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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우주변화의 원리 한동석 지음 신국판/양장/462쪽/

 

 

천기누설을 너무 많이 하여 하늘에서 잡아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경지에 있던 한동석 선생의 학문 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도학 사상의 결정판!

 

동서양의 우주론, 인간론, 심성론, 종교론의 근본을 정확히 짚어낸, 출간 후 30여 년간 동양학 및

한의학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음양오행의 운동법칙이란 우주의 변화법칙이며, 만물의 생사법칙이며, 정신의 생성법칙이므로 우주의 모든 변화가

이 법칙 밖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법칙의 원리를‘우주변화의 원리’라고 명명한 것이다. 」

-머릿말 중에서-

 

 

[내용소개]

 

과학이 발전하여 사물을 쪼개고 쪼개보니 원자가 나오고 원자를 살펴보니 +의 양자와 -의 전자 그리고 중성자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동양적 관점에서 보니 음양론과 너무나 부합되는 사실이어서 서양의 과학자들까지도 여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연구한 많은 책도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동양학의 수준이 높지 않아 그저 한갓 얘깃거리로 떠돌거나 견강부회(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로 몰리기까지 했다.

 

한동석 선생도 서양의 현대과학을 동양학에 접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토화작용이라는 우주발전과 수렴 논리에 적용시키고, 에너지의 본질에 대한 탐구, 아직 미완성 상태인 핵융합의 가능성 등을 논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사고가 진정한 우주변화의 원리라면 당연히 현대 과학과도 일치하여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물을 파되 넓게 파라’

한동석 선생의 학문에 대한 자세이다.

과학뿐 아니라 그는 서양 철학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탈레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서양철학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후편에 나오는 정신론과 본체론은 인간 사유의 극치라 할 만하다. 우주정신과 인간정신을 설명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적어도 동양은 정신을 단순한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하긴 한의학은 정신병도 물리적 차원의 처방으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음양오행의 원리이다.

음양오행은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밝히고자 했던 선철(先哲)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오늘날 과학문명에 밀려서 미신으로까지 치부되기도 했지만 최근 뜻 있는 학인(學人)들이 이 학문의 세계에 많이 뛰어들고 있어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사실 음양오행설이 세상과 멀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심오한 논리와 극도의 난해함에 있다. 누구나 일정한 공부를 하면 이해할 수 있는 과학과 달리 음양오행설은 웬만한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그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선(禪)공부의 경지보다 더 어렵다고 할 만하다. 이 방면의 최고봉인 소강절 선생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아직 한권도 출간되지 않은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동석 선생의 이 책도 난해함으로 악명이 높다. 동양학도라면 누구나 경모(敬慕)하지만 감히 다가서기 어려운 그러한 자리에 놓여있었다. 더구나 한글세대들이 판치는 최근에는 더더욱 경외(敬畏)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원출판사에서는 30 년전 출간된 과거의 판본을 과감히 한글세대에 맞게 고치고 몇몇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조판을 새롭게 하여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기타 책을 읽다보면 눈에 띄는 내용들

 

사상체질의 원리

 

이제마 선생은 단순히 인간을 4체질로 분류한 한의사가 아니다. 과거의 동양철학은 본질을 위주로 논하였다면 이제마 선생은 현실적인 면을 대비시킴으로써 변화원리를 탐구하였다. 예를 들면 목(木)이라고 하면 보통 나무라고 한다. 철학적으로 목의 성질은 용솟음치는 생동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무의 모습은 어떠한가? 딱딱하고 굳어있는 모습이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대비를 시켰을까? 그것이 바로 본질과 현상의 문제이다. 쉽게 설명하면 부드럽고 생동적인 목은 현실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딱딱한 성질의 금(金)의 작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나무의 모습이 나온다.

 

 

지축을 둘러싼 거대한 렌즈의 변화를 밝힌 묵자

 

묵자는 동양 사상가중 꽤 뛰어난 고대 과학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묵자는 지구 대기권 밖에 태양빛을 모아서 반사하는 거대한 렌즈가 있다고 하였다.(동양철학에서는 이를 상화(相火)라고 한다) 이 렌즈의 작용에 의해 한 여름 폭염이 하지를 지나고 한참 후까지 지속된다고 보았다. 망원경도 없던 시대의 사람이 어떤 근거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사고를 하게되었는지 흥미롭다.

