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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광복 74주년 2019년 8월 15일 광복절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고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제는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과 수탈과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정할 수 없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가당찮은 이유를 내세워 경제 침략까지 했습니다.

 

 

現 일본 아베 총리가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경제전쟁은 역사 부정에서 시작한 역사전쟁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뿐만 아니라 일제의 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는 침략 야욕을 드러낸 역사전쟁으로 현대판 '정한론(征韓論)'입니다.

밖으로 드러난 경제 도발의 실상과 일부 일본을 찬양하는 몰지각한 인사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를 뻗고 그 실체가 숨겨져 있습니다.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은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날입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와의 역사전쟁에서도 승리하고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제가 일본 왕 우상화 작업과 전쟁 다음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 대한제국(조선)을 무력으로 강제 병합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국민을 정신적 노예로 만드는 식민사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의 자주적 역사관과의 역사전쟁은 10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됐습니다.

 

 

우리의 참역사와 정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기술한 역사서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 곧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주류 강단사학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되고 사장(死藏)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국권 강탈 이후 일본 왕의 특명으로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한 일제 식민사관의 학술적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관변사학자는 일제가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해 만든 일제 식민사학은 친일파에 의해 해방 후부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뿌리내렸고 거대 카르텔을 형성하고 주류 강단사학이 되어 우리의 정신을 좀먹어왔습니다.

 

 

우리는 일본과의 경제전쟁과 역사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드시 청산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을 병들게 하고 이간질하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 곧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 분열을 조장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를 청산할 때 국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일치단결하여 경제전쟁에 대처하 일본과 역사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일본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여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는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입니다.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 격인 요시다 쇼인은 조선을 정벌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악질입니다.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 사망한 후 일제는 '정체성론', '당파성론', '타율성론' 등과 같은 식민사관을 만들어갔습니다.

일제가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조선(대한제국) 침략의 정당성과 영구 식민지배를 위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주장이 '정체성론', '당파성론', '타율성론'입니다.

일제의 '타율성론'은 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외세의 간섭과 영향으로 발전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은 조선은 중세 봉건사회로 발전하지 못한 채 고대사회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당파성론'은 조선왕조 5백 년 역사는 5백 년 동안 당파싸움만 하다 스스로 망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붕당정치의 폐해도 있지만, 조선은 서로 다른 세력이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가며 중국 한漢족의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5백 년 동안 국가를 존속했습니다.

 

 

 

 

 

 

 

 

 

 

'당파성론', '타율성론', '정체성론' 등의 일제 식민사관은 '임나일본부설', '한사군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 수많은 식민사학의 기형아를 출산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왜곡 조작한 일본사(日本史)가 해방 후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와 신석호 등에 의해 한국사(韓國史)로 둔갑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계승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 주류 강단사학은 언제나 현란한 수사를 사용해 본질을 호도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학설은 식민사학 이론을 절대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00여 년의 역사전쟁을 돌이켜보면 무력을 앞세운 일제 식민사관이 승리했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주류 강단사학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한韓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되찾고 대한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2012년 출범한 2016년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식민사학과 전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00여 개 단체가 모여 출범한 미래로 가는 바른역사협의회가 출범했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에 침착하고 슬기롭게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일본의 정신적 노예로 만든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 주류 강단사학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국민 여러분의 동참에 힘입어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되찾자는 민족사학의 역사전쟁에서 민족사학 진영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안의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일에 동참해주신다면 일제 식민사관과의 역사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하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한 지난 100여 년의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한국사의 일제 식민사관을 척결하고, 아직도 우리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를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앞으로 일제 식민사관을 신봉하는 우리 안의 친일잔재와의 역사전쟁에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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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 상생방송 2019년 8월 15일 광복절 특집방송

<환단고기 북콘서트 - 가야와 임나의 진실을 밝힌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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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8.15 0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을 맞아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 안의 친일잔재 글을 공유해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의미있는 공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19.08.15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광복절 하루 잘 보내세요~

  3. kangdante 2019.08.15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6년동안 만든 식민사관을
    두배 기간인 70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잡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4. 꿈꾸는 에카 2019.08.15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5. 죽풍 2019.08.15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자가 이 나라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면 그것이 곧 나라의 발전에 이르겠지요.
    잘 보고 갑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강단사학

한국 고대사 왜곡의 원흉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로부터 배운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여주 이씨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1919년 3.1만세 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은 남강 이승훈 선생은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1907년 평안북도 정주에 중등교육기관 오산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여주 이씨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1924~2004)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1년 오산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기백은 60년 차이가 나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6촌 종고조부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집안에 족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이기대(1952년생)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사실을 숨기고 지내다가 1984년 남강문화재단이 설립될 때 유족 대표로 참석하면서 본인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임을 밝혔습니다.

