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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에 기록된 한민족의 옛 제국(帝國)의 천도(遷都, 수도 이전) 역사

by 도생(道生) 2014. 10. 14.

환단고기에 기록된 한민족의 옛 제국(帝國)의 천도(遷都, 수도 이전) 역사

 

 

 

 

환단고기에 천도(遷都)한 해(年)가 기록된 한민족 옛 제국의 천도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한민족 옛 제국의 천도遷都사

 

 

임술년 (환국, 안파견 환인천제, 천산)

→ 계해년 (배달, 거발환 환웅천황, 신시)

→ 무진년 (조선, 왕검, 아사달)

→ 을미년 (조선, 색블루 단군, 백악산아사달)

→ 병진년 (조선(대부여), 구물 단군, 장당경)

임술년 (북부여, 해모수 단군, 난빈, 백악산)

→ 을미년 (북부여(동명국), 고두막 단군(동명성왕), 홀본)

→ 을미년 (고구려, 고주몽 성제, 눌현)

→ 임술년 (고구려 유리명제, 국내성)

→ 무진년 (대진국(후고구려, 발해), 대중상

→ 정축년 (대진국(발해), 대흠무, 상경용천부)

 

 

 

 

 

 

계해년, 거발환 환웅천황 (신시 배달국 1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개국하여 배달국의 첫 도읍을 여신 신시(神市)에 들어선 것은 계해년(BCE 3,897)이다.

환국의 환인천제로부터 천부인(天符印)과 함께 문명개척단 3,000명을 이끌고 백산과 흑수 사이의 지역이 도읍을 정하셨으니 바로 신시(神市)였다.

 

 

 

 

 

무진년, 왕검단군(고조선 1대)

왕검 단군께서 개국하신 삼한주선(三韓朝鮮)에 첫 도읍이 들어선 것은 무진년(BCE 2,333)의 일이다.

이때 합이빈, 험독, 평양에 진한, 번한, 마한의 왕검성이 처음 들어섰으니 그 중심은 진한의 대단군이 다스리는 아사달이었다.

 

 

을미면, 색블루단군(고조선 22대)

단군 조선의 두 번째 황조를 여신 분은 22대 색블루 단군이다.

우현왕 색블루는 소태 단군 52년에 부여신궁에서 스스로 즉위하였으니 이때는 을미년(BCE 1,285)이다.

부여신궁은 곧 녹산에 있는 백악산아사달이다.

 

 

병진년, 구물단군(고조선 44대)

단군 조선의 세 번째 황조를 여신 분은 44대 구물 단군이다.

구물 단군께서는 도성을 점거하고 우화충의 목을 벤 후 새로이 장당경에서 즉위하고 나라이름을 고쳐 대부여라 하였으니 이 해는 곧 병진(BCE 425) 원년이다.

 

 

 

 

임술년, 해모수단군(북부여 1대)

북부여를 개국(BCE 239)한 이는 해모수 단군이다.

웅심산에 의지하여 거병한 해모수가 백악산에 웅거하여 전왕랑이라 일컫고 난빈(서란)을 도읍으로 삼아 즉위하신 해는 임술년이다.

 

 

을미년, 고두막한(북부여 5대)

계유년 홀본(忽本)에서 일어난 동명국의 고두막한께서 북부여의 도성에 드신 해는 을미년이다.

이보다 앞선 1년 전 갑오년(BCE 87)에 고두막한 단군께서는 고우루 단군에게 "나는 천제자(천제자)이니 장차 그곳에 도읍을 삼고자 하니 왕은 그곳에서 비켜라"고 한 일이 있으니 이 일이 실현된 것이다. 고두막한은 북부여의 도성인 백악산 아사달에 들어가 북부여의 이름을 계승하였으되, 홀본으로 도읍을 삼았으므로 이는 결과적으로 북부여가 백악산에서 홀본으로 천도를 한 것과 같다. 물론 전 북부여 황실인 해부루가 백악산에서 동부여로 옮겨가 가섭원(분릉)에 왕도가 들어선 것도 이 해 을미년일이다.

 

 

을미년, 고주몽 단군(고구려 1대, 재위 33년, 평락 12년)

고구려가 눌현에 도읍을 옮긴 것은 평락 12년 을미(BCE 26)의 일이다.

고주몽 단군은 앞서 갑오년에 북옥저를 멸하고 이듬해인 을미년에 눌현으로 옮기니 눌현은 상춘 주가성자요 옛 백악산아사달이다.

 

 

임술년, 유리명제(고구려 2대, 재위 21년)

눌현에서 국내성(황성으로 불림)으로 옮긴 해는 고구려 유리명제 21년 임술(AD 2)이다.

 

 

 

무진년, 대중상(후고구려 1대, 대진국, 일명 발해)

고구려 멸망 후 후고구려 황제 대중상이 동모산에서 건국한 것은 무진년의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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