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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가 1941년 12월 7일 미국 진주만을 기습 폭격하여 시작된 태평양전쟁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 최대 격전지 남양군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 제국주의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1941년에는 미국을 기습 폭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제국주의가 전선을 확대하면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강제징집, 군속(군무원), 학도병(소년 및 학도지원병), 강지징용(강제노역),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강제동원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남양군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숫자 통계는 없다.

일본이 강제동원 자료를 고의로 소각 또는 폐기와 은폐를 하거나 전쟁 중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남양군도의 사이판 섬을 점령하기 위한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말미암아 사이판 섬에서만 일본인(민간인과 일본군), 연합군(미국), 원주민 등 총 6만여 명이 사이판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양군도의 사이판 전투에서 5만 5천여 명에 이르는 일본군과 민간인 사망자 중 조선인 강제징 피해자의 사망 숫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약 1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은 연합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이지만, 실제 미국과 일본이 맞대결한 전쟁으로 최대의 격전지는 태평양의 해양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제해권과 제공권 다툼을 한 남양군도 지역(현재 미크로네시아 지역)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백성 조선인에게 황국신민 의식을 강요하며 부르짖었지만, 조선인은 황국신민이 아닌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물자이며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취급했다.

 

 

 

 

 

 

 

 

 

 

 

 

남양군도가 태평양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던 만큼 희생자 숫자도 많다.

남양군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연합군의 집중 폭격과 상륙작전, 일본의 옥쇄작전으로 자신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일제강점기 남양군도 지역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의 피해자보다 사망률이 높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남양군도에서 일본군 비행장과 벙커 등 군사시설 구축과 사탕수수 농장 등지에서 강제노역하던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을 총칼로 위협하여 태평양전쟁의 총알받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동원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는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전쟁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사이판, 팔라우, 티니안 섬 등의 남양군도 여러 섬에 분산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1946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3만여 명이 남양군도 지역에서 조국으로 귀환했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또,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연합군(미국)의 포로가 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는 약 11,000명 정도로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남양군도와 하와이 등지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가 송환됐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의 남한은 미 군정이 통치하게 됐다.

연합군은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으로 나누어서 통치하는 한반도 지역의 조선인 포로를 그냥 송환하지 않았다.

 

 

남양군도의 이름 모를 수많은 섬에 방치된 탄약과 무기 등을 수거하게 한 후 송환시켰다. 남양군도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중 일부는 남양군도 인근 인도네시아 섬의 포로감시원으로 이동 배치된 사람도 있었다.

 

 

 

 

 

 

 

 

 

 

 

 

남양군도 및 오키나와 등지에서 일본군으로 강제징집속(군무원)으로 강제징용당한 4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 호놀룰루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다. 

 

 

 

전후 연합군은 '전쟁범죄에 관한 것에는 조선인도 일본인으로 취급한다.'라는 방침을 세웠고, 조선인 강제징집, 군속(군무원)과 강제징용 피해자 중 일부는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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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8.12 0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태평양전쟁의 격전지 남양군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포스트 잘 읽고
    역사공부 하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도생님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일본 제국주의의 해양패권 전진기지 남양군도

 

 

 

 

 

 

 

 

 

 

 

 

 

남양군도(南洋群島)는 말 그대로 남태평양 지역에 무리 지어 있는 여러 섬에 대한 총칭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연합국이 되었고, 독일의 식민지였던 남양군도에 상륙해 점령하고 통치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이 남양군도를 위임 통치형식의 공식적 지배가 시작된다. 

1931년 일본의 자작극인 만주사변과 1932년 일본의 꼭두각시 나라 만주국 건국으로 사면초가에 몰린다.

 

 

1914년부터 시작한 남양군도에 대한 일본의 통치는 1933년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남양군도 통치를 계속한다.

 

 

 

 

 

 

 

 

 

 

 

일본은 사이판, 마셜 제도(諸島, 여러 섬), 캐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마리아나 제도 등 크고 작은 수천 개 섬으로 이루어진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작은 섬들이 매우 많은 곳이란 의미) 지역을 남양군도라고 불렀다.

 

일본 제국주의는 남양군도를 지배함으로써 해양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든다.

