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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 상생방송

STB 상생방송 "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 13회 흉노제국 이야기"

by 도생(道生) 2013. 10. 24.

STB 상생방송 - " 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

13회 흉노제국 이야기

 

 

 

 

13회 흉노제국 이야기

 

유라시아 대륙에 강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흉노 이야기!

아시아와 유럽을 제패한 흉노는 한민족과 어떤 관계인가?

 

몽골고원의 첫 번째 주인 흉노를 소개하는 역사서 『흉노 제국 이야기』.

역사적 흔적을 토대로 하여, 현재의 중국을 존재하게 만든 유목민족 흉노의 방대한 흥망성쇠를 추적하고자 했다.

 

저자는 몽골초원을 7백 년 넘게 호령했던 흉노가 어떻게 중국의 역사문헌에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는지를 추적하며 흉노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았다.

 

또 흉노가 유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서술하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호령하던 700년 대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는 증산도 진리 서적과 필독서, 상생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한민족의 생활 및 의식주 문화에 대해 재조명하여 그 속에 담긴 가치와 철학 등을 알아본다.

 

증산도 진리 서적과 필독 서적을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보고 ‘한韓문화’의 여러 유형과 참의미를 찾아 퇴색되고 잃어버린 우리 문화를 되찾는 동시에 평소 사람들이 잘못되게 사용하고, 인식했던 한韓문화에 대한 뿌리와 유래를 알려줌으로서 ‘한韓민족 국통사와 한韓문화를 올바로 알 수 있는 동기부여’를 위해 기획되었다.

 

 

흉노족

【환단고기】-『 단군세기』에는

3세 가륵 단군께서 욕살(지방 장관) 삭정을 약수 지방에 유배시켰다가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단기 157년 , BCE 2177년, 한글의 시원 문자인 가림토 문자도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이 때에 만들어 졌다.)

(4세 오사구 단군께서는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에 봉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의 몽고족이 그 후손, BCE 2137년의 일이다. )

 

흉노의 시조는 한민족이다.

흉노는 그 수가 계속 늘어나 진나라 때 와서는 이미 오르도스와 몽골고원, 천산산맥 일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흉노는 그 우두머리를 선우單于라 하였다. 흉노는 한나라 초기 묵특선우冒頓單于(BCE 209~BCE 174) 때 서쪽의 월지와 동쪽의 동호東胡를 격파하고 아시아 최초로 대유목 제국을 세웠다. 묵특선우는 흉노 제국을 신교의 삼신문화의 고향인 고조선처럼 셋으로 나눠 통치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자신은 중앙을 통치하고 동쪽은 좌현왕이, 서쪽은 우현왕이 통치하게 하였다. 좌현왕은 우현왕보다 우선시 되었는데 보통 선우의 아들을 좌현왕으로 삼았다.

 

선우는 자신을‘ 탱리고도撑梨孤塗선우’라 하였는데, 탱리撑梨는‘ 하늘’을 뜻하는 흉노어‘ 텡그리Tengri’의 음역이고,‘ 고도’는 아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탱리고도는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를 의미한다.

흉노는 천지와 일월을 숭배하고, 나아가 조상을 숭배하였고, 일 년에 세 번 큰 제사를 지냈다.

특히 정월의 춘제春祭와 오월의 용성대제龍城大祭는 대규모 천제였다.

중국 측의 기록에 의하면 흉노는 하늘에 제사지낼 때 이용하는 큰 금상이 있었다고 한다.

흉노의 한 왕인 휴도왕의 땅에 있던‘ 제천금인祭天金人’이 그것이다. 선우는 매일 해와 달에게 절하고 자신이 거처하는 게르(천막집)의 문도 항상 동쪽을 향해 배치하였다. 이처럼 문을 동향으로 한 것은 동쪽을 중시하는 동이족의 관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았다. 이것을 연결한 것이 진시황 때 이루어진 만리장성이다.

진시황은 장군 몽염에게 삼십만 군을 주어 흉노에게 반격을 가하고 서쪽의 농서군에서 동쪽의 요동군 갈석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만리장성 축조는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고 결국 2세 황제인 호해 때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의 반란으로 망했다.

흉노의 위협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멸망시킨 원인의 하나였던 것이다.

 

진나라에 이어,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흉노의 공격에 시달렸을 뿐, 흉노를 제압하는데 실패하였다. 한고조 유방의 경우 흉노와의 전쟁에서 포위당했다가 가까스로 뇌물을 주고 빠져나오기도 하였다. 이후 공주와 공납을 보내 굴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였다. 한 무제 때 와서는 다시 흉노와 전쟁을 시작하였는데 이 전쟁은 근 50년 동안 계속되었다.

 

흉노족은 역사적인 기록에서 사라져 버린듯 하다가 4세기 중반에 갑자기‘ 훈hun’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훈족은 370년경 흑해 북부에 나타남으로써 처음으로 유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들은 볼가강을 건너 남러시아 초원지대에 거주하던 알란족을 공격했고, 이어서 알란족과 함께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을 공격하여 유럽 대륙에 민족이동의 대물결을 야기하였다. 공포에 질려 도주한 게르만족이 밀물처럼 로마 국경 안으로 몰려들자 이를 제어하지 못한 서로마 제국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게르만족의 이동은 서양 역사에서 고대의 종말을 초래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바로 이 게르만족의 이동은 훈족의 공격 때문에 촉발된 것이었다.

 

훈족은 이 시기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동서 유럽 여러 지역을 침략하여 유럽인에게 커다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훈족은 아틸라 대왕(395~453) 때에 이르러 유럽 일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를 훈제국이라 부르는데 우랄산맥에서

동유럽 일대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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