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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세종대왕 집현전 학사 성삼문과 신숙주

by 도생(道生) 2017. 1. 10.

세종대왕이 확대 개편한 조선의 최고 인재집단 집현전 학사

충절자(忠節者)와 변절자(變節者)의 대명사가 된 성삼문과 신숙주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忠成)과 절의(節義)의 대명사가 된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 주군에 대한 충절(忠節)을 배신한 변절자의 대명사가 된 희현당(希賢堂) 신숙주(1417~1475)는 세종대왕 국가와 백성을 위해 확대 개편한 조선 최고의 인재집단 집현전에서 함께 지낸 절친한 벗이며 동지였다.

 

 

 

 

매죽헌 성삼문과 희현당 신숙주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고 전한다.

매죽헌 성삼문은 1435(세종 17)년 식년시(式年試, 생원시)) 정과에 합격하였고, 1447년(세종 29) 중시(重試, 승진 시험) 을과에서 장원하였다.

 

희현당 신숙주는 1438년(세종 20년)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439년(세종 21) 친시(親試) 을과에 급제하고, 1447년(세종 29) 중시(重試, 승진 시험) 을과에서 2등하였다.

 

 

 

 

성삼문의 학문 계통은 알 수 없다.

신숙주는 윤회와 정인지 문하에서 수학했다.

 

윤회는 하륜과 정도전의 문하생이고, 정인지는 권우의 제자로 권우는 정몽주의 문하생이었다.

결과적으로 신숙주는 성리학의 토대를 다진 목은 이색의 문하생 정몽주와 정도전의 학통을 계승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에서 자문을 얻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강론하게 했다.

때로는 경서(經書)보다는 사서(史書) 강론을 많이 하게 했던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독서를 많이 하게 하였다.

 

성삼문과 신숙주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가 집에서 책을 읽으면 방해가 될까 봐 조용한 절에 들어가 책을 상사독서(上寺讀書)와 업무를 쉬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의 기회를 주었다. 

 

 

 

 

집현전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의 산실이며, 문화중흥을 위한 세종의 친위부서다.

세종대왕의 신뢰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집현전은 학문 연구를 넘어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조선의 핵심기구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세종대왕과 문종대왕은 승하하기 전 집현전에 학사들에게 유약한 문종과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신숙주와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은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인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세종대왕이 확대 개편한 조선 최고의 인재집단 집현전 학사로 근 20년 가까이 절친한 동료이며, 벗으로 지냈다.

그러나 성삼문과 신숙주는 단종이 보위에 오르고, 계유정난으로 운명이 갈렸다.

 

 

성삼문은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켰고, 신숙주는 충절(忠節)보다는 스스로 판단과 시대의 흐름에 따랐다.

 

매죽헌 성삼문은 세종대왕과 문종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길을 선택했다.

반면, 희현당 신숙주는 세종과 문종의 유지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갔다.  

 

 

 

혹자는 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7개 국어에 능통한 외교가로서 활약한 신숙주가 성삼문보다 학식이 높은 것처럼 말하지만, 성삼문은 38세로 생을 마쳤고, 신숙주는 58세까지 살면서 20년 이상을 현직에서 활동한 차이 때문이다.

 

 

매죽헌 성삼문은 세종대왕과 문종, 단종에 이르는 3명의 임금을 모신 충신이었고, 희현당 신숙주는 세종대왕, 문종, 단종에게 불충한 신하였으나, 세조, 예종, 성종에게는 충신으로 6명의 임금을 섬겼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학사 출신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등을 비롯한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김질의 밀고로 실패로 돌아갔다.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한 성삼문 등 사육신은 사지가 찢겨 죽었고,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세조는 1462년(세조 8) 46살의 신숙주를 영의정에 제수한다.

관직에 나간 지 25년 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에 올랐다. 

역사는 충절을 지킨 매죽헌 성삼문을 선비의 표상이며 충신의 표상이라 말하고, 희현당 신숙주를 주군을 배신한 변절자라 말한다.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흰 눈이 온 세상에 가득할 때 홀로 푸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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