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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주의체제 조선왕조시대 국정농단(國政壟斷)과 권력 정횡(權力專橫)

 

 

 

 

 

 

 

 

 

 

 

 

 

 

 

 

519년의 역사를 지속한 봉건주의적 사회였던 조선왕조시대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전횡하고 국정을 농단한 일부 왕비와 특정 세력과 위정자가다.

 

 

흔히 봉건주의를 세습체제사회라고 하고, 봉건왕조시대가 끝나고 출현한 현재의 민주주의(공산주의, 자본주의)를 선출체제사회라고 한다.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회구조 같지만, 최고권력자와 위정자 등 일부를 선출하는 방식을 제외하면 봉건왕조시대나 민주주의 사회나 대동소이하다.

 

 

 

 

 

조선왕조시대 건국 이념인 백성을 위한 애민(愛民)과 위민정치(爲民政治)와 국민이 주인인 현재의 민주공화국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나, 두 시대가 지향하는 바는 백성과 국민을 위한 정치구조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예나 지금이나 국정, 즉 정치의 제1목표다. 

 

 

그러나 부(경제)와 권력은 언제나 유착되어 있고, 국가를 움직이는 두 수레바퀴가 되어 현재도 상당 부분 세습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바뀌지 않는 사실은 조선왕조시대나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나 권력의 정점에서 무소불위를 권력을 휘두르는 최고권력자와 특정 세력과 위정자, 또 그 옆에서 기생하며 온갖 아첨과 음해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을 일삼아 호의호식하는 거머리 같은 인간들이 있다.

  

 

 

 

 

 

 

 

 

 

 

 

 

 

 

 

 

조선왕조시대 공식적인 국정운영체제인 수렴청정을 이용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조선왕실의 문정왕후, 정순왕후 김씨, 조대비 등이 있다.

 

또, 무리를 형성하여 국정농단과 권력을 전횡한 훈구(공신)세력, 외척세력, 사림(士林,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세력 등과 한명회, 임사홍, 김자점, 유자광, 이이첨, 홍국영, 김좌근, 이완용 등과 같이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인물도 있다. 

 

 

 

 

조선왕조시대 왕의 위상은 국가와 동격이었으며, 국가 권력의 구심점으로서 백성에게는 정신적인 지주와 같았다.

왕과 신하들은 국정의 기본 방향을 부강한 나라와 백성(국민)을 위한 정치다.

 

그런데 그런 조선의 왕 중에 허수아비 왕으로 살다간 조선의 최고권력자가 있었다.

자신이 유약했던지 또는 자질과 능력이 부족했던지, 상대방이 강했다든지 또는 상대방에게 세뇌되었던지 간에 국정의 방향이 백성과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특정 세력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이 사유화된 모든 책임은 최고권력자 임금에게 있다.

 

 

 

 

 

 

 

 

 

 

 

 

 

 

 

 

정종, 명종, 경종,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등 조선의 왕들이 왕이면서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고 해서 재위 시 치세(治世)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큰 흐름에서 보면 본인과 주변 인물에 의해서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왕들이다.

특히 조선 후기 외척 세력의 세도정치는 조선을 몰락하게 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동생 정안대군(태종) 이방원에 의해 왕이 되어 재위 2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즉위했던 조선 2대 왕 정종,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삼촌 윤원형, 노비이며 기생출신 정난정에게 재위 내내 휘둘린 조선 13대 왕 명종,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나 노론과 소론의 권력 투쟁 속에서 재위 4년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한 조선 20대 왕 경종,

안동 김씨, 반남 박씨, 풍양 조씨 세도정치에 희생양이 된 23대 왕 순조, 24대 왕 헌조, 25대 왕 철종,

대리청정이 끝나고도 중전 민씨와 그 일파,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꼭두각시가 된 26대 왕 고종, 27대 왕 순종 등이 있다.

