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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종전(終戰)된 후 비전시(非戰時, 평상시) 상태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대학살 만행

일본군의 해남도(하이난섬) 조선인 천인갱 학살사건

 

 

 

 

 

 

 

 

 

 

 

 

20세기 초부터 제국주의 열강들은 해남도(하이난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해남도(하이난섬)는 지리적 요건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물자원이 풍부했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중국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비행기로 중국 본토 공격과 동남아를 집어삼키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해남도(하이난섬)를 선택했다. 일본군에게 해남도(하이난섬)는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위해 남중국해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서 일본군과 함께 점령지에 반드시 동행하는 것이 전범 기업 진출이다. 

일본군은 1940년부터 민간기업 전문가를 동행하여 풍부한 철광석과 주석, 석회 등 다양한 자원 실사에 나섰고, 해남도(하이난 섬) 개발하기 시작했다.

 

 

1943년 3월 조선총독부는 일본군이 해남도(하이난섬) 개발에 필요한 인력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 대구, 광주, 대전, 원산, 해주, 신의주, 청주, 평양 등 조선 각지의 형무소(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조선인을 '남방파견보국대(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한다.

 

 

 

 

 

 

 

 

 

 

일본이 국가총동원법으로 조선인을 강제노역과 일본군, 군무원,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대거 강제동원하면서 인력이 부족해지자, 교도소에 수감된 제소자까지 해남도(하이난섬)에 강제 동원한 것이다.

 

 

약 2천여 명의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해남도(하이난 섬)에 끌려갔고, 해남도파견보국대로 초기에 갔던 조선인 110여 명이 가출옥(가석방)하고 총 7백여 명이 귀환하여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해남도(하이난섬) 원주민들은 강제동원된 조선인 2천여 명 가운데 나머지 1300여 명이 일본군의 잔학한 대학살 만행 아래 생매장됐다고 증언했다. 해남도 천인갱(千人坑)은 일본군의 총칼 아래 학살된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묻힌 곳을 말한다.

 

 

해남도(하이난 섬)는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로 일본군 비행장, 군사기지, 발전용 댐, 도로, 철로, 군수공장 등을 건설하는 데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중국 본토에서 중국인을 강제동원하고 연합군 포로들과 해남도(하이난섬) 원주민도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일본군과 일본 전범 기업이 조선인 및 중국인과 포로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할 때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노예와 짐승보다 못한 대우, 구타와 폭언 등의 학대와 차별, 하루 12시간이 넘는 중노동,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식량 배급, 다치거나 병이 들면 치료 없이 무조건 죽여버리는 인간 이하의 짓을 했다.

 

 

일본군은 일본이 패망하자 조선인 강제징용자를 끌고 와 갱도를 파게 하고 그곳에 조선인을 생매장했다.

일본군이 조선인 강제징용자 1,300여 명을 생매장한 곳이 바로 천인갱(千人坑)이다.

 

 

 

 

 

 

 

 

 

 

중국 하이난성(해남성)이 1995년 발행한 철제하적성풍혈우(鐵蹄下的腥風血雨) 철 발굽 아래의 피비린내 나는 비바람(부제: 일군해남성침공실록日軍海南省侵攻實錄)이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8년 조선일보가 보도하면서 우리에게도 일본군의 조선인 생매장 사건, 해남도(하이난 섬) 천인갱 사건이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강제로 끌고 온 조선인 강제징용자를 총과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불태우고 휘발유로 불을 붙이고, 생매장하는 등 대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해남도(하이난섬) 삼아시(三亞市) 남정촌(南丁村)에 살던 리(黎)족이 일본군의 조선인 대학살 만행을 겪은 후 천인갱이 있던 지역을 조선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점령한 해남도에도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있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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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8.27 0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군의 해남도(하이난섬) 조선인 천인갱 학살사건
    오늘도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어제 날씨가 하늘에 미세먼지 하나없이 구름들이 잘보이고 정말 좋았는데요,
    그런 날씨처럼 맑고 상쾌한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7.08.27 0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역시 역사 공부 하고 가네요

  3. Deborah 2017.08.27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일본사람들 정말 인간도 아니군요 ㅠㅠ

천인공노할 일본 제국주의의 대학살 만행

일본군의 해남도(하이난섬) 대학살 만행과 한국인 천인갱(天人坑) 학살사건

 

 

 

 

 

 

 

 

 

 

 

 

일본 제국주의는 1937년 중일전쟁과 1942년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일본군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전시(戰時) 및 비전시(非戰時, 평상시)체제에서도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의 대학살 만행으로는 세상에 잘 알려진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을 비롯하여 난징대학살 못지않게 수십 만의 민간인을 대학살 한 만인갱(萬人坑)과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하이난섬(해남도) 대학살이다.

