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에 해당되는 글 235건

  1. 2019.09.24 홍익인간 사상은 배달국의 건국 통치이념 (3)
  2. 2019.09.12 단기 4352년 개천절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4)
  3. 2019.09.11 신시개천 5916년 개천절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 (4)
  4. 2019.08.15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 안의 친일잔재 (5)
  5. 2019.07.10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 (3)
  6. 2019.06.01 아스달연대기 원작은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 (4)
  7. 2019.05.30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의 아사달 연대기 (6)
  8. 2019.05.29 아스달 연대기와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 (4)
  9. 2019.05.28 아스달 연대기 원작 (5)
  10. 2019.05.26 홍산문명(요하문명)과 아스달 연대기 (5)
  11. 2019.05.25 문명과 국가의 탄생 고조선 도읍 아스달연대기 (5)
  12. 2019.05.24 아사달연대기와 단군신화 아스달연대기 (6)
  13. 2019.05.23 단군의 고조선 아사달연대기와 아스달연대기 (3)
  14. 2019.05.22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와 아스달 연대기 (6)
  15. 2019.05.21 태고의 땅과 상고시대의 역사 아스달 연대기 (3)
  16. 2019.03.24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2)
  17. 2019.03.23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3)
  18. 2019.03.21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2)
  19. 2019.03.20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와 이기백 (4)
  20. 2019.03.19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 (3)
  21. 2019.03.17 일제 식민사학의 한국사 왜곡과 조작 민족말살정책 (3)
  22. 2019.03.16 환단고기와 안동 임청각 주인 석주 이상룡 (3)
  23. 2019.03.15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4)
  24. 2019.03.14 유사역사학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 (3)
  25. 2019.03.13 환단고기의 저자 한암당 이유립 (3)
  26. 2019.03.12 환단고기의 편저자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5)
  27. 2019.03.10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 항일독립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 (5)
  28. 2019.03.09 한민족 고대사를 밝힌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일십당 이맥 (3)
  29. 2019.03.08 환단고기 편찬에 최고의 업적을 쌓은 고성 이씨 가문 (4)
  30. 2019.03.07 최고의 명문대가 고성 이씨 가문과 환단고기 (4)

하늘, 곧 우주 통치자의 가르침을 열었던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통치이념 

이상적인 인간상 홍익인간 사상은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 이념이면서 통치이념

 

 

 

 

 

 

 

 

 

 

 

 

 

학자들은 곧잘 우리 민족의 최초의 국가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을 바탕에 두고 인성교육을 하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미래 지향적인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이 단군왕검께서 건국한 옛 조선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알고 있는데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두 번째 나라입니다.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의 정통성을 계승한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는 환웅천황께서 건국한 배달국으로 배달국은 동방 문명의 종주이기도 합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을 다스린 환인천제께서 국가 통치이념이었던 홍익인간 사상은 본래 우주 통치자이신 삼신상제님의 우주 통치 사상의 핵심 이념입니다. 배달국의 건국 이념이면서 통치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은 인류 창세의 원형정신이며 역사문화의 원류정신입니다. 

 

 

 

 

 

 

 

 

 

 

환웅천황의 배달국은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이 동서 문명으로 분화될 때 동방 문명을 연 동방의제국(大帝國)입니다.

우리 민족을 배달의 겨레라고 한 것도 배달국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배달국에는 태호복희씨와 염제신농씨와 자오지천황 같은 위대한 성황(聖皇)들이 많이 계십니다.

태호복희씨는 우리나라 태극기의 원주인공이시며 역학(易學)의 시조로 팔괘를 처음 그리셨고 도교(道敎)와 유교(儒敎)의 원시조가 되십니다.

 

염제신농씨는 우리나라 진주 강씨의 원시조이시며 경농(농사)과 의학의 시조가 되십니다.

 

치우천황으로도 불리는 배달국 15대 자오지천황은 동북아 역사에서 전쟁의 신(神)으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단의 공식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는 붉은 악마의 원주인공입니다. 

 

 

 

 

 

 

 

 

 

 

초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하고 통치하실 때 홍익인간 사상을 바탕으로 선정을 베푸셨는데, 위에서 언급한 태호복희, 염제신농, 치우천황 등의 위대한 성황들께서 백성들이 하늘의 섭리를 알도록 교화(敎化)시키고 삶을 더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주시기 위해 역학(易學)과 농경, 의술, 천문 등의 분야를 발전 시켜 왔습니다.

 

 

홍익인간 사상이 단군왕검께서 고조선 건국이념과 통치이념이라고 하는 데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홍익인간 사상은 본래 환국의 통치이념이었으며, 환국을 계승한 환웅천황께서 동방 문명을 열고 우리 민족 첫 번째 나라인 배달국을 여실 때 건국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린 통치이념입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 신의 가르침, 곧 신교(神敎)를 바탕으로 나라를 통치했는데 신교의 가르침을 바르게 깨닫고 실천한 이상적인 인간상이 바로 홍익인간입니다.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하고 나라를 다스리실 때 통치이념이 홍익인간 사상입니다.

환국과 배달국의 통치이념이면서 건국이념이었던 홍익인간 사상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것이 염표문(念標文)입니다.

 

 

홍익인간 사상을 완성한 염표문은 천지의 꿈과 이상을 마음속에 항상 새기고 생활화하여 우주의 꿈을 이루는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고조선 11대 도해단군께서 선포한 염표문은 하늘의 창조 정신과 목적, 땅의 창조 정신과 목적, 그리고 인간의 창조 정신과 목적을 정의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 정신과 목적, 곧 천지(天地)의 덕성(德性)을 제대로 알고 인간의 사명을 완수하여 위대한 인간, 곧 홍익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홍익인간 사상은 단순히 윤리와 도덕, 평등과 평화와 자유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천지의 우주 창조 정신에 부합하는 마음으로 천지의 목적을 실현해 이상적인 세상을 경영하 사람이 바로 온전한 홍익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염표문은 먼저 하늘과 땅의 창조 정신, 곧 우주의 덕성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으며 결론에서 우주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인간의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신강충(一神降衷) 하사 성통광명(性通光明) 하니 재세이화(在世理化)하야 홍익인간(弘益人間)하라.

 

우주의 조물주 삼신상제님께서 우주의 참마음을 나에게 려 주셨고

인간의 본래 마음은 우주의 조물주 삼신상제님의 참마음과 통해 우주광명으로 꽉 차 있으니 

 

우주 조물주 삼신상제님의 가르침, 곧 신교(神敎)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이 세상 모든 인간이 우주의 조물주 삼신상제님의 우주광명을 회복하게 하여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다시 말해 홍익인간 사상은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통치이념이었고,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과 통치이념이면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과 통치이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북아를 호령하던 동방 문명의 종주국 배달국과 고조선의 국력이 쇠퇴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원형이 조금씩 상실되고 주변국의 침략, 중화 사대주의 역사관과 외래 종교의 유입, 그리고 일제 식민사관 등에 의해 역사와 정신문화가 사라지면서 인류 원형의 정신문화를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특히 일제 식민주의 역사관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였던 배달국과 고조선을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려 신화의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환국의 통치이념이고, 배달국과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면서 통치이념이었던 홍익인간 사상은 한낱 추상적인 이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와 정신문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단지 옛 기록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 의미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잃고 방황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개천절(開天節)의 원주인공은 배달국이고 홍익인간 사상의 원주인공도 배달입니다.

 

배달국의 건국일 음력 10월 3일에서 1565년이 지난 음력 10월 3일에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되었습니다.

홍익인간 사상 역시 배달국의 건국과 통치이념이면서 고조선의 건국과 통치이념입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으로부터 정통성을 계승한 한韓민족 최초의 국가 배달국과 고조선의 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開天節)은 1565년 차이가 있으며, 홍익인간 사상도 배달국의 건국 이념과 통치이념을 계승한 고조선의 건국과 통치이념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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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gdante 2019.09.24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달국 건국이념이
    웬지 관심이 가는 요즘 정세입니다..

  2. 청결원 2019.09.24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오늘 하루 마감 잘 하시고 푹 쉬세요~

  3. 죽풍 2019.09.24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익인간 정신을 이어 받고 이어 나가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신시개천(神市開天) 1565년 후 고조선을 건국하신 초대 단군왕검

단기 4352년 개천절 맞이 역사광복의 개천문화국민대축제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환국의 마지막 임금이신 지위리 환인천제로부터 환국(桓國)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천부인(天符印)을 받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 문명개척단) 3천 명을 거느리고 백두산 신시(神市)에서 배달국을 건국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916년 前 동방 문명과 우리 겨레의 첫 나라인 배달국 건국됐으니 BCE 3897년 음력 10월 3일입니다.

배달국의 건국을 개천(開天) '하늘이 열린다.'라고 하셨는데 현재의 개천절은 단군조선 건국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하신 개천절은 사라지고,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의 개천절로 기억되고 있는데, 서력 2019년은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개천(開天)한 신시개천 5916년이며, 4352년 前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한 단기 4352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1년까지 서기(서력기원)와 단기(단군기원)가 병용되었지만, 1962년 1월 1일부로 공용연호가 서력기원으로 의무화됐고 단기 사용은 금지됐습니다. 서력기원 2019년이 단기 4352년이지만, 일제 식민사관으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 단군신화가 되어버려 현재 정확한 단기를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한 개천절(開天節)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韓민족 최초의 국가 배달국의 건국일, 곧 개천절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신시개천 후 1565년이 지난 음력 10월 3일에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한 개천절(開天節)은 지금으로부터 5916년 전인 BCE 3897년 음력 10월 3일입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는 구환(九桓)의 백성이 임금으로 추대한 단군왕검께서 신시 배달국의 법도를 되살려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으로 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환단고기>에는 지금으로부터 4353년 前, 단기 원년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개천절 기원에 대해 "지개천일천오백육십오년상월삼일(至開天一千五百六十五年上月三日)"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으로부터 5916년 前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한 신시 개천(神市開天) 이후 1565년이 지난 4352년 前 음력 10월 3일에 단군왕검께서 조선을 건국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한 BCE 3897년이 개천 1년이며,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한 BCE 2333년 음력 10월 3일은 개천 1565년입니다.

 

 

서력 2019년은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의 신시개천 5916년,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의 단기 4352년이 됩니다.

환웅천황의 배달국과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일은 모두 개천절이 맞지만, 개천절의 진짜 주인공은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아니라 환웅천황의 배달국입니다.

 

 

 

 

 

 

 

 

 

 

개천절의 유래가 된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은 사라지고,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단군신화가 되어버린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만 남아 있습니다. 또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이념이라고 알려진 재세이화(在世理化)와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은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 이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재세이화와 홍익인간 사상은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桓國)을 통치하신 환인천제께서 신교(神敎)의 가르침으로 통치하셨는데,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은 환국 때부터 널리 통용되던 용어로 환인천제께서 환웅천황께 전수하신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께서도 배달국 환웅천황으로부터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하면서 만든 독창적 이념이 아니라 환국과 배달국에서 계승된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을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한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이념을 그대로 이어왔다고 보는 것이 사서(史書)의 내용과 부합한다고 할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에는 배달국 환웅천황께서 삼신상제님의 도(道)로써 가르침을 세우고 그 품고 계신 뜻을 전한 내용이 나옵니다.

 

 

"일신강충(一神降衷) 하사 성통광명(性通光明) 하니 재세이화(在世理化) 하야 홍익인간자(弘益人間者)는 신시지소이전단군조선야(神市之所以傳檀君朝鮮也). 삼신상제님의 진리(신교神敎)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 천지광명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홍익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은 신시 배달이 단군조선에 전수한 심법이다."

 

一神降衷 삼신상제님(一神)께서 참 마음을 내려주셔서,

性通光明 사람의 성품은 삼신상제님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

在世理化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

弘益人間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

 

 

<환단고기>를 통해 본 개천절은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한 날도 맞지만, 한韓민족의 상고사 역사를 다루고 있는 <삼국유사>와 <환단고기>를 종합해 보면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개천절보다는 환웅천황께서달국을 건국하 개천절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시개천 5916년 단기 4352년 개천절 개천문화국민대축제

일시: 단기 4352년, 서력기원 2019년 양력 10월 2일 수요일 오후 2시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문의: 02 - 719 - 3737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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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9.12 0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절...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2. kangdante 2019.09.12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조선때 만큼의 영토가
    지금까지 이어졌으면 정말 좋았겠어요.. ^^

  3. 청결원 2019.09.12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추석 연휴 즐겁게 잘 보내세요~

  4. 죽풍 2019.09.12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절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추석명절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정통을 계승한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한 날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광명사상으로 나라를 여신 신시개천 5916년 개천절 <개천문화대축제>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제7대 지위리 환인천제로부터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받은 서자부 부족의 환웅께서 BCE 3897년 음력 10월 3일 백두산 천지 신단수 아래에서 배달국을 건국하시고 초대 천황에 오르셨습니다.

 

 

지위리 환인천제는 환국에서 동서 문명이 나뉘어지기 전 환국의 마지막 임금이셨습니다.

지위리 환인천제께서 현재의 중국 돈황에 있는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 백두산)을 두루 살피셨습니다.

