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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동서문명의 빗장을 열어 세계의 이질적인 문명들을 통합하여 지상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시헌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

by 도생(道生) 2014. 6. 27.

동서문명의 빗장을 열어 세계의 이질적인 문명들을 통합하여

지상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시헌(時憲)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에 와서 서양 문명과 격리되어 있는 거대한 문명을 만났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문화적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반면, 그는 동양 문명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경험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숭배한 성모 마리아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받은 사랑과 포용심, 그리고 예수회의 봉사 정신이 발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양의 발달된 과학 문명 못지않은 중국의 위대한 정신 문화에 매료된 그는 고향으로 보내는 서신들에서 이렇게 썼다.

"중국은 실로 세계 그 자체입니다."

"중국의 위대함은 아무리 보아도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중국은 박학합니다. 의학, 자연, 철학, 수학, 천문학 등에 밝고, 우리 서양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계산해 내고 있습니다."

이는 동양의 정신과 문명의 발달을 몸소 체험한 리치의 진심에서 우러난 고백이었다.

 

그가 체험한 중국은 그 크기가 유럽 전체보다 거대했고, 오늘날의 용어로 자연 과학과 정신 과학에 있어서도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았다. 서양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없지 않았지만 중국의 정신과 만나면서 그 위대함에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싹텄다.

그는 동서 문명을 교류시켜 통일하는 데 있어서 동양의 정신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그가 속한 가톨릭(카톨릭) 교회가 편협한 개체주의(Individualism)를 넘어서 보편주의(Catholicism, Universalism)를 표방하고 있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가톨릭의 보편주의는 모든 개체를 끌어안아 포용하는 정신인 것이다. 아마도 리치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물질을 합하여 완전한 하나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야말로 진정한 보편주의가 아니겠는가.

 

그가 죽어서 신(神)이 되어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할 당시에 이미 서양 기독교 문명 중심의 제한된 시야를 넘어서 있었다.

 

리치의 열린 마음, 순수한 보편주의적인 사고 방식은 세계의 이질적인 문명들을 통합하여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지상 천국을 건설하고야 말겟다는 엄청난 열정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짧은 인생은 그의 고결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도록 했다...

(상생출판, 양우석 '천국문명을 건설하는 마테오 리치' 中)

 

 

 

 

 

동서 문명의 빗장을 열어 놓은 마테오 리치(時憲 이마두利瑪竇) 신부

젊은 나이에 구도의 이상을 따라 험난한 여정을 마다않고 중국 땅에 도달한 마테오 리치는 이후의 서양선교사와는 큰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정신계의 정복자' 임을 자임하며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군림하여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여타 선교사들의 선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길을 돌아 이국 땅에 상륙한 그는 서구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와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는 거대한 문명과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하나의 다른 문명권을 발견하게 된 놀라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왕국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실로 세계 그 자체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동물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지를 논의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사들과는 달리, 마테오 리치는 세계의 다른 면에 펼쳐져 있는 문명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먼저 그 문명 속에 들어가 배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겸허하게 배우고 일하는 과정에서 동서의 문명에 통달하고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최초의 세계인, 다시 말해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구도자가 된다. 또한 '이교도'의 지역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함으로써 공양에 가톨릭 중심의 천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전대미문의 대이상을 품게 된다.

 

 

 

 

'세계는 하나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문화와 지식을 유산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복수(複數)의 문명권과 복수의 언어권으로 나누어진 현재의 지구는 하나의 세계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교통 수단이 발달하기 전인 대항해 시대 이전의 서양과 동양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르네상스 유럽의 자연과학 지식과 중국 사서오경의 학문을 한 몸에 갖춘 인간이 인류 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다.

 

마테오 리치(시헌 이마두)는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를 처음으로 한 몸에 겸비한 최초의 세계인이자, 동양에는 서양의 문명을 소개하고, 서양에는 동양의 문명을 소개한 동서 문명과 역사 교류의 수로를 튼 인물인 것이다.

 

 

 

 

 

 

마테오 리치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양의 천주와 유교의 상제신앙의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천주실의』가 비록 동서양 사회 모두에 격렬한 반대 논쟁을 가져오고, 심지어 가톨릭 사회에서는 그의 입장이 거부당했음에도, 그 자신의 신앙 성숙 과정에서 동양 문화의 상제 신앙을 발견하였기에 마침내 천상에서 신앙의 참 천주(참하느님)인 상제님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생전의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천상에 올라가서까지 인류를 위해 수백 년간 헌신했다.

상제님께서도 그 공덕을 인정해 주신 바 있다.

 

 

 

 

새로운 달력, 시헌력(時憲歷)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새롭게 만든 그레고리 역법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레고리 역을 한문으로 번역해 서양의 천문학과 역학을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청나라에서는 1644년 태양력의 원리를 이용한 '시헌력(時憲歷)'이 시행되었다.

시헌은 이마두(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號)이며,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다.

조선에서도 1653년(효종4)부터 조선말까지 이를 사용하였으며, 1895년(고종32)에 태양력이 채택되었을 당시 시헌력도 같이 참용(參用)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구력(舊歷)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시헌 이마두 마테오 리치!

이국 땅에서 이마두로서 더 오랜 기간을 살다간 그는 생전에 모든 정력을 다하여 동양 땅에 천주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하였으나, 그 위대한 이상과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아서는 그 염원을 다 이루지 못하였다.

 

수천 년 동안을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동서양 각 세계의 강한 저항과 그 자신의 본령(本領)이라 할 수 있는 가톨릭 사회의 완고함과 세계인으로서 동서 문명 모두에 발을 닫고선 그의 선구적 행로에 장애로 작용하였다.

 

그는 결국 이국 땅에서의 짧고도 긴 삶을 마감하고 천상에서 수백 년간 인간세상을 위해 쉼 없이 일한다.

지금 이마두 대성사의 은덕을 입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 대부분이 그 공덕을 알지 못하나, 그는 인간 세상을 위해 일심으로 혈성을 다한 최고의 공로자로 인류 앞에 우뚝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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