 

 

 

 

 

 

 

 

 

 

 

 

 

 

 

 

조선왕조에서 허수아비 왕의 대명사가 된 왕은 11대 왕 중종대왕의 아들로 13대 왕으로 즉위한 명종대왕 이환이다.

명종은 중종의 2계비 문정왕후의 아들이다. 

 

 

1545년 명중의 즉위와 함께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 즉 소윤(小尹) 세력이 윤임 등의 대윤(大尹) 세력을 숙청하는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1547년(명종 2)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대윤의 남은 세력과 사림(士林, 선비)을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숙청하여 대윤 세력은 완전히 몰락하고 문정왕후와 윤원형, 정난정의 시대가 된다.

 

 

 

 

명종은 문정왕후와 소윤 외척 세력 윤원형, 정난정 등이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하던 1553년(명종 8) 나름의 왕권강화를 위해 중용한 인물이 자신의 왕비 인순왕후 청송 심씨의 외삼촌 이량이다.

 

명종이 변화를 꾀하기 위해 이량을 이조판서에 아들 이정빈을 이조정랑에 등용하였다.

잘못된 선택인지 인재가 없어서였는지 불행하게도, 이량과 이정빈 부자(父子)는 외척 세력이다. 명종의 처외삼촌 이량은 임금의 신임을 믿고 자신만의 력을 만들어 권력을 전횡하였고, 사리사욕과 부정축재로 유배되어 죽었다.

 

 

 

 

 

 

 

 

 

 

 

 

 

 

 

1565년(명종 21)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윤원형과 정난정이 유배되어 자살하기까지 20년을 허수아비 왕으로 살았다. 

명종은 22년의 재위기간 내내 문정왕후 윤씨와 윤원형, 정난정의 국정농단과 권력 전횡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선왕조시대에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왕으로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국가의 최고권력자로서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폭정으로 쫓겨난 임금이다.

 

다소 과대하게 포장된 면이 있지만, 폭정의 대명사가 된 연산군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여지가 있는 광해군은 반정 세력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 내려왔다. 

 

 

 

 

 

 

 

 

 

 

 

 

 

 

 

대자연질서는 상극(相克)으로 발전과 성장을 하고, 상생(相生)으로 통일과 성숙을 한다.

선천(先天)은 자연질서가 상극(相克)의 질서로 돌아가 적자생존, 약육강식, 우승열패 하는 세상이다.

상극의 대자연질서는 만물이 분열하고 대립하지만, 서로가 창조적 경쟁을 하여 인류의 역사가 문명과 문화를 발전하고 성장시켜왔다.

 

 

대자연의 질서가 상극의 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성숙의 시대, 상생(相生)의 자연질서로 전환할 때까지 우리가 보아온 부정적인 모습은 동안 지속할 것이다.  

 

 

 

 

 

자연의 질서가 춘하추동, 상생과 상극을 반복하듯 역사도 반복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도 봉건주의적 왕조시대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에도 권력을 전횡하고 국정을 농단한 사례는 허다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고권력자가 있다.

그런데 최고권력자의 독단적인 국정운영과 위정자, 그리고 친인척, 주변 인물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하지 않은 정권은 단 한 번도 없다. 부와 권력에 눈먼 자들의 부정과 부패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고, 단지 경중(輕重)의 차이만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시대는 권력 행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면, 근현대 민주주의는 권력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형태다.

즉,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허수아비 최고 통치권자와 위정자, 그리고 그들 권력에 빌붙어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이들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들을 선출한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국정농단(國政壟斷) - 나라의 정치를 함에서 국민(백성)이 근본이 되고 국가를 위해 정치를 해야 하는데, 국민(백성)과 국가는 내팽개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독점화, 사유화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표현. 

 

권력 전횡(權力專橫) - 권력을 쥔 자, 즉 최고권력자와 위정자, 그 옆에 빌붙은 거머리 같은 인간들이 사사로운 이익과 특정 세력의 위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독선적인 행위.

 

 

 

조선왕조시대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정을 마비시킨 국정농단의 주범과 권력을 전횡한 하수인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스스로 자멸의 길로 걸어갔으며, 때론 공멸의 위기로 몰고 갔다.