 

 

지위리 환인천제께서 "두 곳 모두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다. 과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환국(桓國)을 다스리던 오가의 우두머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서자부 부족의 환웅은 용기와 어짊과 지혜를 겸비한 인물로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이 있으니 동방의 태백산(太白山, 백두산)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거발환 환웅께서 지위리 환인천제로부터 동방 문명 개척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천부인(天符印)을 받고 문명 개척단 3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백두산)으로 오셨습니다. 5916년 전 배달국 초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음력 10월 3일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나라를 건국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개천(開天)이란 '하늘이 열린다.'라는 뜻으로 지금은 건국(建國)의 의미로 널리 알려졌지만, 단순한 나라 세움을 넘어 하늘의 가르침으로 이상을 실현한다는 의미의 개천절입니다.

 

2019년은 개천절은 정확히 신시개천 5916년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일 개천절이며,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알고 있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일, 곧 개천절보다 1556년이나 앞선 개천절입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은 인류문화의 모태이며 최초의 종교였던 신교(神敎) 문화를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했습니다.

'신(神)의 가르침을 베푼다.', '신의 가르침을 세운다.' 등의 의미를 가진 신교 문화의 통치 철학은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 '이상적인 인간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백성의 추구한 생활문화였습니다.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하신 날을 건국(建國)이라고 하지 않고 개천(開天)이라고 한 것은 환국 신교(神敎) 문화의 '하늘의 가르침, 곧 신(神)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연다.'라는 환국의 통치 이념을 그대로 계승하여 통치한다는 의미와 하늘의 꿈과 상을 실현할 완전한 인간상을 세상에 구현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5916년 전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의 신시개천 개천절은 우주의 목적과 우주 통치이신 상제님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거발환 환웅천황의 웅대한 통치 철학과 역사 정신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5916년 전 배달국을 건국하신 거발환 환웅천황께서는 신시개천 이후 현재의 입법과 사법과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풍백, 우사, 운사와 오가(五家)에게 각기 농사와 왕명과 형벌과 질병과 산악을 주장하게 하시는 등 신교(神敎)의 진리로써 재세이화(在世理化)하사 홍익인간(弘益人間) 하셨습니다.

 

 

 

 

 

 

 

 

 

 

환웅천황께서는 배달국을 건국하신 이후 백성을 교화하실 때 신교(神敎) 문화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쉽게 풀은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여 백성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배달국을 건국하신 초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강론하신 <삼일신고>는 신교(神敎) 문화의 세계관, 신관, 상제관, 인간관, 수행관의 정수를 요약한 경전입니다.

 

허공(虛空), 일신(一神), 천궁(天宮), 세계(世界), 인물(人物) 총 다섯 개366자로 구성된 <삼일신고>는 인간과 만물이 우주의 조화 성신이신 삼신상제님의 조화(造化)로 생겨났음을 밝혀줍니다.

 

 

인생의 목적은 삼신상제님의 우주 광명과 자신의 본성과 통하는 것이며, 우주의 꿈을 이루는 공덕을 완수하고 이상을 실현하는 태일(太一)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길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초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배달국을 건국하신 이래로 신시 배달국은 총 18분의 환웅천황께서 1,565년 간 다스리셨습니다.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한 배달국은 우리 겨레의 최초의 국가이며 3천 명의 문명 개척단은 새 역사를 연 주인공입니다.

 

 

수천 년이 지나면서 사료가 사라지고 중화 사대주의 역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식민사관에 의해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 양력 10월 3일로 바뀌고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일이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일로 바뀌었습니다.

 

 

신시개천 5916년 거발환 환웅천황의 배달국 건국일 개천절을 앞두고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조작된 우리의 참역사를 되찾기 위해 배달국 건국의 주역이었던 동방 문명개척단 3천 명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역사광복군 3천 명이 모이는 개천문화대축제가 개최됩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역사광복군이 모이는 개천문화대축제에 국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신시개천 5916년 개천문화대축제>

일시: 신시개천 5916년 음력 9월 4일 서력 2019년 10월 2일(수요일) 오후 2시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문의: 02 - 719 - 3737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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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gdante 2019.09.11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절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은데
    개천문화국민대축제가 있군요
    그나마 다행인 것 같기도 합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9.09.11 2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안부인사겸 들립니다. ^^

  3. 2019.09.11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죽풍 2019.09.11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과 일본에 의해 개천절이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뀌는군요.
    역사를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광복 74주년 2019년 8월 15일 광복절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고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제는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과 수탈과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정할 수 없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가당찮은 이유를 내세워 경제 침략까지 했습니다.

 

 

現 일본 아베 총리가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경제전쟁은 역사 부정에서 시작한 역사전쟁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뿐만 아니라 일제의 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는 침략 야욕을 드러낸 역사전쟁으로 현대판 '정한론(征韓論)'입니다.

밖으로 드러난 경제 도발의 실상과 일부 일본을 찬양하는 몰지각한 인사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를 뻗고 그 실체가 숨겨져 있습니다.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은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날입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와의 역사전쟁에서도 승리하고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제가 일본 왕 우상화 작업과 전쟁 다음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 대한제국(조선)을 무력으로 강제 병합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국민을 정신적 노예로 만드는 식민사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의 자주적 역사관과의 역사전쟁은 10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됐습니다.

 

 

우리의 참역사와 정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기술한 역사서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 곧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주류 강단사학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되고 사장(死藏)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국권 강탈 이후 일본 왕의 특명으로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한 일제 식민사관의 학술적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관변사학자는 일제가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해 만든 일제 식민사학은 친일파에 의해 해방 후부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뿌리내렸고 거대 카르텔을 형성하고 주류 강단사학이 되어 우리의 정신을 좀먹어왔습니다.

 

 

우리는 일본과의 경제전쟁과 역사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드시 청산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을 병들게 하고 이간질하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 곧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 분열을 조장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를 청산할 때 국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일치단결하여 경제전쟁에 대처하 일본과 역사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일본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여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는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입니다.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 격인 요시다 쇼인은 조선을 정벌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악질입니다.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 사망한 후 일제는 '정체성론', '당파성론', '타율성론' 등과 같은 식민사관을 만들어갔습니다.

일제가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조선(대한제국) 침략의 정당성과 영구 식민지배를 위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주장이 '정체성론', '당파성론', '타율성론'입니다.

일제의 '타율성론'은 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외세의 간섭과 영향으로 발전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은 조선은 중세 봉건사회로 발전하지 못한 채 고대사회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당파성론'은 조선왕조 5백 년 역사는 5백 년 동안 당파싸움만 하다 스스로 망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붕당정치의 폐해도 있지만, 조선은 서로 다른 세력이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가며 중국 한漢족의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5백 년 동안 국가를 존속했습니다.

 

 

 

 

 

 

 

 

 

 

'당파성론', '타율성론', '정체성론' 등의 일제 식민사관은 '임나일본부설', '한사군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 수많은 식민사학의 기형아를 출산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왜곡 조작한 일본사(日本史)가 해방 후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와 신석호 등에 의해 한국사(韓國史)로 둔갑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계승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 주류 강단사학은 언제나 현란한 수사를 사용해 본질을 호도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학설은 식민사학 이론을 절대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00여 년의 역사전쟁을 돌이켜보면 무력을 앞세운 일제 식민사관이 승리했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주류 강단사학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한韓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되찾고 대한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2012년 출범한 2016년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식민사학과 전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00여 개 단체가 모여 출범한 미래로 가는 바른역사협의회가 출범했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에 침착하고 슬기롭게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일본의 정신적 노예로 만든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 주류 강단사학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국민 여러분의 동참에 힘입어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되찾자는 민족사학의 역사전쟁에서 민족사학 진영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안의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일에 동참해주신다면 일제 식민사관과의 역사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하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한 지난 100여 년의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한국사의 일제 식민사관을 척결하고, 아직도 우리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를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앞으로 일제 식민사관을 신봉하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와의 역사전쟁에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STB 상생방송 2019년 8월 15일 광복절 특집방송

<환단고기 북콘서트 - 가야와 임나의 진실을 밝힌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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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8.15 0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을 맞아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 안의 친일잔재 글을 공유해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의미있는 공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19.08.15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광복절 하루 잘 보내세요~

  3. kangdante 2019.08.15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6년동안 만든 식민사관을
    두배 기간인 70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잡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4. 꿈꾸는 에카 2019.08.15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5. 죽풍 2019.08.15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자가 이 나라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면 그것이 곧 나라의 발전에 이르겠지요.
    잘 보고 갑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의 후예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 

상고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에서 개최한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의 연합 학술대회

 

 

 

 

 

 

 

 

 

 

 

 

1986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던 날이며 가장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86년 10월 9일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며 해방 후 40년 동안 떵떵거리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난도질한 매국사학은 핵폭탄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날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다시피 1987년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해입니다.

반면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길까 봐 가장 동분서주한 해입니다.

 

 

1967년 발족한 한국사연구회 명예회장을 지냈으며 일제 식민사학을 뿌리 내려 주류 강단사학계로부터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산북두로 불리던 두계 이병도가 1986년 10월 9일 자 조선일보에 "단군(檀君)은 신화(神話)가 아닌 우리 국조, 역대왕조의 단군제사 일제 때 끊겼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날입니다.

 

 

이병도의 조선일보 기고 파문이 일어나기 바로 얼마 전 1986년 5월에는 임승국 교수의 <환단고기> 한글판 <한단고기>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동안 외면받아왔던 우리의 고대사와 상고사가 한글판 <한단고기> 출판과 함께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매국사학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1967년 12월 창립해 이병도가 명예회장을 지냈고, 한국사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학술서와 연구지를 간행한다고 주장한 한국사연구회는 일제 식민사학을 대변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의 대표적인 단체입니다.

 

 

1986년 10월 9일 이병도의 조선일보 기고 사건으로 경천동지할 충격을 받은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민족사학 몰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후 역사를 왜곡 조작해 국민을 식민사학의 노예로 만든 것이 탄로 나자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를 발족하고 잇따른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간행물을 발간하는 등 일제 식민사학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해방 후부터 대한민국 역사를 장악해왔으며 1986년 10월 9일 이전에도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회가 있었는데, 이병도가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일제 식민사학을 민낯을 고발하는 기고를 한날부터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1952년 발족한 역사학회를 비롯해 1957년 한국사학회, 1965년 동양사학회, 1967년 한국사연구회, 1988년 한국 역사연구회(망원한국사연구실+역사문제연구소+한국근대사연구회를 통합) 등 여러 역사 단체가 있었습니다.

 

1967년 창립한 한국 고고학연구회 및 한국 고고학협회가 1976년 한국 고고학연구회로 통합되었고, 1987년 한국 고고학회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 사학계가 장악한 역사 단체 대다수가 1990년 이후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근현대사, 중세사, 고대사, 신석기, 구석기를 비롯해 2000년대 들어서 만들어진 역사 단체 및 최근에 만들어진 단체도습니다.

 

1986년은 이병도의 조선일보 기고문 때문에 해방 후 주류 강단사학계의 뿌리까지 흔들리게 한 가장 큰 충격적인 해였으며, 매국사학이 일제 식민사학으로 재무장하는 분기점이 된 해입니다. 물론 매국사학계가 끝까지 아니라고 발뺌을 할은 자명한 일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식민사학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하는데 앞장선 이병도와 신석호가 일제 식민사학을 뿌리내렸습니다.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이병도의 글을 본 후 충격에 휩싸여 있을 틈도 없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주류 강단사학계는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해 만든 대표적인 역사 단체가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입니다.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 기고문을 통해 이병도가 역사의 진실을 밝힌 후 1987년 2월 한국 고대사연구회(1997년 한국고대사학회로 변경), 1987년 11월에는 한국 상고사학회가 만들어졌습니다. 더불어 역사 대중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1987년 9월 <한국사 시민강좌> 창간호가 발간되었습니다. 매국사학이 주장하는 학회의 설립 취지는 고대사와 상고사의 연구 발전이지만, 기실 일제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28일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고대 강원의 대외교류' 학술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국립춘천박물관과 강원연구원 강원학연구센터가 주최하고 한국고대사학회와 한국상고사학회가 주관한 학술대회입니다.

 

 

발표자들의 주장 중국의 동북공정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고,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주장하여 주류 강단사학계가 매국사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80년 춘천 중도에서 발견된 상고시대와 고대 유적과 유물은 2011년 춘천에 장난감 공원 레고랜드가 만들어지기로 하면서 사회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춘천 중도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은 국내 최대 규모이며 기원전 14세기에서 12세기의 것입니다.

 

 

 

 

 

 

 

 

 

 

상고시대 유적과 유물은 농사를 지은 경작지와 집터 900여기, 고인돌 100여기 등 1,400여기의 청동기 시대 유구가 대량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파형 청동검과 청동 도끼 등도 다수가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상고시대부터 고대 삼국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 중도를 보존하자는 주류 강단사학계의 역사학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986년 10월 9일 일제 식민사학을 뿌리내린 이병도가 상고시대 역사의 진실을 밝히면서 창립한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와 발행물을 보면 한국고대사 왜곡과 한국상고사 왜곡에 앞장선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춘천박물관장 김상태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강원학연구센터장 장정용과 한국 고대사학회장 부산대 이수훈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울대 김장석, 경희대 강인욱, 국립김해박물관 고영민, 충북대 전진국, 국립경주박물관 신광철, 서울 광진구청 윤성호, 충남대 박순발, 인천도시개발 공사 윤용구 등이 대부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주제로 발표했고 종합토론을 했습니다. 

