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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왕과 왕비, 왕세자의 수렴청정과 대리청정, 섭정(원상제)

 

 

 

 

 

 

 

 

 

 

 

 

 

 

 

 

조선왕조에는 수렴청정과 대리청정, 섭정(원상제) 등 왕을 보필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는 나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왕이다.

 

 

수렴청정과 섭정을 한 일부 왕비와 훈구(공신), 외척 등의 특정 세력이 권력을 전횡하여 왕의 권위를 넘는 등 실질적으로 왕이 국정운영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을 한 왕대비와 대왕대비, 왕세자의 지위와 권위는 왕과 동등하게 인정되어 국정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이 왕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왕을 보필 또는 대리로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이지만, 엄밀하게 말해 왕을 보좌하는 제도다.

 

 

 

 

 

수렴청정과 대리청정도 모두 섭정(攝政)에 포함하지만, 조선왕조에서는 신하가 임금을 보필할 때 외에는 섭정이란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왕대비(대왕대비)와 왕세자가 왕을 보좌하여 국정을 운영할 때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으로 구분한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왕조에서 처음 대리청정이 시작된 것은 조선 4대 왕 세종이 병들어 왕세자였던 조선 5대 왕 문종이 왕의 명으로 대리청정하였다. 수렴청정(垂簾聽政)이 처음 시작된 것은 조선 7대 왕 세조(수양대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에 의해서다.

 

 

 

 

 

 

 

 

 

 

 

 

 

 

수렴청정(垂簾淸政)은 왕이 일찍 승하하고 왕세자가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왕이 즉위하였을 때, 왕의 어머니나 왕의 할머니, 즉 왕실의 어른인 대비 또는 대왕대비가 어린 왕을 보호하고 보좌하여 왕이 성년이 될 때까지 나라를 다스리는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다. 이때도 왕이 아무리 어리고 사리판단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는 왕이다.

 

 

 

수렴청정 제도는 말 그대로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듣고 왕이 올바른 결정을 하게 도와주는 제도다.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왕에게 보고할 사항에 대하여 이미 알고 결정하였거나, 또는 처음 보고받는 일을 수렴청정하는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그 자리에서 결정을 하더라도 반드시 왕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형식을 취했다.

이런 절차가 무시되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절대 권위가 무너지게 된다.

 

 

 

조선조에서 수렴청정을 한 여성은 대왕대비 정희왕후(세조의 왕비, 성종 13세), 대왕대비 문정왕후(중종의 계비, 명종 12세), 왕대비 인순왕후(명종의 정, 선조 16세), 대왕대비순왕후(영조의 계비, 순조 11세),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의 정비, 헌종 8세, 철종 19세), 효명세자(문조)의 부인 대왕대비 신정왕후(고종 12세) 등이다.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왕이 명(命)을 내려 왕세자가 대신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다.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왕이 정사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들었거나, 왕이 병들어 정상적인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있거나 또, 다음 보위에 오를 왕세자에게 국정 운영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 경험을 쌓는 것으로 왕의 업무를 왕세자가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다. 그러나 때론 왕이 대리청정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란 전란의 특수적인 상황에서 대리청정하였고, 효명세자는 세도정치 세력의 전횡에 국면 전환을 꾀한 순조의 선택으로 대리청정이 시행됐다. 경종은 사사된 장희빈의 아들이란 불안정한 왕세자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숙종이 대리청정을 시키기도 했다.

 

 

대리청정한 왕과 왕세자(왕세제, 왕세손)는 문종, 예종, 인종, 광해군, 경종, 영조(왕세제), 사도세자, 정조(왕세손), 효명세자 등이 있다.

 

 

 

 

 

 

 

 

 

 

 

 

수렴청정(垂簾聽政)과 대리청정(代理聽政)의 청정(聽政)제도와 함께 신하들이 왕을 보필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섭정(政)이 있다.

섭정은 신하들이 임금을 보좌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로 왕권(王權)은 약화하고 신권(臣權)은 강화되기도 한다. 

 

섭정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어린 나이일 때나 다른 사유가 있을 때 임금을 보필하여 신하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원상제는 신하들의 임금을 보좌하는 섭정의 한 종류다.

원상제(院相制)는 조선 7대 왕 세조가 승하하기 직전 건강악화로 원상제를 처음 시행했고, 8대 왕 예종이 19살에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예종은 즉위와 함께 조선왕조 최초로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가 수렴청정한다.

이때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 등 왕을 보좌하는 조정 원로중신들의 원상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예종은 수렴청정과 원상제(섭정)를 동시에 받은 왕이다.

  

 

 

조선왕조에서 원상제도로 왕을 보좌하기도 했고, 섭정승 제도로 왕을 보좌하기도 했다. 

원상제도와 조정의 원로 중신(정승)들의 섭정을 받은 왕은 단종,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명종, 선조, 순조, 고종(아버지 흥선대원군)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은 정승이 아니지만, 임금의 아버지로서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하였다.

 

 

 

 

 

 

 

 

 

 

 

 

섭정은 건강이 악화되어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된 조선 6대 왕 문종이 어린 왕세자(단종)를 걱정하여 김종서, 황보인, 남지 등 고명대신에게 어린 임금 단종을 부탁하였다. 이때 황보인,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들이 일을 판단하고 임금이 결정해야 할 곳에 황색(노란)표시를 해두었다고 하여 '황표정사(黃票政事)'라 한다. 이것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의 명분이 된다.