 

그밖에도 지축이 왜 기울어져 있는가? 윤회는 어떤 원리에서 이루어지는가? 정신과 육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은 우주에서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간과 동물은 무엇이 다른가? 우주는 어떻게 탄생되고 성장하며 앞으로의 우주의 모습은 어떠한가? 선악이란 무엇인가? 등등 평소 왜? 왜? 왜? 라는 질문을 던지길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주요목차]

머리말

緖論

 

전편 법칙편(前編 法則篇)

 

제1장 총론(總論)

제1절 서양 철학의 세계관 비판

1. 본체론 비판(本體論 批判) 2. 우주론 비판(宇宙論 批判)

제2절 동양철학의 우주관(宇宙觀)

제3절 사물(事物)과 개념(槪念)

 

제2장 오행(五行)과 운(運)

제1절 오행론(五行論)

1.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의 발생과 본질 2. 오행(五行)의 개념(槪念)

3. 오행 개념의 질량 변화(東武의 五行觀) 4. 오행의 상생(上生)과 상극(相克) 5. 오행의 변극(變極)

제2절 오운론(五運論)

1. 오운(五運)의 개념(槪念)과 방위(方位) 2. 오운(五運)과 물(物) 3. 운(運)의 대화작용(對化作用)

4. 오운(五運)의 계시 5. 수화일체론(水火一體論)과 탈레스의 思想

 

제3장 육기론(六氣論)

제1절 육기(六氣)의 개념(槪念)

1. 육기(六氣)의 일반적 개념 2. 육기(六氣)의 생극(生克) 3. 개념(槪念)의 변화(變化)

제2절 육기(六氣)의 변화(變化)

1. 육기(六氣)의 운동원리(運動原理) 2. 육기(六氣)의 대화작용과 구궁팔풍운동(九宮八風運動)

3. 육기(六氣)의 자화작용(自化作用)

 

제4장 상(象)과 수(數)

제1절 상(象)

1. 상(象)의 개념과 성립 2. 수상(數象) 3. 괘상(卦象) 4. 물상(物象)

제2절 자연수(自然數)

1. 수(數)의 개념 2. 수(數)의 성립(成立) 3. 수(數)의 변화(變化)와 중(中)

 

후편 변화론(後編 變化論)

 

제5장 우주의 변화와 그의 요인

제1절 토화작용(土化作用)

1. 토화작용(土化作用)의 삼원운동(三元運動) 2. 토화작용(土化作用)의 오원운동(五元運動)

3. 토화작용(土化作用)에 대한 현대적 고찰

제2절 인신상화론(寅申相火論)

1. 인신상화(寅申相火)의 성립 2. 인신상화(寅申相火)의 실현

제3절 금화교역론(金火交易論)

1. 금화교역(金火交易)의 선후천적(先後天的) 고찰 2. 금화교역(金火交易)의 운기론적(運氣論的) 고찰

3. 일부(一夫)의 교역관(交易觀)

제4절 우주운동(宇宙運動)과 원자운동(原子運動)

 

제6장 우주의 운동과 변화

제1절 인사(人事)와 변화

1. 인간의 본질과 모순 2. 인간의 생활(生活)과 변화(變化)

제2절 물질(物質)의 변화(變化)

1. 물질(物質)의 화생(化生) 2. 물질의 변화

제3절 변화(變化)와 종(種)

 

제7장 정신론(精神論)

제1절 우주정신(宇宙精神)

1. 우주정신(宇宙精神)의 생성(生成) 2. 우주정신(宇宙精神)의 본체(本體)

제2절 인간정신(人間精神)

1. 인간정신(人間精神)의 형성 2. 정신(精神)의 운동과 기혈(氣血)의 동정(動靜)

3. 인간정신(人間精神)의 유전(遺傳)과 수요(壽夭)

제3절 인간정신(人間精神)의 통일(統一)

1. 인간과 총명(聰明) 2. 종교정신(宗敎精神)과 도(道) 3. 정신(精神)의 생사(生死)

 

제8장 우주의 본체(本體)

제1절 우주의 본체(本體)와 상(象)

1. 태극도설(太極圖說) 2. 삼극설(三極說)

제2절 우주본체(宇宙本體)의 兩面性

1. 창조본체(創造本體)와 운동본체(運動本體) 2. 본체(本體)와 그의 작용변화

 