 

 

 

 

 

 

 

 

 

 

이기백의 주장대로라면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現 남강문화재단 이사 이기대 선생과 이기백은 같은 항렬로 10촌 4종형제가 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인 이기대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고생스럽게 살아온 반면, 이기백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왔으며 그의 아버지와 조부와 고조부 등 이기백의 집안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기백은 절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면서 역사작가라고 주장하는 초록불의 잡학다식(이하 초잡식)이 이기백이 민족사학계로부터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한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잡식은 불순하게도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과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연관 지으려 했습니다.

초잡식은 모 신문사에 기고한 글에서 '이기백이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의 집안이며 민족학교인 오산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고려의 여지도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의 삶과 남강 이승훈 선생의 독립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이며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이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일제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한 것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초잡식의 주장대로라면 1910년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해 오산학교 교가를 작사한 이광수가 오산학교 교사 출신이고 오산학교 교가를 작사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란 주장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만 봐도 한 집안에 독립운동과 친일행위, 군인과 북한에 부역한 인물 등이 있듯이 각자의 행위에 공과가 있고 평가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데도 불구하고 자칭 역사작가란 자가 이기백의 역사 왜곡 만행을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삶을 우산 삼아서 비난을 피하려 한 것입니다.

 

 

또 초잡식은 이기백이 이병도의 제자라는 멍에 때문에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친일파라는 일방적으로 비난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기백이 직접 말한 내용을 토대로 이기백이 단순히 이병도의 제자여서가 아니라 이기백의 삶의 족적 자체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자신의 선친이 한글로 쓰인 책을 많이 수집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주장했고, 자신의 선친이 '그 나라의 말과 역사가 아니고는 그 민족을 깨우칠 수 없다.'라는 말을 늘 해줬다고도 주장했는데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이 자신이 역사학자로서의 길을 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기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와세다 고등학원과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독립운동가로부터 우리의 자주적 역사를 배우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어야 합니다.

 

이기백의 일본 유학은 남강 이승훈 선생과 전혀 상관없고, 어린 이기백과 그의 아버지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것입니다.

 

 

 

 

 

 

 

 

 

 

이기백이 선택한 학교는 우리가 쓴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일본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말살한 일본이었습니다. 이기백이 선택한 곳은 바로 이병도가 쓰다 소키치에게 식민사학을 배운 일제 식민사학의 심장부 와세다대학 사학과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백은 아버지가 민족주의자였고, 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을 영향 등 집안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서 본인이 역사학도의 길을 가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버지와 남강 이승훈 선생이 걸어갔던 정반대의 일제 식민사학자의 길을 갔습니다.

 

 

초잡식은 함석헌과 신채호 선생이 이기백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학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기백은 초잡식의 주장과는 반대로 함석헌과 신채호 선생을 비판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초잡식의 언행을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과 쌍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함석헌 선생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감명 갚게 읽었는데, 역사를 종교적 또는 도덕적으로 풀이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조선사연구초>에서 <천년래 제일대사건>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한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은 묘청의 난을 말하는 것인데,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본 사건을 말합니다.

 

 

 

 

 

 

 

 

 

 

이기백은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나와 남의 투쟁으로 인식한다면 학문의 보편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신채호 선생의 자주적 역사관을 가치 없는 학문, 편향된 학문이고 비판했습니다.

 

 

이기백의 함석헌 선생과 신채호 선생을 비판한 것은 자신이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갈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이기백이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 한 말로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자가 민족사학을 대표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역사관에 대해 평생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수탈과 착취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 대한의 백성들이 모두 어렵게 살던 때였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41년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병도를 만난 후 1942년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이기백은 일본 와세대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기 전 이병도를 만났습니다.

1942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원흉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당시 학생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백은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 발표회에 늘 참석했고,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읽으며 식민사학으로 조작한 가짜우리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1944년 이기백은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기백은 1945년 6월 일본 관동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이병도를 몇 차례 찾아갔고 그의 논문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1946년 봄 3.8선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 이기백의 집안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넉넉했는지 몰라도 일본 유학에 이어 중국 유학을 준비했다고 했으며, 당시 국공내전 때문에 중국 유학을 포기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상의하기 위해 이병도를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가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당시 어지러운 상황 때문에 학과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1947년 논문 한 편으로 서울대 사학과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역사관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 이기백이 배운 역사는 이병도의 일제 식민사학과 또 본인이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식민사학, 그리고 쓰다 소키치 등으로부터 배운 일제 식민사학이 전부입니다.

