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개벽중' 카테고리의 글 목록

'세상은 개벽중'에 해당되는 글 558건

  1. 2020.04.05 코로나19 천연두 탄저균 페스트 전염병의 생물무기 위험성 (9)
  2. 2020.04.02 코로나19 해외유입 확진자와 정북창과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7)
  3. 2019.12.21 기독교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 (7)
  4. 2019.08.25 한일병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 (4)
  5. 2019.07.07 전 한국천문연구원장 천문학자 박석재 블랙홀 박사 (4)
  6. 2019.03.26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 순국일 3월 26일 (3)
  7. 2019.02.14 2월 14일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 (4)
  8. 2019.01.25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형제에게 멸망당한 페루의 잉카제국 (4)
  9. 2019.01.13 노예무역 반대운동가 성공회신부 존 뉴턴 (5)
  10. 2019.01.12 노예무역으로 세계최강 해군력을 만든 대영제국 (5)
  11. 2018.12.30 새해 일출 명소 울산 간절곶 해돋이 (6)
  12. 2018.12.29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 (3)
  13. 2018.12.13 동지의 의미와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의미 (4)
  14. 2018.10.21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6)
  15. 2018.10.20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 (3)
  16. 2018.10.07 세종대왕의 업적 훈민정음(한글) 창제 (4)
  17. 2018.10.06 일본 군대 자위대의 '욱일기' '욱일승천기'는 전범기 (3)
  18. 2018.10.05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 (5)
  19. 2018.10.04 질문있는 특강쇼-빅뱅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 교수 (3)
  20. 2018.07.29 지구촌의 폭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1)
  21. 2018.07.08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기경량 박사 ?
  22. 2018.07.07 JTBC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1)
  23. 2018.06.17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 (1)
  24. 2018.06.16 기네스북에 등재된 625전쟁(한국전쟁) (1)
  25. 2018.06.10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경기 일정 (2)
  26. 2018.06.09 세계 3대 스포츠 피파 월드컵의 역사 (2)
  27. 2018.06.03 완전한 영구적 북한 핵폐기 CVID PVID CVIG (2)
  28. 2018.06.02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완전한 비핵화
  29. 2018.05.20 북한의 비대칭전력 핵미사일 EMP 폭탄 공격 (2)
  30. 2018.05.19 전자기펄스 EMP 폭탄 효과 블랙아웃 현상

빈자의 핵무기라고 불지만,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무기

코로나19 천연두 탄저균 페스트 등 전염병 팬데믹을 몰고 올 수 있는 생물무기 위험성

 

 

 

 

 

 

 

 

 

 

 

 

 

 

2015년은 한반도에서 핵무기와 버금가는 살상력을 가진 생화학무기의 위험성이 대두된 해

 

2015년은 한반도에서 과거에 발생했고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생화학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국민들이 경각심을 일깨운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반짝 관심을 두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의 뇌에서 완전히 잊혔습니다.

 

 

2015년은 6.25 한국전쟁 당시 국제과학자협회가 미군의 세균전을 조사한 '니덤 보고서' 전문이 공개됐고, 미군의 생물무기 '탄저균'이 한반도에 몰래 들어왔다가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이 일어난 해입니다.

 

 

현재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일명 '코로나19'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되면서 일부에서 비인도적인 생화학무기의 위험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습니다. 전염병을 몰고 와 무고한 인명을 대량살상할 수 있는 천연두, 페스트, 콜레라, 탄저균 등의 생물무기와 화학무기가 한반도에 있습니다.

 

 

 

 

 

 

 

 

 

 

'니덤 보고서'로 드러난 6.25 한국전쟁 중 비인도적인 생물무기를 사용한 미군의 추악한 민낯 

 

2015년 1월 64쪽 분량의 '니덤 보고서' 요약본이 공개됐고, 같은 해 6월에는 670쪽 분량의 '니덤 보고서' 전문이 공개됐습니다. 

'니덤 보고서' 전문에는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생물무기를 투하한 지역과 비행 경로, 세균전에 직접 투입됐던 미군의 자필서, 사진 등 다양한 자료가 포함되어 공개됐습니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생물무기를 사용한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중공(중국)과 북한은 미군이 장티푸스, 페스트 등의 생물무기를 폭탄으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에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국제사회에 생물무기 사용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영국의 생화학자 조지프 니덤을 단장으로 한 국제과학자협회 공식 조사단이 조사를 마치고 낸 것이 이른바 '니덤 보고서'라고 불리고 공식 명칭은 '한국과 중공에서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입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생물무기 탄저균을 노출한 미군

 

2015년 5월 주한미군의 탄저균 배달 사고입니다.

미국에서 '페덱스 택배'로 경기도 오산 미군 공군기지로 보낸 '냉동 활성 탄저균'에 미군과 한국 군무원 등 수십 명이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인구 밀집 지역에 탄저균 100kg을 살포하면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이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북한의 탄저균, 천연두(두창), 페스트 등의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를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해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공동 생물무기 감시 포털 구축 협약'과 별개로 미국은 한반도 내에서 미군의 세균전 실험이라는 소위 '주피터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우리나라 부산, 군산, 서울, 오산 등의 미군기지 실험실에서 수십 차례 탄저균 실험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생물무기는 악명높던 의 731부대가 남녀노소와 동물 등을 상대로 천연두, 페스트, 콜레라 등의 세균무기와 바이러스 등의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실험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받아 사용한 것입니다.

 

 

 

 

 

 

 

 

 

 

악마의 부대 일제 731부대의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노하우를 전수받은 미국 

전쟁범죄를 저지른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에게 면죄부를  미군

 

페스트, 천연두, 탄저균 등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를 만들어 민간인을 상대로 잔인한 시험을 한 후 현장에서 직접 사용한 악마의 부대 731부대는 히로히토 일본 왕의 칙령으로 창설한 유일한 부대입니다. 

 

 

악마의 부대 731부대는 민간인 외에도 전쟁포로와 항일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탄저균, 페스트, 콜라라 등 생물무기 실험을 했다고 생존자들이 증언했습니다.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A급 전범이지만, 731부대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자료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에서 미군에 의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731부대가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를 가지고 민간인을 상대로 인체실험의 모든 데이터가 미군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이시이 시로에 의해 미군으로 이전됐고 미국은 더 발전 시켜 생화학무기 최대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중국과 미국이 전염병을 일으킨 생물무기라는 음모론

 

'코로나19'가 발병하면서 일부 서방 언론과 국내 언론, 그리고 일부 유튜브 방송에서 중국 우한의 질병통제센터 실험실과 바이러스 연구소 등지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급속하게 퍼졌습니다.

  

미국 공화당의 상원의원 톰 코튼도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 있는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미국과 서방 언론에서 세계적 대유행의 전염병을 퍼트린 곳이 중국이라는 음모론이 계속되자 중국에서도 미국이 '코로나19' 생물무기를 퍼트렸다음모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특정 언론과 유튜브에서 제기된 의혹과 음모론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인 것은 분명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경우에 바이러스의 게놈과 특성을 고려할 때 음모론처럼 생물무기로 만들었다는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세균과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생물무기를 만들어 사용한다면 백신과 치료 약이 없어 전염병이 급속하게 돌면서 군인과 민간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대량살상하는 가공할 만한 위험성을 가진 무서운 무기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전염병이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생물무기의 위험성이 한층 더 부각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연두, 페스트, 탄저균, 콜레라 등의 생물무기를 만들 때는 백신도 함께 만드는데, 중국 우한이 있는 연구소는 전염병 등의 백신과 치료제 및 변종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연구하는 공개된 시설입니다.

 

 

 

 

 

 

 

 

 

 

기존에 있던 천연두, 탄저균, 페스트 외 '코로나19'도 생물무기가 될 수 있다.

 

흔히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에 핵무기가 얼마만큼 있는지도 불투명합니다.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나라의 핵무기 보유량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발표한 보유량만 믿고 있을 뿐입니다.

 

 

핵무기 못지않게 대량살상력을 가진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탄저균 등의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는 비인도적인 무기는 비판도 거세기 때문에 쉽게 우리가 얼마만큼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뜻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2001년 미국의 탄저균 우편물 테러 사건과 시리아 내전 당시 화학무기가 사용되면서 생화학무기의 위험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탄저균, 콜레라, 천연두, 페스트 등의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등이 테러에 이용될 경우 전쟁 못지않은 대혼란이 일어나면서 사회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에 위험성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를 많이 보유한 3번째 나라라고 하지만, 북한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콜레라, 천연두, 장티푸스, 보툴리눔, 탄저균, 결핵균 등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보유국이 보유량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화학무기 보유량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코로나19' 사태는 지구촌 전역이 미증유의 위기가 닥쳤다고 합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치사율이 높지 않지만, '코로나19'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계 전 분야를 마비시키면서 전 세계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현재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대부분 강대국이며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를 생물무기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를 생물무기로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다고는 하지만, 만약 '코로니19' 유전자를 조작한 생물무기로 만들어진다면 그 위험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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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R.gh 2020.04.05 0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가네요^^

  2. MR.gh 2020.04.05 0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도 기대되는 게시물들 자주 보겠습니다.
    자주 소통해요.^^

  3. *저녁노을* 2020.04.05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산되어가는 요즘..
    무섭네요.
    잘 보고가요

  4. 젤루야 2020.04.05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잘보고갑니다.

  5. _soyeon 2020.04.05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끝없는 확산 ㅠㅠ 무섭습니다

  6. 혜니웨이 2020.04.05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화학 바이러스 무기들은 코로나처럼 금방 전세계로 퍼질텐데ㅠ 사용되지도 개발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네요. 코로나 음모론 너무 믿을만하네요😭 잘보고 갑니다! 소통해요😊

  7. 딱조아 2020.04.05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8. 병구씨 2020.04.05 2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9. Bella Luz 2020.04.07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글 보고 갑니다^^행복하세요~

문명 대전환을 불러왔던 전염병과 현대 문명의 위기의 상징이 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신종 코로나19 해외유입 확진자와 <궁을가>를 지은 정북창과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인류의 미래의 대변국을 예고한 선견자(先見者) 용호대사 북창北窓 정염鄭磏(정북창)

"조국을 떠나지 마라!"

 

 

인류의 미래에 일어날 천지(天地)의 대변국과 사는 방법 등을 기록한 것이 정북창 선생이 지은 <궁을가>입니다.

북창 정염 선생은 미래의 후손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절대 조국을 떠나지 말고 있어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매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정북창 선생은 동양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는 격암 남사고 선생과 함께 예언적인 부분에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 2대 예언가로 알려졌지만, 북창 정염 선생은 출중한 인물 중에서도 군계일학과 같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애고애고(哀苦哀苦) 저백성(這百姓)아 간단말이 어인일고

부노휴유(扶老携幼) 가지 마소 고국본토(古國本土) 다 버리고 어느 강산(江山) 가려느냐"

 

 

'코로나19' 사태는 남사고 선생과 북창 정염 선생이 말한 천지가 대변국은 아니지만, '조국을 떠나지 마라'라는 정북창 선생의 말씀은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유념해야 할 내용입니다. 현재 상황은 문명이 전환하는 것을 보여준 작은 서곡일 뿐이며, 현대 문명이 새로운 문명으로 대전환하려는 신호탄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대자연의 위엄(威嚴)과 인간과 문명의 한계와 준비와 대처, 그리고 앞으로 닥칠 천지 대변국 등을 인간에게 보여준 대사건이며 큰 징조인 것은 분명합니다.

 

 

 

 

 

 

 

 

 

 

입산(入山) 3일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 - 3일 만에 세상의 모든 일을 안 역사적인 인물 정북창(1506~1549)

 

500여 년 전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의 충청도 온양(아산)에서 비운의 천재가 태어났습니다.

천지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정북창 선생의 출중한 자질과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정북창 선생이 얼마나 총명했는지 스승도 없이 혼자서 천문과 지리, 의약과 복서, 율려와 산수, 외국어 등 온갖 학문에 터득해 깨쳤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도 비교할 사람이 드물 정도로 뛰어났던 정북창 선생을 선도(仙道)의 도맥에서 '단학의 중시조'로 불리기도 하지만, 유불선(儒佛仙) 삼도(三道)의 근본과 이치를 꿰뚫은 인물입니다.

 

 

북창 정염 선생은 도가(道家)의 내단수련서인 <용호비결(북창비결)>과 인류의 미래 운명을 예고한 <궁을가>를 지었습니다. <궁을가>는 우주가 돌아가는 절대 법칙인 우주 변화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 세상이 개벽(開闢)하는 것과 우리나라가 새 문명을 열어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비교할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정북창 선생이지만, 악한 일을 많이 한 집(적악가積惡家)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을사사화를 일으킨 우의정 정순붕이 아버지였고 동생 정현은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른 정북창 선생의 아버지와 동생을 욕했고, 효자였던 정북창 선생은 평생 아버지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갔습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다양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 외국에 사는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최근 2주간 '코로나19' 감염 경로가 국내 각 지자체 확진자 숫자보다 해외유입 확진자 수가 많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 감염 경로 분석 결과는 지자체의 집단발병, 사업장 등의 사례보다 해외유입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약 35%로 해외유입 확진자는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중에서도 극소수인 교민과 유학생 등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인과 특정 세력은 '코로나19' 해외유입 확진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고 주장하지만, 만약 자기 부모 형제와 자식이 포함되어 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현재 다양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과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는 약 1천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형상하게 된 시기는 근현대사입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이유로 조국을 떠났지만, 근현대사 들어 우리 국민이 한반도 떠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흉년과 가뭄 등의 영향으로 먹고살기 위해 만주와 러시아 지역 일대로 이주한 것입니다.