 

인간으로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오직 동물적인 욕구충족만을 위해 산 그들은 단 한 사람 예외 없이 권력의 입맛에 길들어진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법이 아닌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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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11.04 0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왕조 이야기 잘 보고 가네요

  2. 고프다 2016.11.05 0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왕조와 관련해서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조선 7대 왕 세조의 왕비로 조선왕조 최초로 수렴청정대왕대비 정희왕후 파평 윤씨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수렴청정한 여인은 정희왕후 파평 윤씨(1418~1483, 재위 1455~1468)로 조선 7대 왕 세조의 부인이며 조선 8대 왕 예종의 어머니이고, 조선 9대 왕 성종의 할머니다.

 

파평 윤씨 정희왕후와 관련 있는 후대 왕비로는 조선 11대 왕 중종의 부인 장경왕후(1계비)와 문정왕후(2계비)가 있다.

장경왕후와 문정왕후는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윤씨의 오빠 윤사분과 남동생 윤사흔의 후손이다.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가 1457년(세조 3) 20세에 죽자 둘째 아들 해양대군(예종)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60년(세조 6) 왕세자 이황(예종)은 한명회의 딸과 가례를 올린다.

 

 

1468년(세조 14) 지병이 악화한 세조는 예종에게 선위하고 죽기 전 어린 왕을 위해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 등 조정 원로 중신들이 왕을 보필하는 원상제도를 만들었다. 정희왕후는 원상제도와 함께 조선왕조 최초로 수렴청정하였으나 실제 국정은 원상들이 결정하였고 예종은 승인만 하였다.

 

 

 

 

 

 

 

 

 

 

 

 

 

 

1468년(예종 원년) 18세에 조선의 8대 왕으로 즉위한 예종은 왕위에 올라 왕권강화를 위해 국정을 운영하였다.

훈구(공신)세력의 비대해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하고 1469년에 재위 15개월 만에 승하한다. 

 

세조와 장희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 의경세자와 둘째 아들 예종은 모두 20살에 요절했다.

 

 

 

 

보위 결정권은 대비였던 정희왕후에게 있었다.

예종이 15개월 만에 승하하자 다음 보위를 예종의 아들(제안대군, 4세)에게 물려주지 않고 의경세자(세조의 장남, 덕종 추존)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 13세)을 다음 왕으로 선택한다.

 

 

예종에 이어 다음 보위에 오를 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희왕후 윤씨는 한명회와 손을 잡았다.

한명회는 세조의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최고의 참모이면서 예종과 자을산군(성종)에게 두 딸을 시집보낸 권력의 실세였다.

당시 한명회는 정희왕후에게 가장 강력한 믿음을 주는 버팀목이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던 정희왕후에게 권력의 실세였던 한명회의 사위 자을산군이 선택된 것이다.

자을산군(성종)이 왕위 서열에서 밀림에도 예종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희왕후와 한명회, 인수대비의 합작품이다.

 

 

 

한명회는 정희왕후와도 사돈이었고, 인수대비(의경세자 부인)와도 사돈이다.

 

한명회의 셋째 딸 청주 한씨는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 예종)

한명회의 넷째 딸 청주 한씨는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세조 큰아들 의경세자와 인수대비의 둘째 아들 성종)

 

 

 

1467년(세조 13) 한명회의 넷째 딸 한씨가 의경세자의 아들 자을산군(성종)과 부부가 되었다.

세조의 큰며느리이며 의경세자의 부인인 세자빈은 한확의 딸 청주 한씨(인수대비)다.

 

 

 

 

 

 

 

 

 

 

 

 

조선왕초 최초로 수렴청정한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권력의 실세이며 권모술수의 대가인 한명회와 당대 조선 최고의 지식을 가진 여인 인조대비를 선택한다. 

