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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불세출의 영웅에서 역적이 된 남이장군

by 도생(道生) 2016. 12. 8.

불세출의 영웅에서 역적이 된 남이 장군

 

 

 

 

 

 

 

 

 

 

 

 

 

 

 

 

남이 장군(1441~1468)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조선의 불세출 영웅이다.

남이 장군의 고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남재, 증조부는 영의정부사에 추증된 남경문이다.

조부는 남휘, 조모는 태종 이방원의 딸 정선공주이며, 아버지는 남빈이다.

 

 

세조와는 6촌 간이며, 예종과는 7촌 간이 된다.

남이 장군의 장인은 권람으로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세조의 최측근 3인방다.

남이 장군의 본가와 처가는 당대 최고의 가문 중 하나였다.

 

 

 

 

보통 사람보다 지혜와 재능, 용맹함이 뛰어나 어려운 일을 해내는 등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을 말할 때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이라 말한다.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토벌하는 등 큰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27세에 조선의 국방의 최고책임자인 병조판서에 올라 28년의 짧은 삶을 살다간 남이(南怡) 장군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부르기도 한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남이장군은 1818년(순조 18) 후손인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복권된다

 

 

 

 

 

 

 

 

 

 

 

 

 

 

 

세조실록 43권, 세조 13년 7월 14일(1467년)

남이를 행부호군(行副護軍)으로 삼았다.

 

세조 13년 8월 27일

 

남이의 계급을 초자(超資)하여 중추부 동지사로 삼았다.

  

세조 13년 11월 17일

 

남이를 겸사복장(兼司僕將)으로 삼았다.

 

 

 

세조실록 44권, 세조 13년 12월 27일(1467년)

남이를 공조판서로 삼았다.

 

 

 

세조실록 47권, 세조 14년 7월 17일(1467년)

남이를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삼았다.

 

세조 14년 8월 23일

 

남이를 병조판서로 삼았다.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들어준 한명회, 신숙주, 권람은 승승장구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세조 재위 시는 최측근 3인방과 더불어 훈구세력(공신)이 정권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세조(1417~1468년 9월 8일)가 승하하기 직전 1468년 7월 17일 구성군 이준(1441~1479)을 영의정으로 삼았다.

 

8월 23일에는 남이장군(1441~1468)을 병조판서 관직을 제수한다.

세조는 말년에 훈구(공신)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구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등 젊고 유능한 신진세력을 중용한다.

 

 

 

그러나 세조가 승하하고 어린 예종(1450~1469)이 즉위하면서 임금을 보위하기 위해 원상(院相)제도가 시행된다.

전·현직 고위관리가 임금을 보좌하는 원상제도가 시행되면서 현직에 있는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한다.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공신)세력이 권력을 잡게 된다.

 

 

 

 

 

 

 

 

 

 

 

 

 

 

 

 

조선 8대 왕 예종은 1468년 9월 7일에 즉위했다.

불세출의 영웅 남이장군은 27살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28살에 병조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좌천되었다.

 

 

예종실록 1권, 예종 즉위년 9월 7일(1468년)

남이를 의산군 겸사복장으로 삼았다.

 

 

예종실록 1권, 예종 즉위년 9월 21일(1468년)

고령군 신숙주, 상당군 한명회, 능성군 구치관, 좌의정 박원형, 영성군 최항, 인산군 홍윤성, 창녕군 조석문, 우의정 김질, 좌찬성 김국광 등을 원상(院相)으로 삼아 날마다 번갈아 승정원에 나아가서 모든 정무를 의논하여 처결하도록 명하였다.

