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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7. 1. 2.

충절의 표상이 된 포은 정몽주와 조선의 설계자로 만고역적이 된 삼봉 정도전

 

 

 

 

 

 

 

 

 

 

 

 

 

 

 

포은 정몽주(1337~1392)의 생몰연대는 이견이 없으나 삼봉 정도전(1337 또는 1342 ~1398)은 출생연대와 출생지를 둘러싸고 여러 이견이 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며 정치가로 두 사람이 활동한 시기는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뒤바뀌던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였다.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은 같은 사상을 가진 동지로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꿈꾸었다.

 

고려말 성균관에서 공부한 유학자, 목은 이색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학한 벗, 친명(親明) 정책을 펼친 개혁파로 친원(親元) 정책을 펼친 수구보수세력과 맞선 것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사회개혁의 과정, 즉 내부로부터 개혁과 역성혁명이란 방법의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포은 정몽주는 성리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추앙받는다.

역성혁명세력에 의해 죽음을 맞았으나, 조선 건국 후 정몽주 살해를 지시한 태종 이방원에 의해 복권되어 성리학의 종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포은 정몽주는 조선왕조 500년을 넘어 현대까지 충절과 의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려의 신하였지만, 종묘의 문묘에 신주가 안치된다.

 

 

 

 

 

 

 

 

 

 

 

 

 

삼봉 정도전 역시 성리학의 대가로 성리학 이념의 이상 사회를 역사에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고려에 반역하고 조선 창업에 일등공신이었지만, 조선왕조에서도 대역죄인이 되어 죽었다.

근 500 동안 만고역적이란 누명을 쓴 그의 원혼은 구천을 떠돌았다.

 

 

 

고려의 충신으로 불리는 포은 정몽주와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모두 고려의 역적(逆賊)이다.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 창업에 이바지한 삼봉 정도전이 고려의 역적이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고려의 충신으로 불리는 포은 정몽주를 고려의 역적이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많다.

 

 

 

 

정몽주는 왕조를 바꾸는 일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맹자의 역성 혁명론을 바탕으로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는 일에 동참했고, 정도전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이다.

 

 

이성계가 주도하여 고려 우왕과 창왕을 폐할 때 포은 정몽주는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던 정몽주가 이성계와 뜻에 동참한 이유는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라는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명분이다. 

 

 

 

 

 

 

 

 

 

 

 

 

 

 

 

맹자는 임금 같지 않은 임금은 바꿀 수 있다는 역성 혁명론을 주장했다. 

맹자를 추종한 성리학자의 측면에서 보면 나라를 바꾸지 않고 임금 같지 않은 임금을 바꾼 것이 역모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고려왕조에서 쫓겨난 우왕과 창왕의 처지에서 보면 반역이다.

 

 

 

 

고려의 대학자이며 정치가로 같은 사상을 추구하며 한때 가장 절친했던 두 벗은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충신과 역적으로 명암이 갈렸다.

 

 

고려왕조에서 패자가 되었으나, 조선왕조에서는 승자가 된 포은 정몽주.

충절과 의리의 대명사가 된 포은 정몽주(1337~1392)는 길재(1353~1419) - 김숙자 - 김종직 - 김굉필 - 정여창 - 조광조 등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도통(道統, 도학의 계통)의 뿌리가 되어 500년 동안 조선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받았다.

태종 이방원에 의해 만들어지고, 중종과 정암 조광조의 후학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문묘에 배향된 포은 정몽주는 어찌 보면 이름뿐인 승자라 할 수 있다.

 

 

 

고려왕조에서 승자였으나, 조선왕조에서는 패자가 된 삼봉 정도전.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1337~1398)은 태종 이방윈에 의해 500년 동안 만고역적으로 불렸다.

그러나 정도전의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구축된 조선의 제도와 체제는 조선 왕조 5백 년을 이어갔다.

조선의 건국과 통치 이념, 정치, 법률, 경제, 사회, 군사, 문화 등 그가 만든 조선의 제도와 체제가 조선왕조 500년을 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삼봉 정도전은 살아서도 승자였고, 죽어서도 진정한 승자였다고 볼 수 있다.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5일(1403년)

이씨가 개국한 공은 오로지 조준과 남은에게 있다.

정도전은 언사를 잘하여 공신의 열에 있었는데, 그가 공신이 된 것은 또한 당연하나, 공으로 논하면 5, 6등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미 간 사람들을 오늘에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남은이 만일 살아 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부왕(태조 이성계) 때에 양정(兩鄭)이라고 일렀으니, 하나는 (정)몽주이고, 하나는 (정)도전이었다.

몽주는 왕씨의 말년 시중이 되어 충성을 다하였고, 도전은 부왕의 은혜에 감격하여 힘을 다하였으니, 두 사람의 도리가 모두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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