 

정희왕후 파평 윤씨는 글(문자)을 모르는 여인이었고, 며느리 인수대비는 조선왕조 왕비 중 가장 뛰어난 지식의 소유자였다.

 

 

 

 

『예종실록』 8권, 예종 1년 11월 28일 1469년

"이제 원자(元子)가 바야흐로 어리고, 또 월산군(月山君)은 어려서부터 병에 걸렸으며, 홀로 자을산군(者乙山君)이 비록 어리기는 하나 세조(世祖)께서 일찍이 그 도량을 칭찬하여 태조(太祖)에 비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그로 하여금 주상을 삼는 것이 어떠하냐?"

 

 

 

『예종실록』 8권, 예종 1년 11월 28일 1469년

"내가 생각하건대, 대위(大位)는 잠시라도 비울 수 없는 것이다.

사왕(嗣王)의 아들이 바야흐로 강보(襁褓)에 있고, 또 본래부터 병에 걸려 있다. 세조(世祖)의 적손(嫡孫)으로 다만 두 사람이 있을 뿐인데, 의경 세자(懿敬世子)의 아들 월산군(月山君) 이정(李婷)은 어려서부터 병이 많고, 그의 동모제(同母弟)인 자을산군(者乙山君)이 기의(岐嶷) 숙성(夙成)하고, 세조께서 매양 그 자질과 기도(器度)가 보통과 특별히 다른 것을 칭찬하여 우리 태조(太祖)에 비하는 데에 이르렀다. 이제 연령이 점점 장성하고, 학문이 날로 나아가므로 가히 큰 일을 맡길 만하다. 이에 대신과 더불어 의논하니, 대신들이 합사하여 여망에 합당하다 하므로, 자을산군을 명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다."

 

 

 

 

 

 

 

 

 

 

 

 

1475년 (성종 6) 정희왕후 윤씨의 인척들을 비난하는 익명서가 승정원에서 발견되면서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고 성종이 친정하게 된다.

 

 

 

1474년(성종 5) 성종의 정비이며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가 19세에 승하하자 1473년에 후궁으로 들어와 있던 폐비 윤씨(연산군 어머니)가 왕비로 책봉된다.

 

폐비 윤씨는 수년 동안 시어머니 인수대비와의 갈등과 남편 성종과 마찰을 빚다가 왕의 용안에 상처를 만들면서 폐위된다. 

대왕대비 정희왕후와 인수대비가 폐비 윤씨 폐출을 주도하였다.

 

 

 

1483년(성종 14) 치료를 받으러 갔던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온양행궁에서 66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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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프다 2016.10.18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평안한 밤 되세요!

조선의 창업 군주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國母) 신덕왕후 곡산(谷山) 강씨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정비(正妃)는 신의왕후 청주 한씨다.

청주 한씨는 이성계와 사이에 6남 2녀를 두었다.

 

 

진안대군 이방우, 영안대군(조선의 2대 왕 정종) 이방과(이경), 익안대군 이방의, 회안대군 이방간, 정안대군(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 덕안대군 이방연 등 6명의 아들과 경신공주, 경선공주 2명을 낳고 조선이 창업되기 한 해 전에 사망하였다.

 

 

 

 

 

청주 한씨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의 부인이었고, 조선의 2대, 3대 왕의 어머니였지만, 조선 최초의 국모가 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영안대군 이방과가 조선의 2대 왕 정종으로 즉위하고 어머니 청주 한씨를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승격해서 모셨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태조 이성계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신의왕후는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하였다.

 

 

 

 

 

 

 

 

 

 

 

 

 

 

조선왕조 최초의 국모(國母, 왕비)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왕비에 오른 계비(繼妃) 곡산 강씨 신덕왕후(神德王后)다.

신덕왕후 강씨는 고려 권문세족이었던 곡산 강씨 강윤성의 딸이다.

 

 

고려의 무인 이성계는 개경의 권문세족 강윤성의 사위가 됨으로써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신의왕후 강씨는 이성계의 단순한 내조자와 권문세가의 딸에 그치지 않았다.

