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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

기라성(綺羅星)같은 인물들을 배출한

일본군(황군皇軍) 장교 성소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신경군관학교)

 

 

 

 

 

 

 

 

 

 

 

 

 

 

군대(軍隊)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군인(軍人)은 국가의 안정과 평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군대의 구성원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괴뢰국가 만주국에 세운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또는 신경군관학교)는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만주군 장교 양성기관이지만, 실제는 일본 천황의 군대다.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의 황군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모든 사람은 지원동기와 상관없이 졸업과 동시에 만주국을 지배한 관동군사령부의 지휘 통제를 받았다.

 

일제의 관동군사령부는 만주국에 만주군관학교의 전신인 봉천군관학교(1932년), 몽골족의 흥안군관학교(1934년), 육군군의학교(1934년), 육군군수학교(1937년), 육군수의학교(1938년), 육군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 1939년), 육군비행학교(1940년) 등을 세웠다.

 

 

 

 

 

 

 

 

 

 

 

 

일반적으로 '내로라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기라성(綺羅星)은 일제의 식민잔재다.

일제강점기 '반짝이다'라는 일본식 발음 '기라きら'의 한자 음을 취하고, 별 성(星) 자를 붙여서 만들어진 말이 기라성이다.

 

기라성이란 말은 일제 잔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충성을 다한 만주군관학교를 비롯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만주국 군사학교 출신들에게는 일제의 잔재인 기라성이란 말이 가장 적당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지원하여 일본군 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 만주의 여러 군사학교 출신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정부와 군(軍) 요직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육해공군 고위 장성,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 기업대표 등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만주에 배치한 관동군사령부가 실질적으로 괴뢰국가 만주국을 움직였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일본군 출신들이 대한민국의 국군 창설을 주도했다.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의 군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영욕의 삶을 살다 대다수가 죽었다.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한 공로?였는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군 출신 외에도 일제강점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활동했던 친일파들은 광복 후 대한민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호의호식하며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되었다.

 

 

 

 

 

 

 

 

 

 

 

 

만주군관학교 출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박정희는 자랑스러운 황국의 신민이 되기 위해 '다카기 마사오'란 일본식 이름(창씨개명)으로 바꿨다.

 

 

문경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다카기 마사오는 혈서(血書)를 써서 일제가 세운 허수아비 나라 만주국의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 15등으로 입학한 다카기 마사오는 240명 2기 졸업생 중 1등을 차지하여 대표 선서를 한다.

 

 

다카기 마사오가 쓴 혈서(血書)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오직 대일본 제국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滅私奉公)'의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 혈서다.

 

 

 

 

 

 

 

 

 

 

 

 

만주군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입학의 은혜를 받은 다카기 마사오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하면서 다카기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오카모토 미노루는 영광스럽게도 대일본제국 육군대신상을 수상하고, 일제의 중국 침략 전초기지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된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 들어갔고, 1946년 귀국한다.

 

 

 

 

 

 

 

 

 

 

 

 

남한에 돌아온 박정희는 당시 군(軍) 경력자들 단기과정으로 교육한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2기로 졸업하여 육군소위로 임관한다.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면서 공산주의자인 형 박상희와 함께 남로당 활동을 하였고,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되어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를 받았고, 10년 형으로 감형받고 다시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강제 예편당한 박정희는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9기 출신이며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있던 백선엽의 배려로 육군 정보국 문관으로 일했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자 현역 소령으로 복귀한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스스로 자신의 어깨 위에 별 4개를 붙이고 전역한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이 된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던 다카기 마사오는 광복 후 빨갱이로 변신하였고, 4.19 혁명 후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2기 동기생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을 맞고 영욕의 생을 마감한다.

 

 

 

 

 

 

 

 

 

 

 

 

만주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를 비롯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 전신), 일본항공학교, 일본군 지원병, 일본군 장교, 만주군 출신들이 일제가 항복하고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자 대한민국 군대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배출한 일본군 출신과 친일파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의해 반민족특별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면죄부를 받게 된다.

