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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7. 4. 22.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白山) 지청천 장군

 

 

 

 

 

 

 

 

 

 

 

 

 

백산 지청천(본명 지대형) 장군은 조선의 국운이 기울던 1888년 한양에서 대대로 무관(武官)을 지낸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우리나라에서 천연두(시두) 예방 접종인 종두법을 처음 시행한 재종숙 지석영의 도움으로 배재학당을 졸업한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지청천 장군이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일제 조선통감부가 대한제국을 압박하여 1909년 육군무관학교를 폐교한다.

 

 

일제는 주변의 시선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폐교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학생 50여 명대한제국 유학생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육군 장교 후보를 양성하는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위탁 교육을 보낸다.

 

 

 

 

 

 

 

 

 

 

 

 

 

백산 지청천 장군이 일본 동경의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재학하던 1910년 일제가 무력으로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면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보병과로 편입되었고, 1913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로 졸업한다. 소위를 거쳐 중위로 복무하던 중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몸이 아파 요양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군 군사전술 교범과 군용지도를 가지고 탈출한다.  

 

 

 

만주로 망명한 백산 지청천 장군은 무장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간다.

일본의 정규 육사 출신인 백산 지청천 장군의 군사지식은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이 전술과 전략을 체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교성대장)으로 활동하며 무장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다한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만주 군정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 출신 중심의 서로군정서 사령관을 맡는다.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안무와 최진동 3형제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백산 지청천 장군의 서로군정서 외 군소 독립군부대가 연합한 한국독립군단이 만들어 졌고, 백산 지청천 장군은 여단장을 맡는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 이후 1920년 간도 대학살과 1921년 자유시 참변이 이어지면서 한국독립군단은 와해하였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1921년 독립군 무관 양성을 위해 러시아 이르추르크에 세워진 고려혁명군관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한국독립군단이 와해한 자유시 참변(흑해사변) 당시 백산 지청천 장군은 소련 혁명군에게 포로가 되었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구명운동으로 풀려난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고려혁명군 대표, 국민위원회 군사위원, 대한통의부(대한통군부)를 거쳐 양기탁, 오동진 장군 등과 함께 대한독립운동엽합체인 정의부를 조직하여 군사위원장과 사령장이 되고, 군민의회의 군무위원이 된다. 

 

1930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여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을 맡는다.

1931년 중국군과 한중연합군을 결성하여 일본군과 여러 전투를 벌였고, 특히 대전자령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동아혈성연맹을 결성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항일 독립군부대를 규합하는 데 힘쓴다.

193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군의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을 중국 국민당 정부가 운영한 낙양군관학교의 한인특별반 총책임자로 보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들어간 지청천 장군은 1939년 의정원 의원, 국무위원과 군무장을 거쳐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한국광복군을 창설과 함께 광복군 총사령관을 맡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한편 중국군과 연합하고, 미얀마의 영국군과 연합하는 등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에 맞서 연합국과 군사합작 및 공동작전에 참여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한다.

지청천 장군의 딸 지복영도 광복군에 들어가 군인으로 항일투쟁을 하였고, 아들 지달수, 지정계도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은 1945년 일가 연합국에 패전하면서 1946년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미 군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은 물론 임시정부와 산하 단체의 모든 관계자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은 미 군정하에서 청년단체를 모아 대동청년단을 만들었고, 제헌국회 의원, 정부수립 후 무임소장관(특임장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1957년 70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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