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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韓國痛史 국혼론(國魂論)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대 대통령 이승만은 탄핵을 당하여 쫓겨났고, 백암 박은식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은 교육자로 정치가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로 국민을 계몽하고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독립운동에 헌신적으로 활동한 분입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대한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집필을 계속했습니다.

수년간의 집필을 마치고 1915년 우리의 아픔의 역사, 뼈저린 통한의 역사 『한국통사韓國痛史』가 마침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 서언(緖言)은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 즉 식민사학계 공격의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망국의 백성이 된 백암 박은식 선생은 선조(조상)들 보기가 부끄럽고 원통한 마음에 한국통사를 쓸 때 필명(筆名)을 태백광노(太白狂奴)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나라를 잃은 미친 노예'라는 필명에서 나라를 빼앗긴 원통함과 비통함이 절절하게 전해져 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 서언에서 "사람 말하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가히 멸할 수 없으니 대개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의 형체가 훼손되었으나 정신(역사)만은 홀로 살아 남을 수 없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내가 통사(痛史)를 쓰게 된 동기다. 정신이 살아있어 불멸하면 형상(나라) 또한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1915년 한국통사를 쓴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 인용한 글의 '옛사람은' 고려말 수문하시중(現 국무총리)을 지내고 『단군세기』를 쓴 대학자 행촌 이암 선생입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에 찌들어 있고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관되게 이유립 선생이 조작해 환단고기를 발간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단군세기에 나오는 '국유형 사유혼'은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를 베꼈다고 주장합니다.

 

 

 

1945년 이후 대한민국 역사 관련 학과 관련 교사와 교수 등 수천수만 명 중에서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에서 말한 '옛사람'이 누구인지 밝힌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끝까지 '옛사람'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유형 사유혼'을 말한 주인공이 행촌 이암 선생이라고 밝히는 순간 환단고기가 진서(眞書)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혼이다.'라는 말이 들어 있는 사료는 이 세상에 오직 단군세기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역사학계, 곧 주류 강단사학계는 때론 국민적 정서를 맞추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 서언에 나오는 '국유형 사유혼(國有形 史有魂)', 국혼론을 인용합니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前 대통령이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이란 표현을 쓰며 '국유형 사유혼'의 국혼론(國魂論)을 말하자 식민사학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은 동아일보에 기고한 시론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 서언을 인용했습니다. 바로 '국유형 사유혼(國有形 史有魂)'의 국혼론(國魂論)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김도형 이사장은 "민족사학자 박은식 선생은 국사, 국어를 '나라의 혼'이라고 했다. 일제에 나라를 잃었지만, 국사(國史)를 유지하고 있으면 언젠가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김도형 이사장 

http://gdlsg.tistory.com/2066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재추진

http://gdlsg.tistory.com/2064

 

 

주류 강단사학계, 즉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역사학계의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사건

http://gdlsg.tistory.com/2063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은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혼이다.'라는 말은 '옛사람'의 말이라고 한국통사 서언에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부 출연기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인 김도형은 '국유형 사유혼'을 말한 '옛사람'을 마치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비틀어 주인공을 바꿔버렸습니다.

 

 

 

 

 

 

 

 

 

박근혜와 김도형,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에서 말한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혼이다.'의 원 주인공 '옛사람'은 고려 말 행촌 이암 선생이 분명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과 박근혜 前 대통령과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이 모두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혼이다.'라는 똑같이 '옛사람'의 말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다르게 평가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파렴치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니다.

 

 

 

국권이 침탈된 지 한 해가 지난 1911년 신라 시대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 上』, 고려 시대 원동중 성생이 지은 『삼성기 下』 고려 말 행촌 이암 선생이 지은 『단군세기』, 고려 시대 범장 선생이 지은 『북부여기』, 조선 시대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 등 5권을 계연수 선생이 하나로 묶어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환단고기』 초간본 30권이 세상에 나올 때 자금을 지원하신 분이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이동진 장군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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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8.02.28 0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가요

    좋은하루 되세요

  2. 비키니짐(VKNY GYM) 2018.02.28 1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버블프라이스 2018.03.01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암 박은식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군요!? 그분과 관련된 내용 글을 읽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

기라성(綺羅星)같은 인물들을 배출한

일본군(황군皇軍) 장교 성소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신경군관학교)

 

 

 

 

 

 

 

 

 

 

 

 

 

 

군대(軍隊)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군인(軍人)은 국가의 안정과 평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군대의 구성원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괴뢰국가 만주국에 세운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또는 신경군관학교)는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만주군 장교 양성기관이지만, 실제는 일본 천황의 군대다.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의 황군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모든 사람은 지원동기와 상관없이 졸업과 동시에 만주국을 지배한 관동군사령부의 지휘 통제를 받았다.