 

 

일본 제국주의는 1906년 남만주철도를 설립하고 1937년에 대륙패권을 잡기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침략야욕에 가득 찬 일본은 해양패권을 잡기 위해 1920년에서 1930년대에 걸쳐 남양군도에 수많은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남양군도를 해양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었다.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을 일본 관동군이 뒤에서 통치했듯이, 남양군도 역시 일본 해군이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일본은 1921년 팔라우 코로르에 남양군도의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식민통치 기구인 남양청을 설치한다.

 

 

남양흥발과 남양무역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남양군도의 농수산업과 광업 등 물자 생산과 무역을 총괄한다. 

일본 제국주의는 남양군도 지역의 군사기지화와 일본인화를 위해 일본 본토인 외에도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과 오키나와인(류큐왕국)을 이주시켰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반전 여론이 거세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세계 대공황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미국은 일본과의 태평양전쟁 특수를 통해 결과적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난다.

 

 

해양패권을 잡기 위해 일본은 1941년 미국의 진주만을 전격적으로 공격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시작된다.

태평양전쟁은 일본 제국주의와 연합군의 대결이지만,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평양전쟁은 말 그대로 태평양에 대한 해양패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이다.

 

 

 

 

 

 

 

 

 

 

 

 

일본은 해양패권을 잡기 위해 남양군도 주요 지역을 군사기지화하여, 미국과의 한판 대결을 시작했고, 더불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침략하기 위한 전지기지 역할도 하였다.

 

 

일본군은 진주만을 폭격하고 미국의 식민지였던 괌과 필리핀까지 점령한다.

 

미국은 연합군과 함께 진주만 폭격에 대한 보복과 미국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에 점령당한 과 필리핀을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해 일본과 전쟁에 돌입한다.

 

 

 

 

 

 

 

 

 

 

 

 

일본과 미국해양패권 주도권 전쟁이기도 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참패한 미드웨이 해전이 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투라면, 태평양전쟁의 명운을 가른 것은 남양군도 전투다. 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잃었고, 결국 태평양의 전진기지였던 남양군도가 무너지면서 재기 불능하게 된 일본은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미국의 공격을 받고 패전한 일본군은 남양군도 여러 섬에서 전투 중에 상당수가 전사하였다.

 

그 외에도 굶어 죽기도 하고, 사이판 만세절벽 등지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해양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일본이 전진기지로 삼았던 남양군도가 미국과 연합군의 공격으로 빼앗기게 된다.

 

 

 

 

 

 

 

 

 

 

 

 

일본이 점령했던 남양군도가 미국에 넘어가고 미크로네시아 사이판 비행장에서 출발한 미국의 B-29 폭격기 약 300대가 일본 본토 동경을 초토화했고, 이후 오키나와도 미국이 점령한다.

 

남양군도 북마리나 제도의 티니언 섬에서 출발한 B-29기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남양군도에 대한 통치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남양군도 점령, 오키나와 점령, 도쿄대공습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하면서 아무 죄없이 일본 본토와 남양군도, 오키나와 등지로 끌려간 대한의 백성들이 무수하게 죽어갔고, 전범 재판에 회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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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8.05 17: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평양 전쟁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버블프라이스 2017.08.06 0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평양 전쟁 관련해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미국 참전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당시 우리 동포들도 강제로 끌려가거나 미국의 폭격으로 많이 희생된 전쟁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10월 28일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였고,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1939년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갔을 때 일본 제국주의는 무주공산과 같은 아시아를 집어삼키기 위한 침략야욕을 들어낸다. 일본은 중일전쟁 시작과 함께 1937년 천인공노할 난징대학살을 일으키며 전 세계 사람의 공분을 산다.

 

일본은 중국을 넘어 서쪽과 남쪽으로 영토확장에 나서다가 1941년 미국을 침략하며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일본이 전쟁에 필요한 석유와 철 등 군수물자 수입을 금지하는 등 제재를 가하자 태평양 너머 미국으로 전쟁을 확산한다.

 

미국은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 간과한 나머지 3천 명의 사상자와 18척의 함정, 180여 대의 전투기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으며 미국 태평양함대가 궤멸되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던 미국은 일본군의 1941년 12월 7일(일본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 기습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을 일본에서는 대동아전쟁이라 한다.

 

태평양 인근 아시아를 일본 중심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권역으로 하여 통합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 제국주의가 전쟁의 침략 논리로 만든 것이 바로 태평양전쟁이며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전쟁이다.