 

 

20세기 들어 공식적인 이민의 첫 역사는 하와이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고아 입양과 일반 이민과 취업 이민, 유학생과 기업의 해외 진출 등으로 우리나라를 떠나게 됐습니다.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약 2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입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단행된 후 선진지식과 전문적인 학문을 배우면서 견문도 넓히는 해외 유학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각지로 학생들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해외 유학생으로 나가 외국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포함하여 현재 약 1천만 명의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 '헬조선'이 아니라 천국 같은 대한민국 '헤븐조선' 조국을 떠나지 마라!

 

2014~2015년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헬조선'이란 조선(대한민국)과 지옥(hell)의 합성 신조어로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힘들고 희망도 없다며 모국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헬조선'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불평등과 불합리, 무한경쟁으로 내몰린 현실 등 경제적, 사회적인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 말이었습니다. '지옥 불의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자조 섞인 젊은이들의 한탄을 특정 언론은 때를 놓치지 않고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할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추정적 보도를 앞다투어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언론과 특정 세력은 '헬조선'을 부추겼고 많지는 않지만, 실제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지난 1백여 년 동안 시대적 상황과 현실에서 자의든 타의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국을 떠나 현재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극소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조국으로 들어오는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하늘과 땅과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안 역사적인 인물 정북창 선생은 <궁을가>에서 앞으로 천지 대변국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고, 절대 조국을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 있던 우리 동포가 조국으로 귀국한 이래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극소수지만, 어느 때보다 많은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입출국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나라에 사는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는 귀국길이 막혀 들어올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해외유입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과 유학생 등 재외국민과 재외동포입니다.

 

 

 

 

 

 

 

 

정북창 선생이 <궁을가>에서 예고한 천지의 대변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아닙니다. 천지 대변국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인류가 맞이할 미래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촌은 현재 기후변화, 핵무기 위협, 전염병 등 단 한 가지만으로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이 모범적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별개로 정북창 선생이 말한 '조국을 떠나지 마라'라는 경고는 천지 대변국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현대 사회는 문명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위기의 시대이면서 천지의 질서가 바뀌면서 현대 문명이 대전환하는 시대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 아래서 생존을 위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과 명예와 권력은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북창 선생의 경고처럼 천지의 대변국을 앞두고 절대 조국을 떠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외국에 있더라도 반드시 조국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북창 선생은 <궁을가>에서  천지 대변국을 극복하고 사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개벽이다>와 <생존의 비밀>을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염병 병란(病亂)의 시대, 누가 살고, 누가 죽는가

<생존의 비밀> - 총9강 전체합본

 

 

 

 

 

 

 

 

 

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바로가기

http://ncov.mohw.go.kr/bdBoardList_Real.do?brdId=1&brdGubun=11&ncvContSeq=&contSeq=&board_id=&gubun=

 

 

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국외 발생현황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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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시도별 발생동향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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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확진환자 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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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현황 실시간 바로가기

https://coronaboard.kr/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오래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의학전문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더욱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은 대잔연의 큰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

바야흐로 인류 문명이 생장(生長, 발전)과정을 끝맺고 성숙과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장차 하늘과 땅과 인간이 새로 태어난다!

 

크게 깨어져서 문명과 함깨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낙엽되어 사라지고 말 것인가!

<2009, 상생출판 생존의 비밀 中>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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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02 0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청결원 2020.04.02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kangdante 2020.04.02 0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의 종말은
    바이러스로 부터 시작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여유로운 하루되세요.. ^^

  4. 모아모아모아 2020.04.02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5. 브리즈B 2020.04.02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ㅎㅎ
    헹복하세요~

  6. 딱조아 2020.04.02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익한 정보감사합니다

  7. Bella Luz 2020.04.07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행복하세요!

평생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사후(死後)에 하나님이 된 인자(人)

기독교 성자(聖子) 예수님의 탄생일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된 동지(冬至)

 

 

 

 

 

 

 

 

 

 

 

 

대한민국이 서력기원(西曆紀元)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6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세력은 1961년 12월 2일 법률 제775호 '연호에 관한 법률'로 단군기원(檀君紀元, 단기)을 폐지하고, 1962년 1월 1일부터 대한민국 공식연호를 서력기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예수님의 사후 제자인 사도 바울에 의해 초기 교리가 정립되었습니다.

서력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격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공인되기 이전 흔히 바울신학에 의해 일평생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서력(西曆)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인하면서 종교로 인정받게 됩니다.

서력 313년 이전의 기독교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하면 기독교는 이교도, 이단, 사이비 등의 불법 집단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서력 313년 종교로 인정됐고 서력 318년 로마제국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로마제의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예수님 성탄절을 축하하 크리스마스트리와 점등 행사는 매년 12월 25일 로마제국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태양신 축제일'에서 유래됐다는 설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1483~1546)에 의해 유래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지구촌에서 공통으로 쓰고 있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은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 기독교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로마제국 황제들의 역대기를 참조해 역산하는 방식으로 예수님 탄생 연도를 추정하여 만든 것이 서력기원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절로 알려진 크리스마스도 예수님 탄생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던 서력기원은 점차 퍼져서 갔고, 급기야 총칼과 성경을 들고 무자비하게 대륙을 점령하면서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됐고 서력기원 사용이 보편화됐고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서력기원이 된 예수님 탄생 년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됐고, 또한 종교적 색채를 지우기 위한 노력으로 이른바 '공통시대(Common Era)'라 하여 서력 기원전과 서력 기원후를 각각 'CE(Before Common Era)'와 'BCE(Before Common Era)'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과 총칼을 앞세워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하고 식민지를 만들고 아직도 신에 대한 믿음 아래 세계를 장악하려는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본질적 속성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된 하나님의 아들 기독교 예수님 탄생을 기원으로 한다는 '서력기원'은 사실 근거도 없이 추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연도와 탄생일, 곧 성탄절이라고 알려진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 역시 기독교 성경에 기록조차 없습니다.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 연도와 탄생일을 기록하고 있지 않아 누구도 모르고 단지 추정할 뿐입니다.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로마와 페르시아 문화, 그리고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 중에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태어난 시기에 일어났던 양떼 방목 등의 상황을 살펴보면 12월 25일이 아니라 봄에서 가을로 보기도 합니다.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동방 교회는 아직도 예수님 성탄절을 1월 6일(주현일主顯日) 다음 날인 1월 7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에서 동지(冬至)가 밤의 길이가 가장 길지만, 동짓날부터 낮의 길이가 점차 길어진다고 하여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 등으로 태양신(미트라 Mithras) 숭배 신앙을 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재미있는 사실은 기독교의 메시아 신앙과 불교의 미륵불 신앙의 어원이 '미트라'라는 사실입니다.

기성종교가 거룩하고 신성한 빛을 한결같이 신성과 진리의 표상으로 삼은 것도 절대자와 메시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된 페르시아의 태양신 신앙은 로마제국으로 전파되어 12월 25일을 미트라 신앙의 '무적의 태양신', '태양신 축제일'로 정해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예수님이 성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로마제국에서 초기 많은 박해를 받았던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태양신 축일'과 같은 뜻깊은 큰 축일을 만들게 되는데, 진리의 태양과 같은 분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한 기독교인들은 이교도의 축제일인 12월 25일 '태양신 탄생 축일'에 예수님 성탄절을 축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력 336년 교황 율리우스 1세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12월 25일을 예수님 성탄절로 인정하게 됩니다. 서력 354년 제36대 교황 리베리우스(리베리오, 재위 352~366)가 예수님 성탄절을 기념하는 성탄 미사를 본 후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선포되어 현재까지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기독교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 용어는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을 합성한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예배'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 예수님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로마제국에서 매년 12월 25일에 열린 국민적 축제였던 '태양신 탄생 축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보다 앞선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진짜 유래가 된 페르시아의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날'인 동지(冬至)라는 것도 정설이 되었습니다.

 

 

동지(冬至)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 음(陰)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인데, 동짓날로부터 양(陽) 기운이 저 깊은 땅속에서 꿈틀대며 올라오기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동지는 진양(眞陽)의 새 생명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날로 만물을 소생시키는 양(陽) 기운이 발동하여 동지로부터 밝음이 커지고 어둠이 서서히 거치게 됩니다.

 

 

예로부터 동지는 단순히 태양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는 날로만 여긴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한 해의 출발점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의 첫날 동짓날을 잘 보내는 것이 일 년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몸가짐을 조심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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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12.21 0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곧 있을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맞아 '기독교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 에 대해서 알려주셧군요?
    몰랐던 정보를 덕분에 알고 갑니다^^
    편안 따뜻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2. *저녁노을* 2019.12.21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군요.
    유래...잘 알고 가요^^

  3. kangdante 2019.12.21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지의 유래가 색다르네요
    잘 보고 갑니다
    여유로운 휴일보내세요.. ^^

  4. 젤루야 2019.12.21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 유래 좋은글 잘보고 공감하고가요.

  5. 모아모아모아 2019.12.21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개벽을 만납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6. Deborah 2019.12.21 2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님 탄생일에 대한 기원등을 요약해서 자료로 잘 정리 해주셨군요. 찬반론이 아직까지 있는 사안이죠.

  7. 죽풍 2020.01.05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의유래에 대해 잘 알아갑니다.

일제가 '한일병합약' 또는 '한일합방조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한일병탄(韓日倂呑)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피탈(被奪) 당1910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

 

 

 

 

 

 

 

 

 

 

 

 

일본 제국주의는 친일파 매국노들과 야합하여 강압적이고 일방적으로 체결한 소위 '한일병합(韓日合倂)조약' 또는 '한일합방(韓日合邦)조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는 '합병(合倂)'이라는 용어가 강대국이 약소국을 강제로 합친다는 것과 두 나라의 관계만을 국한한다는 의미를 벗어 보려고 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일병탄(韓日倂呑)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두 나라 간의 합법적인 조약이라는 것을 애써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한일병합조약' 또는 '한일병합조약'은 두 나라가 동등한 위치에서 체결한 조약(條約)이 아니기 때문에 조약이 될 수 없습니다. 굳이 표기한다면 일본 제국주의가 친일파 매국노들을 내세워 강제로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늑약(勒約)이라고 해야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침탈하고 식민지배를 했기 때문에 한일병탄(韓日倂呑)이라고 해야 합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공식 공포한 소위 '한일병합조약' 또는 '한일합방조약'의 내용을 보면 한일병탄은 국제법상 무효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한일병합조약' 문서 내용은 일제와 친일파들이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일본 제국주의 '천황'에게 순순히 나라를 바친다는 내용으로 만들었는데, 국가 간의 조약에 반드시 찍혀있어야 할 대한제국 국새(國璽)와 순종 황제의 친필서명이 없는 한낱 종잇장에 불과합니다.

 

'한일병합조약' 문서에는 국가 간의 조약에 인정되지 않고 나라의 행정적 결재에만 사용하는 어새(御璽)가 찍혀있다는 것은 조약의 공식 문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한일병탄은 무효가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문서 날조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 역사 왜곡과 날조로 이어졌습니다.

왕정복고에 성공한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약 80년 동안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관과 식민사학이 오늘날까지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자들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로 둔갑해 왔습니다.

 

경술국치일 1910년 8월 29일에 공포해 현실이 된 한일병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배를 준비한 것은 現 일본 총리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이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면서부터입니다.

 

 

 

 

 

 

 

 

 

 

 

조선을 정벌한다는 소위 '정한론'은 일제 식민사관의 학문적 이론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으로도 조선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지유신으로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 곧 '정한론(征韓論)'을 펴기 위해 일방적인 통상요구를 했습니다.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 간에 체결한 이른바 '강화도조약'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으로 공식 명칭은 조일수호조약(朝日修好條約)입니다.

 

1882년 7월 19일 구식 군대와 신식 군대와의 차별 때문에 일어난 임오군란 때 고종은 청나라 군대 파병을 요청했고 임오군란이 끝난 후에도 조선에 군대를 주둔 시켜 조선 내정에 간섭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도 이때 신식 군대(별기군) 훈련 교관을 비롯해 일본인 10여 명이 죽었고,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타는 피해를 봐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군을 조선에 주둔시켰습니다.

 

1882년 8월 30일 조선은 임오군란 당시 피해를 본 일본에 배상하는 이른바 '제물포조약'을 체결했고 조약에 따라 1883년 제물포항(인천항)이 개항합니다.

 

 

1884년 12월 4일 일본을 믿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박영효와 김옥균 등 개화파의 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났고, 이때 민씨 정권이 청나라 파병을 요청하면서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885년 4월 18일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위해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동시에 철수하고, 변란이 발생할 시 동시에 파병한다는 이른바 '톈진조약(천진조약)'이 체결됐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일본 제국주의는 청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톈진조약'을 빌미로 일본군을 파병해 조선 군대와 함께 학군 30만 명을 무참하게 살육한 후 본격적으로 국권 침탈이 시작됐습니다.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이 발발했고, 2월 9일 일본의 요청으로 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합니다.

1904년 223일 러일전쟁이 시작하면서 불안해진 일본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협력해줄 것을 강압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합니다.

  

 

1905년 7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미국은 필리핀을 각기 지배하는 것을 묵인하고 인정하는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가 극비리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합니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은 고종 황제의 서명 날인도 없이 강제로 체결됐습니다.

일제는 이것을 소위 '을사조약' 또는 '을사보호조약'이라 부르는데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빼앗았으며, 1906년 2월 1일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왔니다.

 

 

 

 

 

 

 

 

1907년 7월 18일 일제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시키고, 7월 24일 일본 제국주의가 순종 황제의 서명 날인을 위조한 소위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행정권을 빼앗았고,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습니다.

 

1909년 7월 6일 일본 제국주의 각의에서 식민지배는 기본이고 조선의 모든 것을 패멸(廢滅) 시켜 일본 것으로 만든다는 소위 '한일병합에 관한 건'이 확정됐습니다.

 

 

1909년 7월 12일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경찰권을 일본에 무조건 맡긴다는 소위 '기유각서(己酉覺書)'가 체결됐는데, 일제가 강압으로 빼앗은 것입니다.

 

1910년 8월 18일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이 주도한 내각회의에 소위 '한일합병조약안'을 상정해 통과시켰습니다.

