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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태양신 숭배와 기독교(6) - 기독교(가톨릭) 국교화 승리로 조상숭배 문화인 전통신앙 쇠퇴와 로마의 몰락

by 도생(道生) 2014. 10. 26.

고대 로마의 태양신 숭배와 기독교(6)

기독교(가톨릭) 국교화 승리로 조상숭배 문화인 전통신앙 쇠퇴와 로마의 몰락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김현일 박사)

 

 

 

 

 

 

 

 

 

 

 

 

기독교(가톨릭)의 승리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만 하더라도 기독교(가톨릭)와 로마의 태양신 숭배는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사후(337년) 권력을 잡은 아들들은 이교 신전을 폐쇄하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금지하는 한편 기독교 성직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공적인 의무를 면제해 주는 등 친기독교적인 정책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율리아누스 황제(재위 355~363)가 등극하면서 다시 로마의 종교정책은 반기독교적으로 바뀌었다.

 

 

 

그리스 철학 특히 신플라톤주의에 큰 감명을 받았던 율리아누스는 그리스 로마의 지적인 전통과 종교적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선제(先帝)들이 교회에 부여한 특권을 몰수하고 폐쇄되었던 이교신전을 복구하였다.

 

그는 법 앞에 모든 종교가 평등하다는 엄숙한 선언을 하여 기독교로 경도된 제국의 정체성을 되찾고 그 위에서 황제권력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율리아누스 사후 시계추는 다시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여러 황제들에 의해 친기독교적 정책이 취해지다 결국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다(392년).

 

그는 로마의 전통적인 종교를 '불법 종교'로 선포하고 그 신전들을 파고하였다. 이 기독교 황제의 치세에 니케아 교리를 제외한 어떠한 교리 해석도 모두 이단으로 선언되고 탄압을 받았다.

 

 

 

 

 

예전에 이교신앙을 옹호하던 황제들이 표면적으로는 '종교적 자유'와 '종교적 평등'을 내건 것과는 달리 이제는 기독교 정통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는 일체의 신앙과 사상 그리고 문화는 모조리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집안 내에서도 이교신앙 의식을 금지한 것, 오랫동안 내려오던 그리스의 올림피아 제전(올림픽 경기)을 폐지한 것도 바로 이 기독교 황제에 의해서였다. 다른 신앙과 신들, 다른 종교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그리스 로마의 지적 전통은 이로써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이교 신앙에 대한 기독교도의 대중 폭력 사태가 빈발하였다.

모두 국가의 방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그래서 우리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통치에서 종교적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사라진 중세 암흑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된다.

(끝)

 

 

 

 

 

 

 

 

 

 

 

 

에필로그 

대제국을 이루었던 로마의 조상숭배 문화인 전통신앙이 쇠퇴하며 몰락의 길을 걸은 로마 제

 

서양의 역사에서 그리스와 로마만큼 위대했던 정신문명은 없었다.

위대했던 그리스의 문명도 로마를 통해 비로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서양의 지성인들은 초기 로마제국을 현실적인 이상국가 모델로 제시하기도 했다. 로마가 어떻게 위대한 세계문명을 건설하는 초석이 되어 천년 왕국을 지속될 수 있었을까?

 

 

 

극작가겸 역사 테렌티우스의 수권의 저서에 따르면, 로마는 3만 정도의 신(神)들을 믿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로마 황제들은 죽은 전임 황제를 신군(神君)으로 모시고 형상을 만들어 조상을 겸한 수호신격으로 모셨다.

로마제국이 점령했던 모든 도시에는 전임 황제와 수많은 민족신들의 형상을 새긴 신상(神像)들로 넘쳐났다.

 

이러한 로마의 전통적 신앙문화는, 기독교 관점의 수많은 서구 영화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마치 저급한 이교적 전통신앙인양 왜곡되어 낮게 평가된 바 있다.

 

로마제국에는 각 가정마다 조상신(祖上神)을 섬기는 제단(祭壇)을 만들어, 모든 가족들이 제례일에 제물(祭物)을 바쳐 기도했다. 국가적으로도 매월 특정 신들을 경배하는 신앙축제 행사가 벌어졌다.

 

 

 

 

더불어 국가가 되기 전의 초기 로마제국(BCE 5C~AD 4C)은 부모와 노인공경과 가정화합을 매우 중시하는 도덕적 전통사회였다. 아이들은 조상의 업적을 듣고 자랐으며, 가문의 훌륭한 전통을 지키며 조상의 명예를 욕되지 않게 살도록 교육받았다.

특히 로마귀족은 살아서는 조상신을 받들고 죽어서는 조상신이 되어 후손의 삶 속에 계속 살아 있었다.

 

초 베스트셀러가 된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러한 조상숭배, 가족, 애국적 전통, 용기, 명예, 도덕, 국가 헌신 등을 소중한 가치로 삼은 로마문명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과 사상이 세계 대제국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로마의 전통신앙과 문화를 바탕으로 제국의 영화를 누린 5현제(賢帝)시대(5명의 훌륭한 황제시대, 96~180년)가 끝나면서, 로마제국은 3세기경부터 군인정치와 계속된 식민지의 반란 그리고 이민족의 침입전쟁으로 농촌과 도시의 경제가 피폐해졌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고, 이후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승인되고, 박해받던 기독교는 결국 로마 전통신앙과 제국내 모든 민족종교들을 탄압하는 유일한 종교가 되었다. 마침내 기독교는  전(全)유럽에 전파되었다.

 

기독교의 성장으로 인해, 전통적 구심점을 잃은 로마제국은 강력한 이(異)민족의 침입으로 날로 쇠퇴와 분열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 교파간의 투쟁이 빌미가 되어 동로마(비잔틴제국)와 서로마로 제국이 찢어지고, 로마의 전통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기독교가 고대~중세의 유럽, 중동에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 내의 그리스~로마 신들, 이집트의 이시스 신, 시리아의 태양신, 유럽의 컬트족과 게르만족의 신 등 수많은 민족신과 민족종교를 배격함으로써 그 기반이 마련되었다.

 

 

로마에는 본래 후세에 길이 물려줄 자랑스런 조상숭배 문화가 있었지만 기독교의 팽창과 더불어 로마의 전통문화가 점차 사라져버리고,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유럽과 중동에도 모든 민족들이 시조신(始祖神)을 숭배하는 전통을 거의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되집어 보면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와 대동소이하다.

환국, 배달, (고)조선까지는 우리의 정신과 전통문화가 올바르게 전수되어 왔다. 그리고 북부여 고구려까는 그 명맥을 어느 정도 이어져 왔으나, 이후에는 우리의 위대한 정신과 문화가 급속하게 사라져 갔다. 

 

 

우리의 방계 문화인 외래문화가 들어 오면서 우리의 국력은 급격히 줄어들고,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 참다운 정신문화가 사라져 갔다.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그리고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이 됐든 근본(根本)에서 멀어지면 죽는다!

역사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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