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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행진의 주역,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루터킹 목사 명언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5. 11. 22.

미국 인종차별에 맞서 셀마 행진을 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을 외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명언

 

 

 

 

 

 

 

 

 

인도에서 비폭력 무저항 정신을 주도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비폭력 투쟁으로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주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 20세기 가장 유명한 명연설 중의 하나인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는 워싱턴 대행진으로 불리는 1963년 8월 28일 흑인 20만 명이 운집한 링컨 기념관 앞에서 시작됐다. 

 

 

 

 

 

 

 

 

워싱턴 대행진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인권법안과 차별 금지 법안이 통과하는 계기가 되었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

 

1870년 미국의 수정헌법 제15조에 명시된 흑인 투표권은 근 100년이 지난 1960년대 당시에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1965년 3월 7일 미국 흑인의 참정권 쟁취운동 1차 셀마 행진이 시작되었다.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시작하여 앨라배마 주 행정수도인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는 이른바 셀마 행진은 600여 명이 동참하였다.

 

주지사와의 면담을 위한 셀마 행진은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서 경찰들 앞에 멈춰 섰고 무장한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많은 부상자가 속출한다. 이날을 '피의 일요일(블러드 선데이)'이라고도 한다.

 

 

 

 

 

 

 

 

1차 셀마 행진에 참여하지 못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틀 뒤 3월 9일에 2차 셀마 행진을 주도하였다. 2차 셀마 행진도 백인 인종차별주의자에 폭행으로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며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월 21일 제3차 셀마 행진이 시작되자 린든 존슨 대통령이 직접 연방군을 파견하여 셀마 행진 행렬을 호위하게 하였고 2만 5천 명의 대규모 시위 행렬은 앨라배마 몽고메리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셀마 행진은 1965년 9월 9일 흑인 투표권이 보장되는 '투표권리법'이 통과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에 이어 자신까지 침례교 목사가 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권운동가로 주목받으며 흑인 지도자로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1955년 백인들이 앨라배마 몽고메리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흑인이 탈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려는 움직임에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하여 1956년 미국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낸다.

 

정부의 체포, 수차례의 기소와 투,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살해 협박과 흑인의 권리와 인권을 되찾고자 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묵고 있던 숙소와 킹 목사의 집을 폭파에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비폭력 저항 운동을 주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4년 10월 14일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킹 목사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을 하였고, 학교와 노동현장 등 미국 내에서 존재하는 인종 차별 철폐에 앞장섰다.

 

1968년 4월 4일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백인 우월주의자 제임스 얼레이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암살되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을 계기로 1968년 인종과 피부색, 종교에 대한 증오범죄 피해자 보호법이 제정된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11월 2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1월 15일)을 기념하여 공휴일로 정하는 법안에 서명한다. 1986년부터 미국 최초로 일반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 공휴일이 시작되었다. (1월 셋째 주 월요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 저항을 주도한 흑인 인권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표절과 킹 목사의 주변 사람들의 증언, FBI 도청으로 나온 문란한 성생활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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