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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로마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 동양 선교를 꿈 꾸다.

 

 

 

 

 

 

 

 

 

 

가톨릭(기독교)가 지난 2천 년간 추구해 온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지구촌에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즉 지상 천국 건설로 전 인류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것일 것이다.

 

 

한평생 온갖 고초를 마다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선구자적 가톨릭 선교 활동을 펼쳤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 중국명(中國名)은 이마두(利瑪竇)이며 호(號)는 시헌(時憲)이시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이탈리아 이름은 Matteo Ricci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이며 가톨릭을 아시아 대륙에 정착시킨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스페인 출신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 수사를 중심으로 6명의 동료가 1534년 창시 -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일종의 군대 조직과 같으며 해외 선교 목적으로 세워진 단체) 선교사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톨릭을 천주교(天主敎)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 바로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유명한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 - 천주님의 참뜻)'로부터 비롯되었다. 더불어 유럽을 구라파(歐羅巴)로 표기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159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시청에서 지방 행정(이후 시장을 역임)을 맡았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리치의 9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예수회 출신 가정교사 니콜로 벤치베니 신부에게서 영적 훈련을 받으며 자라고, 예수회에서 설립한 학교에 다니며 1571년(7살) 가톨릭 예수회에 가입하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교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직자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는 여기서 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연상에 의한 기억법 교육'을 통해 라틴어와 헬라어 공부를 하게 된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여 입신출세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테오 리치는 로마에서 법학 공부를 전공하다 3년 만에 그만두고 가정교사이며 스승인 벤치베니 소속된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간다.

1571년 예수회 정식 입교 후에는 당시로써는 미개척지와 다름없는 동양 전도(선교)에 뜻을 품게 된다.

 

 

 

1577년부터 수사학인문과정을 공부했으며, 1577년부터 1579년까지 같은 대학교에서 철학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력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수학자 그리스토퍼 클라비우스에게 수학과 천문학, 기하학과 역법 및 해시계, 자명종, 천체관측과 지구의 등 제작법도 배우게 된다.

 

 

 

 

 

 

 

 

 

1578년 마테오 리치는 예수회 동료 13명과 함께 동양 선교의 큰 꿈을 안고 1차 목적지 인도로 선교 요원이 되어 파견된다.

1580년 로마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582년까지 인도의 고아(Goa) 지역에서 나머지 신학 공부를 받게 된다.

아직도 마체라타 대학교 본관에는 중국의 사대부 모자를 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1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2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3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4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5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6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후천개벽 후 이마두 대성사의 신도 위격

7 이마두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

 

 

 

 

 

 

 

 

 

 

 

도쿄대학 명예 교수 히라카와 스케히로의 저서 『마테오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을 "로마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로서 동아시아에 서구문명을 소개하여 중화(中華, 중국) 질서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으며,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지식과 중국 학문을 두루 갖춘 최초의 세계인"이라 정의하고 있다.

 

 

 

단자론자(單子論者)로 잘 알려졌으며, 중국 역학(易學)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이진법(二進法)을 제창한 라이프니츠는 마테오 리치 신부님에 대하여 "이성에 바탕을 둔, 상이한 문화 간의 만남과 대화의 모범"이라고 평했다.

 

 

 

프랑스의 비교철학자이며 종교사회학자 쟈크 제르네는 마테오 리치 신부님을 "단지 중국 선교사로만 파악하는 좁은 시야로 보지 말아야 하며, 상이한 문명과 사상을 만나게 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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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6.30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가구요~
    오늘 비온다니..우산 꼭 챙기셔요~

  2. 죽풍 2015.06.30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조금이나마 알고 가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메리. 2015.06.30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마온다니 우산 챙기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프리뷰 2015.06.30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신부에 대해서 잘봤습니다.

  5. 다이어트X 2015.06.30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적이 대단한 분이군요^^~!

  6. misoyou 2015.06.30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ㅎ
    멋집니다 ㅎ

  7. 유라준 2015.06.30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한 선교사가 아니라 과학자 겸 세계인이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동서문명의 빗장을 열어 세계의 이질적인 문명들을 통합하여

지상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시헌(時憲)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에 와서 서양 문명과 격리되어 있는 거대한 문명을 만났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문화적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반면, 그는 동양 문명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경험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숭배한 성모 마리아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받은 사랑과 포용심, 그리고 예수회의 봉사 정신이 발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양의 발달된 과학 문명 못지않은 중국의 위대한 정신 문화에 매료된 그는 고향으로 보내는 서신들에서 이렇게 썼다.

"중국은 실로 세계 그 자체입니다."

"중국의 위대함은 아무리 보아도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중국은 박학합니다. 의학, 자연, 철학, 수학, 천문학 등에 밝고, 우리 서양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계산해 내고 있습니다."

이는 동양의 정신과 문명의 발달을 몸소 체험한 리치의 진심에서 우러난 고백이었다.

 

그가 체험한 중국은 그 크기가 유럽 전체보다 거대했고, 오늘날의 용어로 자연 과학과 정신 과학에 있어서도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았다. 서양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없지 않았지만 중국의 정신과 만나면서 그 위대함에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싹텄다.

그는 동서 문명을 교류시켜 통일하는 데 있어서 동양의 정신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그가 속한 가톨릭(카톨릭) 교회가 편협한 개체주의(Individualism)를 넘어서 보편주의(Catholicism, Universalism)를 표방하고 있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가톨릭의 보편주의는 모든 개체를 끌어안아 포용하는 정신인 것이다. 아마도 리치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물질을 합하여 완전한 하나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야말로 진정한 보편주의가 아니겠는가.

