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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25 미쓰비시 소유의 단도와 군함도 해저탄광 (4)
  2. 2017.06.24 다카시마탄광과 지옥섬 군함도 하시마탄광 (2)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의 비참한 삶의 현장 나가사키 해저 탄광

미쓰비시 소유의 고도(高島) 다카시마 탄광과 지옥섬 단도(端島, 군함도:군칸지마)의 하시마 탄광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의 정점에는 히로히토 일본 왕이 있었다.

그러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을 주도한 미국 측의 은혜로 히로히토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미쓰비시 그룹은 일본 제국주의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끈 대표적인 재벌 그룹이면서 전범 기업이다.

 

일본인과 점령지 국민을 강제노역시켜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와 물자를 생산하고 수송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재벌 역시 미국 측의 큰 은혜로 전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2015년 미쓰비시의 머티리얼(옛 미쓰비시 광업) 기무라 히카루 상무가 미국을 방문하여 미쓰비시 탄광 등지에서 강제노역한 미국인 전쟁포로 9백여 명과 가족 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때 적이 되어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1905년 대한제국과 필리핀을 미국과 일본이 식민지화하자고 밀약한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이후 100년이 넘게 최고의 우방이다.

 

 

 

 

 

 

 

 

 

 

 

 

미쓰비시를 창업한 이와사키 야타로다는 하층 무사 출신으로 나가사키의 무역상회의 책임자로 근무했다.

1870년 3척의 배를 직접 사서 해운업을 시작했고, 1873년 '미쓰비시상회'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였다.

 

 

1874년 일본이 대만을 침략할 때 미쓰비시가 전쟁물자를 수송하면서 메이지 정부로부터 큰 신임을 얻었고, 일본 해운업계를 독점운영하며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1894년 일본군이 조선으로 출병할 때도 미쓰비시가 물자를 운송했다.)

 

 

 

 

 

 

 

 

 

 

 

 

 

미쓰비시는 해운업에서 치중되어 있던 사업을 조선, 탄광, 광산, 은행 등으로 확대해 나간다.

 

미쓰비시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나가사키 조선소(일본 정부 소유에서 1887년 인수)와 다카시마 탄광(1881년 인수)과 하시마 탄광(1890년 인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소유로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해저 탄광 고도(高島)의 다카시마 탄광과 단도(端島, 군함섬)의 하시마 탄광은 일제가 군국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동력원 역할을 했다.

 

 

미쓰비시는 석탄사업과 조선소를 바탕으로 조선, 은행, 상사, 전기, 공업 등의 회사를 설립하여 거대 그룹으로 발전했고, 1934년 미쓰비시 중공업이 탄생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중공업'은 미쓰비시 그룹의 4대 총수 이와사키 고야타가 만든 말이다.

 

 

 

 

 

 

 

 

 

 

 

 

 

미쓰비시가 인수한 해저 탄광 고도(高島)의 다카시마 탄광과 하시마 탄광의 석탄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고도(高島)의 다카시마 탄광과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의 석탄 광산중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고도(高島)의 다카시마 탄광과 지옥섬으로 불린 단도(端島,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강제동원(강제징용)으로 한국인이 끌려간 1만여 곳 중 미쓰비시가 소유한 해저 탄광이다.

 

 

고도(高島)와 지옥섬 군함도(단도端島)는 일본인에게 근대화와 산업화를 상징하는 곳이며, 두 섬에서 채굴된 석탄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키는데 사용되었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 참회와 보상이 없는 가운데 침략전쟁을 상징하는 지옥섬 군함도 하시마 탄광을 비롯한 나가사키, 야마구치, 가고시마 등지의 메이지 시대 이후 근대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지난 2015년 일본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하는 지옥섬 군함도를 비롯한 23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상당수가 우리에게는 눈물과 한이 서린 강제노역의 현장이다.

침략전쟁의 피해 당사자국은 일본이 반성과 사죄 없이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미명아래 일방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것은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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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6.25 0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쓰비시 소유의 단도와 군함도 해저탄광에 대해 역사공부하고 갑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고, 내일도 온다고 하네요^_^ 한번 시원한 장마비 처럼 많이 왔으면 하는데 말이죠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고요
    좋은 일요일 되세요- 도생님

  2. 청결원 2017.06.25 0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네요~~

  3. 뉴론7 2017.06.25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생님은 역사적인 부분도 많이 아시겠네요
    저도 올때마다 이것 저것 알아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4. 죽풍 2017.06.25 2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쓰비시 창업의 과정을 알고 갑니다.
    행복한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강제노역)의 비참한 삶의 현장 나가사키 해저 탄광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지옥섬 고도(高島)의 다카시마 탄광,

지옥섬 군함도(軍艦島, 단도端島)의 하시마 탄광

 

 

 

 

 

 

 

 

 

 

 

 

 

 

 

일본은 19세기 중엽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면서 제국주의로 발돋움하였다.

