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STB 상생방송 - 특선 - 환구단(원구단)의 비밀

STB 상생방송특선 환구단의 비밀

 

 

 

 

 

 

 

 

 

(1) 제1부 ‘고종의 꿈, 大韓(대한)의 위대한 시작’

 

 

1) 대한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종소리

 

19세기 말, 세계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향해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그때, 동아시아의 질서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1894년 발생한 청일전쟁이다. 그리고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일본에 패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동양질서(화이華夷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국제질서가 급격히 재편되는 것을 지켜보던 고종은 마침내 자주독립의 의지를 세우기에 이른다. 그리고 1896년, 고종은 서양의 태양력을 채택하는 공식행사를 연다. 그런데 고종은 왜 자주독립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서양의 역법(曆法)을 채택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에서 역법을 제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공자가 저술한 『서경』「요전」에는 “해, 달, 별의 역상을 살펴 삼가 때를 알린다. (역상일월성신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서 보듯이 동양에서는 백성들에게 역(曆)을 통해 농사의 시기를 알려주는 것이 통치자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였다. 즉, 통치자의 역할은 사시변화와 일월성신의 규칙을 알아내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하늘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행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통치자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늘의 시간인 천시(天時)에 맞게 세상의 시간인 인시(人時)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역법은 오직 황천상제의 천명을 받은 황제만이 제정하여 반포할 수 있었다. 중국은 해마다 책력을 제후국에 반포하였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책력을 하사받은 조선은 국가행사를 함에 있어 중국의 국가행사를 피해서 해야 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책력은 조선과 일출, 일몰 시각이 다르고, 주각과 야각의 각수 차이로 인한 시차의 문제로 인해 중국의 역법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중국의 책력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달력인 향력을 비밀리에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므로 고종이 중국의 책력을 철폐했다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찾고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의지를 표명한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즉, 중국의 제후국(복속국)임을 거부하고 시간의 자주권을 확립한 사건이었다.

 

아침을 알리는 파루(罷漏)의 종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 고종.
고종이 들은 그 종소리는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계 속에 우뚝 선 자주독립의 종소리는 아니었을까?

 

본 프로그램은 당시의 시대상황, 국제질서의 재편, 조선과 주변국의 역학관계를 통해 고종의 원대한 꿈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동양에서 역법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동양에서 인식했던 중국 중심의 국가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대한大韓의 시작을 알리는 환(원)구단이 가지는 의미를 조명한다.

 

동양에서 유일하게 서양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제국주의의 세력으로 급부상한 일본, 일본은 조선과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조선침략을 계획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보호 하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청나라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은 청일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노대국(老大國)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조선과 만주에 진출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삼국간섭을 통해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에서 인정된 일본의 요동반도(遼東半島) 영유(領有)에 반대한다. 이러한 와중에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기에 이른다.

 

자신들의 거사가 수포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한 일본은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와 낭인들을 시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하기에 이른다.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마침내 1897년 2월, 러시아 공관으로 탈출하는 아관파천을 한다.

 

그리고 러시아와 외국의 비호 아래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낸다. 이후 대한제국은 독자적인 연호(광무光武)를 사용하고 나아가 국가제도의 정비 및 국사력 확충 등 근대국가 건설을 향해 나아간다.

 

따라서 본 프로그램에서는 을미사변 후 일본에 의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의 심경을 살펴보고, 고종황제가 원구단을 만들어 대한제국이 천자국임을 세계에 선포하게 된 실제적인 의도와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2) 제2부 ‘天子(천자)의 나라 대한민국’

 

1) 일제가 환(원)원구단을 축소한 근본 이유를 찾아본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있었던 우리나라의 국호이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한일합병)이 조인됨으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된다.

 

이후 일제는 1913년, 원구단을 강제 철거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조선호텔의 전신인 철도호텔을 세운다.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경내에 남아 있다. 또한 대한제국의 국호를 없애고 고종황제를 독살(1919년 01월 21일)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친왕과 의친왕처럼 왕의 칭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왕의 칭호를 계속 사용하게 한 것인가? 그것은 동양의 종법제도와 관련이 있다. 중국과 일본은 봉건제도가 있었던 나라들이다.

 

중국에서는 황제 아래 제후가 있어 황제로부터 봉토를 받아 분국을 다스리며 조공을 바쳤으며, 일본에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다이묘(영주)가 있어 봉토를 받아 다스렸다. 바로 이러한 제도에 의거하여 일본은 조선을 일본천황의 제후국으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서양 제국주의의 식민지와는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므로 본 프로그램에서는 일제가 원구단을 축소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보고, 황제와 제후국의 왕은 어떤 관계와 차이가 있었는지 제도, 복식 등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그 첫 번째 국가 대사(大事)로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2) 중국과 조선의 천단 형태를 비교하여 천자문화의 시원을 밝힌다.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고 조선과 일본을 제후국으로 인식했던 중국, 그리고 자신을 천황의 나라로 여기고 조선과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 제국주의.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황제국(천자국)의 위상이었다.

 

황제와 왕은 그 복식과 제도가 모두 달랐다. 심지어 조선은 왕이 되는 것까지도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황제와 왕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무엇일까? 그것은 황제는 하늘의 주인이신 황천상제의 천명을 받았다는 것이고, 왕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천상제께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자는 오직 황제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중국을 황제국으로 받들고 천제를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 이후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으며 천자국으로써 당당히 그 위상을 떨쳤다. 그리고 중국의 내정간섭과 영향을 자처하던 조선이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무대에 당당히 서고자 했던 그 첫 시도도 또한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등극이었다.

 

그렇다면 과거 독자적인 천자문화를 발전시켰던 중국과 우리나라, 둘 중 누가 천자문화의 기원일까? 중국의 천단과 우리나라의 천단을 비교해 보면 그 기원이 동북아 역사문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공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산문화의 핵심지인 내몽고 적봉시 우하량 유적지에서 발견된 제단·적석묘·적석총은 동북아 역사와 문화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고귀한 유적이다.

 

특히 제단은 천제를 지내던 천단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적석묘·적석총이 중국 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유적의 이동경로는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이동경로와 일치하며 이를 통해 홍산문화의 주인이 동이족, 즉 한민족임을 알 수 있다.

 

“원구단의 비밀”은 원구단을 통해 동북공정의 핵심에 천자국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동양 삼국의 치열한 다툼 속에서 동북아의 원 역사를 바로 잡고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또한 광명의 문화, ‘대한’으로 상징되는 한민족 문화의 새로운 시작이 원구단에서의 천제봉행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의 뿌리를 찾고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원구단의 원래 형태를 복원하는데 각계의 의견과 성원을 모으고자 한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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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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