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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眞理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 정읍 보천교

by 도생(道生) 2019. 6. 4.

임시정부와 의열단,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정의부와 신민부 등에 군자금을 보내는 등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지만, 일제의 탄압과 유사종교 정책으로 사라진 정읍 보천교

 

 

 

 

 

 

 

 

 

 

 

 

증산도 전 지역 권ㅇㅇ 도생(道生) -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 정읍 보천교

 

저는 전라북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도회지로 나가기 전까지 고향에서 성장했습니다. 

제가 자란 마을에는 요즘 말로 하면 마을회관처럼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정자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 조부님을 따라 자주 갔었습니다.

 

조부님과 동네 할아버지들께서 자주 하신 말씀은 대부분 농사에 관련된 말씀이었고, 언제 빠지지 않았던 이야기는 할아버지들의 부모님께서 신앙했던 보천교 이야기였습니다.

 

 

"태을주를 읽으면 병이 들지 않았다.", "행사 때가 되면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강증산 상제님의 기행 이적은 말로 다 못할 정도로 많다.", "차천자(차경석)가 죽고 일제가 보천교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일본놈들이 보천교 건물을 허물고 다 팔아먹었다." 등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농사 이야기로 시작해서 반드시 보천교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어린 소견에 농사는 부모님께서 짓고 있어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보천교에 관한 이야기는 신기하면서도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학교 선생님께 물어보았지만, 모르는 이야기라고 했고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천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철없던 꼬맹이 때의 궁금증은 제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어 서점과 도서관을 다 뒤졌지만, 보천교와 관련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보천교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전해 받으면서입니다.

 

 

 

 

 

 

 

 

 

 

보천교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소개한 작은 소책자를 보고 다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증산도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됐습니다.

 

 

증산도 상생방송에서는 어렸을 때 조부님과 할아버지들께서 나누시던 보천교 이야기를 똑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증산상제님은 우주의 통치자로 가을개벽기를 맞아 인간을 구원하고 후천 5만 년이 새 시대를 여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 세계와 어머니 하나님 태모 고수부님, 그리고 보천교의 역사를 알아 가면서 증산도 상생방송의 열혈 시청자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약 7백만 명이 증산상제님을 신앙했고, 정읍 보천교는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언론인이며 역사가이자 항일운동의 최일선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정의부에 군자금을 전달해 준 보천교 간부였습니다. 

 

 

1918년 제주 지역 최대의 항일운동이었던 이른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세상에 알려진 정읍 보천교의 대표적인 항일운동이었지만, 역사는 정읍 보천교를 빼고 불교 승려들의 항일운동으로 만들었습니다. 

 

 

1919년 3.1만세혁명 직후 조선총독부는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보천교 신도 약 3천여 명을 체포해 수십 명이 고문 중 사망하고, 700여 명이 기소되었으며 전국적으로는 약 3만여 명의 보천교 신도를 검거했습니다. 

 

 

 

 

 

 

 

 

 

1920년대 조선사람은 조선의 물건을 사용하자는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 이른바 '물산장려운동'은 정읍 보천교의 대표적인 민족운동이었지만,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과 마찬가지로 정읍 보천교를 뺀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때 동학농민군 출신으로 1919년 최남선, 최린 등과 3.만세혁명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보천교 간부 임규 선생은 1920년 군자금 5만 원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했습니다.

 

 

탄허 스님의 아버지로 정읍 보천교 간부였던 김홍규 선생은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선에게 군자금 30만 원을 보내고, 10만 원을 보관하던 중 일제에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現 서울 조계사 대웅전은 정읍 보천교 십일전(十一殿)을 해체해 다시 지은 건물)

 

 

 

 

 

경남 김해 출신의 보천교 신도 배치문(배홍길) 선생은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목포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청년운동과 의열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배치문 선생은 보천교 신도 김종철, 강홍렬(강일) 선생 등과 함께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민대표자회의 보천교 대표로 참석하고 임시정부와 의열단에 독립자금을 전달한 분이며, 강홍렬과 배치문 선생은 의열단에 가입해 무장 항일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24년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김좌진 장군 부대도 정읍 보천교로부터 군자금을 받았습니다.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던 정읍 보천교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조선총독부는 1936년 소위 '유사종교 정책'으로 보천교를 강제 해산시키고 건물을 강제 경매에 부쳤습니다. 

 

 

 

 

 

 

 

 

 

 

증산도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지만, 대한민국 역사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도 않고 근래 들어서야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 정읍 보천교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 아버지 증산상제님과 어머니 하나님 태모 고수부님, 그리고 증산도의 진리를 알고 증산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도장을 방문했습니다. 도장에서 증산도 진리 관련 서적을 구입해 읽고, 도장 포정님과 도담을 나눈 후 21일 태을주 수행과 교육을 받고 증산도 도생(道生)이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의 진리를 만난 것과 상제님 진리를 인도해 주신 조상님께 깊이 감사 올리며, 일심 정성을 다해 증산도 진리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보은(報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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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sd.or.kr/

 

 

 

증산도 신앙 상담 문의: 1577 -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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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극(相克)의 묵은 천지를 개벽하여 상생(相生)의 새 천지를 열어 주신 우주의 통치자 아버지 하나님 증산상제님과 어머니 하나님 태모 고수부님을 신앙하는 국내외 증산도 도생(道生)들이 증산도를 만나는 과정의 입도(入道) 수기를 짧게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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