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한국 고대사와 상고사의 잃어버린 고리 해모수 북부여 역사

by 도생(道生) 2016. 6. 9.

한국 고대사와 상고사를 연결해주는 잃어버린 고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

 

 

 

 

 

 

 

 

 

 

 

한국 상고사(고대사)는 중국에서 시작됐고 한韓민족의 역사는 2천 년도 안 된다고 말하는 주류 강단사학계

 

한국 상고사(고대사)는 인류 창세 역사까지 포함하여 9천 년의 장구한 역사라고 말하는 재야사학계

 

한민족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서로 판이하게 갈리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 교육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광복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제 식민잔재를 70년 넘게 씻어내 왔지만, 유독 역사학계는 철옹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라는 광복 하였지만, 역사는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식민사관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는 단군왕검의 고조선과 고구려, 즉 한국 고대사와 한국 상고사 연결해 주는 역사의 고리입니다.

한국 정통 역사는 단군조선에서 북부여로 국통이 계승되었고,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국통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류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이어 위만조선으로 계승되었고, 만주 예맥족이 부여를 세웠고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고대사와 상고사를 완전히 조작하여 한민족의 국통맥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는 환국에서 배달국, 배달국에서 단군조선으로 국통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왜곡하고 조작하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를 의도적으로 없애버림으로써 한민족의 9천 역사 국통맥(國統脈)은 단절되었습니다. 

 

 

단군조선에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로 이어지는 국통이 단절되며 우리의 상고사(고대사)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단군조선(고조선)은 삼한관경제로 나라를 경영하였습니다.

 

진한, 마한, 번한의 삼한(三韓, 고조선)에서 제22대 색블루 단군 때 진조선, 막조선, 번조선의 삼조선 체제로 바꿨다가 44세 구물 단군에 이르러 대부여로 나라 이름을 바꿨습니다.

 

 

 

 

 

 

 

 

 

 

 

 

북부여의 초대 해모수 단군께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 한 것은 '대부여(단군조선)'가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大' 자를 '북北' 자로 바꾸어 '북쪽에 있는 부여'란 의미의 북부여라 하였습니다.

 

진조선은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에 흡수되고, 한반도의 막조선에는 최숭의 낙랑국이 들어왔으며, 번조선은 위만 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북부여는 1세 해모수 단군, 2세 모수리 단군, 3세 고해사 단군, 4세 고우루 단군, 5세 고두막한 단군, 6세 고무서 단군, 7세 고주몽 성제에 이르러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꾸게 됩니다. 

 

 

한韓민족 9천 년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 182년 동안 존속했었던 북부여 역사는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를 이어줄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입니다.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中

 

 

부여사를 찾는 날이 곧 역사 광복의 날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부여사는 모두 서부여의 역사이다.

서부여는 동부여가 망한 후 요서에 생긴 망명부여로서, 서부여사는 부여의 끝자락 역사이다.

 

예를 들어 『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울구태(蔚仇台), 간위거(簡位居), 마여(麻余), 의려(依慮) 등은 모두 서부여의 왕이다.

 

그런데도 강단사학계에서 나온 책과 논문들은 서부여를 부여의 원래 모습인 양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부여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부여의 원형이 처참히 파괴되고 한국사의 허리가 잘려 버렸다.

한국사의 국통(國統) 맥이 어지러워지고 뿌리 역사가 소멸하였다.

 

북부여라는 잃어버린 고리가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제대로 연결되는 그날이 바로 동방 배달 민족사의 9천 년 국통(國統) 맥이 온전하게 똑바로 서는 역사 광복의 날이 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