1910년 5월 3대 조선 통감으로 임명된 데라우치가 1910년 8월 16일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과 조중응을 소환해 구체적으로 '한일병합조약' 체결 지시를 내립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단체 일진회 회원들이 거리 곳곳을 누비며 '한일합방'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일진회를 동원한 것은 무력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국권을 침탈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이 '합일합방'을 원해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인데, 일본 극우세력이 아직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군의 삼엄한 경계 아래 대한제국 어전회의가 열렸고, 친일파 매국노들은 순종 황제를 허수아비 취급하며 반대하던 이용직을 쫓아내고 일방적인 찬성으로 '한일합방안'이 가결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은 윤덕영을 시켜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어새를 찍게 하고 서명을 위조한 소위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에 공포한 한일병탄의 소위 '한일병합조약'은 한일늑약 또는 경술늑약이라고 표기해야 합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우리나라 식민지배를 시작한 날인기도 한 경술국치일은 국권을 피탈(被奪) 당한 치욕의 날입니다.

 

 

 

 

 

 

 

 

 

한韓민족의 6천 년 역사에서 국운이 쇠하여 침략을 당하거나 주변국을 떠받든 사대 역사는 있었지만, 나라가 완전히 패망한 역사는 없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처럼 치욕스러운 역사지만, 일제가 강제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피탈한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해 한국 모든 것을 폐멸(廢滅) 시키려던 불의한 역사를 부정하고, 파렴치하고 악질적인 전쟁범죄도 무조건 부정합니다. 치욕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일병탄이 시작된 19010년 8월 29일은 우리에게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경술국치일이지만, 일본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긴 이래 가장 큰 죄를 지은 날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실상은 몸은 대한민국이지만, 정신은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해 만든 식민사학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제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청산하고 우리의 진짜 역사와 정신문화를 하루빨리 복원해 정체성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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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8.25 0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픔이 있는날이지요.ㅠ.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19.08.25 07: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은 주말 휴일 잘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3. 죽풍 2019.08.25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도 한일합방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나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시끄럽게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4. 버블프라이스 2019.08.26 0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피탈 당한 1910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 아픔이 있는 날이군요 ...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를 공부하고 갑니다^^

대중과 소통한 천문학자이며 블랙홀 박사로 널리 알려진 천문학 전도사

전(前)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 박사 사단법인 대한사랑 4대 이사장 취임

 

 

 

 

 

 

 

 

 

 

 

 

천문학자이며 블랙홀 박사로 널리 알려진 박석재 박사는 제3대와 4대 한국천문연구원장을 역임했고,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다 2019년 7월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우주와 천문 분야가 세인들이 관심을 받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한 前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 박사는 대중과 소통하며 천문학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대중화를 시키면서 천문학 전도사로 왕성하게 활동해 왔습니다.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SF 소설 <코리안 페스트>와 역사 소설 <개천기>, <왕검단군>, <치우천자>,<태호복희>, <유위자>를 비롯하여 <블랙홀이 불쑥불쑥>, <블랙홀 박사의 우주 이야기>, <아인슈타인과 호킹의 블랙홀>, <별과 은하와 우주가 진화하는 원리>,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원리>, <이공대생을 위한 수학 특강>, <하늘에 길을 묻다>, <개천혁명>, <현대과학의 쟁점>, <재미있는 천문학 여행> 등 어렵게만 느껴졌던 천문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책과 전문 천문학 서적 및 역사 소설 다수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블랙홀 박사 박석재 前 한국천문연구원장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블랙홀 천체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천문학은 우주를 공부하는 학문으로 인류가 상고시대 때부터 탐구해온 학문 분야로 역사와 절대 분리될 수 없는 학문입니다.

 

천문학자 박석재 박사는 천문학이 역사와 관련이 깊은 것도 있지만, 미국 유학 시절 외국인 친구가 한국인의 민족정신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크게 당황했던 기억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생각으로 수십 년 동안 역사를 공부해 왔습니다.

 

  

천문학자 박석재 블랙홀 박사는 한韓민족의 뿌리역사와 원형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2014년 창립한 세계환단학회 창립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6년 일제 식민사학 해체와 대한의 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창립한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협의회>의 現 공동대표입니다.

 

 

천문학자로서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힘쓴 박석재 블랙홀 박사는 오래전부터 역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여 일반 대중을 상대로 역사특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9년 7월 5일 금요일 대전광역시 교통문화연수원에서 사단법인 대한사랑 2, 3대 이사장의 이·취임식이 열렸습니다.

사단법인 대한사랑 2대 이사장 남창희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의 뒤를 이은 제3대 이사장으로 前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現 대한사랑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천문학자 박석재 박사는 "나라는 광복했으나 역사 광복을 이루지 못한 현실의 모습이 아쉽다. (사)대한사랑이 안으로는 정치, 종교, 지연, 학연, 혈연 등과 전혀 무관한 순수 역사문화단체로 성장하도록 할 것이며, 밖으로는 K-History와 k-spirit, K-Cosmos 등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주역으로 만들겠다."라고 포부와 신념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일제 식민사학에 세뇌되어 일본의 정신적 식민지화가 되면서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반드시 역사광복을 이루겠다는 박석재 대한사랑 이사장님의 결연한 의지와 믿음 앞에 역사광복에 동참하는 회원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응원할 것입니다.

 

 

 

 

 

 

 

 

 

 

前 한국천문연구원장, 現 (사)대한사랑 이사장

개천혁명을 꿈꾸는 천문학자 박석재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dr_blackhole

 

 

 

 

천문학에 문외한인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가 

세계에서 인정한 진짜 전문 천문학자의 과학적 검증을 가짜로 몰아붙인 일화

 

前 천문연구원장 블랙홀 박사 박석재 사단법인 대한사랑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 천문학자입니다.

  

천문학은 자연과학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이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최첨단 학문 분야입니다.

박석재 박사는 수십 년간 재직한 한국천문연구원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국가 천문대 역할을 하는 최첨단 연구기관입니다

 

  

주류 강단사학계는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입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조작 말살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대한의 참된 역사와 정신문화를 기록한 <환단고기>를 무조건 위서(僞書)라고 주장합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오성취루' 현상도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고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주류 강단사학계는 <환단고기>는 이유립 선생이 조작한 위서라고 주장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에 '오성취루 현상'을 '창작 또는 베껴서'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천문학과 컴퓨터를 배우지 않은 분이며,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자들은 이유립 선생이 어느 책을 보고 '오성취루 현상'을 베꼈는지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박석재 박사는 천문학자로서 "오성취루 같은 천문현상을 임의로 맞추거나 컴퓨터 없이 손으로 계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블랙홀 박사 박석재 前 한국천문연구원장은 <환단고기 - 단군세기>에 나오는 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 5개 행성이 나란히 늘어선 현상의 '무진 오십년 오성취루' 현상을 천문 소프트웨어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박석재 박사보다 앞서 '오성취루' 현상을 직접 증명한 사람도 전문 천문학자입니다.

前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이며 現 고등과학원 물리학과 박창범 교수와 故 라대일 박사가 첨단 과학으로 직접 검증한 내용을 1993년 논문에 실었습니다.

 

   

일반인이 생각해도 전문 천문학자가 아닌 이상 약 4천 년 전의 천문기록을 정확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이유립 선생이 창작한 것이 아니고 고려말 수문하시중을 지낸 대학자 행촌 이암 선생께서 편찬한 사서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 선생도 <한국통사> 서문에서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有魂)"이라는 <단군세기> 서문 내용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의 거짓 주장이 성립되려면 1986년 작고한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를 창작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1960년 이전에 타임머신을 만들어 미래로 가서 박창범, 라대일, 박석재 박사의 논문과 책을 보고 베꼈어야 합니다.

또 1960년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 전문 천문학 기술을 배워 <환단고기>에 기록했어야 하는 데 모두 불가능한 소설이며 100% 거짓말입니다.

 

 

과학이 만능은 아니지만, 역사학에서 유적과 유물 등의 연대를 측정할 때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란 과학적 검증의 힘을 빌립니다. 그런데도 주류 강단사학계는 세계가 인정한 전문 문학자 박창범, 라대일, 박석재 박사가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을 부정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대한민국 국민을 일본의 정신적 노예로 만든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거짓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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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날맨날 2019.07.07 0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2. 버블프라이스 2019.07.07 04: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석재 박사님, 대단하신 분이군요? 천문학은 흥미로운 학문입니다^^ 사극에도 천문학이 나오더라고요-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3. 청결원 2019.07.07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주말 잘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4. korea cebrity 2019.07.07 15: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가 귀차니즘에 빠져서 ㅜ 늦었네요
    글 잘보고
    공감 누르고갑니다 ~~

위국헌신군인본분의 강인한 의지와 초연한 자세를 보여준 대한의군 참모중장

3월 26일은 대한(大韓)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 순국일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는 국권이 회복되면 자신의 유해를 조국으로 옮겨서 장사지내 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하셨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31세 젊은 청년의 유해는 10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못 찾고 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백범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가 잠들어 계신 효창공원에는 31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고 가묘가 있습니다.

 

 

2019년은 3.1만세 혁명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0년 3월 26일 나라를 위해 자신의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며,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지 109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정신을 바로 세운 역사학자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나라가 자주정신을 잃고 산 역사를 개탄했습니다.

 

 

지난 천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한국을 위한 예수, 석가, 공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가 점령한 한국, 석가가 점령한 한국, 공자가 점령한 한국이 되어 노예정신으로 살았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자주적 역사관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사살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가 자신이 신앙했던 천주교로부터 일개 '살인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천주교 교단은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안중근 의사를 교인 명부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한 것은 아니고 천주교 교단이 살인자로 낙인찍었습니다.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직전 뤼순 감옥을 방문한 빌렘 신부는 천주교로부터 징계를 받고 본국으로 소환됐습니다.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 신앙인이었지만, 그에 앞서 대한의 백성이었고, 조국의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조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의 평화를 파괴한 이등박문을 사살한 하얼빈 의거를 결심한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투사로써 실행한 하얼빈 의거는 종교적 이념과는 별개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친 군인의 본분을 실천한 것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등방문을 사살하고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지 84년이 지난 1993년 천주교 신자로 복권?시켰습니다.

 

 

일제는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일제의 강점이 끝난 광복 후에도 대한민국의 천주교는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하고 있었고,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84년이 지난 후에야 천주교 신자로 대우?해 줬습니다.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의 높은 뜻을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3년 안중근 숭모회가 설립됐습니다.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살신성인과 평화사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안중근의사숭모회 1대, 3대 이사장은 윤치영입니다.

 

 

 

우리 역사 왜곡 조작의 심장부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윤치영은 대표적인 친일파 집안으로 형제와 사촌까지 친일파입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지낸 이은상과 백두진 역시 친일파입니다.

 

그리고 친일파와 위정자들은 성역화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3월 26일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 109주기 순국일입니다.

민족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한 개인의 독자적인 행동이 아니라 국권을 침탈한 일제에 맞선 대한의군의 독립전쟁으로 안중근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하얼빈 의거를 실행했습니다.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을 사살한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내적으로 조국의 자주독립과 후손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고, 외적으로는 대인대의(大仁大義)한 평화사상을 만천하에 알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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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6 0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 순국일이 3월 26일이군요? 오늘이네요? 한 몸을 조국에 바쳐 독립운동을 해주신것.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2. kangdante 2019.03.26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지만
    지난 역사에 매몰되어 미래를 잊어서도 안될 것 같아요..

  3. 죽풍 2019.03.26 2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우리나라와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고 자본주의의 얄팍한 상술로 들어온 밸런타인데이

1910년 2월 14일은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

 

 

 

 

 

 

 

 

 

 

 

 

흔히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문화는 아니고 고대 로마에서 유래된 날이라고 합니다. 

 

 

밸런타인데이가 시작된 서구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돈에 눈이 먼 기업이 얄팍한 상술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는 날이 되어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는 불과 30여 년 전 일본의 천박한 자본주의 상술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라고 합니다.

 

 

2019년은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을 지낸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 110주년이 되는 해이며, 3.1만세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2018년 인기리에 방영된 <미스터 션사인>이란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일본 제국주의는 한일병탄 이전부터 무고한 백성을 무참히 살육했습니다.

 

 

1894년 동학 혁명군 30만 명 대학살과 1895년 조선의 국모(대한제국 선포 후 명성황후로 추존)를 무참히 살해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잔인무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분개한 항일 의병이 일어났고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이 들어갔습니다.

 

 

1905년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을사5적과 이토 히로부미는 총칼로 고종황제를 위협했지만, 황제의 동의도 없고 국새도 찍히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체결한 을사늑약은 국제법상 무효입니다.

 

 

 

 

 

 

 

 

 

 

1905년 강압적인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고, 1906년 조선 통감부 설치,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등 사실상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1910년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한일병탄이 이뤄진 해이지만, 사실상 1905년 을사늑약부터 한일병탄이 시작된 것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이후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인도되었습니다.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일본 관동도독부 검찰관 미조부치타카오에게 신문을 받습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 15가지를 말하는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을 가장 큰 이유는 대한의 독립과 동양평화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을 당시부터 2월 14일 사형선고일 이후에도 줄곧 민간인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뤼순 감옥으로 압송하기 위한 열차가 1909년 11월 1일 하얼빈역에서 출발해 11월 3일 순(여순)감옥에 도착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1월 3일부터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1910년 3일 26일까지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1910년 2월 7일 1차 공판이 있었고, 재판장과 검찰관, 그리고 일본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관선변호사 역시 일본인이었습니다.

