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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2

인조반정의 논공행상 이괄의 난 인조반정의 후폭풍 반정 세력 간의 다툼인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반란인가? 이괄의 난 김자점, 김류, 이귀 등 서인(西人) 세력과 이괄(1587~1624) 등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 이종을 왕으로 옹립하는 인조반정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이괄의 난이 인조반정을 이끈 공신들의 논공행상에서 2등 공신이 된 이괄이 불만을 품고 변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혹자는 인조반정에 기여한 공로를 포상하는 논공행상의 불만 때문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기보다는 반정 세력 간의 권력다툼 때문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당시는 명청전쟁(후금이 1636년 청나라로 국호를 바꿈) 초기로 북방의 국경 경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었다. 인조는 이괄의 충성심을 믿었고, 그를 북방 방어를 책임지는 평안도 .. 2016. 12. 9.
조선 15대 왕 광해군(인조반정) 이혼 근세조선 15대 왕 광해군(인조반정) 이혼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 이혼(1575~1641)은 조선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1552~1608)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선조는 최초의 방계혈통으로 왕위에 올랐고, 아들 광해군은 적통이 아닌 후궁(공빈 김씨) 소생으로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선조대왕의 정비 의인왕후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은 마흔 살이 넘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피난 갔던 평양성에서 18살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될 때 같은 어머니 공빈 김씨의 소생인 3살 위의 형 임해군(첫째 아들)이 있었으나 난폭하고 방탕하여 세자로 책봉되지 못했다. 선조대왕 때 시작된 붕당(朋黨)정치는 시간이 갈수록 반목과 대립으로 치.. 2016.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