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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우리시대 최고의 학승 탄허 큰스님이 세상을 향해 던진 화두 '부처님이 계신다면'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4. 6. 5.

우리시대 최고의 학승 탄허 큰스님이 세상을 향해 던진 화두 '부처님이 계신다면'

 

 

탄허 스님이 생전에 강연이나 대담 등을 엮어서 만든 책

이 책에는 탄허 큰 스님의 가치관, 인생관, 우주관이 모두 들어 있다.

 

 

서력 1983년 6월 5일 한 사람이 세상의 무거운 짐을 벗어 놓고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갔다.

부친인 김홍규님이 지어준 이름은 김금택(金鐸,김금탁, 1913년 生)이고, 자는 간산(艮山)이며, 법명은 탄허(呑虛)다.

세상 나이로 71세 였고, 불교에 귀의 한지 49년이 되던 해였다.

 

 

탄허 큰스님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엄청나다.

화엄경의 대가, 주역의 대가, 노장 사상의 대가, 유선 3도(道)의 사상에 정통한 이 시대의 최고의 학승.

 

19세기말 경허 대선사를 시작으로 한국 불교의 선(禪) 불교가 중흥기를 맞아 20세기 까지 그맥이 이어져 왔다.

설법 제일 동산(1889년生), 정진 제일 효봉(1888년生), 인욕 제일 청담(1902년生), 지혜 제일 전강(1898년生) 대선사들 외에도 많은 선(禪)의 고승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탄허 큰 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탄허 스님이 '영가집'을 강의 할 때 전강 대선사가 몰래 청강한 일이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젊은 탄허 만큼 공부를 하지 못했다"며  탄허가 올리는 절을 물리치고 전강과 탄허는 맞절을 하였다.

 

설법을 잘 하기로 유명한 청담 대선사도 탄허를 만나면 주로 듣기만 하였고효봉, 금오, 월산, 고암 등의 당대 고승들도 탄허와 교류하는 것을 즐겼다.

 

서울대 법대생들이 탄허 스님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은 일이 있었는데, 강의가 끝난 후에 수강생들이 모두 출가를 하겠다고 하여 서울대 법대 한 학번이 모두 없어질뻔 했다고도 한다.

 

탄허 스님의 장자 강의를 들은 동국대 국문과 양주동 교수는 "장자가 다시 태어나 강의를 한다 해도 탄허 스님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화엄경을 원고지 10만장 분량, 전 74권을 번역하고 손가락 수술을 받는데 사리가 나왔다고도 한다.

 

씨알 함석헌도 탄허 스님에게 장자를 배워  장자의 대가가 되었으며,

경봉선사는 탄허 스님을 가르켜서 "한 300년은 살아야 할 사람이다, 오대산의 탄허를 잃는 날 한국불교도 빛을 잃을 것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탄허 스님의 부도비가 오대산 월정산에 있다.) 

 

스승인 방한암 대선사가 탄허는 '나의 아난'이다. '이미 다 배우고 들어와 더 배울게 없는 사'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탄허 스님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선(禪)과 교(敎)에 모두 정진하였다.

 

 

 

탄허 김금택, 그가 정통했다고 하는 유불선 3도(道) 사상은 어디서 왔는가?

화엄학의 대가가 될 수 있는 그 바탕은 무엇인가?

 

아버지 김홍규(1876년 生)는 국내항일운동에 가담한 공훈으로  2005년 건국훈장을 추서를 받아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청산리 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에게 2만원의 군자금을 보내는 등 당시 엄청난 군자금을 보내 독립운동을 하였다.

독립군에게 보낼 30만원(당시 쌀 한가마니 오원 삼십전)이 발견되어 압수 당하고 투옥되게 된다.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거금을 탄허 스님의 아버지 김홍규는 어디서 났을까?

김홍규는 당시 보천교(普天敎)의 목방주였다.

차경석 성도가 보천교의 수장(교주로 불림)이 되었고, 그 아래 동서남북과 중앙을 담당하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5명의 방주가 있었는데, 김홍규는 그 중 단체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윤활유와 같은 재무담당인 목(木은 生)방주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보낼 군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다.

 

 

국가나 사회의 어떤 조직이 됐든 재무(경제)는 담당은 최측근이나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담당할 수 없는 부서다.

그 만큼 김홍규가 보천교의 최고 핵심 간부였고 보천교의 가장 모범적인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 보천교 본부에서 일하던 김홍규의 아들 중에 둘째 아들이 탄허 김금택이었다.

김금택(탄허)은 보천교 본부에서 지내며 증산 상제님의 진리 세계 공부와 수행을 하며 성장을 하였다.

 

일부에서 탄허 스님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전혀 밝혀놓지 않거나, 삐뚫어지게 왜곡시켜 전하기도 한다.

보천교의 역사를 담은 보천교사와 현재 정읍 대흥리에 생존해 있는 어르신들의 증언, 그리고 보천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보천교의 최고위 핵심 간부 김홍규와 보천교 내에서 증산 상제님의 대도 진리 공부를 하던  김금택(탄허 스님)은 보천교 신도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탄허 스님의 스승인 방한암 대선사가 극찬할 정도의 '다 배워어서 들어왔다'것이 바로

보천교에서의 증산 상제님의 대도(大道) 진리 공부였던 것이다.