2월 7일부터 12일까지 여섯 차례가 열렸고, 2월 14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조국의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당당하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라고 말했습니다. 항일 의병부대 대한의군은 총독 이범윤, 총대장 인석, 대장 전제덕과 김영선, 좌영장 엄인섭이며, 우영장이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몇 년 전 이태룡 의병연구소장은 유인석 총대장의 아들 유해동 선생이 쓴 <의암류선생약사> 내용을 근거로 연해주지역 의병연합조직인 13도의군이 1910년 6월 조직된 것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기 전이었던 1909년 6월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정된 관선변호사지만, 그나마 안중근 의사를 위한 최소한의 변론마저도 무시된 채 1910년 2월 14일 중국 뤼순에 있던 일본 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 지방재판소에서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혐의일본 형법을 적용해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며,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일은 3월 26일입니다.

1910년 3월 26일 아침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 아침 뤼순 감옥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에게 글 한 점을 남겨 주었습니다.

 

 

 

 

 

 

 

 

 

 

뤼순 감옥에 갇혀있던 안중근 의사의 담당 간수는 치바 도시치로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안중근 의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애국심과 고한 신념, 당당한 의기와 인품에 감동하여 평생 존경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중근 의사를 위해 명복을 빌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1910년 2월 14일 일본 제국주의 고등법원이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날입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인 2월 14일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밸런타인데이가 점령해버렸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중근 의사의 거룩한 삶과 넋을 기리며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면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보다 못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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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2.14 0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발렌타인 데이하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고 잇엇는데요, 우리의 문화는 아니고 고대 로마에서 유래된 날이군요? 오늘 몰랐던 내용을 덕분에ㅡ알고 갑니다^^

  2. 청결원 2019.02.14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kangdante 2019.02.14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중근 의사는 우리에게는 영웅이고 열사이지만
    일본에서는 암살자겠지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노라면
    이런 내로남불이 많은 것 같아요

  4. 죽풍 2019.02.14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히로히토부미를 사살한 날과 박정희가 부하의 총탄에 맞아 죽은 날이
    공교롭게도 십이육인 10월 26일입니다.
    안중근 의사 죽음을 맞아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
    잘 보고 갑니다.

스페인의 일자 무식쟁이 프란시스코 피사로 형제에게 멸망당한 페루의 잉카제국

 

 

 

 

 

 

 

 

 

 

 

 

페루의 정복자로 불리는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귀족이었던 스페인 군인과 천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돼지를 키우는 일을 생업으로 했던 문맹자였다.

 

 

그는 친척이었던 멕시코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와 함께 서인도 제도로 갔다. 그리고 후에 다른 원정대와 함께 페루를 발견했다. 파나마에서 시장과 관리인을 하다가 페루를 탐험한 뒤 금이 있다는 확신을 한다.

 

 

그는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5세(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혈통이며 당대 유럽 최고 권력자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고 유럽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영토를 구축했던 인물)로부터 정복지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문서를 받고, 파나마에 돌아와서 형제들과 군인들을 데리고 약탈 원정에 나섰다.

 

 

 

 

 

 

 

 

 

 

 

잉카인들은 찾아오겠다는 손님은 기꺼이 만나는 특성 때문에 1532년 11월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는 페루의 북쪽 안데스 고원의 온천도시 카하마르카에서 기꺼이 외부인들을 만났다.

 

 

 

그러나 간교한 침략자들 중 도미니크 수도회 신부 벨베르데는 기도서를 보여주면서 이 속에 그리스도교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어있다고 하며 아타왈파에게 내밀었다. 그는 책을 받아보고는 책장을 넘겼지만 곧 바닥에 던져버렸다.

 

 

 

 

 

 

 

 

 

 

 

벨베르데 수사는 피사로에게 신을 모욕하는 족장을 공격하라고 소리쳤고 피사로의 명령을 받은 63명의 기병대와 200여명의 군인들은 대포와 화승총을 쏘았다.

 

 

 

천둥같은 고리와 함께 사람들이 쓰러지자 잉카인들은 천둥 신(神)이 진노한 줄 알고 혼비백산 하였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또한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동물인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스페인 병사들이 2시간이 채안되어 6,000에서 7,000명의 원주민을 모조리 죽였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아타왈파를 사로 잡았다.

 

 

 

 

 

 

 

 

 

 

황제는 피사로를 자신이 감금된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손을 천정으로 뻗쳐 손이 닫는 곳까지 금으로 채워줄 테니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피사로는 약속된 금이 모였지만 약속을 어기고 황제를 화형에 처했다.

 

 당시 검은 옷을 입은 기독교 수사는 기독교 유일신을 믿지 않으면 불에 태워 죽여서 내세로 갈 수 없어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잉카인들은 미라로 온전하게 죽어야 내세로 갈 수 있는데 육체가 피괴되면 흉조 중에 흉조였다.

 

 

1533년 피사로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로 진격해서 잉카제국을 점령했다.

1533년에는 금과 은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항구도시 리마(현 페루의 수도)를 건설했다.

당시 기록에는 '산에서건 강에서건 페루 전역에 금이 발견되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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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9.01.25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씨가 무척 다시 추워졌네요..
    건강 유의 하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9.01.25 0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루 잉카제국....

    잘 보고 가요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3. 버블프라이스 2019.01.25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부터 다시 날이 쌀쌀해졌습니다. 출근하실때 옷 따뜻하기 입으시고요 감기조심하세요

  4. kangdante 2019.01.25 0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 것 같아요
    그나마 지금은 한국은 준전시라지만 평안하네요..

노예무역상에서 노예무역 반대운동가로 변신한 성공회 신부 존 뉴턴

 

 

 

 

 

 

 

 

 

 

 

대영제국은 산업혁명과 함께 노예제도를 더 확대한다.

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했던 당시에 노예무역은 황금알을 낳는 영국 성장의 원동력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1745년 존 뉴턴은 20살이 됐을 무렵부터 노예무역을 시작해 많은 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자신 소유의 노예선을 갖는 선장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다 1748년 그의 노예선은 큰 폭풍을 만나게 되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존 뉴턴은 무작정 무릎 꿇고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새 폭풍은 거치고 맑은 날씨로 돌아왔다. 존 뉴턴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신에게 자신을 바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존 뉴턴은 이 일이 있고 나서도 5년간 노예무역을 더 하였다.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의 행동이 거슬리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보면, 나는 무지한 상태에서 그 일을 했다."라고 후회했다.

 

 

 

 

 

 

 

 

 

 

 

 

노예무역을 그만둔 존 뉴턴은 새롭게 신앙심을 굳혀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처음에는 그의 이런 전력이 문제가 되어 영국 성공회에서 성직 서품이 거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존 뉴턴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강연을 갖는 한편 노예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새로운 인생을 갈아가게 된다.

 

 

1천만 명에서 15백만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이 대서양 너머로 팔려간 노예무역이 1833년 영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후로도 아프리카 흑인은 음성적으로 노예로 팔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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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9.01.13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2. kangdante 2019.01.13 0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예가 존재하였던 시절이
    불과 몇백년전이니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하기사 요즘도 보이지 않는 노예는 많은 것 같아요

  3. 버블프라이스 2019.01.13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존 뉴턴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갑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4. 죽풍 2019.01.13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권을 유린한 노예제도.
    그 당시는 인권을 왜 중시하지 않았는지, 할 수 없었는지, 참으로 슬픈 역사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korea cebrity 2019.01.13 2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에도 저런 양심적인 신부가 있었군요

황금알을 낳는 노예무역으로 세계최강 해군력을 만든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연방(아공)을 만들다.

 

 

 

 

 

 

 

 

 

 

 

 

18세기 후반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부 지역에 유럽인들이 약 2만 명으로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이 인도항로 확보를 위해 살기 좋은 케이프 식민지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영국과 현재의 남아공 지역에 먼저 정착해 있던 보어인(네덜란드 농부)들 간에 오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농장에서 노예를 부리던 보어인(네덜란드 농부)들은 드디어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 '최고의 노예상인'이라는 수치스런 불명예 국가인 영국은 황금알을 낳는 노예무역으로 세계최강 해군력을 만들었다.

 

 

 

 

 

 

 

 

 

 

 

 

영국은 금이 있는 지역과 자원이 있는 나라를 식민지화해 가면서 대영제국을 넓혀 나갔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노예 노동력이 필요 없었고 군사력도 세계최강이어서 인신매매 금지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는 오히려 음성적으로 똑같은 노예무역 호황을 이루었기 때문에 노예 가격만 상승시켰다.

 

 

 

 

 

 

 

 

 

 

 

 

독립적인 보어인들은 영국의 처사를 견딜 수 없어서 소달구지에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 동북쪽으로 대이주를 시작했다.

보어인들이 이주하는 동안 아프리카 원주민인 줄루족과 수차례 전쟁을 하게 되고 줄루족이 패배하고 나서 결국, 영국과 보어인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다이아몬드와 엄청난 금맥 발견으로 빚어진 탐욕 전쟁)

 

 

마치 아메리카 땅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치른 것과 유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영국이 승리했고, 영국인들은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이 생길 때까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통치권을 놓지 않았다.

남아프리카 연방은 1961년 영국연방을 탈퇴하여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된다

 

 

 

 

 

 

 

 

 

 

 

 

영국은 17세기 후반에 왕립 아프리카회사라는 노예무역 독점회사를 만들어 18세기에는 한 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흑인을 아메리카에 노예로 팔아 엄청난 부의 축적으로 세계최강 해군력을 만들었다.

 

 

3백 년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에 의해 유럽과 아메리카 지역에 팔려간 흑인의 수가 약 15백 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팔려가는 흑인 노예들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였으며 수많은 사람이 항해 중에 죽어갔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에 먼저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이었다.

동양으로 향하는 항해의 중간 지점이었던 케이프타운에 네덜란드의 하층민과 노동자들이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다.

그들이 남아프리카 백인들의 선조인 보어인(네덜란드 농부)이다.

 

독실한 칼뱅주의자였던 보어인들의 눈에는 조상신을 모시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미개한 야만인 정도로만 보였다.

원주민들은 죽은 조상을 '살아있는 죽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도 죽으면 조상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믿었다.

 

 

칼뱅 - '돈을 버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예전의 기독교적 사고를 뒤집은 인물.

노동과 검소한 생활을 통해 얻은 재산은 신이 부여한 축복이라고 해서 유럽 상공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칼뱅 이전에 기독교 사회에서는 돈을 모으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그래서 중세 때 부를 쌓은 사람들은 교회에 전부 기부를 하고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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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1.12 0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은 18세에 수만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흑인을 아메리카에 노예로 팔아 엄청난 부의 축적으로 세계최강 해군력을 만들었군요? 이 내용은 예전에 세계사 책에서 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역사공부를 잘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1.12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에는 힘으로 노예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돈으로 노예를 만드는 것 같아요
    세상은 그래서 언제나 불평등합니다

  3. *저녁노을* 2019.01.12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4. 죽풍 2019.01.12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도 독립하지 못한채 남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korea cebrity 2019.01.13 0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영제국과 일본은 식민지가 먹여살렸죠..

우리나라에서 새해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일출 명소 

동북 간방(艮方) 한반도의 새해 일출 명소 울산 간절곶(艮絶串) 해돋이

 

 

 

 

 

 

 

 

 

 

 

 

해마다 새해가 되면 잘 알려진 새해 일출 명소에는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각지에서 온 해돋이 관광객이 넘치면서 북새통을 이룹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 제주도 성산 일출봉, 강원도 강릉의 정동진, 경상북도 포항의 호미곶, 울산의 간절곶, 부산의 해운대 등은 모두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대표적인 새해 일출 명소로 해마다 해돋이 축제가 열립니다. 이밖에도 강원산 태백산 정상, 지리산 정상, 여수 향일암 등을 비롯하여 서해안에 위치한 새해 일출 명소도 여러 곳이 있습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에 있는 울산 간절곶은 해돋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표적인 새해 일출 명소입니다.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동쪽은 경상북도의 포항 호미곶이지만, 동쪽으로 돌출된 호미곶보다 조금 서쪽에 위치한 울산 간절곶이 약 1분가량 먼저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조금 더 동쪽에 위치한 포항 호미곶보다 울산 간절곶 해돋이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울산 간절곶 해돋이와 훨씬 동쪽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의 일출 시각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해돋이 새해 일출 명소로 유명한 울산 간절곶을 우리가 흔히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라고 말할 때의 '간절懇切'이 아니고 '간절(艮絶)'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최동단의 섬 독도울릉도를 제외하고 육지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울산의 간절곶입니다. 새해 일출 명소가 된 울산 간절곶은 대표적인 해돋이 행사가 열리는 곳입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우주 변화의 원리, 즉 역학(易學, 주역)적으로 보면 간절곶(艮絶串)은 끝과 시작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한반도 남쪽에 돌출된 울산 간절곶(艮絶串) 지리적으로 간방(艮方)이곳이란 뜻도 있지만, 현실에서 보면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곳입니다.

 

 

 

 

 

 

 

 

 

 

간(艮)은 일(日)과 저(氐)의 합성어로 해가 뜨는 근원(일출지근日出之根)이며, 간(艮)을 시간으로 보면 종시(終始)의 의미가 담겨 있는 어제가 끝나고 오늘이 시작하는 해가 떠오르는 새벽을 말합니다.

 

 

간절(艮絶)의 문자적 의미는 간방(艮方)이 여기서 끝난다(絶), 다 한곳, 끊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새해 일출 명소로 해마다 해돋이 축제가 열리는 울산 간절곶곶(串)은 바다 쪽으로 돌출된 육지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우주 변화의 원리가 인류 역사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우리 한민족의 역사로 살펴보면 감방(坎方)에서 시작한 역사가 진방(震方)을 거쳐 간방(艮方)인 한반도로 들어온 역사입니다.

 

 

 

 

 

 

 

 

 

 

팔괘의 원리로 인류 문명이 처음 시작하고 마치는 인류 역사 진행 과정과 한민족의 이동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감(坎) 괘는 물을 생명의 근원인 상징하고 인류 문명이 처음 시작한 것을 의미하는데, 인류가 처음 시작한 곳을 상징합니다. 