 

 

 

 

 

 

 

 

 

 

난징대학살과 만인갱, 해남도(하이난섬) 대학살의 공통점은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이면서 민간인 대학살 만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난징대학살과 만인갱 대학살, 해남도 대학살 만행에는 중국 군경이 포함되어 있지만, 희생자 대다수가 중국 민간인이다. 만인갱 사건의 대다수는 비전시에 자행된 만행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 시기에 자행된 해남도(하이난섬) 대학살 사건은 중국인에게 잊지 못할 아픈 역사로 남아있고, 한국인에게도 강제노역과 이른바 '천인갱(天人坑)' 학살사건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해남도(海南島, 하이난섬)은 중국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 남중국해에 있는 섬이다.

하이난섬(해남도)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 점령하에 있었고, 이후 중국 국민당 정부가 관할하다 1950년 중국 공산당에게 빼앗기면서 중국 영토가 되었다. 해남도(하이난섬)은 대만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가장 큰 섬이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중국 동북쪽에서 밀고 내려갔으나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어려움에 부닥친다.

중국군은 동남아시아의 버마(영국령), 인도차이나(프랑스령)로부터 상당수의 군수물자를 보급받아왔다.

 

일본군은 중국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논의했지만, 프랑스와 영국과 외교적 마찰을 염려하는 의견이 있어 한동안 진척이 없었다. 일본군은 중국군의 해외 군수물자 보급로를 차단하고 군사적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남도(하이난섬)에 상륙한다.

 

 

 

 

 

 

 

 

 

 

1939년 2월 9일 일본군의 해남도(하이난섬) 기습 상륙작전이 시작됐고, 불과 일주일 만에 해남도(하이난섬)를 점령한다.

그러나 공산당 게릴라가 계속해서 저항하면서 일본군의 피해가 늘어나자, 일본군은 게릴라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군의 중국 공산당 게릴라를 소탕하는 군사작전 과정에서 민간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혹한 대학살 만행을 저지른다. 특히 일본군은 보복성 대학살 만행을 저지르는데 해남도(하이난섬) 남자 3분의 1이 일본군에 의해 희생됐다.

 

 

 

 

 

 

 

 

 

 

1930년대 초에 해남도(하이난섬) 거주 인구를 약 250만 명으로 추정하고, 70여 년이 지난 현재 해남도 인구는 약 900만 명에 근접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930년대 초 250만 명의 해남도 인구를 남녀 성별로 절반씩 분류한다고 가정하면 각각 125만 명씩으로 남자 사망자 3분의 1이면 40만 명에 이를 것이다.

 

 

1930년 초에 조사하고 근 10년이 지나 일본군이 해남도를 점령할 때는 인구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일본군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해남도에서 대학살 만행을 저질렀을 당시 남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남도(하이난섬)를 점령한 일본군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7년 동안 강제노역과 약탈, 강간과 학살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자원수탈을 시작으로 해남도(하이난섬)를 군사기지화 하기 위해 비행장, 항만 시설, 군사기지, 군수공장, 자원수탈을 위한 산업시설 건설 등에 해남도(하이난섬) 주민을 동원했다.

 

 

 

해남도(하이난섬)에는 원주민 말고도 인근 지역에서 포로가 된 연합군과 중국 본토 중국인 및 '남방파견보국대(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한국인도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일본군의 대학살 만행이 저지른 해남도(하이난섬) 천인갱 사건은 일본이 이미 패망한 이후에 저질러진 일본군의 평상시(비전시非戰時)의 민간인 대학살 만행이다.

 

 

 

일본군의 해남도(하이난섬) 조선인 대학살 만행 '천인갱(千人坑)' 사건이 1998년 세상에 알려진다.

1998년 3월 2일 조선일보가 중국 정부가 만든 일본군 침략기록 '일군해남성침공실록日軍海南省侵攻實錄' 내용 속에 해남도(하이난섬) 조선인 대학살 만행, '천인갱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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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8.26 0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일본군 해남도(하이난섬) 대학살 만행과 천인갱 학살사건" 과 관련해서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7.08.26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역사 공부 잘 하고 갑니다

  3. 죽풍 2017.08.26 2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일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난징대학살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는데 하이난섬 민간인 학살도 있었군요.
    잘 알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