 

 

 

 

 

 

 

 

 

 

발표자들은 우리나라 최대의 상고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 중도 유적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거나 소위 '원삼국시대의 것'이라고 잘라 말한 자도 있었습니다.

 

 

발표자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서를 기껏 보조적으로 사용했고, 발표자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중국 <삼국지>였습니다.

한반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사군이 한반도의 영서지방까지 점령했고 경상도 지역에 있는 백성까지 전쟁에 징발했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충북대 사학과 전진국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접수한 위나라 조조를 한반도를 지배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전진국은 '(위나라 태수가) 삼한의 수장에게 인수를 내려주고 읍장의 벼슬을 더해준다.'라고 주장하며 말 한마디로 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가 주관한 학술대회의 발표자들은 일제 식민사학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조작의 소위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그대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한국고대사학회와 한국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원삼국'입니다.

소위 '원삼국' 용어는 1972년 김원룡이 만든 해괴한 개념의 용어로 일제가 주장한 소위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가짜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원룡이 창작한 것입니다.   

 

 

1987년 만들어진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는 창립 이후 현재까지 일제 식민사학 학술대회입니다.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를 듣는다는 것을 불가능하고, 단지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이 왜곡 조작한 가짜 우리의 고대사만 외칠 뿐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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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7.10 0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환단고기-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 상고사학회의 학술대회 내용을 잘 읽고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7.10 0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거 역사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식민사관에 매몰되어서는 더더욱 안되겠지요
    잘 보고 갑니다..

  3. 죽풍 2019.07.10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시대나 역사를 왜곡하는 학자들로 인해 국민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역사 공부가 필요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가장 큰 적폐 황국사관을 바탕으로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만들어진 단군신화 

'아스달연대기'의 원작은 변조된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로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 

 

 

 

 

 

 

 

 

 

 

 

 

2018년 총리 3연임에 성공하고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1830~1859)입니다.

 

 

요시다 쇼인은 1868년에 일어난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을 설계하고 주역을 길러냈으며,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과 동양을 집어삼키자는 '대동아공영론'을 주장한 자입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 가운데 우리 국민이 잘 아는 인물로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와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있습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이 소위 일본 왕 중심의 '황국사관(皇國史觀)'입니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메이지정부는 국사교정국과 태정관 등에서 왕정복고의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고 한국사 연구와 조작에 들어갑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1910년 무력으로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기 이전부터 식민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우리의 문화, 경제, 사회 등 전반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구축해 놓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한국사)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왜곡 날조를 시작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한국사를 처음 다룬 책은 1875년 스가와라 다쓰기치의 <계몽조선사략>입니다.

이후 제국대학의 교재로 사용한 1890년 도쿄 제국대학 교수들이 쓴 <국사안>, 1893년 요시다 도고의 <일한고사단>을 등 일제가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전제로 한국사를 왜곡 날조한 쓰레기가 19세기 후반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메이지정부와 1887년 도쿄 제국대학 사학과, 1889년 국사학과를 중심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 날조한 황당무계한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등 우리 역사 조작의 식민사관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tvN의 '아스달연대기'는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상고시대 역사를 다룬 '아스달연대기'는 본래 제목은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한 아사달연대기였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의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건국한 고조선을 배경으로 아사달연대기로 했었지만, 다른 의미를 부여해 '아스달연대기'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가 '아스달연대기'의 원작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근대사에서 일제의 한국사 조작 역사는 140여 년이나 됩니다.

 

 

 

 

 

 

 

 

 

 

도쿄 제국대학 사학과 출신들은 제국의 정치적 이념에 부합하고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 조작 말살 일제 식민사관을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으로 포장했습니다.

 

 

1894년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단군고> 시작으로, 1897년 나카 미치요의 <조선고사고>, 1921년 이마니시 류의 <단군고>에서 고조선 건국신화 곧 단군신화라고 주장했으며, 1926년 이마니시 류가 조작한 <삼국유사>가 tvN에서 방영하는 '아스달연대기'의 원작이 됩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 나카 미치요, 이마니시 류 등 일제 관변사학자들은 <삼국유사>를 이용하여 고조선 건국신화의 단군신화를 만들었습니다.

 

 

 

 

 

 

 

 

 

 

도쿄 제국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1904년부터 <삼국유사>를 교재로 사용했습니다.

이마니시 류는 1903년 도쿄 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조선사를 연구했습니다.

 

이마니시 류는 교토 제국대학(경도제국대학)과 경성 제국대학 교수를 거쳐 우리 역사 조작과 말살의 심장부였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마니시 류가 1926년 <삼국유사>의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조작해 <삼국유사> 경도제국대학(교토제국대학) 영인본을 만들어 일본과 한국에 배포하면서 실존한 고조선 역사가 고조선 건국신화의 단군신화가 되었습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나카 미치요의 논문도 '아스달연대기'의 원작이지만, 이마니시 류가 조작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고 배우는 역사서 <삼국유사>가 '아스달연대기'의 진짜 원작입니다.

 

 

 

 

 

 

 

 

 

 

일제가 1910년부터 약 1년여간 우리나라 사서 약 2만 권을 수거해 불태우고 일본으로 가져갈 때도 유일하게 그냥 둔 사서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삼국유사>는 글자를 조작해 고조선 건국신화의 단군신화로 만들었고, <삼국사기>는 '초기기록 불신론'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1,600여 년으로 축소했으며, <조선왕조실록>은 '당파성론'으로 몰아붙이는데 가장 좋은 미끼가 되었습니다.

 

 

'아스달연대기'의 원작이<삼국유사>에는 고조선 건국 사화(史話)는 있지만, 고조선 건국 신화(神話) 단군신화는 나오지 않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를 비롯한 일제 관변사학자들과 친일파 사학자는 1935년 일제 식민사관 총서 <조선사 35권>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일본 왕의 칙령을 받은 조선총독부가 한국사 개조작업을 완수해 실존한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가 고조선 건국신화로 둔갑했습니다.

 

 

우리 국민 상당수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고조선 건국신화, 곧 단군신화는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용어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를 비롯한 어떤 역사서에도 고조선 건국신화, 곧 단군신화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은 침략자의 역사관, 지배자의 역사관, 매국 역사관, 노예 역사관이며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바이블처럼 숭배하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통치 25주년을 기념하여 <조선사 길잡이>를 출간했습니다.

 <朝鮮史のしるべ 조선사 길잡이>는 단군왕검께서 건국한 고조선의 역사를 지우고 한국사가 중국 한漢족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넣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왜곡 날조한 가짜역사를 조선의 역사라고 간행한 <조선사 길잡이>는 지구촌에 배포되었고, 아직도 한국사를 소개하는 지표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201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여 1935년 편찬한 <조선사 35권>에 대한 번역 해제 연구사업에 인하대 김위현, 복기대 교수팀(고조선연구소)이 선정됐습니다. 인하대 고조선연구소팀은 <조선사 35권>을 번역 및 정밀 해제뿐만 아니라 교차 검증까지 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인하대 고조선연구팀의 <조선사 35권> 번역 및 해제 사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류 강단사학계가 지난 70여 년간 주장한 소위 '정설'과 '통설'이라는 학설이 일제 식민사학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인하대 고조선연구소가 지금까지 몇 차례 중간 발표한 내용만 보더라도 우리가 배운 역사가 일제 식민사학과 쌍둥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스달연대기'가 아사달연대기로 바뀌는 그 날까지 역사광복군과 식민사학 후예와의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식민사학이란 점령지에 이주한 본국 사람들이 식민지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대만의 식민사학이란 대만총독부의 관점으로 대만사를 바라보는 것을 뜻하고, 한국의 식민사학이란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식민사학이란 식민 통치자의 관점으로 식민지 백성들의 혼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식민 통치자의 관점에서는 식민지 백성들의 영혼까지 노예로 만드는 주인 사관이다.

 

반면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주인의 관점으로 자신을 보는 노예 사관이다.

제국은 주인이고 식민지는 노예다.

해방된 나라에서 식민사학을 한다는 것은 몸은 해방되었지만, 정신은 노예 상태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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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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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9.06.01 0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 kangdante 2019.06.01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성공한 역사도 키우지 못하고
    정파가 다르다 하여 짓눌러버리는 나라지만
    일본은 다르네요

  3. korea cebrity 2019.06.01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글 잘 보고
    공감 언제나 잘 누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여~

  4. 버블프라이스 2019.06.04 0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스달 드라마를 봤는데요- 1화는 스케일 설명 때문인지 흥미가 없엇는데 2화부터는 볼만해지더라고요^^ 아스달연대기 원작이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이군요?

실존한 상고시대 역사는 사라지고 상상력으로 만든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와

항일 무장 독립전쟁이 사령탑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아사달 연대기>

 

 

 

 

 

 

 

 

 

 

 

 

해학 이기 선생, 운초 계연수, 단재 신채호 선생, 백암 박은식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 석오 이동녕 선생, 조소앙 선생, 홍암 나철 선생, 무원 김교헌 선생, 희산 김승학 선생, 석주 이상룡 선생, 계봉우 선생, 이원태 선생, 김정규 선생, 위당 정인보 선생, 동산 유인식 선생 등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항일운동가와 임시정부 독립운동가이면서 역사학자로 활동한 분들이 많습니다.

 

 

 

임시정부 독립운동가 중에는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방법론에서 무장투쟁만 주장한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역사 교육을 중시해 상고시대 우리 역사를 밝히는데 앞장선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도 많았습니다.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로 활동한 분들이 저술한 책을 보면 상고시대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 고려, 조선 등 국가와 시대를 특정해서 책을 쓰신 분도 있고, 상고시대부터 근대사까지 우리 역사를 아우르는 통사(通史)적인 역사서를 쓰신 분도 있습니다.

 

 

 

항일 운동가들과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와 독립전쟁을 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대학에서는 일제와 맞서 싸우면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운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독립운동가가 쓴 역사서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서점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입니다.

 

 

 

 

 

 

 

 

 

 

주체적인 역사관을 정립하여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민중에게도 국가와 민족의 뿌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긍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교육했습니다.

 

 

임시정부 독립운동가에게 역사 교육과 무장투쟁은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을 실행하는 수레의 두 바퀴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애국심을 함양해 독립전쟁의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독립당(1936년 8월 29일) 

환국(桓國)에서 삼한(三韓,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끝나기 까지 무릇 3천여 년.......

 

 

 

 

대한민국 임시정부(1942년 3월 1일 제23주년 3.1절 선언문)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桓國)이 창립된 이래 단군, 부여, 삼한, 삼국, 고려, 조선 및 대한제국을 거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우리의 고대사와 상고시대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 조작해 식민사학을 만들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는 지난 70여 년간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만이 올바른 역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강단사학계는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바로 세운 역사를 두고 '자의적인 해석', '신념이 앞선 관념론', '극단적 민족주의', '국수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매도해 왔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했던 시기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서고, 우리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친일파도 있었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자주적 역사관을 정립한 독립운동가의 역사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은 식민사학의 후예들에 의해 폐기 처분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이론과 가짜학설을 추종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지배해 왔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일제 식민잔재를 국민의 손으로 말끔하게 청산하고 우리의 잃어버린 참역사를 복원할 것입니다.

 

 

 

 

 

 

 

 

 

 

 

항일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은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 선생과 <태백일사>를 쓴 일십당 이맥 선생의 후손으로 <환단고기>를 감수한 분입니다.

 

 

해학 이기 선생의 제자인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은 1911년 <삼성기 上>과 <삼성기 下>, <단군세기>와 <북부여기>와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을 하나로 엮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편찬했는데, <환단고기>는 가장 대표적인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생이 저술했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책으로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를 세워 수많은 무장 독립운동가를 교육한 <대동역사大東歷史, 1913년>도 <아사달연대기>입니다.

 

 

 

 

 

 

 

 

 

 

신흥무관학교 교재로 사용한 독립운동가 이원태 선생의 <배달족강역형세도倍達疆域形勢圖, 1918>와 <채색강역형세도彩色疆域形勢圖, 1923> 역사 지도교재 역시 <아사달연대기>입니다.

 

 

조선 왕조에서 성균관 대사성, 문헌비고찬집위원,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무원 김교헌 선생이 왕실에 있던 사서와 각종 사서를 참고해 단군왕검의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역사를 저술한 <신단민사神檀民史, 1904년>도 <아사달연대기>입니다.