 

 

오직 일본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일본군 출신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회의원,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외무부, 내무부, 상공부, 무임소, 건설부, 교통부, 체신부, 농림부, 무임소 장관 등과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해병대 사령관), 헌병 사령관, 육군사관학교장, 국방대학원장, 고위 장성, 사립학교 이사장 등으로 자리 잡았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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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5.28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주군관학교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버블프라이스 2017.05.28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대통령 국무총리 등을 배출한 만주군관학교 관련 포스트 아주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3. 여행쟁이 김군 2017.05.28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내용에 대해서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박정희 대통령도 보입니다요~

사상 최대의 작전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 총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명언

 

 

 

 

 

 

 

 

전쟁은 인류 문명이 만들어 낸 비극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연합군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 총력전을 벌인다.

 

그 시작은 사상 최대의 작전으로 남아 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연합군 총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의 진두지휘 아래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오마하 비치 해안에서 펼쳐진 작전명 오버로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사상 최대의 작전이며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의 기세를 꺾고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 상륙작전이었던 만큼상징성으로 그동안 영화, 소설 등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독일군은 노르망디보다 더 북쪽에 있는 파드칼레 해안으로 연합군이 대규모 상륙작전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연합군이 집결한 영국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프랑스 파드칼레 해안으로 상륙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린 연합군의 기만전술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 아래 8개국이 참여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원래 6월 5일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하루 늦은 6월 6일에 감행되었다. 

 

유럽의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6월 6일에 감행되었고, 유럽의 동부전선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소련군은 6월 22일에 독일군에 대규모 공격을 시작한다.

벨라루스 공세(바그라티온 작전)로 독일군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극대화 시켰다.

 

 

 

 

 

 

 

 

 

 

 

전쟁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항복하는 데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던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 영향이 더 컸다고 한다.

 

실제 1941년 6월 독일군이 소련을 공격하며 만들어진 동부전선에 1942년 260개의 독일군 최정예 사단이 배치되었고, 연합군과 독일군이 대치하던 서부전선에는 그보다 전투력이 약한 59개의 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동부전선은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의 소련 침략으로 시작하여 1945년 5월 9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4년간 전쟁을 마치게 된다. 동부전선을 독소전쟁, 대조국전쟁이라고도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사상자와 포로 등 피해의 대부분이 소련과의 동부전선에서 나왔고 소련도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2차 세계대전 사상자가 최대 약 5천 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중 약 3천 만 명의 사상자가 동부전선에서 나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승전국과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했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독일과 소련의 전쟁은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홍보 효과에 묻혀 버렸다.

 

동서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사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데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890년 미국 텍사스 데니슨에서 태어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다.

 

아이젠하워는 한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참모도 했었다. 그는 평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남보다 진급도 더뎠다. 중령 계급을 20년간이나 달았을 정도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장군 대신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아이젠하워를 1943년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총사령관에 임명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지상군 총사령관은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 맡았고 아이젠하워 장군이 연합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아이젠하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육군참모총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퇴역한다.

1948년 퇴역하여 컬럼비아 대학의 총장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현역으로 다시 복귀하며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NATO)에 오른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한국에 극비에 방문하였다.

 

1953년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종식하지는 못했지만, 휴전협정을 이끌어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1960년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미국 대통령에 재선한 아이젠하워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1969년 사망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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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훈잉 2016.03.12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르망디 상륙작전 총사련관.. 명언들이 너무 좋습니다
    한번씩 읽어보면 다들 도움이 될거같네요

  2. 아쿠나 2016.03.12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훌륭한 리더는 생각부터 다르군요~
    좋은 명언 잘 보고 갑니다 ^^

  3. 뉴론♥ 2016.03.12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 살아가면서 전쟁이란 단어가 없으면 좋겠는데 항상
    생기는 일이네요

  4. 뉴클릭 2016.03.12 1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해 잘 알아 갑니다 ^^

  5. 행복생활 2016.03.12 15: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세요~

  6. 세컨드잡스 2016.03.12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언 이야기 잘 보구 갈게요~

  7. 죽풍 2016.03.12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8. 유라준 2016.03.12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당시 소련의 역할이 크게 주효했죠.
    아마 소련이 없었다면, 연합군의 반격 역시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