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개벽중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야스쿠니 신사참배②

by 도생(道生) 2017. 6. 18.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중의원과 참의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 왕 명치(메이지, 무쓰히토)와 아들 대정(다이쇼, 요시히토), 손자 소화(쇼와, 히로히토)는 침략 정복 전쟁에 미쳐있었다.

미치광이 일본 제국주의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점령지를 폐허로 만든 장본인이다. 

 

 

 

일본 패망 후 미국을 비롯한 11개국의 연합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 책임자를 처벌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시작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면서 전쟁범죄의 최고책임자 일본 왕에게 면죄부를 준다.

 

 

일본 헌법 위에 군림하고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최고 책임자인 일본 왕은 연합국(미국)의 특혜로 전범에서 제외된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은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발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항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끝나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 A급 전범 28명을 기소되었다.

심리 도중에 사망한 2명과 정신이상을 일으킨 1명을 제외하고 7명은 사형, 16명은 종신형, 2명은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A급 전범 중에는 일본 제32대 총리 히로카 고키와 일본 제40대 총리 도조 히데키가 포함되어 있었다.

A급 전범 28명은 일본 왕의 최측근들로 일본 내각의 각료(장관)와 일본 대법원장, 국회의원, 일본군 고위장성 출신 등이다.

 

아베 신조 현(現) 일본 총리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지만, 운이 좋게 풀려났다.

 

 

 

 

 

 

 

 

 

 

 

 

연합군(미국)은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 패망 후 첫 번째 총리로 히가시쿠니 나루히코를 위촉한다.

전후(戰後) 첫 번째 총리는 다름 아닌 야스쿠니 신사를 세우고, 침략전쟁을 시작한 메이지 일본 왕의 사위로 일본 왕족이다.

 

 

전후(戰後) 일본의 첫 번째 총리는 미국의 특혜로 A급 전범이 아닌 일본 왕의 지위를 그대로 누린 히로히토 일본 왕의 고모부다.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총리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으로 A급 전범자이지만, 역시 연합국(미국)의 배려로 전범에서도 제외됐.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극동국제재판소의 전범 재판이 얼마나 문제가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고, 전쟁범죄의 책임은 내각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 일본군 수뇌부가 진다는 명치 헌법이 극동국제재판소 판결에서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제43대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일본 총리는 1945년 8월 18일 취임 이튿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다.

전후 최초로 일본 정부 수반인 총리가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내각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후대 일본 총리와 정부의 각료(장관), 국회의원, 특히 우익 성향의 일본인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물꼬를 터준 셈이 됐다.

 

 

 

 

 

 

 

 

 

 

 

 

제44대 시데하라 기주로 일본 총리는 취임 당일 1945년 10월 9일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한 차례 더 참배했다.

 

 

45, 48, 49, 50, 51대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는 1951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56, 57대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는 1957년 첫 참배 후 총 2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친형이며, 제90, 96, 97대의 현(現)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제58, 59, 60대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는 1960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1965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11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4, 65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는 1972년 7월 7일 취임하고 이튿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고, 총 5차례 참배했다.

 

 

66대 미키 다케오 일본 총리는 전후(戰後, 1945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197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제67대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는 1977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4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을 비밀리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다.

 

1979년 4월 언론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A급 전범 14명 야스쿠니 신사 합사(合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공무사(公務死)이기 때문에 합사했다고 변명을 늘어댔다.

 

 

 

 

 

 

 

 

 

 

 

 

 

제71, 72, 73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198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A급 전범 합사 이후 참배이기 때문에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제78대 미야지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199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2, 83대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1996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7, 88, 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1년 첫 참배 이후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고이즈미 준이치와 아베 신조 총리는 퇴임 후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제90, 96, 97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12월 26일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외조부 56, 57대 총리: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 61, 62, 63대 총리: 사토 에이사쿠 - 일본 총리 자격으야스쿠니 신사참배)

 

 

 

 

 

 

 

 

 

 

 

 

 

 

아베 신조 총리는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2006년 야스쿠니 신사참배, 2007년 총리 자격으로 공물 봉납했다.

2008년과 2009년 아소 다로 총리 명의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일본 총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리다.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문제가 될 때는 사적인 신분으로 참배한 것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일본의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 정당 대표와 간부 등은 혼자서 참배하기도 했고, 때론 여럿이 모여 지속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일본 총리의 부인도 신사참배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총리가 사적 또는 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수십 년 전부터 일본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들이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면서 국제문제로 이슈화됐지다.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하지 않았고, 전쟁범죄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4월 2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공물 봉납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임 소속'의 각 정당 국회의원과 현직 각료(장관) 등 9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일본 왕이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무사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설립한 이래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침략전쟁에서 죽은 다수의 군인과 소수의 민간인 등 246만여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명실공히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일본 천황을 수호하는 군신(軍神), 일본을 지키는 호국신(護國神)으로 추앙받으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246만여 위패에는 한국인과 중국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하고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다. 

 

일본의 침략전쟁 피해 당사국들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했지만, 일본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이후에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