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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철학으로 거듭나는 성부 하느님 (4) - 메시아(구세주) 사상과 초월적 유일신, 그리고 로고스(Logos)

by 도생(道生) 2014. 8. 17.

철학으로 거듭나는 성부 하느님 (4)

메시아(구세주) 사상과 초월적 유일신, 그리고 로고스(Logos)

(상생문화연구소 문계석 서양철학박사)

 

 

 

 

철학으로 거듭나는 성부 하느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기원전 356-323) 대왕의 대제국 건설과 더불어 동방세계의 헬렌화(hellenization)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기원전 300년 경부터 유대교의 랍비들은 구약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구약이 쓰여지기 시작하던 당시 헬렌화로 인하여 유대교에는 전혀 없었던 새로운 내세관과 영혼불멸 사상이 생겨나게 됐다.  또한 사후 보상과 심판에 관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생겨난 종말론이 유대교에 유행하기도 하였다.

 

할렌화의 과정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 종교에게 빼앗겼던 적도 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의 제우스를 숭배하도록 강요받았고, 유대교가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엄청난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기원전 165년 유다 마카베우스는 유대교를 헬레니즘으로 바꾸는 것에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마카비(망치)' 반란이다. 이 반란으로 유대인들은 종교적 자유와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게 되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로마제국이 형성되면서 기원전 63년에는 로마 장군 폼페이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고, 유대인들은 로마 통치에 저항한 제1차 및 제2차 반란(66-70년, 132-135년)을 일으켰다. 반란이 진압된 후 대규모의 유대인 이주가 있었으며, 그 결과 지중해 연안지역에 유대인 집단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를 그리스어에서 흩뿌림을 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기라 불려진다. 디아스포라는 인종 집단이 강제적으로 본토를 떠나 나라 밖에 항구적으로 자리를 잡은 채, 고유의 종교 의식을 계속 유지함을 뜻한다.

 

특히 티투스 플라비우스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70년)와 예루살렘 함락(133년)이 일어난 후, 유대인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중심지를 상실했고, 새로운 역사적 상황이 전개되어 종교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체험했던 것이다.

 

 

 

 

구세주(메시아) 사상과 초월적인 유일신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타국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그로 인해 정치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하고 혹독한 압제와 핍박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몇 번에 걸쳐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기원전 165년에 잠깐 독립한 마카베우스 반란의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성공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 로마의 억압적 통치에 유대인들은 번번히 저항해 보았지만 정복자의 군대에 의해 참혹하게 진압되었다. 그결과 유대인들은 미래 역사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믿고 신뢰하기에는 그들이 당하는 현실적인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로마의 통치기에 무지비한 압제와 현실적으로 당하는 고통과 좌절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리라는 지중해 연안에는 메시아(구세주, Messiah)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런 메시아에 대한 신앙은 특히 유대인들의 정신에 강하게 터를 잡는다. 민족의 지도자와 같은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유대 종교에 매우 중요한 특징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즉 메시아에 대한 초기의 믿음은 주님께서 기름 부은 자(왕)가 나타나 타국의 지배로부터 유대 민중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헬렌화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역사의식이 증폭되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온 구세주는 유대민족을 초월적인 야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리라는 종교적 믿음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으로부터 유대인들은 초기에 민족의 신이었다가 후에 창조주로까지 승격하여 숭배했던 유일신 야훼 하느님이 더 이상 편협한 신으로만 여겨서는 안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헬렌화 시기에 구약을 쓰기 시작한 랍비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서 창조주 야훼 하느님이 이렇게 불완전한 현실세계, 끔찍한 악의 세계를 창조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사상의 토대위에서 헤브라이즘 전통과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이 만나게 되고, 이로부터 두 전통이 융합한 유대 종교의 사상적 체계가 창출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기여한 대표적인 이론가는 유대인 철학자 필론(기원전 25-기원후 40)이다.

 

필론은 유대교의 전통에서 형성된 야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독실하였고, 또한 매우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그리스 철학에 정통했던 인물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기 민족에게 계시된 구약에 뿌리를 두고 창조주에 대한 엄격하고 일원론적인 유대교적 가르침을 고수하였고, 동시에 선하고 완전한 최고의 새로운 유일신에로의 전향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필론의 믿음 체계에서 야훼 하느님은 세계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추월해 있는 유일신이다.

모든 것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어떤 말이나 특성을 덧붙일 수 없다. 유일신은 선한 것보다 더 선하며, 완전한 것보다 더 완전하다. 그래서 '신은 존재'라고 말할 뿐이다. 반면에 물리적인 것은 악의 원리이다. 현실 세계는 죄악의 원인이고, 육신은 영혼의 무덤이다. 인간은 육체로부터 벗어나 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상은 밝고 선한 신의 세계와 고통으로 가득찬 어두운 현실세계의 이원적 투쟁을 전제로 한다.

