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B 상생방송

STB 상생방송 - 세상을 바꾼 리더십 < 약자들의 등불이 되다. 오프라 윈프리 >

by 도생(道生) 2014. 8. 7.

STB 상생방송  세상을 바꾼 리더십

【 약자들의 등불이 되다. 오프라 윈프리 】

 

 

 

 

 

부(副)와 명예를 함께 이룬 흑인 여성,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녀의 과거는 어둠, 그 자체였다.

1954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가난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오프라 윈프리는 가난과 성적학대로 어린시절이 얼룩져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17세였던, 1971년 한 방송사의 '미스 블랙 화재예방 미인 선발대회'에 우승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바바라 윌터스가 진행하는 투데이쇼를 보고 유명 방송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자신은 진실을 믿었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싶다"며 제 2의 바바라 윌터스를 꿈꾸게 된다.

그녀의 토크쇼는 카리스마와 감정이인 진행으로 다양한 콘텐츠에서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해주고, 오프라 윈프리의 존재를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알리게 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가 1985년 첫 방송을 타게 된다.

2011년 종영시까지 25년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 세계 140여 개국에 방송되었다.

 

 

 

 

 

1980년대까지 논리와 이성이 지배했던 토크쇼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상처받은 자의 공감을 통해 토크쇼의 영토를 넓혔다. 그리고 대중은 열광했다.

그녀의 토크쇼는 일종의 집단상담 치료의 평가받기도 했다.

 

 

 

 

미국 타임지 선정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3년 연속 선정 되기도 하였던 오프라 윈프리는, 어렵고 힘든 환경을 극복하여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자수성가한 흑인 여성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를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였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지는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기사를 실었다.

"오프라 윈프리라는 선지자가 우리에게 걸어왔다. 그녀는 방송계의 거물에서 비범하고 영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토크쇼의 여왕을 넘어 사회의 영적 지도자로까지 불리게 된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목표는 성공 자체가 아니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희망했다.

 

그녀의 리더십의 원천은 상처입은 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들과 공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심어 주었다.

"설사 과거가 불행했더라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최선을 인생을 살아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