 

 

 

 

유자광이 예종에게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예종실록』 1권, 예종 즉위년 10월 24일(1468년)

 

"지난번에 신이 내병조(內兵曹)에 입직하였더니 남이(南怡)도 겸 사복장(兼司僕將)으로 입직하였는데, 남이가 어두움을 타서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오늘 저녁에 남이가 신의 집에 달려와서 말하기를, ‘혜성(彗星)이 이제까지 없어지지 아니하는데, 너도 보았느냐?’ 하기에

신이 보지 못하였다고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이제 천하(天河) 가운데에 있는데 광망(光芒)이 모두 희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다.’ 하기에

신이 강목(綱目)을 가져와서 혜성이 나타난 곳을 헤쳐 보이니, 그 주(註)에 이르기를, ‘광망이 희면 장군(將軍)이 반역(叛逆)하고 두 해에 큰 병란(兵亂)이 있다.’고 하였는데,

 

남이가 탄식하기를, ‘이것 역시 반드시 응(應)함이 있을 것이다.’ 하고,

조금 오랜 뒤에 또 말하기를, ‘내가 거사(擧事)하고자 하는데, 이제 주상이 선전관으로 하여금 재상의 집에 분경(奔競)하는 자를 매우 엄하게 살피니, 재상들이 반드시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수강궁(壽康宮)은 허술하여 거사할 수 없고 반드시 경복궁(景福宮)이라야 가하다.’ 하였습니다...."

 

 

 

"유자광이 본래 신에게 불평을 가졌기 때문에 신을 무고한 것입니다.

신은 충의한 선비로 평생에 악비로 자처하였는데, 어찌 이러한 일이 있겠습니까?"

 

 

 

 

 

 

 

 

 

 

 

 

 

 

 

희대의 간신이며 묘략꾼인 유자광이 임금에게 밀고하고 불과 3일 만에 역적이 되어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불세출의 영웅 남이장군이 처형되던 날 순순히 역모를 실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종실록 1권, 예종 즉위년 10월 27일(1468년)

 

"신이 과연 반역을 꾀하고자 하였습니다. 유자광과 더불어 이야기한 말이 모두 옳습니다."

 

 

 

"창덕궁, 수강궁 두 궁은 얕아서 겉으로 드러나 거사할 때에 바깥 사람이 알기가 쉽기 때문에 산릉에 나아갈 때에 사람을 시켜 두 궁을 불 지르게 하고 성상이 경복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12월 사이에 신이 강순과 더불어 일시에 입직하기를 약속하여, 신은 입직하는 겸사복을 거느리고, 강순은 입직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거사하려고 하였습니다." 

 

 

 

 

 

1468년(예종 즉위년) 10월 27일 남이 장군을 비롯한 9명을 환열(裂,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하고 7일 동안 효수하게 하였다.

 

 

불세출의 영웅 남이장군이 역모죄로 죽고 나서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공신)세력이 정권의 주도권을 잡는다. 

남이 장군이 능지처참을 당하고 나서 예종은 남이장군이 살던 집을 유자광에게 내려준다.

10월 27일 불세출의 영웅 남이장군이 처형되고, 10월 30일 유자광은 무령군으로 봉해진다.

 

 

 

 

 

 

 

 

 

 

 

 

 

 

 

 

유자광은 남이장군이 혜성의 출현을 보고 역모를 모의했다고 밀고했다.

남이장군은 혜성 출현은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나올 징조'라고 하였다.

혜성이 9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나타났다. 이시기에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했다.

 

 

조선 7대 왕 세조가 1468년 9월 8일에 승하했다.

세조실록에는 승하하기 전 9월 2일, 3, 4, 6일에 혜성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8대 왕 예종은 1468년 9월 7일에 보위에 올랐다.

예종실록에는 9월 7일, 8, 10, 12, 13, 14, 15, 16, 17, 18, 19,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일에 혜성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혹자는 남이장군이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라는 고위직에 올랐다가 좌천당하자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역모를 꾀했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희대의 간신이며 모사꾼인 유자광의 계략과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긴 한명회 등의 훈구세력이 모략으로 남이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고도 한다.  

 

 

 

白頭山石(백두산석)은 磨刀盡(마도진)이요.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서 다했고,

 

豆滿江水(두만강수)는 飮馬無(음마무)라.

두만강의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붙었다.

 

男兒二十(남아이십)에 未平國(미평국)이면

사나이가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할 것 같으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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