 

 

 

 

 

 

 

 

 

 

 

 

 

진주만을 폭격당하자 미국 의회는 다음날 일본에 선전포고를 결의하였다.

1941년 12월 11일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미국은 유럽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위해 전시체제로 들어간다.

세계 대공황으로 허덕이던 미국 경제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으로 활로를 찾았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최신 무기들을 선보이며 엄청난 양의 무기를 사용한다.

신무기에 희생된 사람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다수 있었다.

 

 

 

 

 

 

 

 

 

 

 

 

1945년 3월 10일 미국의 일본 도쿄 대공습으로 1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약 백만 발의 소이탄을 탑재한 344대의 B-29 폭격기가 불과 3시간 남짓 융단 폭격에 불바다가 된 도쿄는 석조건물 일부를 제외하고 평지로 변해버렸다. 1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도쿄 대공습의 대다수가 민간인이었고 한국인 사망자는 약 1만 명에 달한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원자폭탄과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맨'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약 7만 명이 즉사하였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약 3만 5천 명에서 약 7만 명이 즉사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한 한국인은 약 4만 ~ 5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즉사한 사망자도 많지만, 방사능과 같은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약 30만 명에 이르며 이때도 사망자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다. 사망자에 포함되지 않은 피폭자는 더 많다.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으로 약 50만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으며 그중 한국인 사망자는 약 10만 명에 육박한다.

탐욕에 가득 찬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대동아전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일으킨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침략전쟁에서 너무 많은 한국인이 희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 기간 중 일본 본토에 있던 한국인 사망자 대다수는 일본과 미국에 의해서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만든 전쟁을 마치게 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제외하고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서만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기록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최대 수혜국이 되었다. 

특히 미국은 세계 대공황의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였고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군산복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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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08.20 0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평양 전쟁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비키니짐(VKNY GYM) 2016.08.23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세계대전에 대해 다시한번생각해보는글이네요 ㅋ

증산도 도전道典 - 20세기 아시아 최대 전쟁 중일전쟁(태평양전쟁)

 

 

 

 

 

 

 

 

 

 

1905년 한반도와 만주 등 지배권을 둘러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한 일본 제국주의는 만주에 철도 부설권 등의 권익을 차지하며 남만주철도회사를 설립하고 일본군을 주둔시킨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탄한 일본 제국주의는 호시탐탐 중국 대륙 진출 기회를 엿보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을 만든다.

 

 

 

 

 

 

 

 

 

 

일본과 중국(청나라)은 1894년에서 1895년에 걸쳐 일어난 청일전쟁 이후 두 번째로 맞붙게 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전쟁이라기보다는 간헐적 전투와 교전만 있었다. 그러다 1937년 노구교(일명 마르코 폴로의 다리)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은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중일전쟁은 20세기 들어 아시아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바로 중일전쟁이다.

서양에서는 이를 제2차 중일전쟁(제1차는 청일전쟁)이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중국 항일전쟁이라 하였으며, 일본에서는 일중전쟁 또는 지나 사변이라 한다.

 

 

 

 

 

 

 

 

 

 

 

노구교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벌어진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 10여 일 만에 중화민국 수도 남경(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벌인다. 이른바 난징(남경)대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 난징대학살을 약 80년이 중국은 다 된 지금도 일제의 만행과 나라의 수치를 아직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있으며 당시 약 30만 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다.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증산도 도전道典 5:405:1~2)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일본은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과 중국의 중일전쟁, 그리고 동아시아와 미국에까지 마수를 뻗친 일본에 의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된다.

 

1941년 일본은 미국 하와이의 오아후 섬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으로 들어가며 헤어나올 수 없는 늪 속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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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6.01.14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일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시려는 분들에게
    유용한 글인듯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2. 훈잉 2016.01.14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평양전쟁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에게 정말 도움되는 글들이네요 잘보고갑니다~

  3. 죽풍 2016.01.14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정말로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것은 전무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느니 하는 논리로 전쟁을 일삼았던 옛 시절.
    야만의 세계 전쟁은 다시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일본, 생각만해도 치가 떨립니다.
    그런데 미친 총리와 그에 대해 웃으며 손잡는 이나라 최고 책임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4. 뉴클릭 2016.01.14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5. 행복생활 2016.01.14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알아갈게요 ^^
    멋진 오늘이 되셔요 ^^

  6. 유라준 2016.01.14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 너무 잔학한 짓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