다.

그래서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함께 존속했던 한국 고대사는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四國) 시대라고 해야 올바른 역사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의 역사가 나오지 않으며,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가야의 역사가 나옵니다. 

실제 삼국시대라고 불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체제는 불과 98년(562~66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야는 서기 전 42년 김수로왕으로부터 16대를 이어 520년 구형왕까지 562년간 존속하였습니다.

가야는 고려와 근세조선의 역사에 절대 뒤지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의 어느 역대 왕조도 가야역사만큼의 역사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한국의 고대사 한반도 임나일본부 설(369년에서 562년까지 약 200년)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조선) 침략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하여 한韓민족의 역사를 조작하였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시작된 한韓민족의 역사와 함께 고대 한반도 남부 일부를 일본이 점령하였다는 임나일본부설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반도 북부는 중국,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반도사관 등을 내세우며 침략의 명분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이 조작한 임나일본부 설의 근거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일본 서기광개토태왕비문, 중국 남송 역사기록 송서宋칠지도입니다.

 

 

 

먼저 본서기는 7세기 중엽에 나온 책이며, 일본 왕가를 미화하여 편찬됐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은 7세기경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임나일본부' 용어 자체가 모순이 있습니다.

 

 

일본서기에서 신공왕후 40년(249년)에 아리타와케, 가가와케 등을 백제 장수와 함께 신라를 치고 가야의 일곱 나라를 평정했다는 이른바 '가야 7국 평정'이 나옵니다. 이 사건으로 임나일본부 설이 비롯됩니다. 일본서기에는 249년이며 일제 주장하는 369년과는 무려 120년의 오차가 발생합니다.

 

 

일본서기보다 8년 먼저 나온 고사기에는 임나정벌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 조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 □□新羅以僞臣民

"왜가 신묘년(391, 광개토왕 1) 이래로 바다를 건너 백잔(백제)을 파하고, 신라를 □□하여 백제 □□ 신라를 정복하고 그들을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임나일본부 설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위당 정인보는 이 문장을 '왜'가 아닌 '고구려'를 주어로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무찔렀다. 그런데 백제가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략하여 그의 신민으로 삼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사 조작의 달인 일본 제국주의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개토태왕비문을 조작했습니다.

 

 

 

 

 

 

 

 

 

 

일본이란 나라 이름이 생기기 전이었던 5세기 남송의 역사가 담긴 송서에 왜왕에게 작위를 내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남송의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는 왜의 다섯 왕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무왕이 스스로 일곱 나라(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의 왕으로 자칭하며 남송 황제에게 이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자 남송 황제가 '사지절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6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이란 관작을 수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나와 가라는 같은 가야를 가리키고, 이미 오래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진한과 마한이 등장하는 등 참으로 이상한 관작을 받습니다. 사실에 입각하여 내려준 관작이라기보다는 조공을 바치는 왜의 왕이 요청하자 그냥 명예직으로 준 관작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이소노카미 신궁에 있는 일본 국보 칠지도이며 칠지도에는 앞뒷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泰□四年□月十六日丙年正陽造百練鋼七支刀 生()ㅇ百兵 宜供供侯王 □□□作

泰□4년 □월 16일 한낮에 백 번 두드린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나아가 많은 군사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므로 마땅히 후왕들에게 드릴 만하다. □□□가 만들었다.”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 轉示後世

선세 이래로 아직 이 칼이 없었던바, 백제왕세□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를 위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일지어다.”

 

 

이 칠지도는 일본인에게조차도 잘 공개하지 않는 일본 국보입니다.

백제(황제)가 일본 왕에게 하사한 것이 명백하지만, 일본은 헌상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칠지도가 4세기에 일본에 전해졌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합니다.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임나일본부 설의 망령은 아직도 일본의 일부 학자의 학설과 교과서에 살아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광개토열제의 일본 본토 정벌

 

 

한번은 바다를 건너 이르는 곳마다 왜인을 격파하였는데, 당시 왜인은 백제를 돕고 있었다.

