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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 11대 왕 중종 대왕(중종반정) 이역

by 도생(道生) 2016. 9. 15.

근세조선 11대 왕 중종(中宗)대왕(중종반정) 이역

 

 

 

 

 

 

 

 

 

 

 

 

 

 

 

조선의 11대 왕 중종 대왕 이역은 조선의 10대 왕 폭군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중종 대왕은 조선의 9대 왕 예종 대왕과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의 10대 왕 폭군 연산군은 국정을 도외시하고 향락과 폭정, 방탕한 생활 등을 일삼으며 광기와 피의 역사를 만들었다.

광란의 질주를 하던 연산군의 폭정으로 말미암아 백성의 원성이 컸고, 조선 팔도의 여러 곳에서 연산군 제거 움직임도 있었다.

 

 

1506년(연산군 12)에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이 반정(反正)을 주도하여 폭군 연산군(형)을 퇴위시키고 진성대군(동생)을 왕으로 세웠다. 중종(中宗)반정이 일어나고 연산군은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중종반정으로 19세에 임금이 된 조선의 11대 왕 중종대왕 이역은 조선의 9대 왕 성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며,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의 동생(이복동생)이다. 중종대왕은 조선왕조 519년의 역사에서 신하가 일으킨 반정(反正)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최초의 왕이다.

 

 

조선의 10대 왕 폭군 연산군과 조선의 11대 왕 중종대왕은 이복형제 사이다.

연산군의 부인은 신승선의 딸(거창군 부인 신씨)이었고, 중종대왕의 부인은 신승선의 아들인 신수근의 딸(단경왕후 신씨)다. 

형과 동생 사이면서 처고모부와 처조카 사위다.

 

 

 

 

 

 

 

 

 

 

 

 

 

 

 

중종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대왕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정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됐다.

그러다 보니 권력의 주도권은 왕이 아닌 반정을 이끈 반정공신들이 잡고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진성대군으로 있을 때 혼례를 올린 부인 신씨는 중종대왕이 왕으로 등극하면서 단경왕후가 되었다.

단경왕후는 연산군의 측근이며 처남이었던 신수근의 딸이었다. 

 

반정에 참여를 안 하고 역적으로 처단된 신수근의 누이동생이 왕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훈신(공신) 세력에 의하여 왕비가 된 지 불과 7일 만에 폐위된다.

 

 

 

중종반정의 주역이었던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반정공신 세력이 위세가 위축되면서 중종은 왕권을 회복하고자 또 다른 세력을 이용한다. 바로 사림(士林) 세력이었다.

 

 

 

 

 

김굉필의 제자로 사림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조광조는 출사하여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 급진적 개혁을 주장한다.

조광조의 준비되지 않은 개혁은 자신을 중용한 중종 대왕뿐만 아니라 훈구(공신)세력을 적으로 만들었다. 

결국, 조광조의 성리학적 이상 사회건설의 꿈은 불과 4년 만에 막을 내리고 유배지에서 사사된다.

 

 

 

조광조의 몰락과 함께 무오사화(1498, 연산군 4년), 갑자사화(1504, 연산군 10)에 이어 조선왕조의 세 번째 사림(士林, 선비)의 화(禍), 기묘사화(1519년, 중종 14)가 일어난다. 중종반정을 주도한 반정공신들의 위훈삭제(僞勳削除), 소격서(昭格署) 폐지 등을 관철한 조광조는 중종대왕과 훈구(공신)세력을 적으로 만들었다.

 

 

심정, 남곤, 홍경주 등이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음모를 만들었고, 중종은 망설임 없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士林)의 죄를 묻는다.

기묘사화는 조광조를 주축으로 한 신진 사림 세력을 제거한 훈구(공신)세력의 음모였

 

 

중종대왕의 재위 때 이륜행실도, 속삼강행실도, 사성통해, 속동문선, 신동국여지승람 등을 간행 편찬하였다.

 

 

 

 

 

 

 

 

 

 

 

 

 

기묘사화를 주도하여 훈구(공신)세력이 잠시 권력을 손에 잡는듯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외척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다.

 

조선의 11대 왕 중종대왕 이역에게는 3분의 왕비가 있다.

정비 단경왕후는 공신들에 의하여 7일 만에 폐위된다.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는 중종 10년(1515)에 승하한다.

문정왕후는 1515년(중종 10) 장경왕후가 승하하고 세 번째 왕비가 된다.

 

 

윤임을 대표로 한 대윤(大尹)의 외척 세력과 윤원형을 대표로 한 소윤(小尹) 외척 세력은 서로 반목하며 대립한다. 대윤은 조선의 12대 왕 인종(장경왕후 소생), 소윤은 13대 왕 명종(문정왕후 소생)의 외척 세력으로 파평 윤씨 집안이며 두 집안은 7촌 숙질간이다.

 

 

 

 

 

중종대왕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38년간 재위에 있었다.

비록 자신의 의지로 왕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훈신(공신) 세력과 사림 세력, 그리고 외척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왕도정치를 꿈꿨다고는 하나 특별히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는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19세에 조선의 11대 왕으로 등극한 중종대왕 이역은 57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묘호는 중종(中宗)이며, 시호는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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