 

 

광복 후 일제 식민사학의 결정체가 등장했는데,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입니다.

스승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은 일본 제국주의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학으로 무장하고 일본인이 만든 가짜역사를 바탕으로 책을 썼으며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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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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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3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과 글 잘 읽고갑니다 ^_^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래요

  2. kangdante 2019.03.23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역사의 독립운동가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누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지 또 내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오천년 역사속에 일제는 단 36년이니까요

  3. 청결원 2019.03.23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 가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자

한국 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와 한국 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의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

 

 

 

 

 

 

 

 

 

 

 

 

한국사의 태산북두 이병도가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의 스승이 바로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입니다.

한국사의 대부 이기백이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탐독했고,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발표회에 항상 참석하는 등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서 초기 기록은 고려의 김부식이 창작한 것이라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허구이며 조작된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고대 왜(倭, 일본)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고려의 국경선을 요동에서 한반도로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가 만주침략을 위해 만든 남만주철도 주식회사와 조선총독부는 일제 식민사학자를 동원했습니다.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던 고려국경선을 한반도로 끌어들였고, 아직도 정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막무가내로 우겨 만든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의 창작 잡설을 이병도와 이기백이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의 가짜 학설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1919년 발표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를 보면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 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 임나일본부가 나오지 않는다고 무조건 김부식이 조작한 사료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식민사학 2세대로 소위 한국 고고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원룡(1922~1933)에 의해 '원삼국시대 설'이란 해괴망측한 기형아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의 허무맹랑한 주장인 '한사군의 한반도 위치설'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가짜역사입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자와 식민사학의 후예인 이병도와 이기백 등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현재의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이 마치 정설인 것처럼 한국사에 뿌리내렸습니다.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퍼트려 한반도 북부는 중국이 지배했고 한반도 남부는 일본이 지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가 한韓민족은 고대부터 으르고 나태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고, 일본의 침략이 정당하다는 소위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등 일제 식민사관의 가짜학문적 근거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이병도와 이기백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사군 한반도설' 등을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임나일본부설'은 이미 폐기됐다고 주장하는데,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만 사용하지 않을 뿐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였으며 한일고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최재석(1926~2016) 박사는 이병도와 이기백, 이기동과 노태돈 등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가짜학설을 추종한 무리를 두고 한국인의 가면을 쓴 일본인이라고 호되게 비판했습니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쓴 이주한 역사작가는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금서룡) 등으로부터 한국사는 한사군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교육을 받았고, 이기백, 이기동 등에게 일제 식민사학이 계승되었다고 말합니다.

 

 

 

80년대 중반 단국대 윤내현 교수가 한사군은 한반도 평양 부근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의 영정하 동쪽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가짜학설을 추종한 스승과 제자인 이병도와 이기백은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으며, 윤내현 교수의 노력으로 고조선 서쪽 영역을 영정하 부근까지 옮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991년 진단학회에서 두계 이병도 선생 추념 문집 <역사가의 유향>을 발간했는데, 이병도와 이기백의 대담에서 이병도는 이기백과 김철준이 내 뒤를 이은 셈이라고 했습니다. 

 

 

실존 역사 단군조선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병도와 이기백 등 식민사학의 후예들에 의해 단군신화가 되어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조선총독부 어용학자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은 이병도와 이기백 등 주류 강단사학계가 그대로 계승되었고,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이 대한민국 국민정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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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0 0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이 대한민국 국민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니... 오늘도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 공부를 잘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9.03.20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쯤 식민사학이 사라질지....ㅠ.ㅠ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19.03.20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독립운동가 발굴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주의자들도 재조명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4. 죽풍 2019.03.20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곡된 역사가 지금도 판치는 세상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일제 식민지배 정책> 무단(武斷)통치, 문화통치, 민족 말살 통치 시대의 <행정지도 13장>

국권 회복과 일제의 탄압과 폭압에 맞선 순국선열들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 지도 0장>

 

 

 

 

 

 

 

 

 

 

역사학자는 사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흔히 역사란 '승자의 기록', '이긴 자의 기록',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라고 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대한大韓의 역사는 누가 기록했고,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대한大韓의 역사, 한韓민족의 역사는 과연 승자의 기록일까요? 아니면 패자의 기록일까요?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간단하게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영구지배하기 위해 만든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은 크게 삼 단계로 실시됐습니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고 무력으로 탄압한 무단통치 정책을 폈고,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유화책인 문화통치 정책을 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미명아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제는 민족 말살의 식민지배 정책을 펴다 결국 패망했습니다.

