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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김부식 삼국사기 국보 지정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8. 3. 3.

고려 시대에 편찬되고 조선 시대에 인출(印出)된 김부식의 『삼국사기』

보물 제525호와 보물 723호에서 국보 제322-1호와 국보 제322-2호로 승격 지정

 

 

 

 

 

 

 

 

 

 

 

역사서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로 구분됩니다.

정사(正史)는 국가 주도로 편찬된 역사서를 말하며, 야사(野史)는 개인이 편찬한 역사서입니다.

 

나라가 공식적으로 편찬한 관찬사서(官撰史書)와 개인이 편찬한 역사서의 차이일 뿐 정사와 야사는 올바르고 그른 역사서의 기준이 아닙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고려 16대 황제 인종의 명으로 서력 1145년 제작된 정사(正史)로 원본은 전하지 않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책 이름과 같이 한마디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흥망성쇠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당나라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고, 약 500년 후와 약 200년 후 고려 시대 중기에 쓰인 책이 김부식의 『삼국사기』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초판본(원본)은 전하지 않고 조선 시대에 인출된 『삼국사기』 판본만 전할 뿐입니다.

1970년 보물 제525호로 지정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조선 시대 중기 선조 6년(1573) 인출(印出)해 경주 옥산서원에 보관된 것입니다. 2018년 2월 22일 국보 제322-1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1981년 보물 제723호로 지정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 제322-1호와 비슷한 시기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2018년 2월 22일 국보 제322-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국보 제322-1호와 국보 제322-2호는 모두 50권 9책으로 고려 때 원판과 조선 태조, 중종 때 새로 만든 판이 혼합된 판본을 바탕으로 인출된 『삼국사기』 완질본입니다

 

 

 

나라가 편찬한 정사(正史)도 시대적 상황과 편찬자의 성향에 따라 역사가 왜곡되고 조작된 예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그런 정사(正史)의 역사서입니다.

김부식을 비롯한 11명이 1135년부터 1145년까지 참여한 『삼국사기』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본떠 기전체(紀傳體)로 편찬됐습니다.

 

 

 

 

 

 

 

 

 

 

기전체(紀傳體)란 본기(本紀), 세가(世家), 열전(列傳), 지(志), 연표(年表) 등으로 서술해 편찬하는 역사서입니다. 

본기(本紀)는 황제의 역사 기록, 세가(世家)는 왕들의 역사 기록, 열전(列傳)은 황제와 왕을 제외한 인물의 역사 기록, 연표(年表)는 여러 사건 등의 연대순 기록, 지(志)는 제도와 문화 등의 기록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우리 선조의 역사지만,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중화 사대주의의 유교적 세계관으로 기술했습니다.

 

중화 사대주의자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중국 한漢족의 변방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 바로 삼국(三國)의 역사 기록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구려를 살펴보면, 소국(小國) 고구려가 감히 대국(大國) 중국에 대들어 멸망을 초래했다고 선조의 역사를 폄하하고 깔아뭉개버렸습니다. 더욱이 고구려의 후예로 통일신라와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던 대진국(발해)의 역사는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유교적 관점과 중화 사대주의 세계관으로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군주, 곧 임금의 역사 기록을 황제의 역사 기록인 본기(本紀)로 편찬했습니다.

 

 

고려는 1대 태조 왕건 황제로부터 34대 공왕까지 474년간 존속했습니다.

고려가 원나라(몽골)의 속국이 되면서 황제의 칭호가 폐지되고, 25대 충렬왕부터 왕으로 격하됩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고려는 황제국이었고, 17대 인종 황제 제위 시였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고구려 본기 10>, <백제 본기 6>, <신라 본기 12라5+통일신라7>, <열전 10>, <연표 3>, <잡지 9> 등 총 50권 9책으로 편찬됐습니다.

 

세가(世家)는 왕의 역사 기록이기 때문에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의 기록인 가(世家)는 없습니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는 왕이 통치한 나라가 아니라 황제가 통치한 나라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김부식이 비록 삼국의 임금을 황제의 역사 기록인 본기(本紀)로 편찬했지만, 실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삼국사기』가 중화주의의 춘추필법(春秋筆法) 역사 기록이다 보니 왕(王)의 역사 기록인 세가(世家)에 준해 편찬됐습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에 찌들고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 곧 식민사학자들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본기(本紀)를 왕의 역사 기록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합니다. 

 

 

 

 

 

 

 

 

 

광복 후부터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해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역사 교사를 양성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주류 강단사학자계는 왜곡되고 조작된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왕이 통치한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방송과 미디어에 나오는 역사와 사극을 보면 군주에 대한 칭호를 학교에서 배운 왕이 아닌 황제 폐하라고 하는 웃지 못할 역사 코미디가 계속됐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폐하와 왕의 호칭이 뒤죽박죽 섞이는 오류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황제와 왕은 똑같이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지만, 그 격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의 군주는 왕이고, 상국(上國) 명나라의 군주는 황제입니다.

굳이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인 황제국과 제후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황제의 말 한마디에 제후국의 존폐가 결정됐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가 만든 조작된 역사를 가르치거나 야합으로 세력화해 기득권을 주장하거나 밥벌이에만 눈이 멀어있다면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역사학자의 본분은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점령한 식민사학자들은 일제가 왜곡하고 조작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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