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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의열단 단원 나석주 의사의 폭탄투척 의거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7. 4. 15.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단원 나석주 의사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

 

 

 

 

 

 

 

 

 

 

 

 

 

 

 

조선총독부 산하의 동양척식회사와 조신식산은행은 일제가 조선 경제를 착취한 경제수탈 중추기관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본뜬 국책회사로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강제병합되기 전인 1908년 대한제국의 경제를 독점하고 토지강탈과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식산은행(산업은행)은 동양척식회사와 함께 조선 경제 수탈의 중추기관으로 전쟁에 미친 일제가 조선의 쌀을 대량으로 일본에 들여가는 소위 '산미증식계획(1902~1934)'에 자금줄 노릇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백범 김구의 경호원이며 의열단 단원으로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투척 의거를 한 나석주(1892~1926) 의사는 황해도 재령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나석주 의사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후 국내외 애국지사들이 무장투쟁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만주에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간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에 들어온 나석주 의사는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경찰과 면장 등 친일파를 처단하며 항일운동을 한다.

 

일본의 감시가 심해지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에서 임시정부 요인의 경호를 맡는다.

나석주 의사는 중국 한단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비밀결사조직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백범 김구, 심산 김창숙 등이 동포들의 민족혼을 일깨우고 항일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조선 경제와 자원 수탈의 핵심기관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의열단 단원 나석주 의사가 폭탄투척 의거를 하기로 결정된다.

 

 

1926년 12월 의열단 단원 나석주 의사는 폭탄투척 거사를 준비하고 마중덕이란 중국인으로 위장해 인천으로 입국한다. 

황해도 출신으로 서울 지리에 어두운 나석주 의사를 옆에서 도와준 분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부인이며 여성 항일독립운동가인 박자혜(1895~1944) 여사였다.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는 먼저 조선의 경제와 자원을 수탈한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했다.

그러나 투척한 폭탄이 터지지 않고 불발되면서 나석주 의사는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옮겨가 일본인 직원을 사살하고 폭탄을 투척했지만, 역시 불발된다.

 

 

 

 

 

 

 

 

 

 

 

 

투척한 폭탄이 불발되고 일본 경찰의 추격과 함께 도심 한가운데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폭탄투척 의거에 실패한 나석주 의사는 일본 경찰과 교전 중 권총으로 자결했다.

나석주 의사가 순국하기 전 일본 경찰과 동양척식회사 일본인 직원 등 3명을 사살하고 4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혈혈단신으로 조선 경제와 자원 수탈의 심장부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총격 중 순국한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일제가 보도를 통제하면서 사건 발생 17일 뒤에야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의 경호원과 항일비밀결사조직 의열단 단원 나석주 의사는 조선인의 고혈을 빨아먹던 경제수탈의 심장부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투척 의거에 목숨을 바쳤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기 전 상해에 있을 때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의 생일을 맞아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저당 잡히고 고기와 반찬을 사서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에게 가져다 드렸다.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반찬을 만들어 아들을 뒷바라지할 정도로 생활이 궁핍했다. 나석주 의사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얼마후면 어차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이기에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저당 잡혀 반찬을 사다 드린 것이다.

 

 

 

 

곽낙원 여사는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자 지천명(50세)의 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現 경찰청장)의 자리에 있던 아들 백범 김구 선생의 종아리를 때렸다. 곽낙원 여사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개인의 사소한 생일을 동지에게 알려 옷을 저당 잡혀 생일상까지 차려 먹었다는 이유로 백범 김구 선생의 종아리를 때리며 멸사봉공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의열단 단원으로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의거는 나석주 의사 한 분의 의거가 아니다.

 

나석주 의사는 목숨을 바치면서 폭탄투척 의거를 실행했고, 그 뒤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어머니 곽낙원 여사, 심산 김창숙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 의열단 단원과 수많은 애국지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피와 땀, 숭고한 애국정신 등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희생과 봉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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