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가 공동으로 관할하는 특수지역
남북한이 중화기로 무장한 유명무실한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 통일각과 판문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은 휴전협정(정전협정)에 서명한 유엔군과 중국과 북한, 그리고 중립국(스위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이 공동으로 관할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특수지역 판문점은 지명(地名)이고, 공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입니다.
휴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800m에 이르는 장방형 지역입니다. 군사분계선 남쪽은 유엔군이 경비를 맡고, 군사분계선 북쪽은 북한(공산 진영)이 경비를 맡기로 했습니다.
중립국 감시위원회(중립국 감시단)는 판문점 내에 있는 남측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 통일각과 판문각 등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롯하여 비무장지대에서 유엔과 공산 진영이 휴전협정(정전협정) 이행과 준수하고 잘 하고 있는가를 감시, 감독, 시찰하고 조사결과를 군사정전위원회에 보고하게 됩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본래 유엔군, 중국, 북한, 그리고 중립국 감시단이 공동으로 관할하는 특수지역이지만, 현재는 중국,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철수했고, 대한민국 군인이 추가됐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경비를 담당하던 유엔군(미군)은 2004년부터 한국군(일부 미군)에게 경비를 맡겼지만, 한국군의 지휘통제는 유엔군 사령부가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휴전선) 위에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 및 감시초소와 경비병 막사 등과 남측에는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으며, 북측에는 판문각과 통일각이 건물 등이 있습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휴전선) 위에 있는 건물은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 및 회의실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임시 건물 중 파란색 건물 3개는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실(T1),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입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T1, T2, T3에서 T는 Temporary의 약자로 임시 건물이란 의미입니다.
유엔과 중공, 북한이 모두 정전협정(휴전협정) 이후 현재의 공동경비구역(JSA)은 현재의 판문점으로 옮기면서 임시로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군사분계선(휴전선) 위에 세워진 T1은 중립국 감독위원회, T2에서는 장성급 회담, T3는 영관급 회담이 열립니다.
그리고 T2에서만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쪽으로 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휴전협정으로 만들어진 특수지역으로 유엔군과 북한군 경비병이 공동경비구역(JSA)을 자유롭게 왕래했습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면서 왕래가 중단됐습니다.
1976년 8월 18일에 일어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의 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무성하게 자란 미루나무 때문에 북측 초소 관측이 어려워지자 미국과 한국군 11명이 한국인 노무자가 미루나무 절단 작업 하는 것을 감독하고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북한군 10여 명이 나타나 제거 작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군과 한국군은 북한군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잠시 후 북한군 지원병력 20여 명이 트럭을 몰려와 재차 작업 중지를 요구했지만, 작업을 강행하자 북한군은 차에 있던 몽둥이와 곡괭이 등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은 한국인 노무자가 미루나무 제거 작업에 사용했던 도끼까지 빼앗아 공격했습니다.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부상자를 제외하더라도 미군 2명이 사망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갔었습니다. 8월 21일 미군은 '폴 버니언 작전'으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단초가 된 미루나무를 절단해 버립니다,
한국 특전사부대는 카투사로 위장하여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했습니다. 미국과 한국군이 작전을 개시했지만, 북한이 대응하지 않으면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더는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1953년 7월 31일 휴전협정(정전협정) 추가 사항에는 '군사정전위 쌍방 성원은 민사경찰을 보총과 권총으로 무장한다.'라는 사항을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남측으로 북한군 귀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북한군이 AK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추가된 정전협정에서 말하는 보총은 총탄 한 발씩 쏘는 수동식 소총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장한 군인이 들어올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 남북한 군인들이 중화기로 완전무장한 채 진지를 구축하면서 휴전협정은 유명무실화됐습니다.
북한의 개성에서 시작하여 2년여의 휴전협상과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그리고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이르기까지 세 번을 옮겨 다녔습니다.
본격적인 휴전협상은 판문점의 임시 천막에서 다시 목조건물, 휴전협정이 끝나고 휴전협상을 한 목조건물이 비무장지대 북측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군사분계선(휴전선)으로 옮긴 것입니다.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에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단 건물과 남북한 감시초소, 남측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의 통일각과 판문각 등이 세워졌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단의 건물은 모두 임시 건물입니다.
1976년 8월 18일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난 이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단 건물 중앙에 군사분계선을 상징하는 폭 50cm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들어졌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자유의 집은 1998년 세워진 건물로 군사분계선에 걸쳐져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 뒤 남쪽에서 북측 판문각과 마주 보고 있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자유의 집은 남북연락사무소와 남북적십자사무소가 있으며, 남북 간의 연락과 회담, 교류 등을 지원하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측 판문각은 1969년 세워진 건물로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을 두고 북쪽에서 남측 자유의 집과 마주 보고 있는 건물로 남측 자유의 집이 평지에 있지만, 북측 판문각은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판문점 북측 판문각은 군사정전위원회와 남북회담 대표들이 대기하고, 북측 경비병들의 사무실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평화의 집은 1980년 세워진 건물로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남서쪽 약 130m에 있으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남측의 남북회담 장소입니다. 판문점 평화의 집은 대한민국이 휴전협정 당사국이 아닌 관계로 민간 부분 회담을 개최하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측 통일각은 1985년 세워진 건물로 남측의 평화의 집과 대칭되는 건물입니다.
통일각은 판문점 북측의 판문각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북남연락사무소 기능과 북측의 북남회담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은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고,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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