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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실학자 성호 이익과 안정복(동사강목)

by 도생(道生) 2016. 12. 21.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과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저술한 실학자이며 역사가 순암 안정복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성호 이익(1681~1763)은 순암 안정복의 스승이다.

역사서 동사강목을 저술한 조선 후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1712~1791)의 학통과 당파는 동인(東人)에서 분파된 남인에 속한다.

 

 

 

인조반정 이후로 서인(노론과 소론)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고, 동인(남인과 북인)계열은 권력에 다소 소외되어 있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6촌 형이며 실학의 비조로 추앙받는 반계 유형원과 남인의 영수이며 우암 송시열과 예송논쟁을 벌였던 미수 허목의 영향을 받았다.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은 근기남인(近畿南人, 기호남인, 한양 인근 출신 남인) 중에서 가장 큰 성호학파를 형성했다.

성호 이익의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안정복, 권철신, 장약용, 이가환 등 후학으로 이어졌다. 

 

 

 

 

기호(畿湖)는 지리적 개념으로 경기도(한양)와 충청도를 아우르는 말로 호남(湖南), 즉 전라도는 포함되지 않는다.

기호학파(畿湖學派)는 율곡 이이를 뿌리로 하는 서인(西人) 계열이고, 기호남인(畿湖南人, 근기남인)은 동인에서 북인과 함께 분열되어 나온 기호지역의 남인을 말한다.

 

 

성호 이익의 집안은 원래 북인 계열이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북인이 몰락하면서 남인이 되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아버지와 6촌 형 반계 유형원, 그리고 미수 허목의 학문과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성호 이익은 평생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선비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100권이 넘는 저술활동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실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순암 안정복은 성호 이익이 아끼던 제자였다.

 

 

성호사설성호 이익이 근 40년 동안 책을 읽고 느낀 점, 제자와의 문답, 흥미롭거나 새롭게 알게 된 내 등이 들어 있는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총 30권 30책으로 조선의 정치, 사회, 경제, 사상, 역사, 문화, 지리, 풍속, 동식물 등 3천 개가 넘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호 이익의 제자 순암 안정복은 후일 성호사설의 중복된 내용을 빼고 수정하여 30권의 성호사설을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문),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 등 5가지 문(門)으로 분류해 10권의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으로 편찬했다.  

 

평생을 재야에서 학문연구와 저술활동, 후학을 양성하던 성호 이익은 1763년(영조 39)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역사가인 동사강목의 저자 순암 안정복은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1681~1763)의 제자다.

독학으로 공부하다 35세의 늦은 나이에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순암 안정복은 다른 이들에 비해 늦게 관직에 나간다.

집안이 남인 계열인 영향도 있었지만, 학문을 좋아했던 안정복이 조정에 출사한 것은 38세가 되던 1749년(영조 25)이다.

 

 

문음(음서제)으로 영조의 별장인 만령전의 참봉이 되었다.

의영고봉사, 사헌부감찰, 익위사익찬 등을 거쳐 65세에 목천현감이 되었다.

 

안정복은 관직에 계속 있었던 것은 아니고, 중간에 그만두었다가 다시 복직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고, 관직에 있을 때와 야인으로 있을 때도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치통도』, 『육경』, 『향사법』, 『도통도』, 『치현보』, 『하학지남』, 『임관정요』, 『천학문답』, 『열조통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순안 안정복(1712~1791)의 대표작이며 필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책은 단연 동사강목東史綱目이다.

순암 안정복이 동사강목을 저술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45세가 되던 1756년(영조 32)부터다.

동사강목은 자주적인 우리 역사와 정통성을 기록한 역사서로 스승 성호 이익뿐만 아니라 미수 허목의 영향도 받았다.

 

 

 

스승 성호 이익의 격려를 받은 순암 안정복은 1759년(영조 35) 『동사강목』 초고를 완성하였고, 이후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1778년(정조 2)에 완성되었다. 『동사강목』은 20권 20책으로 본편은 17권이며 부록이 3권이다.

 

순암 안정복은 61세가 되던 1772년 영조의 명으로 세손익위사익찬이 되어 세손(1752~1800, 정조)의 교육을 맡았다. 

목천현감을 끝으로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하였다. 정조의 부름에도 끝내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1791년(정조 15)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7월 23일(1791년)

광성군 안정복에게 부의를 추가할 것을 명하였다.

정복은 세자 시강원의 옛 관원으로서 본디 박식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상(정조)이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애석해하며 이런 명령이 있었다.

 

 

 

미수 허목과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이 주자학(성리학)에 머물지 않았듯이, 순암 안정복도 주자학뿐만 아니라 불교, 도교, 노장사상까지 학문과 사상의 폭을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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