 

진(震) 괘는 우레(천둥, 번개)를 상징하고, 인류 문명사로 보면 솟구치는 기상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艮) 괘는 열매를 상징하고, 인류의 모든 역사를 매듭짓고 새 역사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한韓민족의 민족 정서를 말할 때 한(恨)이라고 하는데, 한(恨)은 곧 간(艮)의 마음(心), 우리 한민족의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새해 일출의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울산 간절곶의 절(絶)에는 울산의 미래, 새롭게 변모할 또 다른 모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018년 무술년 마무리 잘하시고, 2019년 기해년 한해도 밝고 희망찬 한해, 행복하고 활기찬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의 비밀이 들어 있는 주역에 나와 있는 

새해 일출 명소 울산 간절곶(艮絶串)의 간(艮)에 대한 의미

 

 

『주역』 「설괘說卦」 제5장

 

간(艮)은 동북지괘야(東北之卦也)니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왈(曰)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

 

간은 동북의 괘이니, 만물이 끝(終)을 이루고 처음(始)을 이루는 것이므로

(성인의) 말씀은 간방에서 이루어진다.

 

 

 

『주역』 「설괘說卦」 제6장

 

종만물시만물자(終萬物始萬物者) 막성호간(莫盛乎艮)

 

만물을 마치고(終) 만물을 시작(始)함은 간(艮)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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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8.12.30 0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날씨가 무척이나 추운 주말 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2. 버블프라이스 2018.12.30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 일출 명소 울산 간절곶에서 해돋이를 보기 좋은 곳이군요? 진사분들이 출사지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몇일 안남았습니다.
    날씨는 정말 너무 춥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3. *저녁노을* 2018.12.30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맞이하기 좋은 곳이지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4. kangdante 2018.12.30 0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절곶은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죠
    내년 새해에도 많은사람들로 붐빌 것 같아요.. ^^

  5. 죽풍 2018.12.30 1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절곶 해돋이군요.
    12월 31일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에 제야의 종치고 철야기도하며, 다음날 감포해변에서 해맞이 합니다.
    행복한 한 해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6. Deborah 2018.12.30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 해돋이 볼수있는 명소를 소개해주셨네요. 2018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의 블로그 관심과 애증을 가지고 지켜 봐주신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9년도에도 부탁해요. 늘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해요.

격동의 2018년 무술년(戊戌年)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등 우리의 사회상을 반영한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상을 압축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결국 우리나라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는 정치 현실을 상징한 사자성어입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그해의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도 발표합니다.

2018년 무술년은 1945년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정상과 북미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현실을 진단하면서 새해의 희망적인 바람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은 현실 문제를 경계하고 잘 극복하여 새롭게 시작하라는 걱정과 염려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편나오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사전적 의미는 '맡은 책임은 무겁고 이를 수행할 길은 멀다.'라는 뜻입니다. 적폐 청산이란 막중한 임무를 맡은 현 정부가 국민적 바람을 잊지 않고 철저한 개혁 정신으로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한 것입니다. 

 

 

 

임중도원(任重道遠)과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사자성어를 보면 200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비롯하여 공재불사(功在不舍), 운무청천(雲霧靑天), 좌고우면(左顧右眄) 등이 오른 것을 보면 현 정부에 대한 걱정과 염려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세우라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사자성어였는데 난공불락의 적폐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은 국민의 희망이 제대로 실천되지는 않은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 전반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기가 절대 쉽지 않지만, 중단없는 개혁 추진의 바람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쌓인 적폐가 하루아침, 아니 1년 만에 쉬이 청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는 적폐 카르텔과 대립과 갈등보다는 서로 대화하여 타협점을 찾으면서 하나하나 바로 세워나간다는 것은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논어』의 「태백 편」 원문을 보면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증자 왈(曾子曰)

사불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니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니라.

인이위기임(仁以爲己任)이니 불역중호(不亦重乎) 사이후이(死而後已)니 불역원호(不亦遠乎)아.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니 어찌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후에야 그만둘 수 있으니 어찌 멀지 아니한가?

 

 

2018년 무술년 올해의 사자성어 음중도원(任重道遠)은 힘들고 어려운 개혁을 멈추지 말고 끝까지 완수하라는 국민의 염원을 담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올해의 사자성어 오리무중(五里霧中) - 정부의 정책 혼선과 비리 의혹 상황을 반영

2002년 올해의 사자성어 이합집산(離合集散) -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권력을 좇아 모이고 흩어지는 정치인의 행태를 반영

2003년 올해의 사자성어 우왕좌왕(右往左往) - 새로 출범한 정부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과 정책 혼선을 반영

2004년 올해의 사자성어 당동벌이(黨同伐異) -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대립하는 것을 반영

2005년 올해의 사자성어 상화하택(上火下澤) - 위에는 불과 아래는 연못이 있는 주역의 화택규괘로 분열과 갈등을 반영

2006년 올해의 사자성어 밀운불우(密雲不雨) - 하늘에 구름은 잔뜩 끼었는데 비는 오지 않는 순탄치 않은 정국을 반영

2007년 올해의 사자성어 자기기인(自欺欺人) - 각계 지도층 부도덕한 행위를 비판하며 국민을 속인 것을 반영

2008년 올해의 사자성어 호질기의(護疾忌醫) - 위정자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는 국민의 충고를 무시하는 것을 반영

2009년 올해의 사자성어 방기곡경(旁岐曲徑) - 올바르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되고 독단적으로 현안을 처리하는 것을 반영 

2010년 올해의 사자성어 장두노미(藏頭露尾) - 꿩이 대가리만 덤불 속에 박고 있듯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것을 반영

2011년 올해의 사자성어 엄이도종(掩耳盜鐘) - 얄팍한 잔머리로 국민을 속이려는 어리석음을 반영

2012년 올해의 사자성어 거세개탁(擧世皆濁) -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이 혼탁한 흙탕물이 된 것을 반영

2013년 올해의 사자성어 도행역시(倒行逆施) -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오직 목적을 달성하려는 어리석음을 반영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 - 국민을 속이려고 거짓을 진실로 만든 위선적인 행태를 반영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昏庸無道) - 사리에 어둡고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지도자를 빗대어 반영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 - 국민을 배반한 지도자(배)를 촛불혁명으로 국민(물)이 뒤집 것을 반영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 파사현정(破邪顯正) - 적폐청산을 제대로 해서 바른 사회를 만들라는 요구를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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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12.29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오늘은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들을 공유해주셧네요? 너무나 멋진 사자성어들입니다^^ 한번씩 그의미를 생각해보고 갑니다. 따뜻한 주말되세요

  2. kangdante 2018.12.29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가 파사현정의 바람이었지만
    결국 내로남불이 되고 말았던 한해입니다..

  3. Deborah 2018.12.29 2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적인 사자성어 잘 봤네요. 깊은 뜻이 있었네요.

새로운 시작과 출발점, 새 생명의 기운이 발동하는 일양 시생(一陽始生)의 동지(冬至)의 의미

기독교 최대의 명절 성스럽고 경건한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의미 

 

 

 

 

 

 

 

 

 

 

 

 

근현대 들어 많이 퇴색했지만, 우리 선조들께서는 동지(冬至)일양(一陽)이 시생(始生) 하는 날이라 하여 정월 초하루 설날 다음으로 가장 큰 명절로 여겼고 그 의미도 컸니다.

 

 

'작은 설'이라고도 불렸던 동지는 1896년 서양 양력을 공식 역법으로 반포한 후 20세기 들어 외래문화가 급속하게 들어왔고, 일제강점기와 근대사를 거치면서 '작은 설' 동지의 의미가 흐려져 가게 됩니다.

 

특히 기독교 예수님 성탄절이 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겹치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가 사라지고 동지(冬至)의 의미도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이질적이면서도 동질적인 기독교와 이교도의 만남에서 출발한 기독교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의미, 그리고 동양에서 새해의 시작으로 보는 동지의 의미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동서양의 동지절(冬至節)은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최대 명절 크리스마스로 알려진 기독교의 예수님 성탄절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한 로마의 태양신 축제일이었습니다. 기독교 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 크리스마스 성탄절에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을 제패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가 공인 종교로 만들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커져갔고, 근대 이후 군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지구촌을 점령하다시피 한 서구 열강들에 의해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는 세계적인 축일이 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로마의 태양신 축제일이며, 로마의 태양 축제일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배화교(拜火敎)라고도 불리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가 로마 군인들에 의해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로마에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 신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서양의 동지 절기(冬至節氣)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 '무적의 태양신 탄생의 축일',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라는 의미로 태양신 축제일, 곧 미트라 탄생일에서 유래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로마 미트라 신앙의 '태양신이 부한 날'에서 크리스마스가 유래됐고, 예수님 성탄절이란 기독교적 종교 의미를 부여하면서 가장 성스럽고 경건한 기독교 최대의 명절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 성탄절이란 기독교 최대의 명절로 자리 잡기까지는 예수님 사후 무려 3백여 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서력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기독교는 세력화됐고, 기독교만의 축일을 만들어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서력 337년부터 357까지 재위한 교황 율리우스 1세 때부터입니다. 그리고 서력의 기원이 되는 예수님의 탄생 연도는 예수님 성탄절이 지정되고 나서 약 200년이 지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 의해 서력기원, 즉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정해졌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가 합성된 말로,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예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동지(冬至)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면서 밤이 길이가 점차 짧아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다시 말해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로 태양이 부활하는 날입니다..

서양 크리스마스와 동양의 동지는 본질과 현상의 차이가 있지만, 그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동짓날은 일양이 시생하는 날, 새해의 시작으로서 동짓날 자체의 본질적인 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서양의 동지절 크리스마스는 새해의 시작이라는 의미보다는 죽은 태양이 부활한다는 날의 길이와 밤이 길이가 역전된다는 현실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 문화에서 동지의 의미는 단순히 동지와 하지, 일 년에 두 번 낮과 밤의 길이가 역전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 해를 시작한다는 새로운 출발점의 의미를 두어 삼가고 경건한 마음으로 동짓날을 보냈습니다

 

 

 

 

 

 

 

 

 

 

한 해의 시작,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한 우리 선조들은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했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옛말이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동지(冬至)의 본질적인 의미는 새 희망의 밝은 기운, 천지(天地)의 새 생명 기운이 태동(胎動)한다는 일양시생지절(一陽始生之節)입니다.

 

 

밤이 가장 긴 날이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의 현실적 의미는 지난 한 해를 깊이 반성하고 다가오는 해를 희망차게 맞이하는 위해 새 출발을 설계하고 다짐하는 데 있습니다.

 

 

 

 

 

 

 

 

 

 

새해의 시작인 동지(冬至)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고, 크리스마스와 송년회 연말 분위기에 빠져 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현실입니다.

 

 

 

동지 때 부정한 몸과 마음으로 부정한 일을 하여 부정한 기운이 들어오면 한 해 동안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과 같아서 동짓날은 1년 중 어느 날보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경건하게 잘 보내야 합니다. 

동지 때 팥죽을 먹는 이유도 새해 첫날 부정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조의 소망이 담긴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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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12.13 0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동지의 의미와 예수님 성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의미’ 에 대해 알고 갑니다^^
    이제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2. *저녁노을* 2018.12.13 0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탄절의 의미...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3. kangdante 2018.12.13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와 동지에 대한 비교가 흥미롭네요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따듯한 하루되세요.. ^.^

  4. 죽풍 2018.12.13 2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독교 최대명절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군요.
    한 해 마무리 잘 해야 되겠습니다.

매국지도 재사업을 공언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과

부당집행연구비 환수 소송액을 마음대로 변경한 동북아역사재단

 

 

 

 

 

 

 

 

 

 

 

 

2007년 7월 3일 아시아 최대 상륙함으로 해군의 대형수송함 독도함이 취역했습니다.

2007년 7월 6일 일본의 '2007년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표기해 영유권을 주장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일본의 독도침탈 행위가 계속되면서 정부는 2007년 7월 하순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국제법적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연구와 조사, 그리고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국책연구기관)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 독도연구소 설립하기로 결정했고, 2008년 8월 14일 동북아역사재단에 독도연구소가 설립됐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세대와 서강대 산학협력단 2008년 8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장장 8년간 45억여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되어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를 편찬하게 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침탈 등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중국이 근 10년 가까이 진행한 동북공정으로 우리 고대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급변이 발생했을 때 영토문제와 여러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은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침탈에 맞서기 위해 편찬한 것임에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침탈을 그대로 인정하는 매국지도로 만들어졌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탈에 맞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여 알리기 위해 만든 대한민국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탈에 앞장서는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는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의 고대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됐고, 독도는 아예 그려 넣지도 않았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 그대로 반영된 삼국사기 초기불신론은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조작한 식민사관이며, 중국의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들어온 것은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조작한 중국고생했다고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준 꼴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60여 명이 역사학자가 제작에 참여했으며 해마다 두 차례씩 총 15차례 자체 심사결과 모두 합격점 80점을 웃도는 점수를 계속 받았습니다.

자체심사란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도둑과 공범이 스스로 무죄 판결을 내린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2015년 11월 심사에서는 100점 만점에 14점을 받아 부적격판정을 받았습니다.

국회 동북아 역사왜곡특위는 동북아역사지도 수정을 위해 5개월간의 수정 기간을 주었는데도 끝내 독도를 그리지 않아 2016년 5월 44점을 받고 최종 폐기됐습니다.

 

 

 

 

 

 

 

 

 

 

교육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관련자 16명을 징계처분했고, 연세대와 서강대 산학협력단에는 지도작업 외에 부정하게 사용한 10억여 원을 반환하라는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호섭은 '동북아역사지도에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됐고, 비윤리적으로 연구비가 다수 발견돼 협약을 해지하고 연구비 회수를 통보했다.'라고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장 서강대 교수 윤병찬은 '2015년 11월 동북아역사재단이 지엽적인 사안을 가지고 협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세대와 서강대 산학협력단은 교육부의 처분을 거부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반환소송을 했습니다. 

