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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모택동의 문화대혁명과 토사구팽 홍위병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6. 1. 17.

중국 모택동의 권력 투쟁 '무산계급 문화대혁명'과 토사구팽이 된 홍위병의 광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용하다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면 이용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의미로,

토끼 사냥이 끝나면 토끼몰이를 했던 사냥개를 삶아 죽인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과의 전쟁이 끝나고, 승리한 한고조 유방이 개국공신이었던 한신을 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976년까지 최소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2천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중국이 폐쇄적인 공산 사회주의 국가였던 만큼 정확한 사망자 숫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못지않게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와 싸움에서 이긴 중국 공산당은 중국 본토의 주인이 되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오랜 전쟁(일본과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중국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 1953년부터 1차 5개년 계획을 시행하였다.

 

 

모택동이 주도하여 '약진', '총노선', '인민공사' 등 3가지 경제정책으로 시행된 대약진 운동은 시행되던 중에 3년간의 자연재해와 구소련의 원조가 끊기자 야심 차게 출발했던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은 중도에 좌절되고 만다.

 

 

 

 

 

 

 

 

 

 

중국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1959년 인민일보에 북경시 부시장 오함이 쓴 '해서판관' 글이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이 연극을 1965년 요문원(중국 홍위병 4인방의 한 사람)이 '해서판관'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모택동에 대한 비난, 즉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해임당한 팽덕회(彭德懷)를 옹호하는 것을 은연중에 시사하였다는 것이다.

 

 

 

 

 

 

 

 

 

 

그즈음 당권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던 모택동이었지만 인민들에게 그는 카리스마 있는 존재였다.

모택동은 당권을 가지고 있던 온건 세력(유소기- 중국 국가주석)들을 '자본주의 길을 가는 당권파', '인민공사를 파괴하고 지주와 부농의 지배를 재건하려는 세력', '반혁명 수정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여 낡은 사회 타파를 주장하였다.

 

 

 

 

 

 

 

 

 

 

모택동의 이 말에 가장 먼저 호응한 것은 북경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자극적인 구호 아래 학교 내에는 급진적 그룹이 생겨났고, 그래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일명 홍위병(紅衛兵)이라고 불린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준군사조직이었다.

 

 

 

 

 

 

 

 

 

문화대혁명은 본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다.

무산계급(無産階級)이라 함은 재산이 없는 노동자 농민 계층을 이르는 말로써, 그들에게 학자, 과거 혁명영웅, 전문가, 민주인사 등은 인민의 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1천만 명이 넘는 홍위병들에 의해 처참하게 폭행과 감금, 고문, 혹형으로 희생되었다. 1966년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문화대혁명 축하 100만인 집회를 하게 되고, 모택동과 문화혁명 소조(小組, 문화대혁명 추진조직)는 1967년 혁명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미쳐날 띄는 젊은 혈기의 홍위병들은 급기야 무장하는 등 중국을 내전 상태로까지 몰아가게 되고, 1968년 모택동은 "그대들은 나를 실망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으로서 중국의 전사들을 실망하게 했다."라는 말과 함께 홍위병들을 해산시킨다.

 

체포와 죽음을 면한 홍위병들은 군대에 입대하거나 농촌 등지로 보내졌다. 한고조 유방이 한신에게 했던 토사구팽의 모습이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모택동과 홍위병 사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정치, 경제적 혁명이 아닌 인간개조의 성격을 띤 문화대혁명은 과격한 폭력으로 나타났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계속된 중국 광란의 문화대혁명은 절대적 지지를 받고 신격화되어 개인숭배까지 된 모택동의 사망과 함께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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