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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 3대 왕 태종 대왕 이방원

by 도생(道生) 2016. 9. 7.

근세조선(朝鮮) 3대 왕 태종(太宗) 대왕 이방원

 

 

 

 

 

 

 

 

 

 

 

 

 

 

근세조선의 창업과정에서 태조대왕 이성계(1335~1408)와 다섯째 아들이며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 이방원(1367~1422)을 빼고는 이야기가 전개되기 어렵다.

 

종법(宗法) 질서에서 태종(太宗)의 묘호(廟號)는 2대 왕에게 올리는 것이 상례였으나,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 이도는 조선의 3대 왕인 아버지 이방원에게 태종(太宗) 묘호를 올린다.

 

 

 

이방원(1367~1422)은 이성계의 첫째 부인 청주 한씨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 이방원은 조선의 기틀을 다져 세종대왕이 태평성대를 이루어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왕위를 쟁취하기 위해 골육상쟁을 벌여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철혈군주로도 평가받고 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대왕 이성계(이단)와 정도전은 태조대왕의 셋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둘째 아들 방석(의안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어린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세자 이방석의 편에 섰던 정도전과 이복동생인 신덕왕후의 두 아들(이방석, 이방번)을 죽인다.

 

 

이방원은 왕의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둘째 형 이방과를 조선의 2대 왕으로 추대한다. 

다음 왕위를 염두에 둔 이방원은 왕세자로 책봉되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가히 천재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은 유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왕권(王權)보다는 신권(臣權)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정도전은 어찌 보면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누구보다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삼봉 정도전이 이미 수천 년 전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가 무너지고 패권주의 시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또 다른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신권주의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패권의 시대였던 당시에는 실현될 수도 없는 군사부일체의 왕도정치였지만, 그래도 그 이념은 살아 있었다.

정도전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보다 유교의 근본이 되는 가치, 바로 군사부일체의 왕도 정치를 무시하고 신권주의 정치제도를 구현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그것이 현실에서는 왕권 계승의 종법(宗法) 제도 파괴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보면 정도전이 백성을 근본으로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군사부일체 사상은 자연의 질서이며 인류의 삶(역사)과 인간 생명의 질서로 인류의 창세 역사 시대부터 내려온 문화로 가장 이상적인 가치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군사부일체의 개념은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이 문자에 빠져 힘과 권위의 논리로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조대왕 이성계의 넷째 아들이며 이방원의 바로 위 형 이방간(회안대군)이 박포의 꼬임에 넘어가 왕위를 넘보자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2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조선의 2대 왕 정종대왕은 왕위를 왕세자 이방원에게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앉는다.

 

 

 

 

왕세자 이방원은 1400년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으로 등극한다.

새 나라 조선을 굳건하게 하려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조선왕조가 지속할 수 있는 제도를 정비하는 등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다.

세종 4년(1422)에 세상의 모든 오명을 자신이 짊어지고 갈것이니 부디 성군이 되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하였다.

 

 

 

명나라에서 내려준 시호는 공정(恭定)이다.

세종대왕은 태종 묘호(廟號)를 올렸으며, 시호(諡號)는 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다.

고종 때 태종공정성덕신공건천체극대정계우문무예철성렬광효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建天體極大正啓佑文武睿哲成烈光孝大王)으로 올려졌다.

 

 

 

 

 

 

 

 

 

 

 

 

 

 

조선 창업의 공신, 권문세족, 왕실의 외척 등 힘을 가진 자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였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커서 민심을 얻었다.

 

 

조선의 3대 왕으로 등극한 태종대왕 이방원은 1401년 등문고(登聞鼓, 신문고)를 설치하였다.

"호소할 데 없는 백성 가운데 원통하고 억울한 한을 품은 자는 나와서 신문고를 치라"

중국 송나라 때 설치된 등문고를 본보기로 하여 만들어진 등문고(신문고)는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줌과 동시에 민의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제도다. 

 

 

 

 

극심한 가뭄으로 삼남 지방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태종대왕 이방원은 직접 기우제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임종을 앞두고 세종대왕에게 '반드시 비가 오게 하리라'라는 말을 남기고 승하한다.

 

1422년 5월 10일은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 이방원이 승하한 날이다. 그런데 이날이 되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여 세상에서는 '태종우(太宗雨)라 한다. 

 

 

 

조선 중기의 우복의 우복집과 후기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을 위해 기우제를 올린 태종대왕 이방원의 태종우(太宗雨)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태종우'는 백성이 만든 이야기라고도 한다. 다른 이는 태종대왕 이방원이 백성에게 폭정을 휘둘렸다면 태종우 이야기는 내려올 수 없을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 이방원은 새 나라 조선의 기틀을 다지기 위하여 악역을 자처하며 고독한 왕의 길을 걸어갔다.

 

고려의 왕족과 조선왕조를 인정하지 않는 고려의 충신, 그리고 형제와 정적을 가차 없이 죽였다.

창업 공신 숙청과 장래에 벌어질 수 있는 외척의 힘까지 뿌리 뽑았다.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 민무질, 민무구 형제와 사돈이며 세종대왕의 장인 심온까지도 죽였다.

그런 면에서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 이방원을 비정한 인물, 잔혹한 군주, 포악한 군주로 평가하기도 한다.

 

 

 

 

 

 

 

 

 

 

 

 

 

 

조선의 3대 왕 태종대왕 이방원은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다.

무장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며 무예를 익혔다.

 

문과에 급제할 정도의 학문적 소양은 고려말 대학자 운곡 원천석(원동중)에게 배웠다.

원천석(원동중)은 태종대왕 이방원의 정신적 지주이며 스승이다.

 

 

 

환단고기 삼성기 下의 저자 원동중이 바로 운곡 원천석이다.

 

 

원천석(원동중)은 고려왕조에 절개를 지키기 위해 조선에 출사하지 않은 충의의 상징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두문동에서 불타 죽은 48명과 끝까지 고려에 충정을 지킨 24명을 합쳐 두문동 72현이라 한다.

 

 

 

 

왕위에 오른 태종대왕 이방원은 스승인 원천석(원동중)에게 벼슬을 주기 위하여 강원도 원주(치악산 자락)까지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스승 원천석(원동중)이 벼슬을 거부하며 몸을 숨기7일 동안을 기다리다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흥망이 유수(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 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고려의 신하이며 백성이었던 운곡 원천석(원동중)이 고려왕조가 쓰러져 가는 모습을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으로 회상하며 지은 글이다.

 

 

 

 

 

 

 

 

 

 

 

 

운곡(耘谷) 원천석은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 사관(史官)이었던 동호(董狐)를 존경하여 자신의 필명(筆名)을 동중(董仲)이라 하였다. 역사의 사실을 바르게 기록했던 동호는 사관으로 직필(直筆)을 하였던 유명한 사람으로 동호직필(董狐直筆)이란 사자성어가 유래된다.

 

 

 

정도전과 함께 조선 창업에 이바지한 무학대사와 원천석(원동중)은 각별하게 지냈다.

치악산 자락에 있는 현재의 운곡 원천석(원동중)의 묘도 무학대사가 잡아준 자리다.

운곡 원천석(원동중)은 고려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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