 

 

 

 

 

 

 

 

 

 

2016년 9월 동북아역사재단은 연세대와 서강대 산하협력단을 상대로 비윤리적으로 부당집행한 연구비 10억여 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불과 3달 만에 반환비용을 6억 원으로 슬그머니 변경해버렸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10억 원 반환 처분을 내린 교육부와 상의하거나 보고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2018년 동북아역사재단 국정감사에서 밝혀졌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은 환수 소송금액 변경에 대한 내부결재 문서도 없는 것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2018년 2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은 자신의 임기 내에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펴낸 한국고대사 영문 서적에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조작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부 산하 국책연구기관(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중국의 국책연구기관 일본의 국책연구기관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되고 지금까지 들어간 혈세가 4천억 원이 넘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동안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는 우리의 역사 지도가 아니라 중국의 지도, 일본의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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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8.10.21 0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이 많이 들어가는군요.ㅠ.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18.10.21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남은 휴일 잘 보내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kangdante 2018.10.21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북아문화재단이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꼴이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여유로운 휴일보내세요.. ^.^

  4. 버블프라이스 2018.10.21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어제의 글에 이어지는 내용이군요?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갑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5. 죽풍 2018.10.21 2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

  6. Deborah 2018.10.22 0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알아야 할 문제들이네요.

설립 취지와 설립목적을 훼손한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

 

 

 

 

 

 

 

 

 

 

 

 

중국은 20세기 말부터 소위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가 되자마자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시작한 역사조작 프로젝트 동북공정은 한韓민족의 고대사(고구려와 대진국=발해)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편입했는데,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07년 1차 역사 조작 작업이 끝났습니다.

 

 

 

한韓민족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동북공정은 향후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충돌했을 때 역사적으로 만주와 북한이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주장하고, 소수민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이 조선족의 뿌리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정체성에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004년 3월 중국의 역사조작 프로젝트 소위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동북아역사재단의 전신인 고구려연구재단입니다.

 

 

교육부 산하의 고구려연구재단은 첫 100억 원의 예산 편성과 교육부가 해마다 약 50~60여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교육부 산하의 고구려연구재단은 정부의 예산을 받는 학술 연구의 공공기관으로 정책적인 공공기관이라기보다는 역사학자가 주축이 된 민간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고조선 역사, 고구려 역사, 고구려 문화, 발해(대진국) 역사, 동북아 관계사, 민족문제 등 총 6개 팀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하기 전 연구 분야가 고구려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고사에서 동북아 역사까지 연구하는 6개의 연구팀이 말해주듯 범위가 넓어 재단 명칭 선정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동북아연구재단'보다는 '고구려연구재단'이란 명칭 사용에 우호적이었고, 결국 설립추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고구려연구재단' 명칭 사용을 결정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고구려 역사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고조선과 고구려, 대진국(발해) 및 동북아와 민족문제 등의 역사연구를 하는 곳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연구재단이 제구실을 못하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역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 직속의 바른역사기확단을 발족했습니다.

 

 

 

본래 바른역사기획단은 고구려연구재단과는 별도로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려고 했지만, 연구와 조직운영 및 예산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에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하게 됩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을 관계자들은 외교부 산하로 정책과 연구기관을 통합하여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 통합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외교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바뀌어 2006년 9월 출범했습니다.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역사조작 프로젝트 동북공정으로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문제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 등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 고구려연구재단과 확대 개편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섭립 취지와 목적을 근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 고대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한 역사조작 프로젝트 동북공정은 대한민국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주류 강단사학계의 방조와 묵인 아래 중국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는 신화이며, 중국으로부터 시작한 고조선 영토를 특정 지역에 한정했습니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대진국(발해) 역사를 중국이 역사로 편입한 것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았고, 한漢나라에 멸망한 아주 작은 고조선의 역사와 한사군 설치, 삼국사기 초기 불신론 등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추종한 고구려연구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훼손했습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에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침탈에 대응하기 위한 독도연구실이 있습니다.

국민 앞에서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할 뿐 동북아역사재단과 연세대와 서강대의 산학협력단 60여 명이 8년 동안 국고 47억여 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가 독도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사실이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 목적

이 법(동북아역사재단법)은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하여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 및 독도 관련 사항에 대한 장기적 종합적인 연구 분석과 체계적 전략적 정책개발을 수행함으로써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및 번영의 기반을 마련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를 침탈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하면서 오직 국민이 낸 혈세로 배만 불리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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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8.10.20 0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내용들인데요. 잘 알고 갑니다. ^^

  2. kangdante 2018.10.20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왜곡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사도 그럴진데
    고대사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3. 버블프라이스 2018.10.21 0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몰랐던 내용인데, 덕분에 잘 알고 갑니다^^

대한민국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訓民正音)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업적 훈민정음(한글) 창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많은 답변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답변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정신문화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왜곡 조작되었고, 일제가 영구적인 식민통치 목적으로 조작해 만든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지 않은 채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파렴치한 만행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정체성은 어둠에 갇힌 채 아직도 광복(光復)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통치 기간 내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수없이 저질렀습니다.

우리의 말과 한글도 없앴고, 무엇보다 역사를 왜곡 조작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버렸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우리 것'이라는 말만 해도 '국뽕'으로 취급받는 세상입니다.

일제 식민주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식민사학 카르텔에서 재야사학을 공격하기 위해 급조한 천박한 말이 '국뽕'입니다.

 

 

 

 

 

 

 

 

 

 

 

조선 4대 왕 세종대왕 이도 -훈민정음 한글 창제

http://gdlsg.tistory.com/1523

 

 

 

근세조선 27명의 임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추앙받고 있는 분은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입니다.

백성을 위한 애민정신, 끊임없는 자기계발, 문명화된 조선, 문화가 발달한 조선, 조선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등 세종대왕의 업적은 너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훈민정음(한글)은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이지만, 세종대왕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조선 초기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는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을 위해 세종대왕의 업적이 많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단연 한글입니다.

 

 

한글 창제 당시에 많은 난관이 있었고 그 후로도 수백 년 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았지만, 이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에는 세종대왕을 비롯해 정인지와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의 글을 모두 들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크게 의편(例義篇)와 해례편(解例篇)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직접 쓴 예의편(例義篇)세종대왕께서 한글의 창제 목적과 한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서입니다.

해례편(解例篇) 서문은 정인지가 지었으며 훈민정음, 곧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창제 원리와 한글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사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며 훈민정음 창제 당시 참여했던 집현전 학사들이 쓴 글입니다.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업적인 훈민정음(한글)은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에 창제됐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훈민정음 반포 시기를 세종 28년(서력 1446년)이라고 합니다.

 

 

훈민정음(한글)의 정확한 반포 날짜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실록에 '이달에'라는 기록만 있습니다.

10월 9일 현재의 한글날은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통 11년 9월 상한'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추정하여 음력을 양력으로 계산하는 복잡한 과정 끝에 정해졌습니다. '정통 11년'은 명나라 6대 황제 정통제(正統帝, 재위 1435~1449)의 연호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中 - 1443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 속된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반대파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2년 전 세종 26년(144년)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최만리가 세종대왕께 상소할 때 훈민정음(한글)이 옛 글자를 본뜬 모방한 글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中 -1444년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행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中 - 1446년

(예조판서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中)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

'........ 계해년(세종 25년 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 궁상각치우 변치 변궁)에 합하여 삼극(三極, 천지인)의 뜻과 이기(二氣, 음양)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여 다함이 없이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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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8.10.07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위대하신 분이지요.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kangdante 2018.10.07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만의 한글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고 자랑스럽습니다
    세종대왕은 그래서 더욱 위대한 성군입니다

  3. 죽풍 2018.10.07 2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훈민정음 제정으로 지금 우리가 편한 소통을 하는 것이겠죠.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4. 버블프라이스 2018.10.08 0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 정말 위대하신 분이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가 군기(軍旗)로 사용하는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치안 유지와 방어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실질적인 일본 군대 자위대

 

 

 

 

 

 

 

 

 

 

 

 

 

군대(軍隊) 아니 군인(軍人)이 단 한 명도 없는 일본과 6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까요?

일본이 군(軍)이라는 용어와 편제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 그리고 항공자위대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사실상 군대입니다.

 

 

평화유지군은 유엔 회원국에서 파견한 부대를 지구촌 분쟁 지역에 파병하여 분쟁 해결 및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임무를 맡는 유엔 산하의 군부대조직입니다.

 

 

일본은 1990년 초부터 대내외적으로 자위대의 평화유지군(PKO) 파견 방침을 세웠고, 1992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모잠비크와 자이레, 골란고원, 동티모르, 이라크, 수단 등지에 자위대를 파병했습니다.

 

 

 

 

 

 

 

 

 

 

일본은 근대사에 들어 주변국을 수없이 침략하고 세계대전까지 일으킨 전범국입니다.

 

태평양연합사령부 전범 재판이 미국의 주도로 열렸는데 희생양이 된 전범 몇 명만 유죄판결을 받고 대다수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때 미국은 악명높은 731부대의 자료를 모두 받아갔습니다.

 

 

 

연합군 극동사령부 도쿄 전범 재판 - 일본 관동군 731부대

http://gdlsg.tistory.com/1891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일본 헌법, 소위 '평화헌법'군대를 보유할 수 없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군대를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전쟁 직후 치안 유지를 위해서 예비경찰대를 만들었는데 이후 인원이 증원되면서 1952년 보안대, 1954년 자위대로 확대 전환되었습니다. 

 

 

일본의 실질적인 군대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불리는 전범기를 군기(軍旗)로 사용합니다.

 

 

 

 

 

 

 

 

 

 

1951년 미국과 일본은 상호안전보장법을 체결했고, 1954년 미일상호방위원조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상호방위원조협정을 체결하면서 전력을 보강할 명분을 얻었고, 미국은 일본에 군사기술을 제공했습니다.

 

 

 

치안 유지의 예비경찰대에서 육상안대와 해상경비대로 이어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 그리고 항공자위대라는 실질적인 군대로 확대 재편했습니다.

 

 

 

원전 국가 일본은 언제든지 핵무기 무장이 가능하다

http://gdlsg.tistory.com/1168

 

 

 

 

 

 

 

 

 

 

일본인이 최고의 신(神)으로 떠받들고 있는 신(神)은 태양신인 천조대신(천조대어신天照大御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입니다.

천조대신의 자손으로 살아 있는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일본 왕은 단 한 번도 혈통이 단절된 적이 없다며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된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의 문양은 일본이 최고신으로 숭배하는 태양신(천조대어신)과 태양신의 후예인 일본 왕의 위세가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일본인이 사용해 오던 문양입니다.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욱일승천(旭日昇天)은 왕성한 기세로 위세를 떨친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전범기라고 부르는 이른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는 깃발의 정식 명칭이 아닙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된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인일 가능성이 크지만, 누가 언제부터 붙였는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탈취하여 폭정과 수탈, 그리고 강제노역과 징집도 모자라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학살한 원흉들이 붙인 이름이기에 우리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부르면 안 되고 전범기라고 해야 합니다.

 

 

 

 

 

 

 

 

 

 

현재 일본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에서 군기로 사용하고 있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깃발이 최초로 사용될 당시 명칭은 '육군어군기(陸軍御軍旗)'입니다. 메이지 정부 초기 법령(태정관 포고 제355호)에 의해 1870년 육군의 공식 군기로 지정된 것이 전범기 일본의 소위 '욱일기'입니다.

 

 

 

같은 해 일본 해군 역시 태정관 포고 제651호에 따라 우리가 아는 '일장기'가 '해군어국기(海軍御國旗)'로 지정됐습니다. 

1889년 일본 왕의 칙령 111호에 따라 일본 육군의 육군어국기를 모방하여 위치만 조금 바꾼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가 일본 해군의 해군어국기(海軍御國旗)로 지정됐습니다.

 

 

 

 

 

 

 

 

 

현재 일본의 실질적인 군대 자위대에서 군기(軍旗)로 사용하고 있는 전범기 '욱일기'는 태양신 천조대신의 자손 일본 왕의 권세와 위세가 만방에 퍼진다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일본의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천조대신과 일본 왕의 위엄을 형상화한 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를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복고를 이룬 일본 왕 명치의 분신과 같이 동일체로 여겼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에게 일본 왕은 살아있는 신, 곧 현신인(現神人)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헌법도 일본 왕을 위한 헌법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헌법에 명시된 일본 왕은 영원히 일본을 통치하고, 일본 왕은 신성불가침이며, 일본 왕은 일본군을 통수하고 전쟁을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대한제국 국권침탈,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은 모두 일본 왕의 한 마디로 시작된 전쟁이며 일본 왕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 전쟁의 맨 앞에는 일본 왕의 분신인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바로 전범기가 나부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과 반인륜적 전쟁범죄가 벌어진 곳에는 일장기와 함께 일본 왕의 분신인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불린 전범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실질적인 군대 자위대가 사용하고 있는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가 논란이 될 때마다 일본은 주변국 국민이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고 단지 정서와 감정의 문제일 뿐 국제법상 큰 문제는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부르는 전범기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는 표면적으로는 군대가 아니지만, 실질적인 군대입니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2016년 자체 생산한 스텔스기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일본 해상자위대는 최근 급속하게 전력을 보강한 중국에 밀려났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없는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소련과 중국 등 몇개 나라를 제외하고 세계 5~6위 정도 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핵무기 6천 기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양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된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 왕을 위해 만든 제국헌법에 의해 지정된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에서 출발했습니다.

 

 

 

 

 

 

 

 

 

 

일본 왕을 위한 제국헌법에 의해 일본 왕이 하사한 일본 왕의 분신이 전범기입니다.

태양신의 자손인 일본 왕의 분신이기 때문에 수십 년째 일본의 군대 자위대가 사용하고 있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는 100% 군국주의의 산물이며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군대를 보유할 수 없고 교전권이 없지만, 일본은 사실상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5년 일본의 사실상 군대 자위대는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는 개헌을 통과시켰습니다.