 

 

항일 독립운동가 무원 김교헌, 백암 박은식, 석농 유근 선생 공동으로 집필한 <단조사고檀祖事攷, 1911년>도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 선생의 <대동고대사론, 1911년>도 <아사달연대기>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1931년>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기록한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일제의 서슬 퍼런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 1935년>도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국권 침탈에 맞선 항일운동가와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자주적 역사관으로 우리의 참역사를 바로 세웠던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매장되어 버렸고, 일제가 영구 식민지배를 위해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은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우리의 역사로 둔갑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가와 역사학자로 독립운동을 했던 이기, 계연수, 신채호, 박은식, 이상룡, 이회영, 정인보 선생 등이 쓴 우리의 역사와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가 배워온 식민사학은 전혀 다릅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계자와 독립운동가들은 소외되고 버림받았으며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매도되고 사장됐지만, 친일파와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해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100여 년간 지속한 독립운동가의 민족사학과 일제 식민사학의 역사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STB 상생방송 【대한독립운동사】 <10회 독립운동가의 역사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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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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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30 0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가요^^

  2. kangdante 2019.05.30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역사책을 출간하였군요
    잘보고 갑니다.. ^^

  3. 청결원 2019.05.30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하루 마무리 잘 하세요~

  4. korea cebrity 2019.05.30 2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공감 언제나 잘 누르겠습니다~

  5. 죽풍 2019.05.30 2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5.18 부정이나 막말 등, 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6. 버블프라이스 2019.06.04 0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의 아사달 연대기 글을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상고(上古) 시대 가상의 땅에서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와

서기전 3898년 거발환 환웅 천황께서 홍산문명 지역에서 동방문명 시대를 연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

 

 

 

 

 

 

 

 

 

 

 

 

 

요하문명 또는 발해연안문명이라고 불리는 홍산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은 중국이 수천 년간 유지해 온 역사관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오랫동안 중국은 문명의 시작이고 문명의 중심, 천하의 중심이 곧 중국이라는 중화사상을 가지고 살면서 우리 역사를 왜곡해 왔습니다. 중원(中原)이 문화와 역사의 중심이라는 중화 우월주의 자부심과 사방에 있는 나라를 남만, 북적, 동이, 서융의 오랑캐라고 세계관을 갖고 살았습니다.

 

 

 

사실 중국 화하족(한漢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족보다 이민족이 지배한 역사가 더 많습니다.

상고시대 중국을 다스린 임금과 인류 문명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수인씨,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과 순임금 등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모두 배달국 동이족 출신입니다.

 

그리고 선비족이 세운 수나라와 당나라, 선비족에서 갈려 나간 실위족 출신의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등 모두가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동이족에서 갈려 나간 역사입니다.

 

 

 

 

 

 

 

 

 

 

중국 한漢족은 황하가 문명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했고 중국이 동방문명의 종주로서 문명전파론을 주장해 왔습니다.

동쪽의 오랑캐란 의미의 동이(東夷)는 중원의 한漢족과 다른 이민족으로 한韓민족과 동북아 유목민을 말합니다.

그런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광대한 지역에서 고대국가 성립의 요소를 제대로 갖춘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서기전 약 7000여 년에서 서기전 약 1500여 년의 신석기, 옥기(玉器),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적과 유물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넓은 의미(광의)홍산문명이 있습니다.

 

또, 광대한 홍산문명의 각 지역과 시기에 따라 사용하는 좁은 의미(협의)의 소하서 문화, 홍륭와 문화, 사해 문화, 부하 문화, 조보구 문화, 홍산 문화, 소하연 문화, 하가점하층 문화가 있습니다. 홍산문명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은 중국의 문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문명의 유적과 유물입니다.

 

 

요하문명과 발해연안문명으로 불리는 홍산문명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이른바 '동북공정, 단대공정, 탐원공정' 등의 역사 왜곡 조작으로 4천여 년 중화문명 역사를 고무줄처럼 늘려 1만 년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역사 조작으로 우리의 고구려 역사와 북부여 역사, 고조선 역사,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 그리고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역사까지 모두 중국의 역사가 되어 버렸는데, 소위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란 자들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조작보다 더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 주류 강단사학계가 점령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국책 3대 연구기관 중 하나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중국의 역사 침탈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과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 침탈의 첨병이 되어 우리 역사 말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일제는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를 침탈의 정당성과 영구 식민지화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1910년 무력을 앞세워 대한제국을 강제 병탄한 후부터 체계적으로 만든 가짜학설 곧 식민사학을 만들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은 한 개인, 한 대학, 한 단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 왕의 칙령으로 일제가 조작한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일제의 식민사학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마찬가지로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력을 동원한 국책사업입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는 원래 없는 역사이며, 홍산문명 지역의 고조선을 한반도로 축소하고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하여 청동기 문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한반도에 부족국가와 부족연맹국가 형식으로 존재하던 고조선, 기원전 4세기경 철기문명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하는 중국 출신의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 그리고 기원전 2세기경 중국 출신의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기원전 194~ 기원전 108) 때 이르러서야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 체계는 중국과 일본을 주장을 그대로 옮겨와 고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으로 이어진 역사로 마치 수학 공식과 같이 절대불변의 법칙입니다.

 

 

침략자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규정해버린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게 일제 식민사학이란 절대 변할 수 없는 신앙이 됐고, 변해서도 안 되는 믿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본래 제목이 아사달 연대기였다고 합니다.

작가는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할 당시 도읍을 아사달로 지었다고 해서 처음에 아사달 연대기로 했다가 다른 의미를 덧붙여 '아스달 연대기'로 제목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주제로 만들었다는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실존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조선 이전에 벌써 동방문명을 연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가 있었고, 현 인류 문명의 뿌리가 되는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작가의 말처럼 고조선의 역사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드라마로 '아스달 연대기' 판타지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점이 문명과 국가의 탄생이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고조선 이전에 배달국 초대 거발한 환웅천황부터 18세 거불단 환웅천황까지 1,564년 간 존속한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가 있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주류 강단사학계가 해방 후 지난 70여 년간 일제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진짜 역사라고 주장하며 가르쳐왔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하면서 만든 '단군신화', 그리고 밥줄이 걸려있다는 이유로 식민사학을 무조건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의 가짜학설 모티브로 제작됐다는 것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하여 중국의 여러 사서에 우리 한韓민족을 동이족으로 불려왔습니다.

'단군신화'로 사라진 단군왕검께서 세운 고조선의 뿌리가 배달국이며, 배달국의 역사는 배달겨레의 역사가 동이족의 역사입니다.

 

 

일제가 '단군신화'를 창조하면서 단군왕검께서 세우신 옛 조선의 뿌리가 되는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단군왕검의 옛 조선 역사가 '단군신화'가 되면서 고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께서 건국하신 북부여의 역사까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소위 '삼국시대'의 고대사부터 시작합니다.

 

 

 

 

 

 

 

 

 

 

홍산문명의 주인공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역사서에는 단 한 줄도 없고 오직 <환단고기>에만 나옵니다.

최소 3천여 년에서 최대 약 1만 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이른바 홍산문명(요하문명, 발해연안문명)에서 발견된 문명은 일제가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가 거짓이고, 더불어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가 실존 역사였다는 것을 환단고기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배달국과 고조선의 영토였던 홍산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제단과 신전과 무덤과 옥기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과 유물은 중국의 문명과 전혀 관련 없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특색이 그대로 살아있는 홍산문명 지역은 배달국과 고조선의 영토였으며,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 숨결이 오롯이 배어있는 땅이며, 화려한 청동기 문명을 꽃을 피운 고조선 동이족의 역사 무대였습니다.

 

 

 

 

 

 

 

 

 

 

일제가 수십 년 동안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준비해서 1910년 무력을 앞세워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기 이전부터 우리 역사 말살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1910년 강제 병탄(倂呑) 이전의 항일 의병과 병탄 이후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지배의 부당함에 목숨을 걸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항일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와 무장투쟁과 독립전쟁을 벌이는 한편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를 바로 세워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가 영구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과 최고 엘리트 관변사학자를 동원해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의 융단폭격으로 항일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정립한 우리의 참역사가 갈가리 찢겨 어둠에 묻혀버렸습니다.

 

 

 

 

 

 

 

 

 

 

 

 

 

 

 

동서양 문화원전의 성립과 보정작업의 중요성 - 환단고기 위서론 시비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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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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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5.29 0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스달 연대기와 배달국 동이족의 역사에 대해서 몰랐던 내용들을 공부하고 갑니다^^
    즐거운 수요일 되세요

  2. *저녁노을* 2019.05.29 0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달의 역사...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kangdante 2019.05.29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달국에 대해 알고 갑니다
    역사와 뿌리는 중요하지요
    잘 보고 갑니다.. ^^

  4. korea cebrity 2019.05.29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달민족에 그런 역사가 숨어있네여
    감사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도쿄 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로 동양학 창시자라 불리는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단군신화'의 원조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1894년 <단군고檀君考> 진짜 아스달 연대기의 원작

 

 

 

 

 

 

 

 

 

 

 

 

1900년에 태어나 2005년 105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법학자이며 우리나라 상고 역사학자 최태영 박사는 "나의 세대까지만 해도 단군과 고조선을 의심한 일이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최태영 선생은 이병도와 함께 우리의 상고 역사를 밝힌 <한국상고사 입문> 공동 저자이기도 합니다.

일제가 식민사학으로 우리 역사를 조작하는데 최일선에서 활약하여 대한민국 국사학계의 태산북두가 된 이병도는 말년에 고조선 역사는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최태영 박사의 젊은 시절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단군신화'가 아니라 아사달에 도읍으로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국조(國祖)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병도는 자신의 역사 조작 친일행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먼저 현재 대한민국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에는 '단군신화'였다가 잠시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역사적 사실로 명시됐다가 다시 '단군신화'로 바뀌었고, 교과서마다 기술한 내용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과서 내용과 주류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단군신화'는 일제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조작해 만든 일제 식민사학 주장과 똑같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은 고조선의 부족시대와 기자조선의 부족연맹 시대를 넘어 기원전 2세기경 위만조선 때 이르러 진정한 국가의 탄생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주류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위만조선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일제 식민사학과 주류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상고 시대의 한국사는 고조선은 원시부족일 뿐이며, 중국 출신의 기자와 위만이 세운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곧 우리나라가 중국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태고의 땅에서 문명과 국가의 탄생이란 신화의 역사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원작은 없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건국한 고조선 이야기를 생각하며 처음에 '아사달 연대기로 제목을 정했다가 '아스달 연대기'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역사와 관련된 웹툰은 있지만, 상고시대 고조선과 관련된 웹툰은 없기 때문에 아스달 연대기의 원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아스달 연대기는 작가가 창작해 만든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원작이 없는 상황에서 작가의 말처럼 학교에서 배우고 아는 고조선 건국의 이른바 '단군신화'를 참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존한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는 사라지고 소위 '단군신화(檀君神話)'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아스달 연대기의 첫 번째 원작자는 1894년 <단군고>를 쓴 시라토리 구라키치(1865~1942)입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부정한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일연이 '단군신화'를 만들어 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넘어 만주 대륙까지 집어삼키려는 의도로 소위 '만선사'를 만들었습니다.

만선사(滿鮮史)란 '만주사'와 '조선반도'의 역사를 일본이 왜곡 조작한 가짜역사로 '만선사'를 처음 주장한 자가 바로 시라토리 구라키치입니다.

 

 

 

 

 

 

 

 

 

1887년 도쿄 제국대학 사학과 1기로 입학해 서양 실증사학의 창시자 랑케의 제자인 리스로부터 실증사학을 사사하고 졸업해 학습원(學習院) 교수가 됩니다. 학습원에서 동양사학을 연구하기 시작해 유럽 유학을 거쳐 1903년부터 도쿄 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로 활동합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조선 총독을 꼬드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제국대학에 불법 반출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건국한 고조선에 대해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1894년 <단군고>에서 있지 아니한 일을 사실처럼 꾸며낸 설화, 곧 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단군신화'라고 주장한 <단군고>를 시작으로 <조선의 고대 전설고>, <조선 고대 제국 명칭고>, <조선 고대 지명고> 등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동양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우리 역사 조작의 정점에 있는 자이며,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은 실증이란 미명하에 사료적 근거보다는 역사 조작에 필요한 내용만 짜깁기하고 유적과 유물 등을 조작해 우리 역사 말살했습니다. 

 

 

조선과 만주 침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 조작한 원흉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진두지휘한 만선역사지리조사실에는 쓰다 소키치, 이나바 이와키치, 마쓰이 히토시, 야나이 와타루, 세노 우마쿠마, 이케우치 히로시 등 일본이 자주 사용하는 말로 기라성 같은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의 두 번째 원작자는 나카 미치요(1851~1908)입니다.

나카 미치요는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함께 일본 동양사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자로 1897년 <조선고사고>에서 '단군은 날조된 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의 세 번째 원작자는 삼국유사의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조작한 이마니시 류입니다.

이마니시 류는 1921년 <단군고>에서 나카 미치요의 <조선고사고> 논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단군신화'로 만들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의 네 번째 원작자는 다수의 일제 관변역사학자들로 앞다투어 '단군신화'의 글을 썼습니다.

아스달 연대기의 원작자 다섯 번째는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신봉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세뇌한 주류 강단사학자들입니다.

 

 

일제강점기 소위 '단군신화'라는 용어가 일반인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920년 6월 25일 <개벽> 창간호입니다.

<개벽> 창간호에 일태(一態)라는 필명으로 '단군신화' 논설이 실렸고, 이후 여러 차례 신문에 '단군신화'가 연재됐습니다.

해방 후 역사학계를 점령한 친일파들은 서로 뒤질세라 '단군신화'를 주제로 신문 기고와 논문과 책을 펴냈습니다.

   

'단군신화'의 원작자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1894년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한 <단군고> 논문을 필두로 '단군신화'가 세상에 나왔을 뿐, 1894년 이전의 우리 역사서에 '단군신화' 용어가 등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환단고기, 역사 문화의 새 지평을 열다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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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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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gdante 2019.05.28 0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주에 방영되는 아스달연대기가 기대가 되는데
    우리의 상고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2. 복날집 2019.05.28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한 놈들이군여...
    저런 놈들에게 속지 맙시다.
    공감 누르고 갑니다

  3. 청결원 2019.05.28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오늘도 맑은 하루 보내세요~

  4. 죽풍 2019.05.28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스달 연대기 원작자와 단군제사가 일제강점기때 끊겼다는 것을 잘 알고 갑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5. 버블프라이스 2019.05.29 0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스달 연대기 다음주에 방영 되는 소식은 들었는데요, 이번 글을 읽고나니 조금더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발해연안문명 또는 요하문명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제5의 문명 홍산문명과

가상의 땅 '아스'에서 태고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19세기 중엽과 20세기 초 중근동과 동북아시아에서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문명이 발견됐습니다. 

