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명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틀 후인 6월 27일에 유엔은 북한의 불법 남침 공격의 격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기로 유엔안정보장이사회 결의안이 채택된다.
2015년 공개된 일급 비밀문서에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극동사령부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에게 한국전쟁에서 전면적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 본토 군 수뇌부와 극동사령부 고위 지휘관들 간에 주고받은 문건들도 공개됐는데 극동사령부 지휘관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군인은 북한군의 파상 공세에 적절한 저항능력이나 싸우려는 의지조차도 보여주지 못하여 북한군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비췄으며 대한민국의 완전 붕괴까지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였다고 한다.
1950년 대한민국 대통령이며 군 통수권자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4일 미국 극동사령부 최고 사령관이며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지휘권한을 이양하게 되며 맥아더 장군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미 제8군으로 넘긴다.
불과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7월 하순에는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 풍전등화에 내몰린 대한민국과 북한의 한국전쟁 판도를 뒤바꾼 대작전이 시작된다. 1950년 9월 15일 작전명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 크롬철광 작전), 인천 상륙작전이 팔미도 등대의 불빛을 신호로 월미도 지역에 엄청난 포격이 시작되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비교될 만큼 엄청난 물량이 쏟아진 상륙작전이었다.
미국의 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상륙작전은 대성공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은 것이다.
인천 앞바다 군함에서 월미도 지역에 가해진 엄청난 포격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북진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중공(중국) 본토(만주)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군인으로서 맥아더 장군은 이미 시작된 한국전쟁을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이었다.
인천상륙작전과 한국전쟁에서 독단적인 행동으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의 불화로 결국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해임된다. 미국과 소련의 양대체제를 굳히고 정치적 안정을 선택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이미 한국전쟁 전쟁 전선의 크기를 정해놓고 있었다.
52년 간의 군 생활을 마친 맥아더 장군은 기업인으로 지내다 미국을 방문한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나 한국전쟁 휴전은 미국이 잘못한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웨스트포인트 시절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이던 맥아더 장군은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하여 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1918년 어깨에 별을 처음 달았고, 1919년에는 자신의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교장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937년 퇴역하였다가 1939년 2차 세계대전에 다시 복귀하여 예편할 때까지 33년간 장군으로 지냈다.
2차 세계대전에 승전한 미국은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에게 항복문서를 받아내는데, 그 자리에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서명하였다.
맥아더 장군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전장에서 승리하면 자신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는 소리를 들었고, 독단적이고 외골수적인 그의 행동이 결국 해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게 여러 장단점이 있었지만 52년간의 군 생활, 그리고 미 극동사령부 최고 사령관과 유엔군 총사령관을 지낸 것을 보면 남들보다 뛰어난 출중한 능력을 지닌 군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6.25 한국전쟁에서 뛰어난 판단력과 통찰력, 지도력 등 52년간의 군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한국전쟁 전세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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