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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말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아미스타드"에 보여진 선천 아프리카 흑인의 원한의 역사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3. 8. 2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아미스타드"에 보여진

선천先天 아프리카 흑인의 원한寃恨의 역사

 

 

 

 

 

나의 도는 상생의 대도

1 나의 도는 상생(相生)의 대도이니라.

2 선천에는 위무(威武)로써 승부를 삼아 부귀와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이것이 곧 상극의 유전이라.

3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4 만국이 상생하고 남녀가 상생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5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仁大義)의 세상이니라.

선(善)으로 사는 후천 성인시대

6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 먹고살리니

7 죄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8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 먹고살 도수(度數)를 짜 놓았노라.

9 선천은 위엄으로 살았으나 후천세상에는 웃음으로 살게 하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2:18)

 

영원한 화평의 바탕, 해원

1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2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3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4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5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6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7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4:16)

 

 

 

 

증산도 종도사님 말씀 (2002.5)

선천先天 원한寃恨에 대한 고통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 아미스타드 

 

모든 생명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이다. 당장 죽고 싶다고 하는 이들도, 폭탄이 떨어진다고 할 때, 가만히 앉아 참혹한 죽음을 기꺼이 맞겠노라고 만용을 부리는 자는 없다. “어이쿠” 하면서 순간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친다.

 

인간 생명의 꿈인 행복과 건강!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원과 한이 맺힌다. 특히 외부의 억압이나 폭력, 전쟁과 같은 극히 강력한 파괴적인 수단에 의해 생명을 그르치게 되면, 인간은 원통함을 느낀다.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 아픈 걸 말한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가슴에 깊이 맺힐 때, 한이 남았다고 한다. 한恨은 ‘맺힐 한’ 자다. 내 가슴에 내 마음에 깊이 맺힌 덩어리, 병증病症이다.

 

원통한 것은 개별적이고 개인의 삶과 역사 환경에 따라, 자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한恨이라는 건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맺힌 게 있다.

 

지금 이 원과 한의 문제를 놓고, “아, 나는 좋은 집에 태어나 배부르게 잘 먹으며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또 사업하는 것 잘 돌아가니까,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원과 한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원과 한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동양·서양을 떠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말로 잊혀질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충격적인 원한을 깊이 맺고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들, 그 고통의 실상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난 4백 년 동안 유럽에서 노동력 차출이라는 미명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잡아죽인 숫자가 6천만이 넘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란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흑인을 짐승 잡듯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긴다. 그러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참담하게 죽인다. 자, 영화를 보면서 그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보자.

 

이 흑인들의 하늘을 찢는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처절한 외마디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다.  

 

원과 한도, 고통의 밀도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깊고 깊은 게 있다. 이 원한의 실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간 인간의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증폭된다. 여기에 인간의 증오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 보복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고 한다, 척!

 

증산 상제님이 ‘이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사람, 잘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 말씀해주신 만고의 멋진 명언이 있다.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라.”

(증산도 도전道典 2:79:1)

“무척 잘산다.”에서 ‘무척’은 ‘대단히’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본래 그 속뜻은 ‘남과 척이 없다. 남으로부터 미움 사는 게 없다’는 거다. 그러니 좋게 살아야 된다. 좋게! 덕을 베풀면서! 그렇지 않고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악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다.

 

선천 인류역사라는 것은 악척의 역사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다.

문명사로 보면 전쟁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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