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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 사라예보 사건의 역사적 배경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6. 1. 23.

유럽의 화약고 사라예보 사건으로 발생한 1차 세계대전, 칸반도 역사적 배경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면서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가 우리에게 각인시킨 가장 큰 사건이라 하겠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단 배경은 다소 복잡하지만 세르비아인이 이룩하고자 했던 동방정교 '大세르비아' 건설의 꿈, 즉 세르비아리즘에서부터 시작된다.

 

 

세르비아 전성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발칸반도에서 가장 먼저 부족 국가를 건설한 곳이 불가리아였다.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발칸반도 대부분을 차지했던 강국 불가리아는 14세기 오스만터키에 의해 망하고 만다. 그 틈을 타서 새롭게 부상한 나라가 세르비아이며 14세기 듀샨(Dusan) 왕 때 최대 전성기를 누리며 발칸반도의 강자로 등장한다.

 

그리스까지 통치하게 된 두샨왕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인 마케도니아 오흐리드로 수도를 옮기고 황제(Car 차르) 칭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발칸 전 지역을 관할할 동방정교 총대주교청을 코소보로 옮겼다.

 

 

 

 

 

 

 

 

 

 

 

그러나 불가리아를 격파한 오스만터키가 1389년 세르비아를 침공한다.

세르비아 군대는 가장 중요한 성지인 코소보에서 오스만에게 10만 대군이 전사하고 만다. 곧바로 세르비아는 소(小) 국가로 전락하였다.

 

오스만터키는 이슬람 국가였던 알바니아의 주민을 대거 코소보에 이주시켜 살게 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코소보에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다. 코소보 주민의 80%가 알바니아계다.

 

 

오스만터키에 의해 굴복당한 세르비아인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독립과 19세기 나폴레옹의 혁명전쟁 여파로 민족주의가 유입되면서부터이다. 세르비아의 전성기였던 14세기 두샨 왕시절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세르비아리즘 운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스니아에선 종교적 신념에 따라 민족을 '우리와 그들'로 구별하였다.

19세기 이전까지는 같은 남슬라브인들이었기 때문에 종교로 말미암은 인종구분은 이치에도 맞지 않았다.

단지 이익에 따라 종교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슬람을 믿으면 보스니아 무슬림, 정교를 믿으면 세르비아인,

 

그리고 가톨릭을 믿으면 크로아티아인 등 세 개의 민족으로 분류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즉 민족을 구별하는데 종교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서 다종교 다문화 다인종 국가라는 말이 생겼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독일의 전신)과 전쟁(1866년)에서 패하면서 독일지역 영향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호헨쫄레른 가문의 독일제국이 탄생한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서쪽보다 동쪽 진출에 무게를 두었다. 그리고 그때를 틈타 헝가리는 힘이 빠진 오스트리아에 대고 강하게 독립을 요구하자 헝가리를 달래려고 오스트리아는 제국의 명칭을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제국으로 바꾼다. 별 진전이 없이 국경을 두고 조용히 지내던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발칸 개입으로 분열이 일어난다.

 

러시아는 오스만이 지배하고 있던 흑해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나이 많은 제국 오스만과 한판 전쟁을 벌이고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러시아는 흑해로 진출해 부동항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그리고 몬테네그로가 각각 독립 왕국이 되었다. 때를 기다리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정교도 세르비아인이 사는 모든 발칸 지역을 세르비아에 편입시켜 줄 것을 주장했다. 특히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세르비아 왕국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反 이슬람, 反 오스만터키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보스니아의 무슬림에겐 절대 위기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오스트리아가 가만있지 않았다. 만약 세르비아가 커지게 되면 오스트리아가 동쪽으로 진출하는데 육지건 바다건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보스니아에 내정간섭을 하다가 1908년에 완전히 합병해 버린다.

 

그리고 보스니아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보스니아의 권력층이었던 무슬림의 기득권을 인정해주었다. 세르비아인은 보스니아 무슬림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고, 反 오스만터키에서 오스트리아로부터의 독립운동으로 변해가게 된다.

 

 

 

 

 

 

 

 

 

 

 

한편, 보스니아 북쪽과 서쪽에 자리한 가톨릭 국가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제국의 게르만화와 헝가리화에 저항하는 일리리즘 운동이 일어났다.

 

 

일리리즘이란 로마가 생기기도 훨씬 이전인 3,200년 전부터 발칸 지역에 살았던 일리리안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리리안이 남슬라브인들의 공통의 조상이라고 생각했고 사용하기 따라서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세르비아인이 되기도 했으며 남슬라브인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일리리즘은 전통적이면서 중립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단일 언어권을 통합하는 일리리즘은 나중에 남슬라브인들을 통합하는 유고슬라비즘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후 남슬라브인들의 나라, 즉 유고슬라비아가 탄생했다.

 

발칸반도는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입과 민족(국가) 갈등을 겪었고, 제1차 세계대전을 발생하게 한 유럽의 화약고였다.

민족(국가)과 문화(종교)적 갈등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몰았다.

잠시 평화가 찾아온 듯 보이지만, 발칸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유럽의 화약고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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