 

 

 

 

 

 

 

 

일제는 패망했지만, 완전히 패망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의 결정체인 민족말살 정책의 핵심인 우리의 역사 말살 정책은 온전하게 살아남았고, 광복 후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주류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 바로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 무리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가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폐기된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입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대한민국의 쟁쟁한 역사학자가 모여있는 집단, 즉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제작한 역사 지도에는 우리의 항일 무장 투쟁 독립운동사의 역사 지도는 없고,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 역사의 행정지도만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해 출범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은 우리의 고대 역사부터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역사 지도 700여 장을 제작했습니다. 

 

 

 

출범 후 4천억 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는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 지도가 단 한 장도 없습니다. 반면 일제가 식민지배 정책을 폈던 시기의 조선 행정구역 지도는 무려 13장이나 제작했습니다.

 

천인공노할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곧 매국의 역사 지도는 국민적 지탄을 받고 폐기됐습니다.

 

 

 

 

 

 

 

 

 

일제 식민지배 정책, 곧 무단, 문화, 민족 말살 정책이 시행될 때 우리 민족은 잔악한 일제에 맞선 항일 무장 독립전쟁을 폈습니다.

 

대한독립군,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 신흥무관학교, 군무도독부, 대한국민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등 수많은 항일 무장 투쟁의 독립운동사가 있습니다.

 

더불어 항일 무장 단체 소속 또는 단독으로 항일 무장 독립전쟁에 참여한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육삼정 의거 등 많은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가 있습니다.

 

 

 

무단, 문화, 민족 말살 등 일제 식민지배 정책이 시행될 때 우리 민족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고, 자주독립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일제강점기 3대 대첩이라 불리는 봉오동 대첩, 청산리 대첩, 대전자령 대첩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도 있습니다.

 

 

 

 

 

 

 

 

60여 명의 역사학자가 8년 동안 700여 장으로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를 보면 일제 식민지배 정책이 시행되던 때, 이른바 일제강점기 행정지도는 13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배 정책이 시행되던 때 일제와 맞선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지도는 단 한 장도 없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를 보면 일제가 식민지배 정책을 폈던 것만 역사이며, 항일 무장 투쟁의 독립운동사는 역사가 아니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자의 눈에는 오직 일제 식민지 역사만 보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일제 식민지 역사만 들어 있습니다.

 

 

 

 

 

 

 

 

 

2018년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외쳐 부른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를 단 한 장도 그리지 않은 동북아역사지도를 다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를 대변해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공식적으로 만든 역사 지도는 사료(史料)로 말한다면 정사(正史)와 다를 바 없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 사관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우리 역사를 영원히 중국의 속국과 일제의 식민지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도록 올가미를 들씌운 것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은 항일 무장 독립 운동사 지도는 단 한 장도 없이 일제 식민지 정책을 옹호하는듯한 지도 13장을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다시 하겠다고 했습니다. 김도형은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에 참여했던 자입니다.

 

 

국민적 지탄을 받고 폐기된 매국의 역사지도를 다시 제작하겠다고 주장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을 해체하고, 이사장 김도형을 해임해야 합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동북아역사재단 해체와 이사장 김도형 해임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동북아역사재단 해체>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54766  ←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 해임>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51338  ←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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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가 만든 일제 식민잔재 - 유사종교와 사이비종교, 이단 종교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유사종교(類似宗敎) 또는 사이비(似而非) 종교라는 말이 시작된 것은 근현대사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만든 문화정책, 유사종교 정책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로 일제 식민잔재이다.

 

 

일제의 한韓민족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은 항일정신과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민족종교 천도교와 대종교, 보천교 등 민족종교 탄압 정책이었다.

 

 

 

 

 

 

 

 

 

 

천도교나 대종교 등 우리의 민족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던 단체들과 함께 한반도 3분의 1 정도의 민중이 신앙하던 보천교(600만 명)의 위세는 조선총독부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는 일제가 만든 정책으로 말미암아서 혹세무민하는 단체, 샤머니즘, 신흥종교, 유사종교, 사이비종교와 심지어는 사교로 인식되었다.

 

 

 

 

 

 

 

 

일제는 민족종교를 계몽주의 논리로 민족종교를 비판하며 내부 분열 정책을 시행하며 무력화시켰다. 

 

반사회적 단체, 범죄단체(괴뢰단체), 친일 단체로 둔갑시켜 사회적 여론과 민중들의 인심에서 이반시키며 약화한 민족종교를 무력으로 제압해 버렸다.