 

일제의 관동군사령부는 만주국에 만주군관학교의 전신인 봉천군관학교(1932년), 몽골족의 흥안군관학교(1934년), 육군군의학교(1934년), 육군군수학교(1937년), 육군수의학교(1938년), 육군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 1939년), 육군비행학교(1940년) 등을 세웠다.

 

 

 

 

 

 

 

 

 

 

 

 

일반적으로 '내로라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기라성(綺羅星)은 일제의 식민잔재다.

일제강점기 '반짝이다'라는 일본식 발음 '기라きら'의 한자 음을 취하고, 별 성(星) 자를 붙여서 만들어진 말이 기라성이다.

 

기라성이란 말은 일제 잔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충성을 다한 만주군관학교를 비롯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만주국 군사학교 출신들에게는 일제의 잔재인 기라성이란 말이 가장 적당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지원하여 일본군 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 만주의 여러 군사학교 출신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정부와 군(軍) 요직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육해공군 고위 장성,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 기업대표 등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만주에 배치한 관동군사령부가 실질적으로 괴뢰국가 만주국을 움직였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일본군 출신들이 대한민국의 국군 창설을 주도했다.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의 군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영욕의 삶을 살다 대다수가 죽었다.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한 공로?였는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군 출신 외에도 일제강점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활동했던 친일파들은 광복 후 대한민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호의호식하며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되었다.

 

 

 

 

 

 

 

 

 

 

 

 

만주군관학교 출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박정희는 자랑스러운 황국의 신민이 되기 위해 '다카기 마사오'란 일본식 이름(창씨개명)으로 바꿨다.

 

 

문경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다카기 마사오는 혈서(血書)를 써서 일제가 세운 허수아비 나라 만주국의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 15등으로 입학한 다카기 마사오는 240명 2기 졸업생 중 1등을 차지하여 대표 선서를 한다.

 

 

다카기 마사오가 쓴 혈서(血書)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오직 대일본 제국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滅私奉公)'의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 혈서다.

 

 

 

 

 

 

 

 

 

 

 

 

만주군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입학의 은혜를 받은 다카기 마사오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하면서 다카기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오카모토 미노루는 영광스럽게도 대일본제국 육군대신상을 수상하고, 일제의 중국 침략 전초기지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된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 들어갔고, 1946년 귀국한다.

 

 

 

 

 

 

 

 

 

 

 

 

남한에 돌아온 박정희는 당시 군(軍) 경력자들 단기과정으로 교육한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2기로 졸업하여 육군소위로 임관한다.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면서 공산주의자인 형 박상희와 함께 남로당 활동을 하였고,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되어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를 받았고, 10년 형으로 감형받고 다시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강제 예편당한 박정희는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9기 출신이며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있던 백선엽의 배려로 육군 정보국 문관으로 일했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자 현역 소령으로 복귀한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스스로 자신의 어깨 위에 별 4개를 붙이고 전역한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이 된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던 다카기 마사오는 광복 후 빨갱이로 변신하였고, 4.19 혁명 후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2기 동기생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을 맞고 영욕의 생을 마감한다.

 

 

 

 

 

 

 

 

 

 

 

 

만주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를 비롯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 전신), 일본항공학교, 일본군 지원병, 일본군 장교, 만주군 출신들이 일제가 항복하고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자 대한민국 군대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배출한 일본군 출신과 친일파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의해 반민족특별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면죄부를 받게 된다.

 

 

오직 일본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일본군 출신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회의원,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외무부, 내무부, 상공부, 무임소, 건설부, 교통부, 체신부, 농림부, 무임소 장관 등과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해병대 사령관), 헌병 사령관, 육군사관학교장, 국방대학원장, 고위 장성, 사립학교 이사장 등으로 자리 잡았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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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5.28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주군관학교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버블프라이스 2017.05.28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대통령 국무총리 등을 배출한 만주군관학교 관련 포스트 아주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3. 여행쟁이 김군 2017.05.28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내용에 대해서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박정희 대통령도 보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