제9장 신비(神秘)의 행로(行路)

제1절. 방황(彷徨)의 길

1. 꿈을 타고 20년 2. 신비성(神秘性)의 매혹(魅惑)

제2절 우주고발(宇宙告發)의 꿈

1. 지성(至誠)의 여로(旅路) 2. 천국(天國)의 법정(法廷) 3. 신비(神秘)의 문호개방(門戶開放)

 

저자 한동석 선생에 대하여

책을 발간하며

색인

도표목차

 

 

우주의 주재자,통치자,참하나님이신 증산상제님의

통치원리가 바로 우주변화원리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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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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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두암斗庵 한동석韓東錫 (1911 - 1968)

한동석 선생님 일대기

 

(1911년)
辛亥年 陰曆 6月5日(陽曆 6月30日) 寅時生. 출생지는 함경남도 함주군下朝陽面. 淸州韓氏 禮賓尹公派 22세손으로 韓希春과 李氏와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태어날 때 역산으로 나와 난산이었다고 함.
유년기
五老里 小學校(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님.
13
집안에서 정혼한 辛亥生 金氏와 결혼.
15~16
영생중학교 중퇴
17~18
장진으로 감. 초혼부인과 딸이 하나 있었으나 이혼함.
20대초
만주 용정에 가 있었다고 함.
27~28
함흥으로 가서 장사를 함. 재혼을 하고 두 딸을 둠.
32
부인과 死別한 후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게 됨.
35세 前後
조선민주당 함경남도 조직국장 역임.
40
6 25발발 직후, 함흥 민선 경찰국장을 지내다 월남하여 부산으로 내려옴.
세번째로 재혼하여 1남 1녀가 있었음.
41
부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이와 동업하여 진료를 시작함. 네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부인이 출가하여 스님이 됨.
42
釜山 影島에서 진료하면서 동양의학전문학원에서 강사로 출강.
43
釜山 影島에서, 수강생이었던 설태훈 등과 함께 제2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 면허 취득 후, 정식으로 仁溪漢醫院 개원.
45~46)
설태훈 등과 역학원론의 저자인 韓長庚 선생에게 주역을 배움.
46
李沃子 氏와 결혼. 12월에 상경하여 仁寺洞에서 韓東錫漢醫院 개원.
50
동양의약대학에 출강하여 내경을 강의함.
50 前後
內經 運氣篇, 周易 등을 강의함. 일본의 天理敎大學에 6,7개월간 원고를 연재함.
"宇宙變化의 原理" 執筆 (틈틈이 鷄龍山으로 가서 沐浴齋係 후 원고를 정리하였다고 함)
53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사를 편입 수료함. 4월1일 대한한의학회 초대이사로 임명됨.
55
이후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석사학위는 받지 못함.
56
인사동에서 돈암동으로 이사함 "宇宙變化의 原理" 초판 발행
56~57
"東醫壽世保元註釋" 초판 발행. 서서히 자신의 죽음을 예감함.
58
高血壓, 痺證. 喉頭癌(후두암) 등으로 투병함. 腦卒中(뇌졸증)으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됨.


生日인 陰曆 6月5日(陽曆 6月 30日)에 자신의 生時인 寅時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함. (사망하기전 인시를 넘기면 더 살수 있을 것이라고 주변사람에게 예고함. 하지만 인시를 넘기지 못하고 대 의원이셨던 선생님은 아이러니하게 후두암이라는 암으로 돌아가심..)

 

 

한동석 선생 저서

                                     

 

                          우주변화의 원리                                    동의수세보원주석

 

 

한동석 선생 일화 (1)

 

평상시의 한동석 선생님


선생은 명예와 부를 구하지 않고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안의 경제권도 직접 전담하여 관리하였으며, 주로 남대문 시장에서 싼 옷만 사 입었고, 부인에게도 그런 것을 사주었다. 선생은 돈을 함부로 쓰면 돈의 보복을 받고 물질을 함부로 남용하면 반드시 물질의 보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반면, 대의명분이 있는 일에는 목돈을 내놓았다. 속되고 안일한 것에 빠지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선생의 집안은 지방에서 올라와 유학하던 선생의 조카들이나 다른 친척들로 항상 붐볐다고 한다.