 

 

 

 

 

강씨는 지략이 뛰어난 여장부였으며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 조언가 역할을 하며 조선왕조 창업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한 1392년(태조 원년)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 최초의 왕비(국모)가 되어 현비(顯妃)로 봉해졌다.

 

 

조선 창업에 공헌한 만큼 정치적 야심도 컸던 신덕왕후 강씨는 정도전 등과 뜻을 같이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을  조선왕조 최초의 왕세자로 만든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는 스무 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났다.

 

태조 이성계는 당시로써는 작지 않은 나이였던 40대 중반에 신덕왕후에게서 3명의 자식을 얻었다.

늦게 얻은 무안대군 이방번과 의안대군 이방석, 그리고 경순공주는 이성계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었다.

 

 

 

 

태조 이성계와 정비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음에도 1392년(태조 1년) 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11살 난 둘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무리수를 둔다.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이방석이 11살일 때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큰아들(진안대군 이방우)은 삼십 대 후반이었고, 다섯째 아들(정안대군 이방원)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였다.

 

 

 

신덕왕후와 정도전,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만든 분란불씨는 1, 2차 왕자의 난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불러온 원인이 된다.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강씨는 지병이 악화하여 1396년(태조 5) 승하한다.

 

 

 

 

 

 

 

 

 

 

 

 

 

 

조선왕조 창업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이방원은 정치적 야심이 컸다. 그러나 왕세자 책봉은 왕의 권한이었다.

 

 

조선왕조 창업에 기여한 신의왕후 소생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불평과 불만은 쌓여갔다.

결국, 1차 왕자의 난 때 왕세자 이방석은 폐위되고 무안대군 이방번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경순공주는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후처의 아들이 조선왕조의 첫 왕세자가 되어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태종 이방원은 '적장자계승'과 '적서차별'의 원칙을 만들게 된다.

 

 

 

 

 

 

 

 

 

 

 

 

 

 

조선왕조 최초의 여왕 신덕왕후 강씨가 승하하자 태조 이성계는 덕수궁 뒤쪽에 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고 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으로 등극하고 나서 신덕왕후 강씨의 능은 현재의 정릉(당시 양주)으로 옮겨진다.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였던 신덕왕후 강씨는 후궁으로 강등되었고 능도 묘로 격하되었다. 

 

 

후궁으로 강등된 조선 최초의 국모(왕비) 신덕왕후 강씨는 1669년(현종 10) 우암 송시열이 신덕왕후의 복위 상소를 올린다.

조선의 18대 왕 현종대왕 이연이 후궁으로 강등됐던 강씨를 신덕왕후로 복위시키고, 신주를 종묘에 모셨다. 

 

 

 

후궁의 묘로 270여 년간 방치됐던 곡산 강씨의 묘는 신덕왕후로 복위되어 정릉으로 정비되었다.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이며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국모) 신덕왕후 곡산 강씨의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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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10.05 0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덕왕후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근세조선 왕조 추존왕 - 살아서는 임금이 아니었으나 죽어서 임금이 된 왕의 아버지 추존(追尊)

 

 

 

 

 

 

 

 

 

 

 

 

 

 

 

추존왕은 살아서는 임금이 아니었으나 죽어서 임금의 칭호가 붙여진 왕을 말한다.

조선 왕조의 추존왕은 임금 아닌 임금으로 사후(死後)에 왕으로 추존되어 신위가 종묘에 봉안됐다.

추존왕은 역대 왕(왕비)과 똑같은 예로 모셔진다.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나 신라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도 추존 왕 또는 추존 황제가 있다.

조선왕조의 추존왕은 정조대왕 이산이 양자로 입적하여 추존한 양아버지 진종(효장세자)을 제외하고 모두 왕의 친아버지다.

 

 

 

조선왕조에서 왕으로 추존된 경우는 나라를 창업하였을 때 조상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왕위 계승 서열에 있지 않다가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을 때와 왕세자에서 왕으로 등극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아들이 왕이 되어 왕으로 추존하였다.  

