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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25

우리는 배달겨레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 백두산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운 우리나라 첫 번째 나라 배달국에서 출발한 우리는 배달겨레 중국과 일본에 의한 역사 왜곡과 조작, 국민의 무관심 속에 사라진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 증산도 전남 지역 한ㅇㅇ 도생(道生) - 동방 문명을 개척한 환웅천황의 후예 우리는 배달겨레 십여 년 전 서점에서 책을 사보고 증산도 진리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사는 게 바빠 계속해서 공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때마침 인사이동으로 증산도 신앙을 하는 동료를 만나 다시 증산도 진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동료와 가끔 증산도 진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눴는데, 제가 청주 한씨인 것을 알고 있던 동료가 청주 한씨의 유래와 우리나라 민족과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배달겨레라고 말하는.. 2019. 9. 25.
대한민국을 장악한 신친일파 세력과 친일잔재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친일잔재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해 만든 일제 식민사학과 대한민국을 장악한 신친일파 세력 증산도 충남 지역 이ㅇㅇ 도생(道生) -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일제 식민사학 추종 세력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는 진리에 대한 갈급증, 진리에 대한 목마름의 역사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증산도를 만나기 전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종교를 찾아 공부했지만, 마음속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항상 참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먹고산다는 것이 뭔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진리를 찾는 길로 바로 가지 못하고 빙 둘러가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사업상 알게 된 거래처 지인으.. 2019. 8. 2.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목적과 일제 식민 잔재 청산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한 조선총독부 역사관 일제 식민 잔재 청산과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의 삐뚤어진 역사교육의 목적 증산도 충남 지역 권ㅇㅇ 도생(道生) - 매국사학의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목적과 일제 조선총독부 식민 잔재 청산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잊는다거나 통렬한 반성과 새로운 혁신이 없다면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결국 자기 성찰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대학 시절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단순 암기과목으로 생각했던 국사를 전공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 2019. 6. 14.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독립운동을 위한 자치기관 경학사와 항일무장 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민족지도자 명문대가의 후손에서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석주 이상룡 선생은 단군기원 4191년 조선 철종 9년, 서력 1858년 11월 24일 경북 안동의 임청각에서 태어났습니다. 1895년 조선의 국모(명성황후)가 일본 제국주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자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석주 이상룡 선생은 외숙부 권세연과 함께 의병 활동을 했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가야산에 의병 군사기지를 만드는 한편 동지들과 함께 대한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근대교육 기관인 협동학교를 세웠고 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치욕적인 경술국치를 맞.. 2019. 3. 6.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 자주독립과 항일 무장투쟁의 구심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광복 후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있는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 EBS 교육방송 먼저 우리 역사를 오랫동안 왜곡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실체를 바르게 알아야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의 국호(國號)의 참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직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민족정기를 해치고 있는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 잔재, 친일 식민사학의 망령을 일소할 수 있습니다. 기자조선은 전혀 근거가 없는 중국이 날조한 가짜 역사에 불과하며, 위만조선 역시 실체가 없는 것으로 망명객이었던 위만이 번조선의 준왕을 쫓아내고 옛 조선의 서쪽 영토 일부를 잠시 장악했던 지방 정권으로 위만조선이 아니라 위만정권이라 해야 .. 2019. 2. 28.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침탈과 잔혹한 압제에 맞서 삼천리강산에 울려 퍼진 3.1만세운동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주년을 맞아 열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조작되고 파괴된 우리의 참역사를 복원하는 역사광복군 출정식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실황중계 1928년 2월 8일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도쿄에서 우리의 젊은 애국청년 60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2.8 독립선언서를 통해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임을 선언하고,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자주독립의 그 날까지 항일투쟁을 지속할 것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19년은 도쿄 한복판에서 우리의 젊은 유학생들이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9. 2. 26.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 한국통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韓國痛史』 국혼론(國魂論)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대 대통령 이승만은 탄핵을 당하여 쫓겨났고, 백암 박은식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은 교육자로 정치가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로 국민을 계몽하고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독립운동에 헌신적으로 활동한 분입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대한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집필을 계속했습니다. 수년간의 집필을 마치고 1915년 우리의 아픔의 역사, 뼈저린 통한의 역사 『한국통사韓國痛史』가 마침내 세.. 2018. 2. 28.
대한민국 대통령 국무총리 등을 배출한 만주군관학교 대한민국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 기라성(綺羅星)같은 인물들을 배출한 일본군(황군皇軍) 장교 양성소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신경군관학교) 군대(軍隊)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군인(軍人)은 국가의 안정과 평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군대의 구성원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괴뢰국가 만주국에 세운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또는 신경군관학교)는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만주군 장교 양성기관이지만, 실제는 일본 천황의 군대다.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의 황군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모든 사람은 지원동기와 상관없이 졸업과 동시에 만주국을 지배한 .. 2017. 5. 28.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건국 중국 상해에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조국의 광복을 위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국호와 임시헌장 선포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 선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나라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 뿌리를 대한제국에 두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침탈당했다. 일제에 항거한 무장 항일운동은 강제병합 이후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한 무장투쟁으로 바뀐다. 1919년 벽두부터 고종황제 승하와 독살설, 무오독립선언, 2.8 독립선언이 연이어 일어났다. 고종황제 인산일(장례일)에 예정됐던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일로 앞당겨졌다. 3.1 만세운동은 독립운동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고, 3.1운동을 기점으로 몇 년 전부터.. 2017. 2. 19.
증산도 도전 - 중국 패권과 대한민국 국운(상생 협력관계) 증산도 『도전道典』 - 천지공사天地公事 중국 패권과 대한민국 국운 대한민국 근현대사 일본, 미국, 그리고 중국으로 이어지는 주변국과의 상생 협력관계 중국은 모택동 사후 개혁 개방 정책을 주도한 등소평의 경제, 외교 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도성장을 이루어내며 패권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최근 들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세계경제와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 추세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이 그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한민국은 전체 수출입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 25%, 수입 20%로 우리나라가 중국의 경제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1992년 중국에 대한 대한민국이 수교할 당시 대한민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불과 3.5%에 그쳤다. 2013년 대중 수출 비중은 26%의.. 2016.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