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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천문학자 이순지 김담

by 도생(道生) 2017. 1. 6.

조선의 하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천문학자 이순지와 김담

 

 

 

 

 

 

 

 

 

 

 

 

천문(天文)은 글자 그대로 하늘의 글이다.

그리고 천문(天文)은 우주에 내재(內在)한 이법(理法, 이치)을 현상세계인 하늘에 드러낸 것으로, 천문(天文)은 하늘이 낸 도리 천도(天道)이며, 하늘의 지도로서 천도(天圖)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을 보고 아름답다 또는 무질서하게 있다고 생각한다. 

천문도(天文圖)는 단순히 무질서하게 있는 하늘의 별자리 그림이 아니라, 천지시공간(天地時空間)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하늘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런 동양의 우주관은 역사 속에서 우리 삶의 전 영역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하늘은 원만하고 땅은 방정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과 국정운영 체제, 철학, 종교, 생활, 문화 등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의 하늘을 연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천문도(天文圖)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란 하늘에 있는 별을 순서와 구역(분야)별로 정리한 지도다.

 

 

본래 평양에 있던 천상분야열차지도 석본(石本)은 전쟁 중에 대동강 물에 빠져버렸고, 오래전 탁본한 것을 이성계에게 바쳤다고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천문학자에게 고구려의 천문도 탁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천문도를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선의 천문학자들은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별자리 위치를 조정하여 만든 것이 바로 천상분야열차지도다.

 

 

 

 

 

 

 

 

 

 

 

 

우리는 예로부터 하늘의 자손으로서 하늘의 뜻, 즉 하늘의 이치를 받들어 땅 위의 세상에 구현하려 했다.

천상분야열차지도는 1395년(조선 태조 4)에 1,460여 개의 별과 282개의 별자리를 돌에 새겼다.

 

 

 

 

조선은 황제의 나라 명나라의 속국으로 우주를 주재하시는 하늘의 상제님께 천제(天帝)를 올릴 수도 없었고, 조(祖)와 종(宗)의 묘호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하늘의 천명을 받아 조선을 개국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다.

 

조(祖)와 종(宗)의 묘호는 태종 이방원이 『태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사용하였고, 조선은 제후국으로 본래 조와 종의 묘호를 사용하면 안 되지만 명나라는 묵인해 줬다.

 

 

 

 

 

 

천상분야열차지도는 단순히 우주의 공간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별자리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의 질서가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상분야열차지도와 천문시계인 혼천의는 천체(별자리)의 위치와 운행을 관측하고 계산하 시간과 날짜, 계절 등을 계산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권근이 글을 짓고, 유방택이 천문계산을 했고, 설경수가 글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열차는 고려말과 조선 초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유방택을 비롯하여 다른 천문학자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다.

가장 오래된 천문도는 1247년에 제작된 중국의 순우 천문도로 우리의 천상분야열차지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다.

 

 

 

 

 

 

 

 

 

 

 

 

태조 이성계가 천상열차분야지도로 조선의 하늘을 열었고, 세종대왕은 조선의 천문학과 훈민정음 반포 등으로 조선의 땅과 백성의 미래를 열었다. 세종대왕은 농경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천문학과 기상학 등 천문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운관을 관상감으로 확대 개편했다.

 

관상감에서 천문, 역수, 지리, 측후, 각루 등에 관한 업무를 맡았으며,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 간의대 등도 관상감에서 만들어졌다.

 

 

이순지와 김담을 당시 조선 최고의 천문학자라고 평가한다.

장영실이 손재주가 좋은 최고의 기술자였다면, 이순지와 김담은 최고의 이론천문학자였다.

 

 

 

 

 

 

 

 

 

 

 

 

천문학자이며 수학자로 이순지와 김담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조선의 천문역법을 정비했다.

명나라에서 가져온 역서는 우리의 실정에 맞지는 않았다.

한양의 일출과 일몰 시각을 기준으로 우리의 역법을 자주화한 인물이다.

 

 

세종대왕이 천문학자로 발탁한 이순지, 그리고 김담은 당시 천문학에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하고 만드는데 참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천문학자 이순지는 천문류초를 저술했으며, 김담과 함께 조선의 천문역법인 칠정산 내편, 칠정산 외편』과 제가역상집 등을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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