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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보신각(종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6. 12. 31.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종로 종각(鐘閣, 보신각)의 역사와 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

 

 

 

 

 

 

 

 

 

 

 

 

 

 

 

해마다 양력기준 12월 말일이 되면 옛것(묵은해)을 보내고 새로운(새해) 것을 맞는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를 담아 서울 종로 보신각(종각)에서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한다.

 

 

보신각의 옛 이름은 종루(鐘樓, 종각鐘閣)다.

보신각(종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의 유래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부터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경성방송국이 연말을 맞아 특별기획한 행사로 시작됐다.

 

 

 

 

종각(보신각, 종루) 타종행사의 기원은 그 의미가 지금과는 사뭇 다르지만, 조선왕조 초기부터 시작됐다.

본래 종각(보신각)에서 종을 치는 것은 도성(한양)의 4대문(四大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과 4소문(四小門) 혜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타종을 했다.

 

 

 

 

 

 

 

 

 

 

 

 

 

 

 

현재의 보신각(鐘閣) 제야의 종 타종행사는 1년의 마지막 날에 한다.

본래는 종각(종루, 보신각)에서 매일 두 차례 종을 쳐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과 특별한 일을 있을 때 타종을 하였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 시간과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밤에 두 번 타종행사를 하였다.

인시(寅時, 새벽 3시~5시, 오경)에 33번, 해시(해시, 밤 9시~11시, 이경)에 28번 종을 치며 성문을 여닫았다.

새벽에 종을 치는 것을 파루(罷漏), 밤에 종을 치는 것을 인정(人定)이라 한다.

 

 

 

33의 숫자는 우주가 수평적으로 펼쳐진 33천(天)의 하늘을 상징하고,

28의 숫자는 우주의 동서남북에 있는 28수(二十八宿) 별자리, 즉 하늘의 사방(四)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33번과 28번의 타종은 인간뿐만 아니라 잠든 천지(세상)를 깨우고, 천지와 만물이 고요한 휴식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한다.

1396년(태조 5)에 시작하여 1398년(태조 7) 청운교 서쪽에 종루(鐘樓, 종각)가 만들어졌다.

1413년(태종 13) 태종이 현재의 위치로 종각(종루)을 옮겼고, 세조가 종을 다시 주조하여 걸었다. 

임진왜란과 여러 차례의 화재로 종루(종각)가 소실되는 과정을 겪었다.

 

 

 

1864년(고종 1년)과 1869년(고종 6)에 종각(종루)에 불이 났다.

1895년(고종 32) 고종이 보신각(普信閣)이란 사액을 내리면서 보신각종으로 불린다.

이후 보신각(종각)의 타종도 시간은 새벽과 밤에서 정오(낮 12시)와 자정(밤 12시)으로 바뀐다.

고종의 보신각 현판은 전쟁 중에 불탔고, 현재의 보신각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고 전해진다.

 

 

일본 제국주의가 좌지우지하던 대한제국(조선) 말기인 1908년부터 종을 치지 않고 포를 쏘았다.

고종이 쓴 보신각 현판은 한국전쟁 중 불타버렸다.

 

1953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양력기준 매년 12월 마지막 날 자정에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로 정착됐다.

 

 

 

 

 

 

 

 

 

 

 

 

 

우리는 예로부터 한 해의 마지막 날, 음력 12월 마지막 날을 섣달그믐이라 했다.

섣달 그믐날 밤을 제야(除夜), 또는 제석(除夕)이라 한다.

 

 

혹자는 현재의 제야의 종 타종행사는 명칭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제야(除夜, 제석), 즉 섣달 그믐날 저녁의 타종행사는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의 행사이므로,

새해를 맞이하는 타종행사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아닌 다른 명칭의 새해맞이 타종행사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3천(天)과 제석(除夕)이 특정 종교와 관련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세조 때 새롭게 주조된 종각(종루)의 종(鐘)이 임진왜란과 화재,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본래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1985년 새로운 보신각종이 만들어져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조선 시대 하루 두 차례 시간을 알려주던 종각의 종소리는 현재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 말고도 기념일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타종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0권, 태조 5년 12월 7일(1396년)

임금이 종루(鐘樓)에 거둥하여 새로 주조한 종(鐘)을 보았다.

 

 

 

태조실록 13권, 태조 7년 4월 15일(1398년)

종루(鐘樓)에 거둥하여 종을 다는 것을 보았다.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4월 11일(1413년)

종루(鐘樓)가 이룩되니, 다시 구종(舊鐘, 옛종)을 매달았다.

 

 

 

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도 한성부

종루(鐘樓) - 종루는 도성 중앙에 있다. 2층으로 되어 있고, 누 위에 종을 달아서 새벽과 저녁을 깨우쳐 준다.

 

 

 

세조실록 11권, 세조 4년 2월 11일(1458년)

새로 주조한 대종(大鐘)이 이룩되어 종루(鐘樓) 아래에 달았다.

 

 

 

선조실록 188권, 선조 38년 6월 11일(1605년)

군기시가 광화문 밖의 파손된 종(鐘)을 가지고 화기(火器)를 제조할 것을 청하니 전교하였다.

"종각(鐘閣)의 종을 가져다 쓸 필요는 없다."

 

 

 

광해군일기 139권, 광해군 11년 4월 14일(1619년)

임금이 "종루(鐘樓)를 속히 중건하고 금종(金鐘)을 즉각 다시 달도록 하라." 하니

병조가 아뢰기를

"지금 한양과 지방에 재료가 모두 고갈되어 종루를 중건하기란 쉽지 않으니, 우선 전일의 규정에 따라 종각을 개조하고 즉시 종을 달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자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 7월 2일(1637년)

종각(鐘閣)을 중건(重建)하였다.

 

 

  

숙종실록 16권, 숙종 11년 1월 9일(1685년)

종각(鐘閣)에 불이 났다.

임금이 격동하여 사관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고, 3일 안에 고쳐 세우기를 명하였다.

 

숙종 11년 1월 11일

종각(鐘閣)을 개수(改修)하여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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