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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일본 군함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by 도생(道生) 2016. 12. 29.

일본 제국주의 군함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1868년(고종 5) 일본은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을 통해 막부정권을 무너트리고 일본 왕 친정체제의 제국주의로 발돋움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에 여러 차례 통상교섭을 요구하였으나, 당시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하던 시기라 성공하지 못했다.

 

 

1873년(고종 10) 고종과 중전 민씨는 경복궁 중건과 서원철폐 등의 정책으로 양반과 백성에게 민심을 잃은 흥선대원군최익현과 유학자를 앞세워 내쫓는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민씨 일파가 조정 요직을 차지하며 세도정치를 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일본 제국주의는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던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군함을 파견한다.

1875(고종 12) 8월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침입하여 조선과 전투를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군함이 아무 통고 없이 침범하자 강화도 초지진에 있던 조선군이 포격을 가함과 동시에 일본 군함 운요호에서도 포격으로 맞섰다. 조선군은 30여 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의 부상자 발생했으나, 일본군은 사망자도 없고 피해가 작았다.

 

 

 

 

 

 

 

 

 

 

 

 

1876년(고종 13) 1월 일본은 운요호 사건에 대한 조선의 책임을 묻고 왜관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시 일본 군함과 병력을 조선을 침략한다.

 

특명전권 대신을 맡은 구로다 키요타카 육군 중장이 군함 8척과 400여 명의 군사를 앞세우고 강화도에 상륙해 조선에 협상을 강요하며 무력시위와 함께 군사를 인천과 부평 등지에 상륙시킨다고 협박했다.

 

 

 

일본의 요구를 놓고 조선 조정은 여러 차례 논의한다.

개항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청나라의 개항 권유와 박규수와 오경석 등이 찬성하자 고종은 일본과 조약을 맺는다.

철저하게 준비한 본 제국주의는 이른바 일본 군함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강압하여 불평등한 조약, 강화도조약을 체결한다.

 

 

 

이른바 강화도조약은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여 협박한 사건이다.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약, 병자수호조약)은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이다.

강화도조약을 두고 불평등조약이냐 자주적인 조약이냐 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나뉜다.

 

 

일본의 강압에 조선 고종과 조정의 일부 신료들은 조선의 근대화에 목적을 두고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강화도조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침탈의 물꼬를 열어준 꼴이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맺기 위한 군사작전을 준비하면서 이미 서구 제국주의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협조를 끌어낸 상태였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882년 미국, 1883년 영국, 독일, 1884년 이탈리아, 러시아, 1886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나라와 잇단 통상조약을 맺으며 근대화를 이루어갔지만,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흥선대원군이 섭정할 때도 고종이 친정할 때도 풍양 조씨와 여흥 민씨 일파의 세도정치는 계속되고 있었다.

고종과 중전 민씨, 그리고 조정 신료들은 70여 년 동안 조선이 세도정치의 학정과 수탈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져 조선 사회가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조선이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으며 제국주의 열강들끼리 경쟁시키겠다고 생각한 고종의 전략은 큰 착각이었다.

19세기는 근대화와 세계화가 역사의 대세였지만, 조선은 자국의 현실상황도 파악 못 하고, 제국주의 열강의 힘과 검은 속내를 바르게 보지 못한 눈뜬장님이었다.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지 20년이 지난 후 고종은 자신의 왕비이며 조선의 국모인 중전 민씨가 일본 자객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게 된다. 조선 왕 스스로 일본에 경제적 침략과 군사적 침략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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