 

고명대신(顧命大臣) 임금이 신임하는 신하에게 유언(유훈)을 내려 다음 왕을 보호하고 보필하여 어린 왕이 어진 임금으로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부탁한 신하.

 

 

 

 

대리청정은 왕의 명(命)으로 시행하는 제도다.

그런데 조선 2대 왕으로 즉위한 정종 때 조선 3대 왕으로 즉위하기 직전 왕세제 이방원에 의해 하극상 청정(聽政)사건이 일어났다.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5월 1일(1400년)

의정부(議政府)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가 청정(聽政)하기를 청하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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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6.10.22 2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리청정의 단점이 더 많은것 같아요 ㅠㅠ

  2. 슈나우저 2016.10.22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이 정말 빠르네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 ^

조선의 창업 군주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國母) 신덕왕후 곡산(谷山) 강씨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정비(正妃)는 신의왕후 청주 한씨다.

청주 한씨는 이성계와 사이에 6남 2녀를 두었다.

 

 

진안대군 이방우, 영안대군(조선의 2대 왕 정종) 이방과(이경), 익안대군 이방의, 회안대군 이방간, 정안대군(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 덕안대군 이방연 등 6명의 아들과 경신공주, 경선공주 2명을 낳고 조선이 창업되기 한 해 전에 사망하였다.

 

 

 

 

 

청주 한씨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의 부인이었고, 조선의 2대, 3대 왕의 어머니였지만, 조선 최초의 국모가 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영안대군 이방과가 조선의 2대 왕 정종으로 즉위하고 어머니 청주 한씨를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승격해서 모셨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태조 이성계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신의왕후는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하였다.

 

 

 

 

 

 

 

 

 

 

 

 

 

 

조선왕조 최초의 국모(國母, 왕비)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왕비에 오른 계비(繼妃) 곡산 강씨 신덕왕후(神德王后)다.

신덕왕후 강씨는 고려 권문세족이었던 곡산 강씨 강윤성의 딸이다.

 

 

고려의 무인 이성계는 개경의 권문세족 강윤성의 사위가 됨으로써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신의왕후 강씨는 이성계의 단순한 내조자와 권문세가의 딸에 그치지 않았다.

 

 

 

 

 

강씨는 지략이 뛰어난 여장부였으며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 조언가 역할을 하며 조선왕조 창업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한 1392년(태조 원년)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 최초의 왕비(국모)가 되어 현비(顯妃)로 봉해졌다.

 

 

조선 창업에 공헌한 만큼 정치적 야심도 컸던 신덕왕후 강씨는 정도전 등과 뜻을 같이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을  조선왕조 최초의 왕세자로 만든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는 스무 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났다.

 

태조 이성계는 당시로써는 작지 않은 나이였던 40대 중반에 신덕왕후에게서 3명의 자식을 얻었다.

늦게 얻은 무안대군 이방번과 의안대군 이방석, 그리고 경순공주는 이성계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었다.

 

 

 

 

태조 이성계와 정비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음에도 1392년(태조 1년) 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11살 난 둘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무리수를 둔다.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이방석이 11살일 때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큰아들(진안대군 이방우)은 삼십 대 후반이었고, 다섯째 아들(정안대군 이방원)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였다.

 

 

 

신덕왕후와 정도전,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만든 분란불씨는 1, 2차 왕자의 난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불러온 원인이 된다.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강씨는 지병이 악화하여 1396년(태조 5) 승하한다.

 

 

 

 

 

 

 

 

 

 

 

 

 

 

조선왕조 창업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이방원은 정치적 야심이 컸다. 그러나 왕세자 책봉은 왕의 권한이었다.

 

 

조선왕조 창업에 기여한 신의왕후 소생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불평과 불만은 쌓여갔다.

결국, 1차 왕자의 난 때 왕세자 이방석은 폐위되고 무안대군 이방번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경순공주는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후처의 아들이 조선왕조의 첫 왕세자가 되어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태종 이방원은 '적장자계승'과 '적서차별'의 원칙을 만들게 된다.

 

 

 

 

 

 

 

 

 

 

 

 

 

 

조선왕조 최초의 여왕 신덕왕후 강씨가 승하하자 태조 이성계는 덕수궁 뒤쪽에 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고 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으로 등극하고 나서 신덕왕후 강씨의 능은 현재의 정릉(당시 양주)으로 옮겨진다.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였던 신덕왕후 강씨는 후궁으로 강등되었고 능도 묘로 격하되었다. 

 

 

후궁으로 강등된 조선 최초의 국모(왕비) 신덕왕후 강씨는 1669년(현종 10) 우암 송시열이 신덕왕후의 복위 상소를 올린다.

조선의 18대 왕 현종대왕 이연이 후궁으로 강등됐던 강씨를 신덕왕후로 복위시키고, 신주를 종묘에 모셨다. 

 

 

 

후궁의 묘로 270여 년간 방치됐던 곡산 강씨의 묘는 신덕왕후로 복위되어 정릉으로 정비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이며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곡산 강씨의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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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10.05 0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덕왕후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