선생은 술은 드시지 않았고 담배는 즐겼다. 술은 젊은 시절에는 마셨으나, 후에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하여 입에도 대지 않았고, 담배는 즐겨 피운 편이었다. 영화와 바둑에 취미가 있었는데, 영화를 보러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갔다가 영화만 보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바둑에도 취미가 있었고 바둑계의 원로들과도 교분이 있었다. 선생의 기력은 아마추어 3단의 실력이었다.

 

김수영 7단의 부친인 김탁씨와 같은 함경도 고향출신이어서 이를 통해 조남철9단과도 알게 되었다. 조남철 9단은 본인이 워낙 약골이어서 한선생님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그 때를 회고했고, 본 저자에게 김탁씨의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김수영 7단을 소개했다.(기타 일화 참조:운영자註) 김수영 7단은 어릴때 부터 선생에게서 약을 지어먹곤 했고 특히 조남철 9단과 친했으며 김탁씨의 후원을 받던 조치훈 9단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전에 한의원에 와서 인사를 하고 떠났다.


선생은 인사동 네거리에서 개원을 하고 있었고 설태훈 선생은 가까운 곳에서 개원을 했기 때문에 서로 왕래하기가 좋았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서로 내왕하였는데 주로 건국대학교 분교(인사동) 근처에 있던 나비다방에서 만났다. 선생은 밤을 새워 공부하였고 새벽에는 그 곳 나비다방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커피한잔씩을 마시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들고 나비다방에 나가서 공부하다가 10시 쯤 다시 들어와 아침식사를 하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생각할 것이 있거나 책을 보고 싶으면 한의원에서 나와 나비다방을 찾곤 했는데 선생을 만나려면 그 나비다방에 가야 만날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선생은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황제내경을 옆에 끼고 다녔으며 인사동 골목길을 다닐 때나, 아침에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갈 때에도 항상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외우곤 했다. 부인인 이옥자씨의 말에 의하면 선생은 "나는 의사인데 이것은 항상 놓지 말고 외워야 한다"고 하며 약성가를 아침저녁으로 외웠다고 하며, 한봉흠 교수는 황제내경 운기편일 것이라고 했다.


1960년 전후인 50세 전후에는 내경 운기편, 류경, 주역, 본초 등을 한의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한의원2층에서 강의하기 시작했고, 동아.조선일보 등의 일간지에 한방관련 기사를 투고하기도 하고 양방의사들과 논쟁을 벌이는 글을 싣기도 했다. 그리고 틈틈히 일본의 천리교대학에 6, 7개월간 음양오행에 관한 원고를 쓰고 이양구씨가 이를 번역하여 연재하기도 했으며,

 

이 때부터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여름에 한달씩 계룡산으로 가서 숙소를 정해두고, 매일 아침 시냇물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난 다음에 원고를 정리하곤 하였다.


1960년에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에 출강하게 되었다. 4.19 혁명을 앞두고 있던 때에 동양의대에는 폐쇄령이 내려져 있었고 몇몇 교수들이 학교를 떠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과 다시 동양의대의 임시관리책임자였던 전 서울신문사사장 오종식 씨가 협의하여 교수충원을 시도하게 되었다. 조교와 학생들이 추천하면 검토하여 발령을 내는 방식이었으며 그때 추천받은 사람들은 모두 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에 학년대표를 맡고 있던 문독전 전 경희대 한의대 교수와 이덕준씨가 한동석 한의원으로 내방하였고 그때 선생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선생은 동양의대의 강사로 출강하게 되었고 6개월 정도 후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 동양의대로 발령을 받게 된 사람은 선생 외에도 윤길영, 안병국 교수가 있었다.


이 무렵 가까이 지내던 조재관 교수가 총장으로 있던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하여 정치학사를 63년 2월에 수료하였고 성균관 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석사학위는 받지 못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기 위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논문은 현재 성균관 대학교에 보관되어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엇갈리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러한 제목과 주제로 논문을 쓰려 하였으나, 당시의 선생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유승국 박사가 그런 거창한 주제의 논문을 선생이 어찌 쓸 수 있겠느냐는 투의 말을 하자 기분이 상해 아예 논문을 쓰지도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과 조금 다른 것은 당시 지도교수였던 유승국 교수의 말에 의한 것인데 그 원고를 읽어보니 논문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소설이나 수필과도 같은 것이어서 논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원고를 탈고하였는지, 아니면 계획만 가지고 있다가 지도교수와의 의견충돌로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선생의 마지막 제자인 오세정씨의 증언에 의하면 결국 그 원고를 반 정도로 줄인 것이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했다.


