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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바라보는 구약의 성부 하느님(2) : 유대인이 선택한 전쟁의 신(神), 야훼 - 출애굽의 민족신 야훼

by 도생(道生) 2014. 8. 15.

철학으로 바라보는 구약의 성부 하느님(2)

유대인이 선택한 전쟁의 신(神), 야훼

출애굽의 민족신 야훼

(상생문화연구소 문계석 서양철학박사)

 

 

 

 

유대인이 선택한 전쟁의 신(神), 야훼

출애굽의 민족신 야훼

 

기원전 1300-1250년경에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을 사막을 건너서 시나이반도로 인도한다.

모세는 거기에서 유대 유목민의 신 야훼(Yahweh:처음에는 YHWH란 이름을 가진 신神을 부복의 신으로택했으나 후에 야훼로 발음되고, 나중에 여호아Jehovah로 바뀐다)로부터 십계명을 받는다. "너희 하나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신명기 5-6) 이스라엘인들은 율법을 받은 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다.

 

 

가나안 땅은 시나이 반도의 황무지에 비해 꿀과 젖이 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40여년을 황량한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다. 끝내 모세는 여기에서 죽게 되었고, 모세를 대신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게 된다. 마침내 그는 요르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입성하게 됐던 것이다.  출애굽기 3장에 "너의 선조들의 신 야훼"라고 기록하였듯이, 야훼가 이스라엘 민족의 절대적인 숭배 신으로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부터 미래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열어가게 된다.

 

 

 

 

처음에 선조들의 신 야훼는 유대인들만의 신이 아니었을 것이며, 야훼 신을 숭배하기 시작한 기원을 밝힌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야훼 숭배는 고대 팔레스틴 이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유목민이었던 유대 부족이 가나안으로 들어와 팔레스틴 농경지를 정복하기 시잘할 무렵에 전면으로 떠오르게 됐을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야훼가 원래 이집트 국경지대의 시나이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부족의 신이었다고도 한다. 그 이유로 모세가 사제의 딸 미디아와 결혼하여 장인의 양떼를 돌보며 살았다는 호렙산이 야훼 숭배가 첫 번째 장소로 꼽기 때문이다.

 

이후 출애굽 경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 신을 자신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고백했고, 이 과정에서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었으며, 율법과 계명을 잘 따르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그렇지 않은 자는 화를 당한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관, 소위 신명기 사관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째든 가나안으로 입성한 후 이스라엘 민족은 토착민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인 삶 속에는 야훼가 절대적인 하느님으로 숭배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전쟁신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 준다'고 여겼던 것이다.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인들에게 토착민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라고 말한 구약의 기록은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인격신들에 대한 우월성과 자신이 선택한 사막 부족인 이스라엘의 배타성에 병적으로 집착했기 때문에, 유독이 사납고 잔인한 신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도덕적 지도자였으며 유능한 군사 전략가였던 여호수아는 가나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스라엘 군대를 신속하게 조직하여 중앙의 고원지대, 남쪽의 도시국가들, 그리고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을 차지하여 수세기 전에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됐던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도 야훼신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원주민에 대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잔혹한 지배와 살육을 지시했을 것이다. 야훼 하느님은 아즈텍의 위치로포크틀리 신이나 페니키아의 몰록 신보다 훨씬 더 잔인한 면을 보여준 것이다.

 

 

팔레스틴을 정복한 이후,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경제체제는 물론이고 종교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

이스라엘인들은 토착민들과 섞이면서 결혼했고, 가나안인들을 모방하여 그들의 여러 신들, 특히 마알 신을 숭배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다신(多神)들 종교 숭배가 유포된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고, 이스라엘 왕국은 12지파로 나뉘어져 거의 200년 동안 모세를 통해 전해진 율법이 다스리는 신정치를 행해지기도 했다. 이후 도덕적 결함을 지녀 거룩한 땅을 서슴없이 더럽힌 사울 왕, 뒤를 이어 야훼 하느님과의 신실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어 나라를 잘 다스린 다윗 왕, 지혜가 출중했으나 쾌락에 나라를 말아먹은 솔로몬 왕도 나왔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남으로 유다와 북으로 이스라엘로 분열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는 북 이스라엘을 휩쓸었고, 기원전 597년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의 침략을 받은 남 유다는 10년 후에 멸망하였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었고, 느브갓네살 왕은 많은 유대인들을 바빌론의 포로로 잡아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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