19세기 중엽 중근동에서 발견된 수메르 문명은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뿌리가 되는 문명으로 기원전 3천 년경 가장 융성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20세기 초 동북아에서 발견된 홍산문명(요하문명, 발해연안문명)은 수메르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한때 우리는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가 중국의 황하문명이라고 배웠지만, 홍산문명은 그보다 더 오래되고 중국의 문명과는 전혀 다른 문명입니다.

 

 

인류의 정신문화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유적과 유물로만 판단한 톰센의 삼시대 구분법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나눕니다.

 

 

 

 

 

 

 

 

 

홍산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을 살펴보면 인류의 정신문화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미개한 원시부족이 살던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더불어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엄청난 옥기(玉器)류가 발견되면서 동석병용 시대를 넘어 동석옥(銅石玉)의 병용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톰센의 삼시대 구분법으로 보면 광대한 홍산문명(요하문명)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의 서기전 7000여 년 전 소하서 문화, 서기전 6200여 년 전 훙륭와 문화, 서기전 5600여 년 전 사해 문화, 서기전 5200여 년 전 부하 문화, 서기전 5000여 년 전 조보구 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가 겹친 시대에는 서기전 4700여 년 전 홍산 문화, 서기전 3000여 년 전 소하연 문화, 그리고 청동기 시대 서기전 2000여 년 전 하가점하층 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됐습니다.

 

 

 

 

 

 

 

 

 

 

모 대학 교수는 '홍산문명은 동아시아의 시원 문명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반해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홍산문명과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광대한 지역에서 7천여 년 동안에 걸쳐 화려한 문명과 문화의 꽃을 피우면서 홍산문명을 이룩한 주인이 없다면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요?

 

tvN에서 제작한 아스달 연대기가 우리의 상고시대 아사달을 도읍으로 새 역사의 문을 열었던 고조선을 배경으로 만든 판타지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만이 희망이다. 고조선이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라고 습니다.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가상의 상고시대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방송되면서 실재했던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의 폐해로 인하여 깊고 깊은 어둠 속에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단군신화라'는 한마디 말로 상고시대 역사를 무조건 부정합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사가 아사달 연대기를 만들어져야 함에도 상상 속의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대한민국 국민이 지난 100여 년 동안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학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류 강단사학계에게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이란 기득권을 지탱해주는 탄탄한 대들보이며, 어리석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해주 든든한 동아줄이고, 밥그릇을 채워주는 든든한 곳간입니다.

 

 

 

 

 

 

 

 

 

주류 강단사학계는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조작한 식민사학 그대로 단군왕검의 고조선 개국은 단군신화일 뿐이며, 문명과 국가 탄생의 기준은 청동기 문명이고, 한반도는 기원전 10세기 이후에야 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발해연안문명 또는 요하문명으로도 불리는 홍산문명은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漢족의 활동무대였던 중원(중국) 밖의 동서남북에 있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의 오랑캐로 규정하고 비하해 왔습니다.

 

 

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에 대해 중국 역사에는 홍산문명의 실체에 대해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홍산문명(발해연안문명, 요하문명)은 중국이 동쪽의 오랑캐라고 부르던 동이족의 영토에서 발견된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이 처음 발견된 후 1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홍산문명(요하문명, 발해연안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은 흔히 중원이라 하는중국 땅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회영, 이시영, 이상룡, 신채호, 박은식, 유인식, 김교헌, 계봉우, 김승학 등 많은 독립운동가는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이면서도 홍산문명(요하문명) 지역에 자리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의 역사를 정립해 전파했습니다.

 

 

아사달 연대기의 주인공이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조작 말살하면서 '단군신화'의 아스달 연대기가 되었습니다.

 

 

 

 

 

 

 

 

 

 

환단고기의 독보적 사서(史書) 가치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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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26 0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스달 연대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19.05.26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주말 편안히 잘 보내세요~

  3. kangdante 2019.05.26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생님의 포스팅으로 인해
    곧 TV 방영되는 아스달연대기 드라마가 기대되네요
    여유로운 휴일보내세요.. ^^

  4. 죽풍 2019.05.26 1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산문화와 아스달 연대기 잘 알아 갑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5.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홍산문명(요하문명)과 아스달 연대기에 대해 덕분에 공부하고 갑니다^^

한민족의 상고시대 청동기 문명을 꽃피운 단군왕검의 고조선 시대

상고시대 3번째 국가의 탄생 고조선 도읍 아사달을 배경으로 만든 판타지물 아스달연대기

 

 

 

 

 

 

 

 

 

 

 

대한민국 국사학계의 태산북두 이병도와 함께 <한국상고사입문, 1989년 고려원>의 공동 저자인 최태영 박사는 법학자였고 최태영 박사가 비록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상고사를 30여 년간 연구한 분입니다.

 

 

일본 유학시절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진 이병도(1896~1989)와 최태영(1900~2005)은 사학과 법학이라는 전혀 다른 학문을 공부했지만, 서로 교류하며 돈독하게 지냈다고 전합니다. 이병도는 1977년 최태영 박사가 법학자로서 마지막 펴낸 <서양 법철학이 역사적 배경> 서문을 써주기도 했습니다.

 

 

최태영 박사가 상고시대 고조선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식민사학으로 사라진 우리의 상고 역사를 되찾기 위함이었습니다.

1900년에 태어난 최태영 박사는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단군신화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당시에는 누구도 상고시대 단군과 고조선을 의심한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태고의 땅 '아스'에서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tvN 판타지물 '아스달연대기'는 고조선 박사 1호라는 송호정이 가장 좋아할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작가는 판타지 드라마 제목을 아사달연대기로 했다가 '아스달연대기'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아스달연대기'는 상상으로 창작한 상고시대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라 상관없지만, 작가가 만약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고조선을 연 아사달연대기로 만들었다면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송호정을 비롯한 주류 강단사학계가 벌떼처럼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로 매국사학을 전파하는 데 충성을 다하고 있는 송호정을 비롯한 주류 강단사학계 입장에서는 아스달연대기가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뤘다고 하지만,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주제로 한 상상 속의 판타지 드라마이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왜곡된 역사를 심어줄 것이기 때문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고조선 박사 1호라는 송호정을 비롯하여 주류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한국사는 한국인이 쓴 한국사가 아니고 한국인의 눈으로 보는 한국사도 아닙니다.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는 일본인이 쓴 일본사이며 일본인의 눈으로 본 일본사일 뿐입니다.

 

소위 고조선 박사 1호라는 송호정은 본인이 쓴 논문과 책, 언론 기고문과 교육방송 강의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단군신화입니다. '단군은 만들어진 신화'라고 주장하는 송호정의 주장은 1894년 시라토니 구라키치가 주장한 '단군신화'를 똑같이 되풀이 한 말로 아사달을 도읍으로 한 단군왕검의 고조선, 곧 단군조선의 건국을 부정한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입니다.

 

 

송호정은 '동아시아의 청동기 문명은 기원전 10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고조선 역사의 출발은 10세기 이후로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금속, 곧 청동기 문명이 나타난 이후 계급과 지배관계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송호정의 논리는 곧 일제 식민사학의 조잡한 논리로 세계사를 보면 문명과 국가의 탄생이 반드시 청동기 문화와 직결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송호정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 위만조선을 고조선의 국가 탄생으로 봅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중국에 의해 위만조선이 압록강 이남 곧 한반도로 영역이 축소됐고 한漢나라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추종한 논리입니다.

 

 

송호정이 말하는 고조선이란 아사달을 도읍으로 단군왕검께서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한 고조선이 아닙니다.

송호정이 주장하는 고조선은 기원전 7~8세기경 처음 등장한 작은 부족국가였다가 중국의 '기자' 이후 또 다른 중국 출신의 '위만'이 기원전 2세기경에 세운 '위만조선'입니다. 

 

 

송호정은 기원전 2세기경 소위 '위만조선'에 이르러 법과 통치 등의 권력체계가 형성되어 국가의 체계를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송호장의 주장대로라면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기원전 2333년 개국한 고조선은 고대국가로 발전한 과정에서 나타난 부족국가로 국가라고 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부족공동체일 뿐입니다.

 

 

 

 

 

 

 

 

 

 

웃긴 사실은 송호정을 비롯한 주류 강단사학계는 '학계의 주된 견해'라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내세워 고조선 역사가 기원전 2세기경 위만조선에 이르러 국가다운 국가의 모습을 갖췄다고 하면서 한漢나라의 식민지가 됐고, 한민족의 고대국가 성립은 기원후 3~4세기에 이르러 성립됐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부 교과서에 아사달을 도읍으로 한 단군왕검의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라고 하지만,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없는 역사를 조작해 만든 가짜역사를 바탕으로 '한사군 한반도설', '삼한의 78개 소국', '임나일본부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을 섞어서 한민족의 고대국가 성립은 기원후 3~4세기에 이르러서야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한국사는 일제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날조해 만든 식민사학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역사를 조작하고 뒤죽박죽 뒤섞어 놓고 짜깁기한 허접하고 해괴한 논리에 대한민국 국민이 지난 70여 년 동안 속아왔다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19세기 말부터 상고시대 단군의 고조선을 단군신화라고 퍼트리며 역사 말살의 기반을 조성했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단군신화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19세기 말부터 아사달을 도읍으로 한 단군왕검의 고조선을 단군신화라고 우겨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사달을 도읍으로 한 고조선이 우리 한민족 최초의 국가는 아니지만, 단군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영역을 대륙에서 한반도로 축소했고, 단군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다시 위만조선으로 이어졌다고 역사를 조작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은 '통설'이라는 미명아래 아사달을 도읍으로 한 단군조선을 왜곡 조작해 신화로 만들고 중국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은 문명과 국가의 탄생 조건이라고 말하는 청동기문명은 한반도에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반도에 청동기문명은 없었고 석기와 철기시대가 공존했다는 소위 '금석병용기설'을 만들어 문명과 국가의 탄생 조건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단군화로 만들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한 주류 강단사학은 수십 년 동안 '정설'이라고 주장하던 '금석병용기설'을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폐기해야 했습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려던 '금석병용기설'의 음흉한 음모는 청동기 문명의 유물과 유적이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기됐지만, 일제가 조작해 만든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가짜 고조선 설'과 '단군신화'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tvN에서 제작한 아스달연대기는 상고시대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루는 판타지물로 기원전 2300여 년 전에 건국된 고조선 도읍 아사달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1908년 일본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된 홍산문명은 세계사와 한국사를 다시 쓰게 한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명과 단군신화의 고조선을 배경으로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루었다는 아스달연대기를 잘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제5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홍산문명 지역은 다양한 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곳입니다.

소하서, 훙륭외, 사해, 부하, 조보구, 홍산, 소화연, 하가점하층 문화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와 옥기를 거쳐 청동기 문명의 유적과 유물은 중국의 문명과는 전혀 이질적입니다.

 

신석기에서부터 청동기에 이르는 홍산문명 지역에서 출토된 섬세하고 예술적인 다량의 옥(玉)과 청동기 문명의 흔적들이 수없이 발견되었습니다. 

 

 

홍산문명 지역은 청동기 문명뿐만 아니라 이전의 초기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보여준 유물이지만, 주류 강단사학계에서는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에 따라 한반도 밖은 우리의 문화권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홍산문명권에서 발견된 옥과 청동기 유물과 유적은 중국과는 전혀 다르고 고조선 문명과 문화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부정하지만, 홍산문명은 누가 봐도 한민족과 친연성을 보입니다.

 

 

 

 

 

 

 

 

 

 

 

환단고기 위서론을 넘어서다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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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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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25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조선...아스달연대기...

    잘 보고 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kangdante 2019.05.25 0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국에 대한
    역사공부를 더 해야겠어요..
    여유로운 휴일보내세요.. ^^

  3. korea cebrity 2019.05.25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연대기
    잘보고갑니다

  4. 죽풍 2019.05.25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산문화, 어렵군요.
    어지간히 공부해서는 머리에 남는 게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알아 갑니다.

  5.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 내용이군요?
    고조선 도읍 아스달연대기 글 잘 읽고 갑니다^^

신석호와 함께 일제 식민사학을 뿌리내린 대한민국 국사학계 태두(泰斗) 이병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밝힌 고조선 아사달연대기와 단군신화의 아스달연대기

 

 

 

 

 

 

 

 

 

 

 

 

조선총독부 역사관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역사 관련학과 출신들이 점령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은 역사관련 대한민국 3대 국책연구기관입니다.

 

몇 년 전 국책연구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의 소위 동북아역사지도가 일제 식민사학과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 드러나 부적격판정을 받고 폐기됐습니다.

 

 

47억 원을 지원받아 연세대와 서강대 사업단의 역사학자 60여 명이 참여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회가 제작한 가짜지도는 국회뿐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연구비 11억 원을 반환하라는 행정처분까지 받았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소위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회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은 임의로 4억 원을 깎아 소송을 진행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니다.