 

그가 죽어서 신(神)이 되어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할 당시에 이미 서양 기독교 문명 중심의 제한된 시야를 넘어서 있었다.

 

리치의 열린 마음, 순수한 보편주의적인 사고 방식은 세계의 이질적인 문명들을 통합하여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지상 천국을 건설하고야 말겟다는 엄청난 열정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짧은 인생은 그의 고결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도록 했다...

(상생출판, 양우석 '천국문명을 건설하는 마테오 리치' 中)

 

 

 

 

 

동서 문명의 빗장을 열어 놓은 마테오 리치(時憲 이마두利瑪竇) 신부

젊은 나이에 구도의 이상을 따라 험난한 여정을 마다않고 중국 땅에 도달한 마테오 리치는 이후의 서양선교사와는 큰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정신계의 정복자' 임을 자임하며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군림하여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여타 선교사들의 선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길을 돌아 이국 땅에 상륙한 그는 서구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와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는 거대한 문명과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하나의 다른 문명권을 발견하게 된 놀라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왕국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실로 세계 그 자체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동물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지를 논의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사들과는 달리, 마테오 리치는 세계의 다른 면에 펼쳐져 있는 문명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먼저 그 문명 속에 들어가 배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겸허하게 배우고 일하는 과정에서 동서의 문명에 통달하고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최초의 세계인, 다시 말해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구도자가 된다. 또한 '이교도'의 지역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함으로써 공양에 가톨릭 중심의 천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전대미문의 대이상을 품게 된다.

 

 

 

 

'세계는 하나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문화와 지식을 유산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복수(複數)의 문명권과 복수의 언어권으로 나누어진 현재의 지구는 하나의 세계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교통 수단이 발달하기 전인 대항해 시대 이전의 서양과 동양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르네상스 유럽의 자연과학 지식과 중국 사서오경의 학문을 한 몸에 갖춘 인간이 인류 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다.

 

마테오 리치(시헌 이마두)는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를 처음으로 한 몸에 겸비한 최초의 세계인이자, 동양에는 서양의 문명을 소개하고, 서양에는 동양의 문명을 소개한 동서 문명과 역사 교류의 수로를 튼 인물인 것이다.

 

 

 

 

 

 

마테오 리치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양의 천주와 유교의 상제신앙의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천주실의』가 비록 동서양 사회 모두에 격렬한 반대 논쟁을 가져오고, 심지어 가톨릭 사회에서는 그의 입장이 거부당했음에도, 그 자신의 신앙 성숙 과정에서 동양 문화의 상제 신앙을 발견하였기에 마침내 천상에서 신앙의 참 천주(참하느님)인 상제님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생전의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천상에 올라가서까지 인류를 위해 수백 년간 헌신했다.

상제님께서도 그 공덕을 인정해 주신 바 있다.

 

 

 

 

새로운 달력, 시헌력(時憲歷)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새롭게 만든 그레고리 역법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레고리 역을 한문으로 번역해 서양의 천문학과 역학을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청나라에서는 1644년 태양력의 원리를 이용한 '시헌력(時憲歷)'이 시행되었다.

시헌은 이마두(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號)이며,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다.

조선에서도 1653년(효종4)부터 조선말까지 이를 사용하였으며, 1895년(고종32)에 태양력이 채택되었을 당시 시헌력도 같이 참용(參用)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구력(舊歷)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시헌 이마두 마테오 리치!

이국 땅에서 이마두로서 더 오랜 기간을 살다간 그는 생전에 모든 정력을 다하여 동양 땅에 천주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하였으나, 그 위대한 이상과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아서는 그 염원을 다 이루지 못하였다.

 

수천 년 동안을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동서양 각 세계의 강한 저항과 그 자신의 본령(本領)이라 할 수 있는 가톨릭 사회의 완고함과 세계인으로서 동서 문명 모두에 발을 닫고선 그의 선구적 행로에 장애로 작용하였다.

 

그는 결국 이국 땅에서의 짧고도 긴 삶을 마감하고 천상에서 수백 년간 인간세상을 위해 쉼 없이 일한다.

지금 이마두 대성사의 은덕을 입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 대부분이 그 공덕을 알지 못하나, 그는 인간 세상을 위해 일심으로 혈성을 다한 최고의 공로자로 인류 앞에 우뚝 서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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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4.06.27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문명의 빗장을 연 이마두와 마테오리치 신부의 공덕이 크군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

  2. 아쿠나 2014.06.27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문명에 대해서 알아보시는분들에게 정말
    괜찮은 정보인듯 하네요~
    저도 잘 보고 갑니다 ^^

  3. 어듀이트 2014.06.27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인사드리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ㅔ~

  4. muy.kr 2014.06.27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의 활동들에 대햐선 처음 접해보네요.
    잘 보고 갑니다..^^

  5. pyulu 2014.06.27 1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인사드리고 가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6. 신선함! 2014.06.27 1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갈께요~ 좋은 하루 되셔요~!!

  7. 카푸리오 2014.06.27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대단하신 분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8. 유라준 2014.06.27 2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가 관찰했던 중국 문명이 흥미롭네요.

  9. 귀여운걸 2014.06.29 0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리치 신부에 대해 오늘 처음 접했는데요..
    정말 대단하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