 

나라를 빼앗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삼일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와 대종교, 보천교(600만 명) 등의 민족종교는 일제의 교활한 종교정책과 무자비한 탄압으로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일제강점기 정읍 보천교 전경)

 

 

 

600만 명의 보천교 신도는 뿔뿔이 흩어지고 또 지하로 숨어들었고, 보천교 십일전 건물 등은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로 허물어 일부는 현재의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으로 개축되었다.

 

그래서 조계종 조계사 대웅전의 개축 역사와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유사종교, 사이비종교라는 말의 사용 역사는 함께 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함께 왜곡되고 말살된 한韓민족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종교정책은 종교인 것 같아 보이나 종교가 아니라는 사이비종교와 일본 신도(일본 국교)와 기독교, 불교 외에는 유사 종교로 분리한 일제의 식민정책, 문화정책은 100% 성공하였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정책과 광복 후 미 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일부 종교 단체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배타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광복 후 70년 동안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종교 등)를 사이비종교, 유사종교, 샤머니즘, 신흥종교 등으로 깎아내렸고, 우리는 일제 식민잔재를 종교적,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 마냥 떠들어 대고 있다.

 

 

 

 

 

 

 

 

 

 

 

 

미 군정 종교정책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종교) 정책, 그리고 특정 종교단체가 합세한 이단 종교, 유사종교, 사이비종교, 신흥종교 프레임은 이제는 우리의 일상 속에 완전히 고착된 일제 식민잔재이며,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와 소중한 전통가치는 현대에 들어서는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멸시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 부령 제88호에 '종교라 함은 신도(일본 국교), 기독교, 불교를 말함이다.'라고 명시하였다.

이는 일왕을 중심으로 재편된 메이지 유신 때의 종교정책과 유사하다.

 

일본 제국주의는 종교를 공인과 비공인으로까지 구분 지으며 확실하게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없애버렸다.

 

 

 

 

 

 

 

 

 

 

 

 

종교(宗敎, 원래 불교 용어)란 말도 근대에 들어서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이전의 역사에서는 유도, 불도, 선도 또는 유가, 불가, 선가 등으로 불리었고 현재의 종교 개념의 종교란 말은 없었다.

 

 

일본 학자가 19세기 말에 '릴리전(religion, 재결합)'을 불교에서 쓰던 '종교(宗敎, 법화현의에 나오는 말로 부처가 설법한 것을 宗, 이것을 알기 쉽게 강해한 것을 敎)'라는 전혀 엉뚱한 말로 번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강제 병탄하면서 우리도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STB 상생방송 특집 프로그램 <조선총독부 특명 -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라>  방송 일부 녹취 내용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윤이흠 명예교수는 공산주의, 특히 북한의 김씨일가 정권 같은 것이 유사종교(類似宗敎)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일본 제국주의가 종교단체를 두고 유일하게 썼던 압박정책이 유사종교정책이며 실제 유사종교라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사이비(似而非)란 말은 본래 공자의 사이비자(似而非者)에서 유래된 말로 겉과 속, 즉 말과 행동을 거짓으로 꾸며 대는 표리가 부동한 사람을 의미하였다. 사이비는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잘 보면 다르다는 뜻이다.

 

 

 

이단(異端)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믿는 이외의 도(道), 전통과 권위에 반하는 설(說)과 이론, 시론에 어긋나는 사상과 학설이며, 유교에서는 다른 진리(제자백가, 도교 등)를 말하고, 현대에 들어서 기독교(가톨릭)에서는 공인되지 않은 교파를 일컫는다.

 

이단(異端)의 정의에 대하여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류성민 교수는 한 종교 내에서 정통에 거스르는 교리와 사상을 지목하는 개념이라고 말하며, 이단이 전적으로 한 종교의 내부 문제라고 하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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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12.25 0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사종교에 대해서 알아보시려는 분들에게
    유용한 글인듯 합니다^^

  2. 뉴론♥ 2015.12.25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성탄절 되세요 다녀갑니다.

  3. 죽풍 2015.12.25 14: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과 행동이 다른 사이비가 이 나라에 가득하죠.
    자신이 한 말을 기억도 못하고 뒤집어 버리는... 굳이 누구라 말할 필요도 없겠죠.
    잘 보고 갑니다. ^^

  4. 하늘마법사 2015.12.25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

  5. 유라준 2015.12.25 1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천교의 성세가 정말 대단했고,
    또 조선총독부가 정말 못된 짓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6. Deborah 2015.12.25 2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네요. 일제시대는 문화말살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7. NARVEL 2015.12.25 2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부족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느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