 

 

 

 

 

 

 

 

 

 

단군신화는 일제가 조작해 만든 것이지만, 해방 후 식민잔재를 청산하지 않아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정설 또는 통설이 되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모두 그렇지만, 조선총독부가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국내 고조선 박사 1호라는 송호정은 단연 식민사학을 전파하는 일등공신 중 하나입니다.

 

 

단군신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송호정은 중국과 일본의 일방적인 대로 단군조선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으로 그 법통이 이어졌다고 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한민족은 중국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됐고, 일제가 조작해 만든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며 고대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말합니다.

 

 

 

 

 

 

 

 

 

 

tvN에서 제작한 아스달연대기는 일제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과 송호정 등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만든 창작한 판타지물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은 우리의 고대역사 곧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역사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민족의 9천여 년의 역사에서 약 7천 년의 역사를 잘라내고 남은 2천 년 역사마저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며 4백여 년의 역사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해 우리의 역사는 1,600년 남짓밖에 안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존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 아스달연대기를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아스달연대기처럼 그저 만들 수 있는 것은 상상 속의 상고시대 역사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사극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스달연대기가 상고시대 단군 고조선의 도읍 아사달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청동기 문명 이전에는 절대 국가 성립이 될 수 없다는 식민사학의 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고시대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그렸다는 아스달연대기는 철저하게 조선총독부가 조작해 만들고 주류 강단사학계가 뿌리내린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고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한 단군왕검께서 여신 고조선 아사달연대기를 다룬 드라마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충성을 다해 우리 역사 왜곡 조작에 앞장섰던 이병도와 신석호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뿌리입니다. 특히 문교부 장관까지 역임한 이병도는 국사학계 태두(泰斗, 태산북두)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의 대부분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의 논리입니다.

 

 

일본의 관변역사학자들은 일제가 한반도를 영구적으로 점령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역사 조작에 참여했다고 치더라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실과 다른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없애고 우리의 미래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매국행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매국행위입니다.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는 개천(開天)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 국사학계의 태산북두로 불리는 이병도 박사(1896~1989)와 특별기고-인터뷰 내용을 실었습니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사실...고대사(古代史) 복원해야>

<단군(檀君)은 신화(神話) 아닌 우리 국조(國祖), 역대왕조(歷代王朝)의 단군(檀君)제사 일제(日帝) 때 끊겼다.>

이병도가 조선일보에 기고하고 인터뷰를 한 지 3년이 지난 1989년 8월 14일 사망했습니다.

 

 

이병도가 조선일보에 기고하고 인터뷰한 내용은 단군신화의 아스달연대기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사라진 단군왕검의 고조선 아사달연대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사가 나간 후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병도를 '노망난 늙은이'로 취급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일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이병도가 기고한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는 것입니다.

친일 식민사학의 뿌리 이병도가 이러한 글을 싣게 되는 데까지는 최태영 박사(1900~2005)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태영 박사는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평생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법학자로 지내다가 30여 년간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를 연구하고 상고사와 관련된 책을 저술한 분입니다. 

 

 

 

이병도가 조선일보에 기고문을 싣고 3년이 지난 1989년 <한국상고사입문>이 나오면서 주류 강단사학계가 또 한 번 요동칩니다.

머리말에는 "이병도, 최태영 두 사람의 것을 토대로 했지만, 유승국, 윤내현, 김성호 세 분의 원고에서 추리고, 널리 그 외의 신구 여러 학자의 저서와 논문에서 추려서 인용하였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상고사입문) 머리말 밑에는 이병도, 최태영의 친필 서명까지 곁들어져 있지만, 주류 강단사학계 우두머리 중 하나가 <한국상고사입문>사기극이라고 주장하자, 주류 강단사학계가 개떼처럼 달려들면서 사기극이라고 억지를 부렸니다.

 

1989년 5월 고려원에서 발행한 이병도 최태영 공저 <한국상고사입문>은 단군신화의 아스달연대기라 아니라 실존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 아스달연대기를 다룬 책입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성지 강화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편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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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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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24 0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군 아사달 연대기...
    잘 보고 가요^^

  2. 청결원 2019.05.24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하루 시작도 맑게 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3. kangdante 2019.05.24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군조선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

  4. korea cebrity 2019.05.24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올바른 역사지식 화이팅입니다

  5. 버블프라이스 2019.05.24 1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최태영 박사는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를 연구하고 상고사와 관련된 책을 저술한 분이군요? 최태영 박사님에 대해 알고갑니다^^

  6. 죽풍 2019.05.24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의 역사왜곡, 한반도를 영구토록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군요.
    잘 알아 갑니다.

18분의 환웅천황께서 다스린 배달국의 정통성을 계승한 단군왕검의 고조선의 역사 <아사달연대기>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단군조선의 아사달을 모티브로 한 판타지물 <아스달연대기>

 

 

 

 

 

 

 

 

 

 

 

'우주의 통치자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라는 재세이화(在世理化)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이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념이라고 하면서 단군신화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흔히 재세이화와 홍익인간 이념이 단군왕검께서 여신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라고 주장합니다.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은 고조선 이전에 있었던 한韓민족 최초의 나라 배달국의 건국이념이었고, 인류 최초의 국가였던 환국(桓國)의 국가경영 원리였고 백성들이 지향했던 인간상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이야기를 믿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렸고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실재한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 기록, 곧 아사달연대기는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단군신화로 둔갑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상고시대 역사를 배경으로 판타지 드라마가 제작됐습니다.

판타지 드라마의 배경이 된 가상의 대륙 '아스'는 지구를 의미하는 '어스'도 연상시키지만,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에서 따왔다고 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 작가가 인터뷰에서 집필 동기와 기획 의도를 말하면서 아사달연대기를 아스달연대기로 바꾼 이유를 말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단군신화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스달 연대기 작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역사를 지난 70여 년 동안 국민에게 심어주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매국적인 행위가 원인입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은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 곧 고조선을 진한, 번한, 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고구려, 백제, 신라를 부르는 삼국시대의 삼한일통(三韓一統)의 의미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말하던 삼한(三韓)의 시작이 바로 단군왕검이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의 도읍은 '아침 태양이 빛을 비추는 땅'이란 의미의 아사달이며 2,096년 동안 지속한 단군조선의 도읍이 모두 아사달입니다.

 

 

고조선 제1세 단군왕검부터 제21세 소태단군까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시대가 1,048년간 이어졌습니다.

고조선 제22대 색블루 단군부터 제43세 물리단군까지 백악산 아사달(장춘) 시대가 860년간 이어졌습니다.

고조선 제44세 구물단군부터 제47세 고열가단군까지 장당경 아사달(개원) 시대가 188년간 이어졌습니다.

 

 

초대 단군왕검께서 세우신 고조선은 47분의 단군께서 2,096년간 도읍을 세 번 옮겨가며 나라를 다스린 것이 진짜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고조선을 건국하신 단군왕검께서는 18분의 환웅천황께서 1,565년간 다스린 배달국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현재의 하얼빈을 아사달(도읍)로 정하시고 조선朝鮮을 개국하셨습니다. 단군의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가 해모수단군의 북부여고, 북부여에서 나온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실행하기 위해 1875년 강화도를 침략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면서 우리 역사 조작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개국하신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만든 것입니다.

 

 

단군의 고조선 아사달 역사가 단군신화로 사라지면서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단군의 고조선을 이은 북부여의 역사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일제의 관변 사학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일방적으로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단군신화라고 주장했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 이론에 의해 완벽한 신화로 규정되어 버렸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자가 주장하는 단군신화는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역사와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습니다.

대한민국 초·중·고·대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사와 조선총독부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이 왜 똑같냐면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일본이 만들고 가르친 가짜역사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 역사 조작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자들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 해방 후 임시중등국사 교원양성소와 이후 국책연구기관을 장악했습니다.

 

더불어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무리가 전국 대학 역사학과 교수 및 국사편찬위원, 학술원 회장, 문교부장관 등을 역임하는 등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자들이 일제 식민사학 이론을 마치 우리 역사인 양 그대로 가르쳐왔고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스승을 이어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어처구니없게도 진짜 우리 역사는 가짜역사가 되고, 조선총독부가 만든 가짜 역사가 진짜 우리역사가 되는 역사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정관계에도 깊이 뿌리내리며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비주류로 서강대에서 역사를 가르친 이종욱 前 서강대 총장은 일제 식민사학으로 오염된 우리의 참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것보다도 어려운 지난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판타지 사극 아스달연대기가 상상력으로 상고시대 역사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루고 있을 뿐 실제 역사는 다루지 못합니다.

진짜 단군의 고조선 아사달연대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역사서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는 인류 창세 역사뿐만 아니라 상고시대 단군의 고조선 역사를 포함한 한민족의 9천 년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어 진짜 아사달연대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의 성지 강화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편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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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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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5.23 0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군의 고조선 아사달연대기와 아스달연대기 내용글 잘 읽었습니다^^ 증산도 환단고기를 통해 몰랐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2. kangdante 2019.05.23 0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사달 연대기가 드라마로 방송된다고 하는데
    기대가 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3. korea cebrity 2019.05.23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바른 역사를 포스팅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조작 변조되어 사라진 6,900여 년의 상고 역사 

판타지 사극 아스달 연대기와 실존 역사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해 삐뚤어진 정신의 식민사관으로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 학이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직후 일제는 동경제국대학에 동양사학과를 신설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부정 및 왜곡 조작에 착수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역사로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가짜역사를 일제가 본격적으로 왜곡 조작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제점령한 이후부터입니다.

 

 

다시 말해 일제의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왜곡 조작은 메이지유신 직후부터 시작해 1937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완성됐습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가 배경이지만,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작한 판타지 사극입니다. 우리가 아는 '단군신화'는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학설이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뿌리를 너무 깊이 내려 진짜라고 착각하고 지내왔습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실존 역사가 신화로 둔갑하여 사라진 상황에서 작가와 제작가 가상의 땅 '아스'에서 펼쳐지는 문명과 국가의 탄생 이야기는 상상력을 동원해 아스달 연대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제작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대학의 주류 강단 사학자와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역사 일제 식민사학의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숙주가 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를 조작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대두된한론에 따라 1875년 강화도를 침략하면서부터입니다.

 

 

19세기 말 나카 미치요가 <조선고사고朝鮮古史考>에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단군신화'를 주장하며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시작습니다. 또 나카 미치요는 한국을 정벌한다는 정한론에 따라 '가야는 곧 임나'라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의 정점에 있으며 일본에서 동양사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동경제국대학 교수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1894년 <단군고檀君考>에서 고조선을 연 단군의 역사를 '단군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제자 이마니시 류는 1921년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에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사를 단군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이마니시 류는 1925년 실존 역사 단군왕검의 고조선 상고시대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 - 고조선조>의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변조해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의 실존역사를 신화의 역사 단군신화로 만들었습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일제 식민사학을 대표하는 쓰다 소키치의 스승입니다.

쓰다 소키치의 제자가 바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로 불리는 이병도, 이병도의 제자이며 자칭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이 존경한 인물이 쓰다 소키치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일제 식민사학을 깊이 뿌린 일등공신? 이병도, 신석호, 이기백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 제작자 역사를 상상해 만들어서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의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를 해방 후 이병도, 신석호, 이기백 등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와 관련된 기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다 보니 당연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는 조선총독부가 주장한 '단군신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에 의해 6,900여 년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가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불과 1,600년 남짓밖에 안 되는 역사로 조작되어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는 1910년 우리나라 역사서를 비롯한 약 20만 권의 서적을 수거해 불사르거나 약탈해갔습니다.

1915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편찬과를 시작으로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이어 1925일왕의 칙령으로 독립관청 조선사편수회로 승격시켜 확대 개편했습니다.

  

 

1937년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를 왜곡 조작한 <조선사> 35권을간합니다.

<조선사 35권>은 우리의 손으로 쓴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인의 손으로 쓴 가짜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자신들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가짜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화신이 된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가짜역사로 매도합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기득권이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주류 강단사학계가 발버둥 쳐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해온 언행을 보면 학자의 양심은 이미 내다 버린 지 오래됐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조작된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를찾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가 아닌 실존 역사로서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의 첫 번째 도읍 <아사달 연대기>로 다시 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성지 강화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편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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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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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22 0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고시대...아스달 연대기..
    잘 보고가요

  2. kangdante 2019.05.22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나라의 신화이야기처럼
    우리나라의 상고역사도 재조명되어야 할 것 같아요

  3. 청결원 2019.05.22 14: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죽풍 2019.05.22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한
    일본의 야비한 인간성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korea cebrity 2019.05.22 2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가 정말 뿌리깊은 악질이네요..
    잘보고갑니다

  6.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와 아스달 연대기에 대해 알고 갑니다^^

실존(實存)한 역사를 허구적 신화로 조작한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일제가 왜곡 말살한 한국사와 상고시대 역사를 다룬 픽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태고(太古) 시대란 지구가 탄생한 이래 약 45억 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때를 말하기도 하고, 현대 인류의 문명사로 볼 때는 아주 오래된 옛날 시대 또 상고시대라고 말합니다. 상고(上古)시대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로 천고(千古) 역시 아주 먼 옛날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흔히 역사시대를 구분할 때 우리가 사는 때를 현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근대, 근세, 중세, 고대시대로 분류하는데, 고대 이전의 시대를 상고시대라고 합니다. 상고시대는 현대 문명의 출발점이 되는 창세 역사, 시원 역사로부터 시작됩니다.