백제는 앞서 왜와 은밀히 내통하여 왜로 하여금 잇달아 신라 경계를 침범하게 하였다.

 

이에 열제께서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웅진·임천·와산·괴구·복사매·우술산·진을례·노사지 등의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셨다.

속리산을 지나시다가, 이른 아침에 천제를 올리고 돌아오셨다.

 

이때에 백제·신라·가락(가야) 모든 나라가 조공을 끊이지 않고 바쳤다.

거란과 평량이 다 평정되어 굴복하였고, 임나(대마도)·이국·왜의 무리가 신하라 칭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해동의 융성이 이때에 절정을 이루었다.

 

 

 

任那    乃對馬全稱也

임나는 내대마전칭야라.

自古    仇州對馬    乃三韓分治之地也

자고로 구주대마는 내삼함분치지지야오.

 

임나는 대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옛날부터 큐슈(仇州)와 대마도는 삼한이 나누어 다스린 땅으로, 본래 왜인이 대대로 산 곳이 아니다.

 

(『환단고기 완역본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中)

 

 

 

 

 

 

 

 

 

 

 

 

 

환단고기 해제가 전하는 임나일본부설의 실체

 

 

임나일본부설

 

일본 역사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일본사는 한민족의 이민사’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이 주장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한민족의 선조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일본 역사를 개척하였고, 고대 일본 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특히 삼국 시대에 이르러 백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왜(倭) 조정은 백제의 분조(分朝)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백제가 망한 후(660년), 왜는 ‘친정집’인 한반도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종래에 사용하던 왜라는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고치고(670년), 왜왕을 천황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 역사를 자생(自生) 왕조사로 변색시킨 『 고사기古事記』(712년)와 『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를 편찬하였다.

일본은 첫 역사서에서 천황가를 백제와 무관한, 신대(神代)로부터 시작된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왕조로 조작하였다.

 

 

이때 일본은 자기네 역사를 자생 역사로 만드는 한편, 모국인 한민족의 역사를 오히려 식민지사로 변조하였다.

‘4세기 후반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의 소국들을 정벌하고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하여 2백 년 동안 다스렸다’라는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을 주장한 것이다.

 

 

8세기에 일본의 첫 역사서를 만들면서 가공한 남선경영론(임나일본부설)은 19세기 말 일본의 조선침략 명분으로 다시 악용되었다. 과거에 자기네 조상이 한반도에 진출하여 지배하였으니, 근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것은 침략이 아니라 옛 땅을 회복하는 일이라 하였다.

 

이때 일본은 이른바 남선경영을 뒷받침할 사료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만주의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비문까지 위조하였다. 일본에 불리한 글자를 깨부수거나 석회를 발라 비문의 내용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런 다음 비문을 해독하여 임나일본부설을 공식화하고,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역사를 모두 일본의 식민지사로 전락시켰다.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 왕실이 만세 동안 한 계통으로 내려왔음’을 주장하는 ‘만세일계’ 사상은 일본 황국사관의 핵심이다.

이것은 그 후 메이지 유신 때 ‘막부 대신 천황을 국가의 정점으로 옹립’하는 존황주의(尊皇主義)의 뿌리가 되었다.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

 

일본 학자 요시노 마코토는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낸 속사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본서기』가 천황 통치를 정통화하기 위한 역사서였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과 관련한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임나일본부 이야기는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일본서기』의 편찬 의도와 관계가 있다.

천황이 천황이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국가들을 복속시킨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요시노 마코토 저, 한철호 역, 『동아시아 속의 한일 2천년사』, 114쪽).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일본 식민지화  

 

문제는 임나일본부설이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역사의 진실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프렌티스 홀에서 간행한 『세계 문화 World Cultures』(2004)에 “BCE 400년경, 일본은 몇 개의 씨족들이 연합해 야마토라고 불리는 구역에 정착했다. 그들은 일본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한국 남부의 작은 지역을 통치하기까지 했다.”라는 서술이 보인다(이길상, 같은 책, 47쪽).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中 (524~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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