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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곡산 강씨

by 도생(道生) 2016. 10. 5.

조선의 창업 군주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國母) 신덕왕후 곡산(谷山) 강씨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정비(正妃)는 신의왕후 청주 한씨다.

청주 한씨는 이성계와 사이에 6남 2녀를 두었다.

 

 

진안대군 이방우, 영안대군(조선의 2대 왕 정종) 이방과(이경), 익안대군 이방의, 회안대군 이방간, 정안대군(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 덕안대군 이방연 등 6명의 아들과 경신공주, 경선공주 2명을 낳고 조선이 창업되기 한 해 전에 사망하였다.

 

 

 

 

 

청주 한씨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의 부인이었고, 조선의 2대, 3대 왕의 어머니였지만, 조선 최초의 국모가 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영안대군 이방과가 조선의 2대 왕 정종으로 즉위하고 어머니 청주 한씨를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승격해서 모셨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태조 이성계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신의왕후는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하였다.

 

 

 

 

 

 

 

 

 

 

 

 

 

 

조선왕조 최초의 국모(國母, 왕비)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왕비에 오른 계비(繼妃) 곡산 강씨 신덕왕후(神德王后)다.

신덕왕후 강씨는 고려 권문세족이었던 곡산 강씨 강윤성의 딸이다.

 

 

고려의 무인 이성계는 개경의 권문세족 강윤성의 사위가 됨으로써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신의왕후 강씨는 이성계의 단순한 내조자와 권문세가의 딸에 그치지 않았다.

 

 

 

 

 

강씨는 지략이 뛰어난 여장부였으며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 조언가 역할을 하며 조선왕조 창업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한 1392년(태조 원년)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 최초의 왕비(국모)가 되어 현비(顯妃)로 봉해졌다.

 

 

조선 창업에 공헌한 만큼 정치적 야심도 컸던 신덕왕후 강씨는 정도전 등과 뜻을 같이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을  조선왕조 최초의 왕세자로 만든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는 스무 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났다.

 

태조 이성계는 당시로써는 작지 않은 나이였던 40대 중반에 신덕왕후에게서 3명의 자식을 얻었다.

늦게 얻은 무안대군 이방번과 의안대군 이방석, 그리고 경순공주는 이성계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었다.

 

 

 

 

태조 이성계와 정비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음에도 1392년(태조 1년) 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11살 난 둘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무리수를 둔다.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이방석이 11살일 때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큰아들(진안대군 이방우)은 삼십 대 후반이었고, 다섯째 아들(정안대군 이방원)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였다.

 

 

 

신덕왕후와 정도전,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만든 분란불씨는 1, 2차 왕자의 난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불러온 원인이 된다.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강씨는 지병이 악화하여 1396년(태조 5) 승하한다.

 

 

 

 

 

 

 

 

 

 

 

 

 

 

조선왕조 창업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이방원은 정치적 야심이 컸다. 그러나 왕세자 책봉은 왕의 권한이었다.

 

 

조선왕조 창업에 기여한 신의왕후 소생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불평과 불만은 쌓여갔다.

결국, 1차 왕자의 난 때 왕세자 이방석은 폐위되고 무안대군 이방번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경순공주는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후처의 아들이 조선왕조의 첫 왕세자가 되어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태종 이방원은 '적장자계승'과 '적서차별'의 원칙을 만들게 된다.

 

 

 

 

 

 

 

 

 

 

 

 

 

 

조선왕조 최초의 여왕 신덕왕후 강씨가 승하하자 태조 이성계는 덕수궁 뒤쪽에 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고 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으로 등극하고 나서 신덕왕후 강씨의 능은 현재의 정릉(당시 양주)으로 옮겨진다.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였던 신덕왕후 강씨는 후궁으로 강등되었고 능도 묘로 격하되었다. 

 

 

후궁으로 강등된 조선 최초의 국모(왕비) 신덕왕후 강씨는 1669년(현종 10) 우암 송시열이 신덕왕후의 복위 상소를 올린다.

조선의 18대 왕 현종대왕 이연이 후궁으로 강등됐던 강씨를 신덕왕후로 복위시키고, 신주를 종묘에 모셨다. 

 

 

 

후궁의 묘로 270여 년간 방치됐던 곡산 강씨의 묘는 신덕왕후로 복위되어 정릉으로 정비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이며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곡산 강씨의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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