 

 

현대문명의 시작은 약 1만 년 전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환국은 한민족과 인류 최초의 국가로 지구촌 현대문명의 뿌리가 되는 나라입니다.

 

 

 

 

 

 

 

 

 

 

천산(天山)이 있는 중앙아시아는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의 중심지로서 태고시대가 시작된 땅이며, 상고시대 역사가 시작된 땅입니다.

 

 

tvN에서 제작한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를 배경으로 상고시대 역사를 다룬 완전 창작 드라마입니다.

픽션 사극 <아스달 연대기>는 상고시대 역사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배경으로 가상의 대륙이며 태고의 땅인 '아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태고의 땅도 앗기고 상고시대 역사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민족비록 태고의 땅에서 멀어져 한반도로 들어와 있었지만, 인류 최초의 역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태고시대, 상고시대의 역사를 담은 역사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 조작되었고,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에 의해 완전히 부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 모 방송사에서 방송한 <주몽> 드라마도 일제가 왜곡 조작하고 중화 사대주의 사관으로 왜곡된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배운 일본 식민사학의 조작된 고대 역사를 완전하게 굳히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태고의 땅에서 벌어지는 상고시대 역사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는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 고조선 최초의 도읍지 아사달과 인간의 삶의 터전인 어머니 지구 '어스'를 연상시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 역사는 중국에 의해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등 중국의 역사가 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와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신화가 되어 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가 우리나라 최초로 상고시대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지만, 픽션 사극인 만큼 역사의 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단지 염려되는 점이 있다면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작한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가 과거 <주몽>이라는 드라마처럼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염려됩니다.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한국사를 9천 년에서 2천 년도 안 되는 역사로 왜곡 말살하여 조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조작된 역사를 배운 자들은 일본이 조작해 만든 한국사가 마치 진짜 역상인 양 가르치며 국민 세뇌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원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한국사를 조작했습니다.

9천 년 한국사를 2천 년도 안 되는 역사로 조작한 천인공노할 역사 왜곡 날조의 만행을 저지른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3인방이 있습니다.

 

 

일제 교토대학 교수 출신으로 일본의 사학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구로이타 가쓰미(1847~1946), 만철(滿鐵) 역사조사부에서 만주와 조선사(한국사)를 연구한 이나바 이와키치(1876~1940), 교토대학과 경성제국대학 교수 출신의 이마니시 류(금서룡)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를 이끈 3인방에 의해 한韓민족의 창세 역사부터 상고 역사까지 약 7천 년의 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역사 조작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자가 바로 <삼국유사>를 조작한 이마니시 류(금서룡)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1867년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이 일어난 직후 이른바 조선을 정벌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구체화하기 위해 조선사를 연구해 수십 년 간 자료를 축적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무력을 앞세워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했습니다. 

 

 

 

 

 

 

 

 

 

 

일제는 1910년 11월부터 약 14개월간 한국사와 고문서, 고지도 등 20만 권의 수거해 불태웠고, 상당수가 일본 왕실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수거하지 못한 책을 제외하고 아예 수거하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남겨 둔 책이 <삼국유사>,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내용 중 한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조작해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를 신화로 만든 이나미시 류(금서룡),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조작됐다고 주장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조작한 쓰다 소키치(1873~1961)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는 대다수가 일제의 관변사학자였으며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남겨 놓고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당쟁과 분열의 붕당의 악폐가 끊이질 않았다고 왜곡하고 '조선인에게는 더러운 피가 흐른다.'라는 등 역사를 멸시하고 폄하했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태산북두) 이병도의 와세다대학 사학과 스승이고, 이병도의 제자이며 한국사학계 대부가 된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중퇴한 이기백이 존경하고 추종한 학문적 스승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뿌리는 우리 역사 왜곡 조작 말살의 심장부였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와 신석호가 뿌리가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 출연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대학 주류 역사학자가 모두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태고의 땅에서 문명과 국가가 탄생하는 상고시대의 역사를 다룬 <아스달 연대기>는 일제에 의해 왜곡 조작되어 역사가 사라진 상황에서 만들어진 픽션 사극입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 역사를 지배해 온 식민지유산을 극복하고 앞으로 단군왕검의 고조선 참역사를 다루는 <아사달 연대기>로 다시 방송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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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9.05.21 1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고시대라..잘 몰랐던 부분도 알아 가는 시간이 되었네요

  2. korea cebrity 2019.05.21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바꾸려 해 걱정이네요

  3.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고의 땅과 상고시대의 역사 아스달 연대기 내용 잘 봤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식민사학)에 의해 거짓과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 역사

일제가 왜곡 날조한 한국사를 글 장난으로 세탁해 옮긴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에 대한 주류 강단사학계의 평가는 칭찬 일색입니다.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자주적인 관점에서 민족사학을 개척하여 새로운 한국 역사학을 수립했다고 주장합니다.

 

 

신민족주의 역사학의 길을 열었다는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한편으로 민족주의 사학을 대표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자주적 민족주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폄훼했습니다.

 

 

이기백은 1942년 이병도를 처음 만난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쓰다 소키치가 당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가 쓴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기백은 우리 역사조작의 원흉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발표회에 늘 참석했으며, 1944년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병도를 다시 만났습니다.

 

 

 

 

 

 

 

 

 

 

1945년 6월 20일 일본 관동군에 입대했던 이기백은 1946년 봄 한국 역사학의 태두(泰斗) 이병도를 찾아가 진로 상담을 했습니다.

 

1946년 이병도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한 이기백은 미 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 통합 정책으로 인해 학과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논문 한 편으로 1947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합니다.

 

서울 배재와 용산중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이기백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했고 중위 계급장을 달고 육본 편찬위원회에서 복무 중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됩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1956년 대위로 제대하고 홍대, 단국대, 서울공대 등지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지내다 1958년 이화여대 사학과 조교수가 됐습니다.

 

 

 

 

 

 

 

 

 

 

1961년 이화여대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던 이기백은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 한국 역사학을 대표하는 한국사 개설서 <국사신론>을 출간합니다.

 

 

이때까지 이기백이 배우고 습득해 가르친 한국 역사는 와세대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식민사관(식민사학), 이병도의 가르침, 쓰다 소키치의 쓴 책 등으로 모두 일제 식민사관의 찌꺼기들 뿐입니다.

 

 

1963년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된 이기백은 1966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1년간 있으면서 <국사신론>의 개정판 <한국사신론>을 1967년에 내놓습니다. (하버드대 연경연구소는 하버드대학교와 중국 연경대학교가 자매결연을 하고 학문적 교류를 한 연구소였지만,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한국, 일본, 대만의 학자를 초청해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당시 미국에 한국 역사와 관련된 사료와 자료가 많아 <국사신론>을 <한국사신론>으로 개정판을 낼 때 참고했다고 했습니다.

 

 

이기백이 참고한 미국에 있는 역사 사료와 자료는 우리의 손으로 쓴 역사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이 만든 역사 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는 춘추필법의 역사라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일본의 역사 자료는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관 이론입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할 때 중국 측 사료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식민사학을 완성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오염된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이 넘지 못한 일제 식민사관의 벽을 허물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서문 中

"한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우리가 힘써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선적인 과업은 식민주의 사관을 청산하는 일이다. 식민주의 사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된 한국사관이다."

 

 

일제가 대한제국 강제병합의 당위성과 영구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학문적 이론을 만든 것이 식민사학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한 일제 식민사학 이론은 대부분 고대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기백이 <한국사신론>에서 일제 식민사관(식민사학)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변했는데, 정작 <한국사신론>은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한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현란한 글 장난으로 국민을 속였습니다.

 

 

 

 

 

 

 

 

 

 

일제의 반도사관, 위만조선과 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 한국 고대사 조작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현란글 장난으로 만들어진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한 잡서에 불과합니다.

 

 

혹자는 이기백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대해 수정론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기백은 현란한 말장난과 글 장난을 동원해 대외적으로는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가 쓴 책과 강연 내용은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식민사관의 노예역사관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심어준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입니다.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친일 잔재> 캡쳐)

 

 

 

 

"쓰다 소키치가 교수로 있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던 이병도(1919년 졸업)와 손진태(1927년 졸업)를 주목하게 된다.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들이 내연관계를 갖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런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1945년 이후 두 사람이 주도하여 만들어 낸 한국고대사 체계에는 원천적으로 태생의 문제가 있었던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이병도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국사 교사를 훈련시켰고,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그는 1954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5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1960년에는 문교부 장관, 학술원 회장이 되었다.

 

손진태는 1945년 서울대학교 교수, 1949년에는 문교부 차관 겸 편수국장을 역임했다, 자신들이 문교부 장관과 차관을 지내며 한국사의 연구와 교육을 장악하고, 그들이 일본에서 배워 온 연구 관행을 한국 학계에 뿌리내리게 했던 것이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 출신의 前 서강대 총장의 『역사 충돌』 中)

 

 

손진태는 한국전쟁 때 납북됐고, 이종욱 명예교수는 스승 이기백을 포함해 서울대학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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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4 0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선생에 대한 글이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사신론 을 읽어봐야겟네요^^ 웃음 가득한 주말 되세요

  2. kangdante 2019.03.24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하나같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또 좌편향 역사학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강단사학

한국 고대사 왜곡의 원흉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로부터 배운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여주 이씨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1919년 3.1만세 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은 남강 이승훈 선생은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1907년 평안북도 정주에 중등교육기관 오산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여주 이씨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1924~2004)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1년 오산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기백은 60년 차이가 나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6촌 종고조부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집안에 족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이기대(1952년생)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사실을 숨기고 지내다가 1984년 남강문화재단이 설립될 때 유족 대표로 참석하면서 본인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임을 밝혔습니다.

 

 

 

 

 

 

 

 

 

 

이기백의 주장대로라면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現 남강문화재단 이사 이기대 선생과 이기백은 같은 항렬로 10촌 4종형제가 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인 이기대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고생스럽게 살아온 반면, 이기백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왔으며 그의 아버지와 조부와 고조부 등 이기백의 집안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기백은 절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면서 역사작가라고 주장하는 초록불의 잡학다식(이하 초잡식)이 이기백이 민족사학계로부터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한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잡식은 불순하게도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과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연관 지으려 했습니다.

초잡식은 모 신문사에 기고한 글에서 '이기백이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의 집안이며 민족학교인 오산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고려의 여지도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의 삶과 남강 이승훈 선생의 독립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이며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이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일제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한 것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초잡식의 주장대로라면 1910년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해 오산학교 교가를 작사한 이광수가 오산학교 교사 출신이고 오산학교 교가를 작사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란 주장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만 봐도 한 집안에 독립운동과 친일행위, 군인과 북한에 부역한 인물 등이 있듯이 각자의 행위에 공과가 있고 평가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데도 불구하고 자칭 역사작가란 자가 이기백의 역사 왜곡 만행을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삶을 우산 삼아서 비난을 피하려 한 것입니다.

 

 

또 초잡식은 이기백이 이병도의 제자라는 멍에 때문에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친일파라는 일방적으로 비난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기백이 직접 말한 내용을 토대로 이기백이 단순히 이병도의 제자여서가 아니라 이기백의 삶의 족적 자체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자신의 선친이 한글로 쓰인 책을 많이 수집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주장했고, 자신의 선친이 '그 나라의 말과 역사가 아니고는 그 민족을 깨우칠 수 없다.'라는 말을 늘 해줬다고도 주장했는데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이 자신이 역사학자로서의 길을 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기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와세다 고등학원과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독립운동가로부터 우리의 자주적 역사를 배우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어야 합니다.

 

이기백의 일본 유학은 남강 이승훈 선생과 전혀 상관없고, 어린 이기백과 그의 아버지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것입니다.

 

 

 

 

 

 

 

 

 

 

이기백이 선택한 학교는 우리가 쓴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일본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말살한 일본이었습니다. 이기백이 선택한 곳은 바로 이병도가 쓰다 소키치에게 식민사학을 배운 일제 식민사학의 심장부 와세다대학 사학과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백은 아버지가 민족주의자였고, 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을 영향 등 집안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서 본인이 역사학도의 길을 가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버지와 남강 이승훈 선생이 걸어갔던 정반대의 일제 식민사학자의 길을 갔습니다.

 

 

초잡식은 함석헌과 신채호 선생이 이기백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학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기백은 초잡식의 주장과는 반대로 함석헌과 신채호 선생을 비판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초잡식의 언행을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과 쌍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함석헌 선생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감명 갚게 읽었는데, 역사를 종교적 또는 도덕적으로 풀이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조선사연구초>에서 <천년래 제일대사건>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한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은 묘청의 난을 말하는 것인데,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본 사건을 말합니다.

 

 

 

 

 

 

 

 

 

 

이기백은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나와 남의 투쟁으로 인식한다면 학문의 보편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신채호 선생의 자주적 역사관을 가치 없는 학문, 편향된 학문이고 비판했습니다.

 

 

이기백의 함석헌 선생과 신채호 선생을 비판한 것은 자신이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갈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이기백이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 한 말로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자가 민족사학을 대표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역사관에 대해 평생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수탈과 착취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 대한의 백성들이 모두 어렵게 살던 때였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41년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병도를 만난 후 1942년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이기백은 일본 와세대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기 전 이병도를 만났습니다.

