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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증산도 도전 - 청나라 황제 광세제 죽음

by 도생(道生) 2016. 1. 20.

증산도 『도전道典』 - 천지공사天地公事

서태후에 의해 청나라 황제로 옹립된 광서제의 죽음

 

 

 

 

 

 

 

 

 

 

 

중국은 자국이 세계 4대 문명 중에 하나인 황하문명을 이룩하였고, 5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중국 한漢족이 지배한 역사는 그리 많지 않다.

 

 

청淸나라 역시 중국이 수천 년 동안 오랑캐로 업신여겼만주족에 의해 건립된 나라다.

누르하치는 금金(후금)나라를 건국하여 청淸제국을 건설하는 기초를 닦았다. 순치제에 이르러 명明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 이름을 청淸나라로 고쳤다.

 

 

서태후에 의해 광서제 다음 제위를 이을 황제로 내정된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푸이)가 손문(쑨원)의 신해혁명으로 말미암아 1912년 퇴위하면서 청나라는 문을 닫고 중화민국이 탄생한다.

 

 

마지막 황제 푸이가 불과 3세에 황제에 올라 7세에 퇴위하였다. 재위 기간 내내 큰어머니와 아버지가 섭정하였다.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분열로 이미 제국의 기능을 상실한 청나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실질적으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광서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실질적인 중국의 마지막 황제 광서제, 제국시대를 마감

 

 

중국을 처음 통일하였다는 진나라 시황제(진시황) 이후 중국의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하였다.

이로써 수천 년간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황제가 다스리던 중국은 제국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광서제는 서태후에 도움으로 1875년 황제로 옹립되었다.

황제의 위에 오르면서 동태후가 먼저 섭정을 하였고, 그다음으로 서태후가 섭정하였다. 불란서, 러시아, 영국 서구열강에게 중국의 영토 일부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였으며, 청일전쟁에서도 패하였다. 격동의 19세기 말 청나라의 미래를 알리는듯한 먹구름은 그렇게 청나라를 덮어갔다.

 

 

청나라 광서제는 위기를 해결하고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뜬 변법자강책으로 1898년 무술변법으로 개혁을 시작한다.

그러나 서태후를 정점으로 한 수구파 세력의 쿠데타로 그의 개혁은 실패하고 황궁에 유폐된다.

 

의화단 운동으로 잠시 시안(서안西安)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귀환하였으나 황궁에서 유폐 생활을 하던 중 1908년 11월 4일(음력 10월 21일) 38세의 젊은 나이에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공교롭게도 다음날 지병이 있던 서태후도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야사에는 서태후가 광서제를 독살하였다는 말도 있고, 서태후 역시 독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광서제가 사망하고 100년이 흐른 지난 2008년 광서제 무덤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유골에서 비소성분이 검출되어 광서제가 독살당했다고 추정하는 보도가 나왔다.

 

갑자기 사망한 광서제와 서태후가 독살되었는지, 또 누구에 의해 독살되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상고시대 지구촌 하나의 국가 환국桓國, 원시반본으로 하나되는 지구촌

 

 

 

청나라 광서제 죽음 천지공사는 1908년 보신 천지공사지만 과거와 현재(당시), 그리고 미래의 시제가 같이 담겨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선천 세상을 문 닫고 후천의 조화 선경세계를 여시는 '세계일가 통일정권'의 천지공사를 다음과 같이 처결하셨다.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 천자신)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증산도 도전道典 5:325:2~3) 라고 말씀하셨다.

 

 

증산도 『도전道典』 5:325장 각주에는 황극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황극신은 선후천 변화의 실질적인 핵심 자리다.

 

 

이는 서양중심의 우주관, 신관, 세계관으로 교육을 받고 그런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다.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하시고

친히 곡조를 붙여 시천주주(侍天主呪)를 읽어 주시며 성도들로 하여금 밤마다 읽게 하시니라.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 "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며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러 하나니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 하고 외치시니 이때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5:325:4~11)

 

 

 

모든 것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을개벽기에 인류 시원 역사와 문화의 나라, 그리고 새 시대 역사의 중심이 되는 대한민국에 인류 역사를 움직이는 황극신이 넘어오는 것이다.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의 개벽실제상황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약자로서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天帝)이신 상제님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천자국이라 불러왔다. 천자는 서양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Son of God)'과 상통하며, 신교(神敎)를 신앙했던 동방문화에서는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했다.

 

 

천자는 본래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통치자였다. 천자는 인간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상제님)에 제사를 올렸고 제후들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사역했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랫동안 중국이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천자국을 자처해 왔다. 그러나 어불성설이다.

 

후한 시대의 채옹(蔡邕)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夷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고 하여 천자제도가 동방족 문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어로(御路) 임금의 길

 

 

불삽()은 장례 행렬의 앞·뒤쪽에 들고 가며 길잡이 역할도 한다.

아(亞) 자 형의 궁궁(弓弓)이다.

 

궁궁은 황제(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그러나 장례 때만은 누구도 예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황제의 대례복, 패슬, 면복 등에도 궁궁을 새겨 넣었다.

조선 시대 왕들은 중국으로부터 하사받은 면복을었다.(조선은 제후국으로 황제가 아님)

 

 

 

장례 길을 어로(御路)라 하는데 이는 '임금의 길'이란 말이다.

또 상여가 나갈 때 반드시 어이(御移) 어이(御移)하며 곡(哭)을 한다. 임금이 나가시니 길을 열어 망자의 상여 길을 틔워즈는 것이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저승길을 갈 때는 임금의 대권으로 삿된 기운을 물리치며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 궁궁에는 천지의 도비(道秘)가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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