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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의열단 단원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by 도생(道生) 2017. 4. 8.

항일무장독립투쟁 비밀결사조직 의열단 단원 김상옥 의사(義士)

일제강점기 왜경(倭警)의 심장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혹독한 고문을 자행하는 등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기관으로 수많은 독립투사가 고초를 당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일제 경찰의 심장부와 같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의열단 단원 김상옥(1890~1923) 의사는 한양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상옥 의사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좌절하지 않고 일하면서 학업을 계속했다. 

 

자수성가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한 김상옥 의사는 영덕철물상회를 운영했고, 말총 모자와 일반생필품을 만들어 팔았다.

김상옥 의사는 뜻을 같이하는 한훈, 유장렬 등과 대한광복단을 결성하고 전라도 지역 친일파를 처단하고 오성헌병분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1919년 3.1만세 운동을 전후하여 김상옥 의사는 박민호, 윤익중, 정설교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 혁신단을 만들어 혁신공보를 발행하며 민족의식과 독립 의지를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종로경찰서에서 한 달 넘게 고초를 당한다. 

 

 

 

 

 

 

 

 

 

 

 

 

 

종로경찰서에서 풀려난 김상옥 의사는 대종교 신도 중심으로 조직된 북간도 독립군부대 북로정서군에서 파견된 김동순과 윤익중, 서대순 등과 조선 총독 암살과 조선총독부 폭파를 준비하던 중 거사가 발각되어 상해로 망명한다.

 

중국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교류하면서 강력한 무장투쟁을 하던 항일비밀결사조직 의열단 단원이 된다.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의열단은 191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큰 별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11명의 애국지사가 모여 만든 단체다.

 

의열단을 창립한 약산 김원봉과 애국지사들은 그동안 무폭력 독립운동과 무장독립운동의 한계를 절실히 느껴 폭렬(爆烈) 투쟁의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었다.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 단원들은 거침없는 폭렬투쟁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하였다.

 

 

의열단 단원들은 일제의 고관과 친일파 암살, 식민지 핵심관 폭파 등의 강력한 암살 폭파 무장투쟁으로 일제의 치를 떨게 했다.

식민통치 사령탑 조선총독부와 독립군 탄압의 대명사였던 종로경찰서도 의열단 단원들의 폭파 대상이었다.

 

 

 

 

 

 

 

 

 

 

 

 

 

의열단 단원이 된 김상옥 의사는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을 모집하고 상해로 돌아갔다.

폭렬투쟁의 항일독립운동을 천명한 비밀결사조직 의열단은 반드시 죽이고 파괴해야 할 '7가살'과 '5파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922년 권총 3정과 탄약 800발, 폭탄 등을 국내로 반입한다.

 

 

김상옥 의사는 의열단 단원 안홍한, 오복영 등과 함께 조선 총독 사이토 마사코를 암살하고 종로경찰서를 폭파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왔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체포된 독립군이 모진 고문을 받았던 독립투사의 한(恨)이 서린 곳이었다. 

 

 

 

의열단 단원 김상옥 의사는 1923년 1월 12일 독립군 탄압의 대명사였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다.

김상옥 의사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매부 고봉근의 집에서 일본으로 가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사코를 서울역에서 처단하기 위해 거사를 준비한다.

 

 

 

 

 

 

 

 

 

 

 

 

종로경찰서는 폭탄을 투척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검거에 나섰고, 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1월 17일 새벽 김상옥 의사는 삼판동 매부 고봉근의 집에서 김상옥 의사를 체포하려던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다.

명사수였던 김상옥 의사는 수십 명의 일본 경찰과 맞서 4명을 살상하고 일본 경찰의 포위망을 탈출한다.

 

 

 

남산을 넘어 안정사에서 승복으로 변장하고 수유리를 거쳐 효제동 이혜수 동지의 집에 은신했으나, 1월 22일 일본 경찰에게 포위를 당한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의열단 단원 김상옥 의사 단 한 명을 체포하기 위해 4~500여 명의 일본 경찰이 겹겹이 포위한다. (혹자는 당시 일본 경찰의 규모가 1천 명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수백 명의 일본 경찰은 양손에 권총을 쥐고 민가의 지붕을 넘나들며 신출귀몰하는 김상옥 의사를 쉽게 체포하지 못했다.

김상옥 의사 한 명과 수백 명의 일본 경찰은 3시간여 동안 총격전이 벌어졌고, 일본 경찰 수십 명이 김상옥 의사의 쌍권총에 쓰러졌다.

 

 

 

김상옥 의사는 마지막 한 발의 총알로 자결하면서 34세의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했다.

폭렬투쟁의 항일비밀결사조직 의열단 단원 김상옥 의사는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기세로 만천하에 대한 남아의 기백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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