1942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원흉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당시 학생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백은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 발표회에 늘 참석했고,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읽으며 식민사학으로 조작한 가짜우리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1944년 이기백은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기백은 1945년 6월 일본 관동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이병도를 몇 차례 찾아갔고 그의 논문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1946년 봄 3.8선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 이기백의 집안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넉넉했는지 몰라도 일본 유학에 이어 중국 유학을 준비했다고 했으며, 당시 국공내전 때문에 중국 유학을 포기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상의하기 위해 이병도를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가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당시 어지러운 상황 때문에 학과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1947년 논문 한 편으로 서울대 사학과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역사관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 이기백이 배운 역사는 이병도의 일제 식민사학과 또 본인이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식민사학, 그리고 쓰다 소키치 등으로부터 배운 일제 식민사학이 전부입니다.

 

 

광복 후 일제 식민사학의 결정체가 등장했는데,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입니다.

스승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은 일본 제국주의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학으로 무장하고 일본인이 만든 가짜역사를 바탕으로 책을 썼으며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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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3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과 글 잘 읽고갑니다 ^_^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래요

  2. kangdante 2019.03.23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역사의 독립운동가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누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지 또 내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오천년 역사속에 일제는 단 36년이니까요

  3. 청결원 2019.03.23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 가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둔갑시킨 잡

국사학(일제 식민사학) 태두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한 역사관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이병도를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기백을 한국 역사학계의 1세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고 대한의 자주적 역사관을 정립하는 민족사학계에서는 이병도와 이기백을 각각 일제 식민사학 1세대와 2세대라고 말합니다.

 

 

이병도는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쓰다 소키치로부터 일제 식민사학을 배우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역사 조작에 가담했습니다. 이기백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왜곡 조작하는데 앞장섰던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의 학문적 정신적인 제자입니다.

 

 

 

 

 

 

 

 

 

 

이병도와 이기백의 공통점은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며, 여타 다른 식민사학의 후예들도 있지만, 이병도와 이기백은 우리 역사를 만신창이로 만든 식민사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1945년 9월 미 군정은 진단학회에 국사교과서 편찬을 위촉했고, 1946년 <국사교본>이 출간됐습니다.

<국사교본>은 후일 국사교과서 편찬 자료로 활용됐는데, <국사교본>의 저자가 바로 일제 식민사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친일파 식민사학자 이병도입니다. 

 

 

1948년 이병도는 <조선사대관>을 펴냈고, <조선사대관>을 축약해서 <새국사교본>이라는 국사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은 1954년 <국사대관>이름으로 증보 출간됐습니다.

이병도의 <조선사대관>의 다른 이름이 <한국사대관>과 <국사대관>입니다.

 

 

 

 

 

 

 

 

 

 

이병도가 집필한 책의 내용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조선사 35권>의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책니다.

 

 

이병도가 쓴 <한국사대관韓國史大觀>의 뒤를 이어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과 학자들의 필독서가 된 책이 바로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입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이며 와세다대학 사학과 후배입니다.

 

 

1967년 출판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1961년 <국사신론國史新論>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몇 차례 개정 수정 증보되어 출됐습니다.

 

 

 

 

 

 

 

 

 

 

<한국사신론>을 쓴 이기백은 서울대 사학과를 제대로 다니지도 않고 논문 한 편으로 불과 1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잠시 지내고 시간 강사를 하다 이화여대를 거쳐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두고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해 한국 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합니다. 그러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서 벗어난 것이 없는 한국의 가짜 통사(通史)입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스승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비교하면 이기백이 말장난만 조금 쳤을 뿐 그 내용은 그대로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왜곡 조작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해방 후 서울대 이병도와 고려대 신석호를 중심으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를 장악했습니다.

문교부(교육부) 장관까지 한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 등이 일제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한국사대관>과 <한국사신론> 등의 한국 통사(通史)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일제 식민사학의 이론이 소위 정설과 통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무리는 이기백이 <한국사신론>을 통해 일제 식민사학의 허구성을 비판했고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자평하지만, 기실 국민을 속이기 위해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한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린 말장난이며 알맹이는 100% 일제 식민사학의 찌꺼기를 모아 짜깁기한 책니다.

 

 

 

 

 

 

 

 

 

 

이병도의 <한국사대관>(조선사대관, 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모두 한국 통사(通史)입니다.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대륙사관을 반도사관으로 축소했습니다.

 

 

이병도와 이기백의 <한국사대관>과 <한국사신론>은 조선총독부가  주장한 단군신화, 한사군 한반도설, 위만조선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해 가짜역사를 진짜 역사로 둔갑시켰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우리의 뿌리역사가 송두리째 잘려나갔고 줄기역사가 왜곡되고 조작되었습니다. 광복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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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1 05: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글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즐거운 목요일 보내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9.03.21 1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온 뒤 맑은 날이 됐네요~
    오늘도 역시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자

한국 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와 한국 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의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

 

 

 

 

 

 

 

 

 

 

 

 

한국사의 태산북두 이병도가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의 스승이 바로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입니다.

한국사의 대부 이기백이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탐독했고,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발표회에 항상 참석하는 등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서 초기 기록은 고려의 김부식이 창작한 것이라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허구이며 조작된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고대 왜(倭, 일본)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고려의 국경선을 요동에서 한반도로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가 만주침략을 위해 만든 남만주철도 주식회사와 조선총독부는 일제 식민사학자를 동원했습니다.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던 고려국경선을 한반도로 끌어들였고, 아직도 정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막무가내로 우겨 만든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의 창작 잡설을 이병도와 이기백이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의 가짜 학설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1919년 발표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를 보면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 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 임나일본부가 나오지 않는다고 무조건 김부식이 조작한 사료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식민사학 2세대로 소위 한국 고고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원룡(1922~1933)에 의해 '원삼국시대 설'이란 해괴망측한 기형아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의 허무맹랑한 주장인 '한사군의 한반도 위치설'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가짜역사입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자와 식민사학의 후예인 이병도와 이기백 등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현재의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이 마치 정설인 것처럼 한국사에 뿌리내렸습니다.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퍼트려 한반도 북부는 중국이 지배했고 한반도 남부는 일본이 지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가 한韓민족은 고대부터 으르고 나태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고, 일본의 침략이 정당하다는 소위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등 일제 식민사관의 가짜학문적 근거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이병도와 이기백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사군 한반도설' 등을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임나일본부설'은 이미 폐기됐다고 주장하는데,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만 사용하지 않을 뿐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였으며 한일고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최재석(1926~2016) 박사는 이병도와 이기백, 이기동과 노태돈 등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가짜학설을 추종한 무리를 두고 한국인의 가면을 쓴 일본인이라고 호되게 비판했습니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쓴 이주한 역사작가는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금서룡) 등으로부터 한국사는 한사군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교육을 받았고, 이기백, 이기동 등에게 일제 식민사학이 계승되었다고 말합니다.

 

 

 

80년대 중반 단국대 윤내현 교수가 한사군은 한반도 평양 부근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의 영정하 동쪽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가짜학설을 추종한 스승과 제자인 이병도와 이기백은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으며, 윤내현 교수의 노력으로 고조선 서쪽 영역을 영정하 부근까지 옮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991년 진단학회에서 두계 이병도 선생 추념 문집 <역사가의 유향>을 발간했는데, 이병도와 이기백의 대담에서 이병도는 이기백과 김철준이 내 뒤를 이은 셈이라고 했습니다. 

 

 

실존 역사 단군조선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병도와 이기백 등 식민사학의 후예들에 의해 단군신화가 되어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조선총독부 어용학자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은 이병도와 이기백 등 주류 강단사학계가 그대로 계승되었고,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이 대한민국 국민정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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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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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0 0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이 대한민국 국민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니... 오늘도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 공부를 잘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9.03.20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쯤 식민사학이 사라질지....ㅠ.ㅠ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19.03.20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독립운동가 발굴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주의자들도 재조명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4. 죽풍 2019.03.20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곡된 역사가 지금도 판치는 세상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한韓민족의 역사를 철저하게 파괴한 일제 식민사학의 1세대와 2세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와 대부(代父)가 된 스승과 제자 이병도와 이기백 인연

 

 

 

 

 

 

 

 

 

 

 

 

 

일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신봉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이병도(1896~1989)와 이기백(1924~2004)의 위상은 매우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병도와 이기백의 이름 앞에는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입니다.

 

 

스승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의 필생의 역작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 1948년)과 <한국사신론>(1967년, 1961년 국사신론의 개정판)은 모두 한국 통사(通史)로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 한국사를 결정지은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준 책입니다.

 

 

<조선사대관>의 저자이며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 역사 조작과 파괴에 직접 참여해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이며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이며 일본 와세다대학 후배이기도 합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태산북두) 이병도는 1896년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병도는 1916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해 1919년 졸업했습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갔습니다.

 

 

이병도는 해방 후 임시 교원양성소에서 교사 양성을 했으며, <국사 교본>을 만들어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1946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기백과 이병도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입니다.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던 이병도를 찾아가 이병도에게 역사를 공부하겠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백이 이병도를 만난 것은 1941년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1942년 봄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확전되면서 일제가 재학 중인 대학생의 징병 연기 제도를 폐지하자 이기백은 1944년 봄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백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여가 지난 1945년 5월 징집 영장을 받고 6월 20일에 만주 관동군에 입대했는데, 불과 2개월도 안 돼서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이기백은 약 5개월간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고향에서 몇 달간 머물렀고, 1946년 봄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온 이기백은 이병도를 찾아가 학업과 관련된 진로 문제를 상의했고, 1946년 가을 이병도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습니다.

 

 

1946년 가을 이기백이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1946년 6월 미 군정이 경성대, 경성의전, 치전, 법전, 경성 고공, 경성 고상, 경성 고농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 및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이 반대 데모를 했고, 1947년까지 동맹휴학에 들어가면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이 막상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은 했는데 정작 학교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배재와 용산 등의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대학교로부터 졸업논문을 제출하면 졸업을 인정해 준다고 하여 졸업논문을 제출해 서울대 사학과 졸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은 와세다대학 사학과 재학 시 쓰다 소키치가 이끈 연구발표회에 늘 참석했고,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식민사학 이론을 만들어 우리 역사 조작과 말살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로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스승입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은 아주 작은 인연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일제 식민사학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와 배운 것이라고는 오직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일제 식민사학을 배운 것뿐인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에 의해 대한의 역사가 난도질당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스승과 제자이기도 한 이병도와 이기백이 배운 역사란 모두 일제 식민사학이며, 이병도와 이기백이 쓴 역사는 모두 일제가 왜곡 조작 말살해 짜깁기한 식민사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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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9 0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 두 인물에 대해서 공부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3.19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년 동안 끊었던 역사를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원을 못하고 있네요
    역사는 잃기는 쉬어도 찾기는 어렵습니다

  3. 청결원 2019.03.19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정보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한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파괴한 일제 식민사학 한국사 왜곡과 조작

일제가 영구지배하기 위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없앤 민족말살정책 국사박멸책(國史撲滅策)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친일 잔재 캡쳐)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움직이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광복 후 70년 년 동안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버금가는 탁월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일본 왕의 특명으로 일제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영구지배하기 위해 우리 한국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민족말살정책의 국사박멸책을 폈습니다.

 

 

일제가 총칼로 위협해 국권을 침탈한 경술국치 이전부터 우리나라를 영구지배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것이 일제의 식민사관입니다.

 

 

 

 

 

 

 

 

 

 

일제는 경술국치 이후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 한국사를 조작한 식민사학을 완성했습니다.

일제가 한국사를 왜곡 조작한 식민사관은 광복 후 친일사학자와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제가 우리 한국사를 왜곡 조작한 식민사학의 후예라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줄곧 해왔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일제의 식민사관인 '타율성론', '정체성론'을 극복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의 역사는 굴욕과 비참한 역사의 연속이라는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의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제에서 대한민국으로 껍데기만 바꿨을 뿐 그 알맹이는 여전히 일제 식민사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지난 70여 년 동안 주장하는 소위 정설, 통설, 학계의 중론이란 것들이 모두 일제가 한국사를 왜곡 조작한 식민사학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일제의 한국사 왜곡과 민족말살정책의 국사박멸책 만행 아직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일제의 한국사 왜곡과 민족말살정책은 단순히 과거 역사의 왜곡과 조작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말살정책 시작은 한국사 왜곡과 조작, 즉 국사박멸책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친일의 후예답게 민족사학의 주장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식민지배자 일제와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우리 민족과 전혀 상관없는 제삼자가 바라본 당시의 모습은 누가보다라도 가장 객관적인 평가가 될 것입니다.

 

 

중국에서 약 25년 동안 거주했고 극동 문제에 관한 전문가로 알려진 미국인 기자 다니엘 페퍼 기자가 약 한 달간 취재한 내용은 일제의 만행과 참혹한 식민통치의 실상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상해의 영자지 <대륙보> 기자 내다니엘 페퍼(1890~1964)가 3.1만세 혁명이 일어났던 1919년 당시 여러 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취재한 내용을 단행본 <The Truth About Korea>를 펴냈니다.

 

 

 

 

 

 

 

 

 

 

내다니엘 페퍼의 취재기는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 김여제 선생에 의해 번역되어 독립신문사에서 <독립신문 총서 제1>로 발행됐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