 

완전한 선의 세계와 불완전한 악의 세계, 신과 지상국, 밝음과 어둠 등으로 분리된 이원론(二元論)적 사고는 플라톤의 철학에 기원을 둔다. 여기에서 이원론이란 변함없이 진짜로 있는 실재의 세계(이데아의 세계)와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변화하는 현실세계(그림자의 세계)에 바탕을 둔 것이다. 비유하건대 두 세계는 하늘에 떠 있는 실재하는 달(moon)과 물위에 비친 달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실재하는 달은 그대로 있는데, 구름이 가리면 물위에는 달이 없어지기도 하고, 물이 출렁거리면 달그림자는 요동치는 형상을 보인다.

 

필론은 유대 민족 신앙과 순수한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여 인간의 창조와 타락과 같은 구약의 이야기를 비유(allegories)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육체 안에 갇힌 영혼은 죄악과 고통의 연속이지만 이를 벗어나 신의 경계로 고양되면 선과 진리에 접하게 된다는 신앙이 나오게 된 것이다.

 

 

 

 

구세주(메시아)는 로고스(Logos)

문제는 초월적인 야훼 하느님이 악에 물든 현실세계를 어떻게 창조하고,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구원하느냐가 관건이다.

논리적인 사고에서 볼 때, 창조주 야훼 하느님이 완전하다면 불완전하고 요동치는 현실세계를 초월해 있어야 한다. 완전한 의미의 창조주가 초월해 있다면, 피조(被造)된 현실세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만일 완전한 창조주가 불완전한 현실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이 곧 불완전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세계와 창조주와는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단절된 상태여서 인류의 구원은 불가능함을 뜻한다. 여기에서 필론은 초월자 유일신과 현실 세계 간에 관계의 다리를 놓는다. 이것이 이른 바 구세주와 동일 선상에서 이해되는 "로고스(Logos)"의 개념이다.

 

로고스란 어원적으로 볼 때 '말하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말"이란 뜻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말'은 유일신 야훼 하느님의 말씀으로 신성화되었고, 이 말씀이 곧 현실세계로 들어와 지혜 내지는 정신으로 발휘된다. 그래서 필론은 세계 안으로 들어온 로고스가 초월적인 완전한 유일신과 불완전한 현실세계를 매개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창조주 유일신 하느님을 믿고 따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가르친다.

 

로고스의 의미는 다양한 측면에서 쓰였다. 로고스는 유일신 야훼 하느님의 지혜와 일치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유일신의 속성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이데아로 불리기도 했다. 철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로고스는 인격적인 자도 아니요 비인격적인 자도 아닌, 비물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정신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 생명적인 것과 비생명적인 것 간의 중간에 있는 존재를 뜻한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말할 때, 로고스는 하느님의 의지를 실행하는 심부름꾼, 대표자, 천사 또는 정령(精靈)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로고스는 세계의 대사제로서 인류를 위해 기도하는 자요, 위안을 가져다주는 자로서 야훼 하느님 앞에서 세계를 대표하며, 현실세계 속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지칭되기도 햇다. 즉 로고스는 힘들 중의 힘이며, 최고의 천사이며, 하느님의 대리자요, 한느님의 장남이며, 제2의 하느님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에 깔고서 후에 창조주 유일신을 성부 하느님이고, 그 분의 분신인 성자 하느님이라는 믿음이 나오게 된 것이다.

 

생멸을 거듭하는 현실 속에서 로고스는 어떤 의미인가?

천지만물은 유일신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세계에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이다. 인간도 로고스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그 안에는 영혼이 내재한다는 뜻이다. 살아 있는 인간을 육신과 영혼으로 분리하여 본다면, 로고스는 정신적인 영혼의 척도이며,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 고통과 좌절로 뒤범벅이 된 인간 삶의 과제란 육체에서 벗어나 영원한 신의 지혜인 로고스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로고스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 신 자체와 일체가 됨(신인합일)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까지 확대되고, 로고스가 곧 구세주라는 믿음이 정착되면서 성자 하느님 사상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이다.

나약한 인간 혼자의 힘으로써 로고스가 내재한다고 하더라도 신과의 합일에 도달할 수 없다. 신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힘, 신의 프뉴마(Pneuma : 생명의 진리인 영)에 의해서 거기에까지 높여질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의 진리인 영으로 번역된 프뉴마란 다른 동물에서보다도 인간에게서 돋아보이는 지혜의 영에 가까운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신의 진리를 깨우쳐 그 경계에 도달할 수 있는 지혜를 잠재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사상은 후에 성령이라는 믿음으로 발전하여 중세기에는 성령 하느님으로 정립된다.

 

필론은 플라톤 사상에 뿌리박고서 헬레니즘 전통의 신관, 창조관, 구원관을 끌어들여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 교리 정립에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우선 유대인의 민족 신에 국한되었던 야훼 하느님 신앙을 초월적인 창조주 및 유일신 하느님 신앙으로 고양하여 보편적인 종교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신의 지혜요 대리인이며 아들이 되는 로고스는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왕이 나와 자신의 민족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으로 공고화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유일신으로부터 출원하는 프뉴마(진리의 영)로부터 성령의 의미가 정초되는 것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스 철학과 유대교의 종교를 통합하려는 필론의 주장은 새롭게 태동되는 그리스도교의 시대, 즉 성부 하느님의 대리자로 등장하는 구세주의 신약의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된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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