동양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였으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동양의약대학의 제2대 학장으로 양방의사인 이종규 박사가 취임하자 그 날로 교수직을 그만 두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이종규 박사와는 평소에 교분이 있었고 처형이 되는 이영자씨, 이영자씨의 동료이자 선배인 김기조 씨 등과 함께 서로 친한 사이였지만, 한의과대학에 양방의사가 학장을 하는 것은 한의사를 모독하는 것이며 불합리한 처사라고 하며 동양의약대학의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이 시기에는 강의나 기고 등 활발하게 외부적인 활동을 하였다. 고위층 인사들과의 교류도 적지 않았으며, 한의사협회의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대학한의학회가 성립되면서 이와 더불어 63년 4월 1일에는 대한한의학회 초대이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 무렵에는 한의학회보에 임상경험을 기고하면서 다른 한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하였고, 황제내경 강좌에 많은 글들을 연재하였고 또한 대한한의학회가 개최하는 각종 강연에 강사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다.


1966년 인사동에서 삼선교 돈암동 쪽에 있는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였다. 당시에 성균관대의 모교수가 여기서 살았는데 이 집이 흉가라 하여 헐값에 내놓고 이사간 집을 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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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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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주재자, 통치자 하나님이신 증산상제님의

통치원리(이법理法) , 우주변화의 원리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께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법法(진리眞理)은 무엇일까요?

증산상제님의 도전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주 변화의 근본정신, 생장염장

1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2 해와 달이 나의 명(命)을 받들어 운행하나니

3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천지개벽의 이치, 역(易)

4 천지개벽(天地開闢)도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5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易)에 들어 있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20)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

(증산도 도전 4:58:4)

주역(周易)은 개벽할 때 쓸 글이니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알리라.

(증산도 도전 5:248:6)

 

우주통치자 하느님이신 증산상제님께서는 당신님께서 다스리시는 우주의 통치원리는 역易(복희역,주역,정역)에 들어 있으며 그 기본법칙은 생장염장의 ’라고 하였습니다.

 

 

 

생장염장의 원리 다른 말로 우주변화의 원리, 음양오행의 운법칙이라고 합니다.

 

 

"음양오행의 운동법칙이란 우주의 변화법칙(變化法則)이며, 만물의 생사법칙(生死法則)이며, 정신의 생성법칙(生成法則)이므로 우주의 모든 변화가 이 법칙 밖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법칙의 원리(原理)를 [우주변화(宇宙變化)의 원리] 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개인의 창작이 아니고 역대 성철(歷代 聖哲, 東洋)들의 합심협작(合心協作)의 결정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진리(眞理)가 있으니 이것은 상대적 진리가 아니고 절대적 진리이다." (한동석,우주변화의 원리 11쪽)

 

 

 

한동석 선생 약력

1911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 선생은 한국 사상사에 있어서 신화적인 존재이다.

"우주변화 원리"가 1966년 출간된 이래로 이 책은 한의학도와 동양사상 연구가들에게 있어서

한번쯤 거쳐야만 되는 거대한 산과도 같았다.

 

선생의 심오한 정신세계에 푹 빠져 하늘처럼 떠받드는 후학들도 상당하다.

선생에 얽힌 일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공부를 한번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무섭게 공부를 하셨고, 성격은 대쪽과 같아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았으며,

그 기개와 카라스마는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의사로서 선생은 당시 명의로 이름을 떨쳐 의료 선진국인 독일에서 치료를 받으러 올 정도였고,

그가 남긴 '동의수세보원 주석'은 사상의학四象醫學을 공부하는 사람의 필독서이다.

 

천기누설을 너무 많이 하여 하늘에서 잡아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생의 학문세계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 넘는 경계였으니, 그가 케네디나 박대통령의 횡사를 예견하고

심지어 남북통일의 시기까지도 예측했다는 주변의 말은 그가 가진 능력의 단편일 뿐이다.

 

동양정신과 서양정신을 넘나들고, 고대철학에서 현대 과학문명까지 그 어디도 선생의 탐구욕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우주의 주재자,통치자,참하나님이신

증산상제님의 통치원리가 바로 우주변화원리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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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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