 

 

 

 

 

 

 

 

 

 

 

 

 

 

근세조선 왕조의 임금은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대한제국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를 포함해 모두 27명이다.

 

조선 왕조의 추존왕이 비록 실제 임금은 아니었지만,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와 똑같은 예로 받들어졌다.  

근세조선의 추존왕은 모두 9명이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는 4대 조상을 목왕, 익왕, 도왕, 환왕으로 추존하였다.

명나라에 사대(事大)한 조선이었지만,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은 종묘에 봉안된 '0 0 왕'의 신주에 조종(祖宗)의 묘호를 올린다. 

 

조선의 개국 군주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는 목조(穆祖), 증조부 이행리는 익조(翼祖), 조부 이춘은조(度祖), 아버지 이자춘은 환조(桓祖) 묘호를 올렸다.

 

 

 

 

 

 

 

 

 

 

 

 

 

 

조선왕조 추존왕 덕종(德宗) - 성종대왕의 아버지 의경세자

 

조선의 9대 왕 성종대왕 이혈은 20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의경세자 이장의 둘째 아들이다.

의경세자 이장은 조선의 7대 왕 세조대왕 이유의 큰아들이다.

 

아버지 의경세자가 죽자 궁 밖으로 나와 있던 자을산군(자산군, 성종)은 조선의 8대 왕 예종이 승하하면서 조선의 9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성종은 왕으로 등극하지 못하고 요절한 아버지 의경세자 이장을 왕으로 추존하고 덕종(德宗) 묘호를 올렸.

 

 

 

 

 

 

조선왕조 추존왕 원종(元宗) - 인조대왕의 아버지 정원군 이휘

 

조선의 16대 왕 인조대왕 이종은 인조반정(1623년)으로 왕이 되었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이휘는 조선의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의 다섯째 아들이다.

 

인조대왕의 아버지 정원군 이휘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1619년 40살에 사망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아버지 정원군을 정원대원군으로 추존하였다가 원종(元宗) 묘호를 올렸다.

 

 

 

 

 

 

 

 

 

 

 

 

 

 

조선왕조 추존왕 진종(眞宗) - 정조대왕의 양아버지 효장세자

 

진종 이행은 조선의 22대 왕 영조대왕 이금의 큰아들이다.

효장세자는 사도세자의 이복형으로 왕세자(효장세자)로 책봉되었는데 10살에 요절하였다.

 

사도세자 이선이 폐서인 되자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정조대왕)이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며 효장세자의 양아들인 조선의 22대 왕 정조대왕 이산이 왕으로 즉위하여 양아버지 효장세자를 왕으로 추존하고 진종(眞宗) 묘호를 올렸다. 

 

 

 

 

 

조선왕조 추존왕 장조(莊祖) - 정도대왕의 친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

 

장조 이선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대왕 이산의 친아버지 사도세자다.

장조 이선은 (사도세자, 장헌세자)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대왕 이금의 둘째 아들이다.

 

사도세자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28살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뒤주 속에서 숨을 거둔다.

조선의 22대 왕으로 등극한 정조대왕 이산은 아버지 사도세자 이선을 왕으로 추존하여 장조(莊祖) 묘호를 올린다.

 

 

 

 

 

조선왕조 추존왕 문조(文祖, 익종翼宗) - 헌종대왕의 아버지 효명세자

 

문조 이영(효명세자)은 조선의 23대 왕 순조대왕 이공의 큰아들이다.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어 대리청정 4년 만인 22살에 요절했다.

 

순조에 이어 조선의 24대 왕으로 등극한 헌종대왕 이환은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왕으로 등극한 헌종은 아버지 효명세자 이영을 왕으로 추존하고 문조(文祖) 묘호를 올렸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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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10.03 0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존왕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STB 상생방송

한(韓)문화 특선 타큐

 

 

 

 

 

 

기획 의도

 

세계는 바야흐로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 접어든지 이미 오래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국경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고, 경제를 중심으로한 지구촌의 경제와 문화는 급속도로 재편이 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칫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떠밀려가는 나를 발견하곤한다.