 

현재 일본은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여 언제 어디서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려고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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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10.06 0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군대 자위대의 '욱일기' '욱일승천기'는 전범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태풍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2. kangdante 2018.10.06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은 이웃나라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예비 적국이기도 합니다..

  3. 뉴론7 2018.10.06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나 북한이나 다 똑같네요.
    정권이 바귀면서 요즘 또 조용하지요 ㅎㅎ

침략전쟁의 상징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깃발 범기(戰犯旗) '욱일기(旭日旗)'의 역사

 

 

 

 

 

 

 

 

 

 

 

 

지금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이며 '일본 천황'은 위대한 태양신(神)의 자손으로 절대적 존재입니다.

 

 

 

1868년 에도 막부 시대를 끝낸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이 성공하면서 아무 실권 없이 한낱 뒷방 늙은이로 지내던 일본 왕이 역사를 움직이는 살아있는 신(神)으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일본이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본 왕 중심으로 국체를 세워 '천황 중심'의 나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명치 일왕과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급속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제국주의 열강을 향한 발돋움을 합니다.

 

 

일본 왕은 태양신(神)의 자손이며 국권의 상징으로 일본은 모든 것이 일본 왕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본 천황'은 '살아있는 신', 국가 원수로 일본 제국주의의 육군과 해군을 통수하는 '대원수'이기도 합니다.

 

 

1889년 2월 공포되고 1890년 시행된 일본제국 헌법 제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1868년 왕정복고 성공과 근대화에 이어 1890년 제국주의라는 화려한 옷으로 바꿔 입은 일본은 천황제라는 체제 아래 군국주의 국가로 치닫게 됩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의 탄생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일명 '욱일기'는 일본 왕의 분신입니다.

전범기 '욱일기'를 누가 최초로 도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양신의 후손인 일본 왕의 위세가 만방으로 확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막부시대를 타도하고 왕정복고를 이룬 일본 왕 중심의 국가로 전환한 일본은 내치와 외치 모두 일본 왕의 치세로 여깁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 법령인 <태정관 포고 355호>에 따라 1870년 메이지 3년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일본 육군의 정식 깃발이 되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전범기인 '욱일기'의 본래 이름은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입니다.

'욱일기'가 법령에 의해 1870년 일본 제국주의 육군의 정식 깃발로 정해졌지만, 일본 왕 중심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본 왕이 하사한 깃발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어기(御旗)를 임금을 상징하는 임금의 깃발이라고 합니다.

일본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 임금과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로 메이지 일왕과 일본을 동일시한 것이고, 육군에 하사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태양 빛이 만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와 태양신의 자손인 일본 왕이 하사한 전범기 '욱일기'는 일본군을 보살펴주고 승리로 이끌어주는 메이지 일본 왕의 분신입니다.

 

 

 

 

 

 

 

 

 

 

다시 말해 전범기 욱일기(旭日旗)'는 세상을 환히 밝히는 태양의 빛이 만방으로 확산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태양신의 후예인 메이지 일본 왕은 살아있는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범기 '욱일기'는 일본 왕과 일본 그 자체입니다.

 

 

태양신의 자손으로 추앙받는 일본 왕과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일본은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넘어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침략 야욕을 현실화합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가 처음으로 전투에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명이 일으킨 내란을 진압한 전투였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였던 19세기 중반 조선을 침략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이 정립됐습니다.

명치유신(메이지유신) 3걸 중 한 명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1873년 정한론을 주장하다 메이지 정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가고시마로 내려갔습니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른바 '서남전쟁(세이난전쟁)'이라 불리는 내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일으킨 내란에 메이지 정부의 일본 육군이 전범기인 '욱일기' 들고 나가 내란을 진압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일제는 1899년 메이지 일본 왕의 칙령(勅令) 제111호에 의해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일본 해군의 군함기(軍艦旗)로 지정됩니다. 일육군의 욱일기'와 일본 해군의 '욱일기'는 중심에 있는 태양의 위치가 조금 다를 뿐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등 침략전쟁이 자행된 곳에는 언제나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함께 있었습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일본군도 해산하면서 전범기 '욱일기'도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치안 유지라는 미명아래 1952년 보안대, 그리고 1954년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막강한 일본군이 부활하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도 부활했습니다.

 

 

 

 

 

 

 

 

 

 

1873년 메이지 일왕이 일본 육군에 하사한 깃발 전범기 '욱일기'는 욱광(旭光), 즉 아침 햇빛이 세상을 밝히듯 일본 왕의 치세가 퍼진다는 의미인데, 아직도 전범기를 일본 자위대의 깃발로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군국주의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군국주의의 길을 걸어일본이 패망하면서 사라졌던 전범기 '욱일기'는 몇 년의 휴식을 끝내고 육상 자위대와 해상 자위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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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10.05 0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자료들 정말 귀한 자료인데- 덕분에ㅡ잘보고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보고 갑니다^^

  2. kangdante 2018.10.05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욱일기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3. 뉴론7 2018.10.05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지나도 달라진거 없네요.
    발전을 했을 뿐인지 항상 우리나라는 일본 밥이었죠. ㅎㅎ

  4. 청결원 2018.10.05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태풍이 온다고 하니 피해없도록 준비 잘 하세요~

  5. 하루트래블 2018.10.11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http://harutravel.com

    비즈니스, 시사, 여행, 생활, 문화등 큐레이팅 블로그입니다.

일방적 강의가 아닌 문답형식의 강연 프로그램

EBS 교양 프로그램 <질문 있는 특강쇼 - 빅뱅> 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

 

 

 

 

 

 

 

 

 

 

 

 

강원도 춘천 의암호 한가운데 있는 중도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고조선 시대 유적과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입니다.

톰센의 삼시대 구분법으로 말하면 석기와 청동기와 철기로 이어지는 고조선 시대 문명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집과 고인돌, 생활유적과 생산유적 등 한 공간에서 집단적 형태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은 최초라고 했습니다.

 

 

춘천 중도에서는 석기시대 유물부터 집터 917기, 고인돌 100여 기, 수혈 355기, 비파형 청동검과 도끼, 유구 등 1400기의 최대 규모의 고조선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곳입니다. 한반도 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 중도는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 아래 레고랜드라는 테마파크가 들어섭니다.

 

 

역사학도와 역사학자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춘천 중도에 달려가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데 앞장서야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일부 시민만이 춘천 중도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입니다. 

 

 

 

 

 

 

 

 

 

 

춘천 중도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아주 추악한 민낯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장소이며, 어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춘천 중도에서 발견된 최대규모의 유적과 유물에는 단군이라는 글자도 없고 단군조선이라는 글자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발견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 중도는 한국교원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이 상주하며 연구해야 할 곳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고조선 대동강 중심설을 만들어 고조선이 한반도 북부와 요동의 일부 지역만을 국한했기 때문에 한반도 이남의 춘천은 고조선 영역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2018년 1월 7일 목요일 저녁 7시 50분에 방영되는 EBS의 교양 프로그램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할 한국교원대 교수 송호정은 고조선에 대해 수많은 주장을 했는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라는 송호정은 국가성립은 철기시대에 이르러서만 가능하고 청동기시대에는 기껏 부족국가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고조선의 영역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쪽과 요동 일부에 국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비파형 동검이 발견된 지역이라고 해서 고조선의 영토는 아니라는 주장을 합니다. 요서 지역에서 발견된 비파형 동검을 두고 고조선이 아니라 산융과 동호 등의 유물이라고 주장하여 고조선 영역을 한정시킨 것입니다.

 

 

한국 교원대 교수로 국내 1호 고조선 박사라는 송호정은 고대국가가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자기 생각을 마치 증명된 학설처럼 주장했습니다.

 

 

 

 

 

 

 

 

 

 

EBS 교육 방송의 교양프로그램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서는 단군기원 4351년 개천절을 맞아 한국항공대학교 우실하 교수의 '단군은 역사다' 프로그램과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의 '단군이 신화인 이유'틀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방영한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서 우실하 교수는 단군왕검이 건국한 나라가 고조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송호정 교수는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서 단군조선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교원대 교수 송호정고조선에 대한 사료가 빈곤해 고조선 역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송호정의 말처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나오는 글 외에는 전무한 상태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료가 없으니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검증할 사람도 없으며, 중국 사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했다면 아무리 우리 역사라도 중국으로부터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합니다. 

 

 

한국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은 우리나라와 중국 사료 어디에도 없는데 고조선 건국 당시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퇴출당할 망언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랑케에서 비롯된 일본의 실증주의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실증적 관점의 역사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유물과 유적, 사료 등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역사만을 학계의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에 대해 가장 많이 나와 있는 『환단고기』를 부정하고 있고, 『조선왕조실록』에 500년 동안 고조선을 창업한 단군왕검께 올린 제례(祭禮) 기록 역시 인정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한 힌국교원대 교수로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이 학설을 말할 때 우리나라 사료에는 기록이 없으니 당연히 중국의 사료를 인용합니다.

 

그런데 송호정이 주로 인용하는 중국의 사료라는 것이 중국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폄하하고 조작한 사료가 전부입니다.

간혹 우리 역사를 제대로 기록한 중국 사료는 절대 인용하지 않는 특징도 보입니다.

 

 

 

 

 

 

 

 

 

 

유럽 중심의 세계관은 곧 서양 중심의 세계관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실증사학 역시 독일 출신의 랑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랑케의 실증사학을 변형시켜 역사를 조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뿌리가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이른바 홍산문화라고 불리는 요하문명(홍산문명)은 서양 역사관이 만든 인류의 4대 문명보다 앞선 세계 최고의 문명입니다.

중국의 황하문명과는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명이고 우리의 문명과는 문화유전자가 같습니다.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한 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은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청동기 이전 시대라서 문명 성립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망발도 합니다.

 

 

 

4천 년 5천 년 6천 년 7천 년 전의 유적과 유물이 고조선의 유적, 유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에도 이미 그어놓은 문명의 역사 시간을 넘어선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성립 문명의 성립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홍산문명 지역역사와 문화를 모두 보고 아는 것도 아니고, 홍산문명 지역에서 발굴되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우리문화적으로 동질성을 보이는 것이 확연한데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베일에 싸여 있는 인류의 상고시대 역사를 자신이 배운 틀에서 벗어나고 자기가 아는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단군조선과 상관없다고 단정 짓는다는 것 자체가 역사학자로서 자질이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국 당나라와 당나라의 일개 지방 정권 고구려와의 전쟁을 그린 조인성 주연의 안시성이란 영화가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2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역사왜곡 프로젝트, 곧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대진국(발해) 역사를 한낱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격하시키고 고구려와 대진국을 중국 역사에 편입했습니다.

 

 

탐구와 분석, 수 없이 검증하는 현대과학도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는데, 일본 제국주의가 100년 전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정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식민사학의 후예라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이 동북공정 등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여 지로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침묵과 방관을 넘어 옹호와 동조하는 것은 반국가적 반민족적인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고 지금까지 국민 세금 4천억 원 이상이 투입된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추종하는 매국단체가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민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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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10.04 0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갑니다^^
    좋은 목요일 보내시길 바래요

  2. 죽풍 2018.10.04 2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군조선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부가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행복하세요. ^^

  3. Deborah 2018.10.05 0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아주 구체적은 증거로 이렇게 문답식으로 진행하는 특강은 들어볼만 하겠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행사를 소개해주셨네요.

기상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촌의 폭염

인류 문명사로 보면 인간의 탐욕이 빚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세상에서는 대자연의 역습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우주사로 보면 지구촌의 폭염은 대자연의 역습이 아니라 우주 1년 사계절에서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입니다. 

 

 

 

 

 

 

 

 

 

 

 

 

천태만상 인간 군상이 탐욕을 부림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만, 인간의 끝없는 탐욕 중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가장 무서운 탐욕이 낳은 비극은 이른바 대자연의 역습이라고도 말하는 바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입니다.

 

 

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살인적인 지구촌의 폭염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구촌의 폭염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단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라는 사실입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음모론과 거짓과 허구설

http://gdlsg.tistory.com/1984

 

 

 

 

 

 

 

 

 

 

흔히 대자연의 습격이라고도 말하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말미암아 지구촌 전역에 가뭄, 폭우, 폭설, 살인적인 한파와 살인적인 폭염, 거대 허리케인과 태풍 등이 자주 발생합니다. 일부 전문가는 화산폭발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빈번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지구온난화 방지의 리우협약,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협약

http://gdlsg.tistory.com/1976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폭염과 혹한, 가뭄과 폭우 등의 자연재해가 사시사철 일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와 살인적인 혹한, 찌는듯한 폭염과 극심한 가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화하면서 지구촌 전역에서 인적·물적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여느 해보다 장마가 일찍 끝난 우리나라도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인명 피해와 물적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은 얼마 전 물 폭탄을 맞고 수습하기도 전에 일본 열도가 뜨거운 찜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하고 있는 살인적인 폭염은 현재 겨울인 남반구를 제외한 유럽과 북미, 아시아 등 지구촌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온실가스와 탄소배출권 거래제

http://gdlsg.tistory.com/1979

 

 

 

현재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염은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지구촌 폭염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기상이변입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구촌의 폭염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에 앞으로 어떤 기상이변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설사 인류를 위협하는 또 다른 기상이변이 발생하더라도 예측 자체가 힘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일어나고 있는 지구촌의 살인적인 폭염을 재앙 수준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열돔 현상입니다. 열돔 현상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역에 따라 제트기류가 약화하였거나 제트기류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면서 대기의 움직임이 정체 또는 치우치면서 폭염이 지속한다고 합니다. 

 

 

 

기상이변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의 역설

http://gdlsg.tistory.com/2042

 

 

 

 

 

 

 

 

 

 

 

 

한마디로 현재 지구촌의 살인적인 폭염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풍 등의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탈선하여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18년 초 지구촌에서 일어난 기록적인 한파 역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면서정 지역에 혹한이 찾아온 것입니다.

