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뒤집어 보기 역썰 시즌2》 <48회 동명왕 고두막한은 실존 인물>
한(韓)민족 최초의 의병으로 북부여 5대 단군으로 즉위하는 동명왕 고두막한과
북부여 7대 단군으로 즉위 후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꾼 동명성왕 고주몽 성제
단군조선은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三韓)과 삼조선(三朝鮮) 체제였습니다. 대단군은 진한(진조선), 두 분의 부단군은 마한(막조선)과 번한(번조선)을 다스린 중앙집권 체제였습니다. BCE 425년 44세 구물단군께서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 단군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꾸고, 번조선과 막조선에 병권(兵權)을 나눠주면서 중앙집권에서 독립된 개별 국가로 운영됩니다.
대단군이 다스린 대부여(진한, 진조선)는 BCE 232년 역사의 문을 닫았고, BCE 239년 해모수 단군께서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를 건국합니다. 과거 부단군이 다스렸던 막조선은 여러 나라로 분열됐고, BCE 195년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은 BCE 194년 번조선 정권을 빼앗습니다. 한(漢)나라 무제 유철(BCE 156~BCE87)은 흉노와 서방까지 평정한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복 군주입니다.
BCE 108년 한나라 무제는 우거정권(위만의 손자)을 침략하지만, 정복 전쟁에 실패합니다. 한나라는 우거정권의 내부 반란을 이용하여 정복하는데, 사마천 <사기>에는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四郡)을 두었다.'라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한사군(漢四郡)의 '낙랑', '진번', '임둔', '현도'는 후대 기술된 용어입니다. 우거정권을 정벌한 한나라 무제는 북부여까지 침략하지만, 한민족 최초의 의병인 고두막한 군대에 완패하고 돌아갑니다.
고두막한은 한나라를 물리친 후 북부여 4대 고우루 단군이 붕어하자 졸본에서 나라를 열어 졸본부여라고 했습니다. 이때 해모수 단군 혈통에서 고두막한 단군 혈통으로 바뀝니다. 북부여 5대 고두막한 단군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입니다.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고 했는데, '동명왕(東明王)'이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진 '동방 신교(神敎)의 광명(光明) 문화를 드러낸다'라는 의미입니다.
고구려를 창업한 동명성왕 고주몽 성제는 한나라의 강력한 군대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한민족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구국의 영웅인 북부여 5대 동명왕 고두막한 단군의 손녀사위입니다. 고구려의 동명성왕 고주몽 성제는 아버지 불리지(고모수)와 어머니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났고, 혼전에 임신한 유화부인이 홀로 동부여에서 고주몽을 낳았습니다. 예씨부인은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만난 첫째 부인입니다.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단군의 고손자인 고주몽은 동부여에서 탈출해 북부여로 들어가 6대 고무서 단군의 딸인 소서노와 혼인합니다. 북부여 6대 고무서 단군의 사위가 되어 7대 단군으로 즉위한 동명성왕 고주몽 성제는 국호(國號)를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꾸었는데,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은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의 고향 이름입니다.
《역사 뒤집어 보기 역썰 시즌2》 <48회 동명왕(동명제) 고두막한은 실존 인물>
한(韓)민족 최초의 의병으로 북부여 5대 단군으로 즉위하는 동명왕 고두막한과
북부여 7대 단군으로 즉위 후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꾼 동명성왕 고주몽 성제
https://www.youtube.com/watch?v=DTiuxTbVK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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