 

나는 누구이며, 나의 정체성을 무엇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도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미래의 나를 바로 알고자 함이다.

 

STB 한韓 문화 특집에서는 잊혀져가는 우리 한韓 문화를 복원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주요 내용

 

 

1회 곡옥의 비밀 1부 천황의 보물
2회 곡옥의 비밀 2부 무너지는 동북공정

'곡옥(曲玉)은 단순히 금관의 화려함을 더하는 장식물이기만 한가?'

박물관에 전시된 신라금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췻빛의 구부러진 옥. 이 곡옥이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허구를 증명하는 단초라고 말한다.

 

일본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인 곡옥이 한반도에서 전래된 유물이고 특히 이 곡옥이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동북아시아 문화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은 곡옥문화 한가운데 우리 민족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

 

'곡옥의 비밀'은 한반도에서 전해진 곡옥이 일본에서 종교적, 의식적 대상으로 신성시되고 있는 모습을 조명하는 1부 '천황의 보물'과 홍산문화 유적을 더듬으며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의 허구를 밝히는 2부 '무너지는 동북공정'편으로 제작방송 됩니다.

 

3회 조선의 황실 1부 아카사카에서 경복궁까지
4회 조선의 황실 2부 가락에 실린 제국의 꿈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서 조선의 왕들과 그들의 정치 철학, 의례, 전통음악을 살펴보고 그 전통가락 속에서 후세에게 물려주고자 한 선조들의 뜻은 무엇인지 보여준다.

 

따라서 예로서 상하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통해 화합과 조화를 추구했던 조선의 정치철학, 그 철학이 담겨있는 조선의 의례와 음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황제가 머물렀던 황실을 통해 우리 역사의 전통과 변화, 왕실이 황실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잊혔던 대한제국의 음악과 황실문화 등을 살펴본다.

 

5회 문자, 천년의 여정 1부 이두 우리말 그 천년의 여정
6회 문자, 천년의 여정 2부 신라의 이두에서 한글까지


7회 조선통신사 1부 공존의 시대
8회 조선통신사 2부 한류의 맥박


9회 혼의상인 고령보부상


10회 문자예술 서예 1부 문자로 새기는 혼
11회 문자예술 서예 2부 서예로 소통하다


12회 첨성대별기 1부 돌로 쌓은 별자리
13회 첨성대별기 2부 천구의 중심 첨성대


14회 우주나무와 하늘새, 솟대


15회 하늘의 열림, 땅의 울림 북 1부 신기(神器), 예술로 거듭나다
16회 하늘의 열림, 땅의 울림 북 2부 한민족의 맥박, 장단의 신비


17회 한국의 담


18회 고대의 한류, 미마지


19회 세계문화유산 판소리 1부 성음의 비밀
20회 세계문화유산 판소리 2부 판소리, 코스모폴리탄의 문화로


21회 갈색 도자기 옹기 1부 감탄
22회 갈색 도자기 옹기 2부 한중일 옹기 삼국지
23회 갈색 도자기 옹기 3부 21C 옹기


24회 천년의 향, 우리 누룩 1부 麴국, 천년 발효의 열쇠
25회 천년의 향, 우리 누룩 2부 菌균, 이 작은 누룩의 전쟁
26회 천년의 향, 우리 누룩 3부 우리 누룩, 세계인이 醉취하다


27회 사임당, 두 개의 초상


28회 천상열차분야지도


29회 안중근, 북위 38도


30회 붓의 전쟁 1부 파리장서 운동이란 무엇인가?
31회 붓의 전쟁 2부 끝나지 않은 논란, 파리장서는 누가 썼는가?
32회 붓의 전쟁 3부 137인의 서명자는 누구인가?


33회 매헌 윤봉길


34회 조선선비, 백성을 돌보다


35회 기려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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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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