 

 

 

문명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무자비하게 저질러진 인간의 탐욕 행위는 기록적인 지구촌의 폭염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기상이변 현상을 두고 문명에 대한 대자연이 반격이라고 말합니다.

 

대륙의 빙하와 남극과 북극의 빙하 해빙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 온실가스 과다배출, 지구촌 사막화, 지구촌 오대양이 플라스틱 쓰레기에 점령당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침몰하기 시작한 지구호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지구촌의 폭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실체>  - 시간의 비밀: 원형이정 생장염장 인의예지

http://gdlsg.tistory.com/1403

 

 

 

미국 우선주의에 눈이 멀어 세계 무역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습니다.

 

경제와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의 미국이 지구온난화를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탈퇴하면서 나머지 지구촌의 다수 국가가 파리기후협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보장할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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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8.07.29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더운 주말 잘 보내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2018년 6월 23일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 출연

고구려 광개토대왕비가 거짓말로 쓰인 것이라고 주장기경량 박사 ?

 

 

 

 

 

 

 

 

 

 

 

 

1880년을 전후하여 일본 제국주의가 발견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일제가 변조하여 조작했습니다,

혹자는 1900년 일제가 석회도부작전(石灰塗附作戰), 석회로 메우고 비문을 파내서 비석을 변조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은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경량은 한때 대학 강사 일을 하다 얼마 전 '고구려 왕도 연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소위 고구려 박사?라는 기경량에 대해서 쓸 내용이 많지만, 오늘은 고구려 박사? 기경량이 과연 고구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첫 부분에 신화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역사가 부분 때문에 전체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은 기경량뿐만 아니라 지구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러나 기경량은 JTBC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에서 위의 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을 내용과 믿지 않을 내용을 미리 선택해 놓은 상태에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열제께서 아버지 광개토열제의 공덕을 기려 추모왕(주몽)의 고구려 창업의 역사를 비롯하여 광개토열제의 공덕을 써 놓은 비문입니다.

 

그리고 광개토열제의 공덕 못지않게 중요한 내용이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바로 고구려는 북부여로부터 시작됐고, 광개토열제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위의 내용은 대한민국 주류 강단 사학계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소위 고구려 박사?라는 기경량 역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신화라고 말하면서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열제는 고구려 1대 임금이며 광개토열제는 19대 임금입니다.

우리나라 국보 삼국사기와 일본 국내청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사초략에 의하면 광개토열제는 고구려를 창업한 추모(고주몽)열제의 13세손입니다. 고구려 왕위를 형제가 계승한 때도 있어서 광개토열제가 19대 임금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수열제는 왜? 광개토대왕비에 아버지 광개토열제에 대해 시조로부터(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17세손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광개토대왕비 서두에도 나와 있듯이 고구려의 모든 임금은 혈통으로 이어진 북부여를 고구려의 시작으로 여겼 때문입니다.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정확하게 17대손이 바로 광개토대왕비의 주인공인 광개토열제입니다.

이 내용은 주류 강단사학계가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은 『환단고기』가 증명하고 『환단고기』 내용은 광개토대왕비가 증명합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작하여 만든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하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 역시 북부여, 단군조선, 배달국, 환국은 실체가 없는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주류 강단사학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4국 이전의 역사까지 기록하고 있는 『환단고기』는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에게 지탄을 받고 자신들의 쌓은 탑이 무너질까 봐 위서(僞書)라고 합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2018년 1월 3일의 첫 방송과 6월 27일 방송에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서예가이며 전북대 중문과 교수인 김병기 교수와 역사학자 기경량 박사입니다.

 

 

2018년 1월 3일 무술(戊)년에 첫 방송 된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43회 잃어버린 우리 문화, 한자>를 주제로 서예가이며 전북대 중문과 김병기 교수가 출연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23일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주제로 기경량이 출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43회 잃어버린 우리 문화, 한자>에서 김병기 교수는 자신이 서예가로 또 중문과 교수로 자세히 살펴본 결과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도해파(渡海破)' 글자가 다른 글자와 확연히 달라 변조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출연한 기경량은 김병기 교수가 주장한 고구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비를 일본이 조작했다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제가 조작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도해파' 문구를 두고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출연한 기경량은 "나는 도해파(渡海破) 변조 의혹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기경량은 일제가 광개토대왕비를 조작한 역사적 사실을 단순한 견해차로 넘겨 버리면서 나중에는 자기 생각이 역사학계의 통설인양 강하게 주장합니다.

 

 

 

 

 

 

 

 

 

 

기경량은 '도해파(왜倭가 바다를 건너와 격파했다.)'가 맞기 때문에 조작된 광개토대왕비에 나와 있는 "신묘년 이후 왜倭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내용이 맞는다며 조선총독부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과 일본 극우 학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천박한 논리를 폈습니다.

 

 

<백잔 신라 구시속민 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래 매파백잔 ㅇㅇ 신라 이위신민臣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류승국 원장은 중국 문법으로 볼 때 '왜(일본)가 ...... 신민으로 삼았다.'가 아니고,

 '왜가 ...... 신민으로 삼으려고 했다.'가 맞는 해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환단고기』 역주본에서는  '왜가 ...... 신민으로 삼으려 하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경량은 일본이 바다를 건너와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구를 두고 "그 문장 자체를 한국 사람들은 불편해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문장이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요즈음 학계에서 일반적인 견해예요."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모든 국민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역사를 치욕적이거나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면서 왜(일본)가 한반도 남쪽을 신민으로 삼은 것은 사실이며 이런 자기 생각과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사실적 근거 없이 일반적 견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통설론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가 일제에 의해 조작됐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기경량은 요즘 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위 고구려 박사? 기경량의 주장은 일본이 4세기 후반에 신라와 백제를 점령했다는 것으로 과거 일제식민지 시절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조작해 왜(일본)가 한반도 남부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경량은 또 "도대체 왜 이문장을 새겼을까? 고구려의 비(碑), 광개토대왕의 비(碑)면 고구려 사람들은 유리한 내용이 적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문장 이면에 숨겨진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얼토당토않은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라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에 입각해서 역사를 기록하고 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역사학자, 고구려 박사?라는 자가 편향된 생각으로 역사를 왜곡하여 시청자를 우롱했습니다.

 

 

 

 

 

 

 

 

 

 

더 기가 찬 것은 기경량은 고구려인들이 거짓말로 만든 것이 광개토대왕비라고 주장했습니다.

개인의 천박한 생각이 마치 역사의 사실인 양 왜곡하기에 이릅니다.

 

"고구려인들도 그냥 정직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다른 뜻이 있었다."라는 등 자신만의 추리소설을 써가며 자신의 주장이 마치 사실인 양 패널과 시청자를 기만했습니다.

 

 

 

고구려 박사? 기경량은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인들이 거짓말을 써넣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자이고 싶은 고구려인의 욕망이 광개토대왕비에 투영되었다는 게 요즘 학계에서 이야기가 많이 된다.'는 등 이른바 '썰'로 진실을 묻어버렸습니다. 

 

 

기경량은 고구려 왕도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자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직하지 않은 고구려인이 새겨놓은 거짓말 기록이라고 하면서도 일제가 조작하여 새겨 넣은 내용이 일제 식민사관과 부합할 때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몇 년 전 동북아역사재단이 국고 47억 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독도를 그리지 않는 등 중국의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추종해서 만든 것이 밝혀져 국민적 분노를 샀습니다.

 

기경량은 이덕일 소장이 동북아역사지도에 그려진 독도를 포토샵으로 지워놓고 동북아역사재단이 독도를 안 그렸다며 억지 주장을 했다고 허위사실을 온라인상에다 퍼트려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요즘 흔히 세상에서 발에 채는 게 박사 학위라고 하는데 원본이 아닌 사본을 지워봤자 금방 들통날 거란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소위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자가 그런 단순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가 찰 노릇입니다.

 

TV에서 자신이 한 말처럼 고구려 왕도인 평양은 가보지도 않았지만, 고구려 왕도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기경량은 온라인상에서 허성관 전 장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이덕일 박사 등에 대한 허위사실배포와 명예훼손으로 2018년 6월 28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됐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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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TV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JTBC 홈페이지 차이나는 클라스 캡쳐)

 

 

 

 

 

종편 제이티비씨 홈페이지의 JTBC 소개 카테고리 비전에는 지구촌 시청자에게도 통하는 감동을 창조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JTBC가 시청자에게 얼마만큼의 감동을 선사하는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JTBC TV 프로그램 편성은 크게 보도, 시사, 교양, 예능, 드라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class 교실)>은 초청 강사가 패널과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강사는 교사, 패널은 학생이 되어 질문과 답을 하면서 소통하는 형식의 신개념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강사와 패널이 문답식 강의를 하면서 단순한 교양 프로그램을 넘어 살아있는 교실을 지향한다고 JTBC가 야심 차게 편성한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주제도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정치, 역사,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시청자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첫 포문을 연 유시민을 비롯하여 장하성, 문정인, 유홍준, 정재승, 황석영, 호사카 유지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사회 저명한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하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주는데 일정 부분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JTBC의 신개념 강연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2017년 3월 5일 유시민의 <1회 민주주의가 뭔데?>를 시작으로 2018년 7월 4일 임용한의 <67회 평화의 길, 전쟁에서 배워라>까지 방송되었습니다.

 

 

제이티비씨 티브이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가 1년 4개월 동안 67회까지 방송하면서 최악의 방송사고?는 단연 JTBC TV가 특급가이드라고 소개한 기경량의 <제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입니다.

 

 

 

 

 

 

 

 

 

 

제이티비씨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방송되기 전까지 시청률에 등락은 있었지만, 마니아 애청자가 있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은 JTBC의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66회 방송에서 기경량은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주제로 패널들과 주고받은 문답형식의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JTBC TV의 교양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기경량 강사의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방송 예고가 나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에 염려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기경량은 보란 듯이 우리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기경량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이 마치 우리의 역사인 것 마냥 주장하면서 우리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지극히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자가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거짓 역사를 강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2018년 6월 27일 방송된 <차이나는 클라스(class 교실)> 기경량의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차이나는 클라스(class 강의)]인지, [china(차이나, 중국) 수업]인지, [차이나는 cloth(거짓말의)]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청자를 우롱하고 진실을 왜곡한 형편없는 방송이었습니다.

 

기경량의 일방적인 주장은 19세기 서양의 의류업자들이 구매자를 속이고 거짓말을 한데서 유래한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낸 거짓말(invented out of whole cloth,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기 생각이 마치 역사의 진실인 양 일방적인 주장만 했습니다.

 

 

 

 

 

 

 

 

 

 

JTBC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지난 1년 4개월간 프로그램 스텝들의 노력과 강사들의 수준 높은 강의로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나 기경량의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 때문에 그동안 쌓아 놓은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방송사와 언론사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사실을 내보내면 시청자들은 공신력 있는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내보낸 정보를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쪼록 JTBC의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관계자들이 다음부터라도 기경량과 같은 수준 미달의 강사를 다시송에 내보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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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8.07.07 1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지구촌 근현대에서 가장 긴 전쟁, 남북한의 한국전쟁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 한국전쟁

 

 

 

 

 

 

 

 

 

 

 

 

흔히 지구촌의 작은 한반도에서 1950년 일어난 6.25 한국전쟁을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전쟁이라고 말합니다.

 

6.25 한국전쟁은 동서 냉전 이후 최초의 전쟁으로 패권국가 미국과 소련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체제를 더 공고히 하여 군비경쟁을 가속화한 전쟁이라고 평가합니다.

 

 

 

6.25 한국전쟁이 전투지역이 작은 한반도에 국한된 전쟁이었지만, 미·소 강대국과 아시아와 유럽 등 직간접적으로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전쟁입니다.

 

더불어 한국전쟁에 한국을 지원한 나라가 역사상 가장 많은 67개국으로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대전쟁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고 450여만 명의 희생자와 1천만 명의 이산가족 등 큰 아픔과 슬픔의 상흔이 남아 있는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까지 1,100여 일 동안 남북한과 중공과 연합군이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현재의 휴전선 부근 지역을 중심으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수많은 희생자와 전쟁의 상흔을 남긴 채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은 역사책에서 보았던 수백 년 전의 긴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입니다.

2018년 현재 전쟁 68년, 정전협정 65년이 되는 근현대사에서 가장 긴 전쟁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미국에서는 6.25전쟁, 즉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2018년 6월 1일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면담한 직후 기자들 앞에서 잊혀진 전쟁, 즉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문제, 즉 종전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미국은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 당사국이 아닙니다.

정전협정(휴전협정)의 당사국은 유엔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며, 종전협정 당사국은 정전협정 당사국과 전쟁 당사국인 대한민국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유엔의 연합군 대표로 마크 클라크 미 육군 대장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긴 전쟁, 끝나지 않은 6.25 한국전쟁의 참전국이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절대 아닙니다. 

 

한반도 남북 분단에 단초를 제공하고, 가장 많은 연합군을 파병했던 미국은 정전협정 이후 지난 65년 동안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미 연합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은 정전협정(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으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 보고 전쟁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만남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면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만남, 세기의 만남이었습니다.

 

 

 

 

 

 

 

 

  

 

 

유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미국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을 좌지우지하는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 지도자인 만큼 종전협정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가장 긴 전쟁"이라며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식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미국은 1945년 한반도 남북한을 갈라놓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나라고, 북한은 6.25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정점협정의 당사국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발굴 등 4가지 항목의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북한과 미국, 대한민국과 중국 등 전쟁과 정전협정 관련국들이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검증, 북한의 체제보장 등 일련의 행동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이 체결될 것입니다.

  

 

 

 

 

 

 

 

 

 

흔히 미국에서는 6.25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에 유엔 연합군으로 참전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동안 약 3만 6천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미국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전쟁 기간과 상황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지만, 6.25 한국전쟁보다 많은 희생자와 경제적 손실, 미국 내의 사회적인 파장이 컸던 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