 

 

 

 

 

 

보천교는 제주도 법정사 항일운동을 비롯하여, 물산장려운동(혹자는 조만식 선생이 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조만식 선생이 군자금을  받기 위해 보천교에 드나들면서 같이 참여한 것임), 풍물(우도농악, 악은 일제가 풍물을 폄훼한 말 등 조선 땅 이곳 저 곳에서 음으로 양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러다 아버지 김홍규가 독립운동에 보낼 군자금이 발각되는 바람에 투옥을 하게 되고, 일제는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소위 유사종교(일본이 처음 사용한 단어, 일제 식민잔재를 현재사람들이 그대로 답습하여 유사종교란 말을 한다. 윤이흠 교수는 '북한정권과 같은 것을 유사종교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라 하여 탄압을 시작하였다. 

 

 

전라북도 정읍시 입압면 대흥리 보천교 전경(당시 사진)

 

 

아버지가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투옥되고 자신과 가족의 생활 터전이었던 보천교 마저 일제에 의해 그 형체도 없이 무너지게 되는 과정에서 탄허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처와 자식을 두고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만해 한용운이 상제님을 신앙하고 갑오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던 동학신도였으나 동학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승려가 된 것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당시 일제는 자신들의 일왕을 신격화한 종교인 신도, 불교, 기독교(천주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를 유사종교로 규정했다.

 

 

서울 조계종 조계사 건립 당시(보천교 십일전을 해체한 목재들)

 

 

보천교 건물은 당시 상상할 수도 없는 거금인 150만원 이상을 투자하여 45개동의 건물을 건축하였다.

일제는 그 건물들을 모두 철거해버렸다.

보천교의 중심 십일전 건물은 뜯어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서울)와 전라북도 전주 역사(驛舍)를 짓고, 얼마전 불타버린 정읍 내장산 내장사(대웅전) 등을 건축하는데 쓰였으며, 나머지는 뜯어다가 개인집을 짓거나 장작 등으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주춧돌과 벽의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보천교 신도 수 600만 명(일본총독부와 미국 국무부 보고서 통계, 보천교 자체 통계는 700만 명)에 조선 최고 최대의 건물이 하루 아침에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역사는 묻혀 버렸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대한민국 독립운동 일선에서 주도적인 활약을 하였고, 일제치하에서 불과 수 년만에 600만의 신도 수를 가졌던 보천교를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온갖 부패와 권력에 눈이 먼 조선의 일부 위정자들과 일본군의 총칼 아래 한을 맺고 죽어간 동학농민군 30만 명의 원혼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解寃)시켜 주셨다. 그것이 증산도 제1변의 보천교였다.

 

 

동학 역신 해원 공사

1 공신이 여러 성도들을 돌려보낸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 경수,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2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3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4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5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6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7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8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9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10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11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12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13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14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15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16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5:205)

 

 

진법이 나오리라

1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2 앞으로 오는 후천 오만년에는 다시 망령된 짓을 못 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3 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 본을 이루리라.

4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 하시고

5 “이제 전 세계에 가(假)망량을 배치하였으나 일심자(一心者)에게는 진(眞)망량을 응케 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6:126)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5:356)

 

 

증산 상제님의 말씀과 같이  진나라 말기 진시황의 포악을 타도하기 위해 우후죽순 처럼 봉기한 항우와 초나라 장수들이 기세와 같이 '초장봉기지세'로 일어나 600만 명의 신도를 만들고,  차경석 성도는 역사 속의 어떤 제왕 못지않게 지냈다.

그리고 누가 시키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데 제가 스스로 나서서 손해를 보거나 죽음을 당하다는 춘치자명의 설화 처럼 천자(天子)를 칭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써 증산 상제님의 앞 세상 돌아가는 이정표인 천지공사의 도운(道運, 증산상제님의 진리가 나아가는 길)의 제 1변이 막을 내린다.  그리고 광복 후 증산도의 제 2변이 시작 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3년 제 2변이 막을 내렸으며, 1974년 증산 상제님의 진리가 제 3변의 진법(眞法) 증산도로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다.

'내 일은 삼변성도니라' 하신 증산 상제님의 말씀 처럼 제 3변에는 증산 상제님의 대도가 완전히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화엄학의 대가이며 유학과 노장학의 일가를 이루었던 김탄허 큰 스님

그는 왜? '부처님이 계신다면'이라는 책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개벽'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갔을까?

불교 교리와는 전혀 상반된 천지개벽의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탄허 스님은 책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질 것이다!

생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도래한다!

천지개벽 세상에 계시는 부처님은 누구일까?

서방정토를 구현하는 아미타불일까?  도솔천의 천주(天主) 미륵존불일까?

그 부처님이 계신다면...

 

구하기는 어렵고, 큰 도서관에 가서 한 번 일독 할 것을 권해 봅니다.

 

탄허 스님과  교류하며 지내셨던 한국 화엄학의 선구자라 불리며 동양학에도 두루 밝으셨던  고(故) 장봉 김지견(1931 ~ 2004)사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했던 강연에 참석했을 때 들었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김지견 박사님 역시 자신이 한 평생 바쳐서 일구어 놓은  화엄학과는 전혀 관련없는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이 세상의 미래는 ... (탄허 스님과 같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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