일본 근대화의 핵심 산업으로 크게 철강과 조선, 그리고 석탄산업을 꼽는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의 지쿠호 지역은 일본 최대의 탄광 지역으로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지쿠호 지역의 300여 개 탄광에서 일본 석탄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생산해 냈다.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고 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과 1930년대 말 일본의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고 강제징용(강제노역)으로 끌려간 한국인은 임금착취, 차별과 폭행,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고, 사고로 희생된 분들이 많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일본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군사기지와 군수산업도시라는 공통점이다.

 

 

일본의 전범 기업 미쓰비시 중공업(나가사키 조선소)은 침략전쟁에 쓰인 일본 전함과 전투기 등의 각종 무기를 만들었고,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될 때 나가사키 조선소 등지에 강제징용(강제노역)으로 끌려간 한국인도 많이 희생됐다.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시의 해저 탄광 다카시마(고도高島) 탄광과 지옥섬 군함도(단도端島) 하시마 탄광 역시 미쓰비시 중공업 소유였다.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 나가사키 현에는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기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과 강제징용(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사람을 합하여 약 7만 5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가사키 현의 나가사키시에는 약 2만여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절반 정도가 전범 기업 미쓰비시에서 일했다.

 

 

 

 

 

 

 

 

 

 

 

 

 

 

군함도(軍艦島, 단도端島)보다 조금 큰 섬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고도(高島)에 해저 탄광인 다카시마 탄광이 있었다.

다카시마(고도高島) 탄광은 1695년 석탄이 발견되었고,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하여 1869년부터 석탄을 채굴하였다.

그러나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한동안 석탄 채굴이 중지되었다.

 

 

고도(高島, 다카시마)는 본래 3개의 작은 섬이었는데, 세 섬의 물길을 메워서 둘레 6.4km로 넓어졌다.

미쓰비시가 1881년 다카시마 탄광을 인수하여 최초의 근대적 탄광으로 개발한다.

 

다카시마 탄광은 지옥섬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보다 큰 해저 탄광으로 전성기에는 약 1만 8천여 명까지 거주했다고 한다.

일본 근대화의 토대를 구축한 나가사키의 다카시마 탄광은 1986년 폐광됐다.

 

 

 

다카시마(고도高島)와 하시마(단도端島, 군함도) 탄광에 약 4만여 명의 한국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고 추정되고 있고, 중국인도 다카시마 탄광과 지옥섬 군함도의 하시마 해저 탄광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군함도(하시마)는 나가사키에 속해 있는 아주 작은 섬으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지옥섬으로 불렀다. 

지옥섬 군함도의 본 지명은 단도(端島, 하시마) 그 지역 어민들은 '이소호리'라고 불렀다.

 

 

1810년경 지역 어민들에 의해서 밖으로 노출된 단도(端島, 군함도, 하시마 섬)의 석탄이 처음 발견됐다.

하시마(군함도) 탄광은 막부말기와 메이지유신(1868년) 초기까지만 해도 해저 탄광이 아니었고, 어민들이 부업으로 석탄을 내다 팔았다.

 

 

 

석탄산업은 일본 제국주의 근대화에 한 축을 담당하였고, 1875년부터 단도(端島, 군함도, 하시마 탄광)에서 석탄이 본격적으로 채광된다. 군함도(하시마 탄광)에서 채굴된 양질의 석탄은 제철소의 제철용과 선박 연료용으로 생산되었으며, 1887년 제1 수직 갱도를 파 내려가 해저 탄광이 되었다.

 

 

 

 

 

 

 

 

 

 

 

 

 

1890년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군함도 하시마 탄광을 인수하면서 일본 근대산업의 번영을 이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단도(端島, 군함도 하시마)는 길이 320m, 폭 120m의 아주 작은 섬이었다.

군함도(하시마 섬)는 1897년부터 매립을 하기 시작하여 1930년대 초반에는 길이 460m, 폭 160m, 방파제를 쌓고 매립하여 둘레 1.2km가 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꾀임과 강제징용(강제노역)으로 끌려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극심한 노동과 고통,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경멸과 차별, 배고픔 속에 생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던 한국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고도(高島) 다카시마 탄광은 생지옥이었고, 하시마 탄광의 군함도는 지옥섬 그 자체였다.

 

해저 탄광 하시마 탄광은 1974년 폐광되면서 군함도는 무인도가 되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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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6.24 0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다카시마탄광과 지옥섬 군함도 하시마탄광 관련하여 몰랐던 역사를 공부하고 갑니다^_^
    벌써 주말인데요- 무더위 폭염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요, 좋을 주말되시길 바래요

  2. 죽풍 2017.06.24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함도, 꼭 배모양을 닮았네요.
    사진을 보니 일제의 만행이 섬뜩합니다.
    좋은 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