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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징 백악관이 잿더미가 된 영미 전쟁(미영전쟁)

by 도생(道生) 2016. 7. 30.

미국의 상징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잿더미가 된 영국과의 전쟁

제2의 독립전쟁 영미 전쟁(미영 전쟁)

 

 

 

 

 

 

 

 

 

 

 

미국의 선전 포고로 시작된 미국과 영국의 전쟁

 

 

미국은 1775년부터 1783년까지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에 승리하였다.

미국 4대 대통령으로 연임에 성공한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1814년 6월 18일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에 전쟁을 선포한다.

미국은 영미 전쟁(미영전쟁)을 제2의 독립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영미전쟁(미영전쟁)은 미국과 영국과의 전쟁이었지만 미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 지역에서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영국과 미국이 사활을 내건 전면전도 아니었다. 미국 내에서도 남부와 서부 지역은 영국과의 전쟁에 찬성하는 반면 북동부 지역은 전쟁을 반대하였다.

 

 

 

 

 

 

 

 

 

 

 

 

영국과의 전쟁에 참전하는 미국 군인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민병대가 참전하였을 뿐 아니라 군비조달도 원활하지 않았다. 영국 역시 프랑스 나폴레옹과 전쟁 중이어서 미국과 전쟁을 할 의도는 없었다.

미국의 선전포고로 영국은 주력군이 빠진 상태로 미국과 전쟁을 하였다.

 

 

 

영미전쟁(미영전쟁)을 벌이기 전 미국은 신흥국으로 국정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미국은 건국 이후에도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과 전쟁을 지속하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연합과의 (테쿰세) 전쟁은 영미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미국에 대한 영국의 계속되는 무역 제한 정책, 영국 해군이 탈영하여 미국에 귀화하고 이 때문 미국 국민을 영국군으로 징집한 사건, 영국의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지원, 연방파(연방주의자, 친영국)와 공화파(반영반주의자) 간의 싸움 등은 애국을 내세운 경파(공화파)가 힘을 얻었고, 어쩔 수 없이 제임스 매디슨 미국 대통령은 영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선전 포고를 한다.

 

 

 

 

 

 

 

 

 

 

 

 

미국과 영국 모두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영미전쟁이 장기화하고 있었다. 

영국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끝나고서 주력군이 미국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으나 여러 지역에서 미군에 패하게 된다.

 

유럽 전쟁으로 지쳐 있었고 미국과의 전투에서 패한 영국과 내부 분란을 의식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과 영국의 대표가 1814년 12월 24일 벨기에 겐트에서 조약을 체결하며 두 나라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겐트 조약으로 전쟁을 끝내게 된. 미국과 영국의 전쟁은 두 나라 모두 전쟁의 명분도 없었고 전쟁의 이익도 없었다.

 

 

 

 

 

 

 

 

 

 

 

 

 

미국은 영미전쟁 초기 외부와 단절되어 산업이 마비되는 사태를 맞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자체적으로 산업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친영국 성향의 북동부와 중부 해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연방파는 몰락하였고, 남부를 중심으로 한 공화파가 득세하였다. 공화파는 노예제 찬성하는 민주파(민주당)와 노예제를 반대하는 휘그파(공화당)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의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영미전쟁(미영전쟁)은 로키산맥을 기준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을 확정 짓는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전쟁에서 영국과 동맹을 맺고 영토회복에 나섰던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이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전쟁을 미국은 ‘War of 1812’, 영국은 ‘American War of 1812 to 1815’이라 한다

 

 

 

 

 

 

 

 

 

 

 

 

미국이 상징 대통령 관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잿더미가 되다.

 

 

백악관은 미국 대통령의 관저를 말한다.

미국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1789년 4월 30일 취임하였고, 미국 건국과정에서 북부와 남부의 대립을 잠재우기 위해 새로운 수도를 만들었다. 미국 수도는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여 워싱턴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대통령의 관저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 재임 시였던 1792년부터 공사를 시작했고, 1801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이 처음으로 관저로 이주하여 사용한다. 당시만 해도 백악관은 백악관(White House)이 아니었다.

 

1812년 미국과 영국의 영미전쟁이 일어났고, 1814년 미국 동부해안에 상륙한 영국군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함락하고 대통령 관저를 비롯한 국회의사당과 공공건물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1814년 8월 24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불과 하루 남짓 점령한 영국군에 의해 미국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은 잿더미가 되었고, 이후 대통령 관저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외부를 하얗게 칠해버렸다.

 

미국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 시였던 1902년 미국 대통령 관저를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 즉 백악관이라는 공식명칭으로 사용했다.

 

 

 

영미전쟁(미영전쟁)에서 국회의사당과 미국 대통령 관저 백악관이 잿더미가 된 사건은 미국 24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외국 군대(영국군)에게 수도 워싱턴을 점령당한 일이었다.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상징이었던 국회의사당과 미국의 자존심 그 자체였던 백악관이 잿더미가 된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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